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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 사회적 축이 매트릭스 감옥을 만들다 1
The Seven Pillars of the MatrixBy Robert BonomoAug 6, 2014 - 5:57:09 AM
사람들이 어이없게도 자신이 자유인이라고 믿는데 그런식이라면 누구도 속절없이 노예화될 수밖에 없다 - 요한 볼프강폰 괴테
None are more hopelessly enslaved than those who falsely believe they are free.
― Johann Wolfgang von Goethe
오늘날 세례를 받고 기업에 소속했고 위생을 갖춘 사람은 자신의 정체가 무언지에 관해 의문을 갖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가 말하는 것을 한번 살펴본다면, " 나는 큰 소매 체인업체의 제품관리 매니저이며, 베티가 내 아내이며, 죠니의 아비이고, 민주당원이며, 스틸러스 구단의 팬이며 루터란 교회에 다닌다."
그의 말은 그의 이념이 무언지를 내포하며, 자신의 의무, 규칙, 걸려있는 제한성 등을 표출한다. 이런 것들중 어느것도 네고나 제고의 여지가 없다 - 그것은 그 자신에게 부과되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을 자유롭다고 여긴다.
Contemporary baptized, corporatized and sanitized man rarely has the occasion to question his identity, and when he does a typical response might be, “I am product manager for a large retail chain, married to Betty, father of Johnny, a Democrat, Steelers fan and a Lutheran.”
His answers imply not only his beliefs but the many responsibilities, rules and restrictions he is subjected to. Few if any of these were ever negotiated- they were imposed on him yet he still considers himself free.
그러나 자유라는 개념은 그 사람에게는 형용사이다, 혹은 현대인의 사고경향이라고나 해야 하는가? 그는 해야 할 일을 들어야하고, 믿어야 할 것, 생각해야 할 것, 기억하는 한 느껴야 할 것도 들어야만 한다. 이런 것은 수십억명의 인류를 먹여 살리는 아주 영특한 목장의 소유주가 하는 일이라 할 것이다. 소유주는 아주 영리하고 이익을 많이 내는 상상력있는 가축을 데리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은 소유주를 위해 일하고, 전쟁하고, 나가서 죽고, 가장 거친 이야기를 믿으며, 소유주가 하는 농담을 웃어주고 그의 선을 넘지않는다. 이렇게 길들여진 사람이 만일 법을 깬다면, 거기엔 군대가 있고 교도소, 정신과 병원, 관료체계가 있어서 그런 이단자를 복종시키도록 구금하고 약을 먹이고 길들이고 죽이려고 벼르고 있다.
But is free the right adjective for him, or would modern domesticated simian be more apt? He has been told what to do, believe, think and feel since he can remember. A very clever rancher has bred billions of these creatures around the globe and created the most profitable livestock imaginable. They work for him, fight for him, die for him, believe his wildest tales, laugh at his jokes and rarely get out of line. When domesticated man does break one of the rules there are armies, jailers, psychiatrists and bureaucrats prepared to kill, incarcerate, drug or hound the transgressor into submission.
사람을 길들이는 가장 확실한 방안 중에 하나는 사람이 결코 소, 양, 돼지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걸 보면 그 자신이 가축의 버젼 중의 하나라는 추정을 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생애를 가두고 길들게 해야만 하는데 그걸 어덯게 할수있던가?
그것의 비결은 동물을 다루듯이 속여먹어야 하는 것이다. 또는 속이며 지배하는 피라미드 구조를 만드는 것이 될 터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피라미드의 구조속에 안전하게 길들여지는 법이다. 그것에는 신이 중심을 잡고 있고, 왕, 왕족, 대통령, 재벌, 기업회장들이 순서에 따라 줄을 서있다.
