미국대사관이 자리했던 반도호텔
광복 이후의‘정치1번지’였던
을지로 모습
황금정통은 광복 후 1946년 10월에 일제식 동명을 우리말로 고칠 때 살수대첩을 거둔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乙支文德)장군의 성을 따서 을지로로 개칭되었다.
1946년 10월 1일 ‘을지로’로 가로명이 제정될 때는 서울시청에서 광희문에 이르는 1,110m 구간으로 정해졌다. 1952년 내무부고시 제23호에 의해 도시계획가로와 광장의 변경이 있을 때 시청 앞 광장~을지로6가에 이르는 대로 2류 1호를 대로 2류 2호로 하여 길이가 1,800m로 정해졌다.
한편 대로 2류 2호의 폭 28m, 길이 220m의 을지로6가 광장~신당동 광장에 이르는 길은 동 9호로 하고, 폭을 30m로 확장하였다. 그 후 을지로는 몇 차례의 개수과정을 거쳐 1954년 서울역에서 신당동에 이르는 도로를 신설 확장하면서 시청 앞에서 서울운동장까지 폭 30m, 길이 2,740m로 연장 확정되어 대로2류 3호의 등급번호를 갖게 되었다.
을지로는 1984년 11월 7일, 서울특별시공고 제673호에 의해 경과지명으로 을지로3가를 추가하여 기점을 시청으로 하고, 종점을 당시 서울운동장(동대문운동장, 현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으로 하여 이름 붙여졌다.
미군정기의 을지로는 ‘정치1번지’였다. 을지로 1가의 반도호텔은 광복 이후 미군사령부의 지휘 본부로 사용되었다. 1945년 9월 8일. 미군과 함께 서울에 진주한 맥아더 사령관의 참모였던 존 하지(John Reed Hodge) 중장은 지금은 헐린 조선호텔과 반도호텔에서 몇 개월간 기거, 집무하다가 이 해 연말에 경무대로 들어가 2년간 지냈다.
민심수습책을 숙의하기 위해 하지 중장은 남한의 각 정당 대표를 반도호텔로 긴급 초청하여 의견을 나누기도 하고, 반도호텔에서 이승만 박사와 장시간 요담을 하였으며, 김구(金九) 한독당위원장이 반도호텔의 하지 중장을 예방하여 테러 등 민생문제에 관해서 의견을 나누기도 하였다.(*)
지난날 을지로입구를 지나는 전차
첫댓글 반도호텔 사진 멋집니다.
귀한 자료 고맙습니다.
호텔 앞에 주차한
1955년도 Buick과
Chevolet를 보니
1956년 이후에 찍은 사진 같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