One of the most fascinating aspects of domesticated man’s predicament is that he never looks at the cattle, sheep and pigs who wind up on his plate and make the very simple deduction that he is just a talking version of them, corralled and shepherded through his entire life. How is this accomplished? only animals that live in hierarchical groups can be dominated by man. The trick is to fool the animal into believing that the leader of the pack or herd is the person who is domesticating them. once this is accomplished the animal is under full control of its Homo sapiens master. The domesticated man is no different, originally organized in groups with a clear hierarchy and maximum size of 150- it was easy to replace the leader of these smaller groups with one overarching figure such as God, King, President, CEO etc.
사람을 충성하게 만들고 복종시키는 방법은 모두 7개의 축이라고 부르는 제도화된 방안으로 되어있다. 사실 이것이 사회의 광대한 매트릭스인데, 이것은 사람의 의식 정신을 사로잡으며 그들을 그물망 안에 걸어놓고서는 거의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드는 교묘한 씨줄 날줄을 엮어논 것이다.
이것은 아주 발달해있어서 스스로 풀어헤쳐 나가려 한다든지, 그물을 찢어놓으려는 자는 즉시 정신병자로 낙인이 찍히며 반사회존재가 되고 결국 현대사회의 패배자로 낙인찍힌다. 또 음모이론 괴짜라고 불리곤 한다.
The methodology for creating this exceptionally loyal and obedient modern breed, Homo domesticus, can be described as having seven pillars from which an immense matrix captures the talking simians and their conscious minds and hooks them into a complex mesh from which few ever escape. The system is so advanced that those who do untangle themselves and cut their way out of the net are immediately branded as mentally ill, anti-social, or simply losers who can’t accept the ‘complexity of modern life’, i.e. conspiracy nuts.
플라톤은 일찌기 동굴의 우상이란 비유를 이야기했다,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오로지 물체의 그림자를 보게되고, 제도나 신이나 이념도 그림자만 볼 수 있을 뿐이다.
- 보라! 인간이 지하 동굴에 사는데... 여기에 어릴적부터 살았다... 목은 체인에 묶이고 움직일수가 없고 오로지 앞을 볼뿐이다. 위와 뒤켠은 불이 이글거리고 있다... 그들앞에 칼을 들고 설치는 자들이 보일뿐이데, 지배자들은 오로지 앞잡이들만 보여준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그림자만을 보거나, 다른 이의 그림자만을 본다, 불은 반대편 벽에 드리워져있고...
Plato described this brilliantly in his Allegory of the Cave, where people only see man made shadows of objects, institutions, Gods and ideas:
–Behold! human beings living in an underground cave…here they have been from their childhood…necks chained so that they cannot move, and can only see before them. Above and behind them a fire is blazing at a distance…the screen which marionette players have in front of them, over which they show the puppets… and they see only their own shadows, or the shadows of one another, which the fire throws on the opposite wall…
그 일은 말로부터 시작되었는데, 그것은 사람이 서로를 조종하는 능력을 완전히 바꿔놓은 일이었다. 말이 있기 전에는 어떤 감정이 말이란 필터를 거치지 않고서 감정을 통해 직접 느꼈던 것이다. 대략 5만년전 쯤 언어가 현실을 대체해 들어왔다 그러면서 말로 하는 명령들이 매트릭스를 만들어내는 자리로 들어왔다. 말이 세상으로 들어오면서 세상이 분열되었고 그 분열 조각들은 사람의 불안을 만들면서 노예로 밀어냈다.
말은 실제로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바꾸며 분리시켰고 플라톤이 동굴의 이미지로 묘사한 첫 장면을 만들어냈다.
구루지에프는 이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 정체를 설명하는 것이 자신을 기억해내는데 주된 방해물이다. 어떤 모습으로 정체성이 부여된 사람은 더이상 그 자신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It began with the word, which forever changed the ability of men to manipulate each other. Before language, every sensation was directly felt through the senses without the filter of words. But somewhere around 50,000 years ago language began to replace reality and the first pieces of code were put in place for the creation of the Matrix. As soon as the words began to flow the world was split, and from that fracturing was born man’s angst and slavery. The words separated us from who we really were, creating the first screen onto which the images from Plato’s cave were cast. Gurdjieff said it well, “Identifying is the chief obstacle to self-remembering. A man who identifies with anything is unable to remember himself.”
헤시오드 시대에 황금시대를 사는 사람은 농업이란 걸 알지 못한 게 우연이 아니다, 그때 실버 시대가 등장했는데 당시에 우리는 청동시대에 도달해서 주된 화두는 땀과 투쟁이었다. 사람을 노예로 만들어낸 두가지 요소는 말과 농업이다. 사냥을 하는 수렵시대에는 두목을 선출하는 일이 별로 복잡하지 않았다. 그런데 농경이 등장하면서 전업으로 관리를 하는 직종이나 선전선동을 하는 자들이 등장했고 그들에 의해서 노예화가 불가피해졌다.
말로 지고새는 학교 같은 곳이 깨달음을 얻을 수없음이 드러났다. 거의 모든 과거의 전승은 깨달음을 얻는 유일한 길은 혼자있으면서 침묵정진을 해야 함을 가리키고 있다; 이것만이 현대 노예제도에서 빠져나오는 진정한 방법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하길, "혼자 있으면서 기쁨을 얻는 자는 거치른 맹수이거나 또는 신이다." 라고 했다.
우리는 가차없이 말과 글로 쩔어 버릴 처지인 학교제도로부터 길들여지고 시간에 노예가 되며 결국 7개 축을 가진 매트릭스 상태로 편입된다.
It’s no accident that in Hesiod’s ages of man the Golden Age knew no agriculture, which appeared in the Silver age, and by the time we reach the Bronze age the dominant theme is toil and strife. The two key elements to the enslavement of man were clearly language and agriculture. In the hunter gatherer society, taking out the boss was no more complicated than landing a well placed fastball to the head. only since the advent of farming was the possibility of creating full time enforcers and propagandists made possible, and hence enslavement inevitable.
The search for enlightenment rarely if ever bears fruits in those temples of words, our schools and universities. Almost all traditions point to isolation and silence as the only paths to awakening; they are the true antidotes to modern slavery. As Aristotle wrote, “Whosoever is delighted in solitude is either a wild beast or a god.”
So from the institution from which we are mercilessly bombarded with words and enslaved to time, we begin our descent through the seven layers of the Matrix
7개 사회적 축이 매트릭스 감옥을 만들다 2
The Seven Pillars of the MatrixBy Robert BonomoAug 6, 2014 - 5:57:09 AM
농경이 등장하면서 전업으로 관리를 하는 직종이나 선전선동을 하는 자들이 등장했고 그들에 의해서 노예화가 불가피해졌다. 말로 지고새는 학교 같은 곳이 깨달음을 얻을 수 없음이 드러났다. 거의 모든 과거의 전승은 깨달음을 얻는 유일한 길은 혼자있으며 침묵정진을 해야함을 가리키고 있다; 이것만이 현대 노예제도에서 빠져나오는 진정한 방법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하길, "혼자 있으면서 기쁨을 얻는 자는 거치른 맹수이거나 또는 신이다." 라고 했다.
교육 Education
우리들이 태어나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먹고, 웃고, 우는 것들이다, 또 별다른 노력없이 배우는 것은 걷고, 말하고, 싸우는 것들이 있다. 허나 매트릭스 멤버로 들어가려면 그사람은 엄격한 제도권 교육을 받지 않는다면 허용되질 않는다.
우리는 교육이념으로 길들여져야만 하는데, 그러기 위해 소위 학교라 불리는 매트릭스 훈련소에 입소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질 않고서 지배자가 사냥꾼을 데려다가 기업의 노예로 만드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기업 지배자는 종업원이 시간에 예속되어야 할 것이고, 위의 수많은 상급자를 공경해야 할 것이며 단일체계의 획일적 명령을 이행해야 하니 말이다.
There are things we are born able to do like eating, laughing and crying and others we pick up without much of an effort such as walking, speaking and fighting, but without strict institutional education there is no way that we can ever become a functioning member of the Matrix. We must be indoctrinated, sent to Matrix boot camp, which of course is school. How else could you take a hunter and turn him into a corporate slave, submissive to clocks, countless bosses, monotony, and uniformity?
어린이들은 나면서부터 자신이 누구인지 안다, 그 애들은 결코 불안이란 것이 없는데 허나 학교에 입학하고 나면 사정이 완전히 변한다. 그 아이와 그 집안은 시간표를 지켜야만 하고 규칙, 해야 할일, 학년, 석차등으로 뜻하지 않는 관념체계에 익숙해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 속에서 아이들을 돈세는 법을 가르치고 시간을 말 할줄 알고, 진도를 측정하고, 줄을 서고, 침묵하며, 복종을 견디는 법을 가르친다. 그리되면 아이들은 자신이 자유롭지 못하며 또 모든 이들로부터 분리되었으며 수많은 분리상태로 된 세계, 명분, 언어 같은걸 배우게 되는 것이다.
Children naturally know who they are, they have no existential angst, but schools immediately begin driving home the point of schedules, rules, lists and grades which inevitably lead the students to the concept of who they aren’t. We drill the little ones until they learn to count money, tell time, measure progress, stand in line, keep silent and endure submission. They learn they aren’t free and they are separated from everyone else and the world itself by a myriad of divides, names and languages.
수많은 교육이 투입되어서 사람을 시간으로 주입시키며 강요된 정체성을 부여하는지 이루 말할 수없다. 어떤 아이가 학교에 처음 가게 되면 아이의 전체 이름으로 불리는 것인데, 이전의 습관으로 돌아가지지 않는다. 거기서 아이에게 언어란 마치 분류되는 쳬계 이름으로 붙여지는 용도로 인식된다. 그러면 이전에 수지라는 이름의 아이는 더 이상 수지가 아니다; 그 아이는 국가와 도시의 시민이며, 종교단체 소속 일원이며, 문명의 산물처럼 된다. 그것들이 제각각 깃발이 있고, 마스코트, 군대, 제복, 통화, 언어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니 옴쭉달싹하지 못하는 씨줄 날줄에 엮인 소속원이 되는 것이다. 거기서 명패가 붙고 조직 이념, 역사 등등이 가르쳐진다. 또 위대하다고 주장하는 신화가 고안되고 세대를 거쳐서 거대한 이념이 세워져서 아이들의 정신을 매트릭스화 시키는 것이다.
It can’t be stressed enough how much education is simply inculcating people with the clock and the idea of a forced identity. What child when she first goes to school isn’t taken back to hear herself referred to by her full name?
It’s not as if language itself isn’t sufficiently abstract- nothing must be left without a category. Suzy can’t just be Suzy; she is a citizen of a country and a state, a member of a religion and a product of a civilization, many of which have flags, mascots, armies, uniforms, currencies and languages. once all the mascots, tag lines and corporate creeds are learned, then history can begin to be taught. The great epic myths invented and conveniently woven into the archetypes which have come down through the ages cement this matrix into the child’s mind.
정신이 매트릭스로 변했다는 것은 무언가? 그것은 그 아이가 하는 말도 이제는 새로 구성되면서 시작한다. 사과는 더 이상 이전의 사과가 아니고 - 명사이며, 주제어, 객관적 표현 등등으로 이름이 붙여진다. 어떤 것도 손대지 않는 곳이 없다. 모든 것이 찢어져서 떨어져나가고 아이는 매트릭스 일원으로 환원되는 것이다.
우리는 제도교육 12년 동안 쓸모있는걸 배우는 게 거의 없다, 그 세월동안 오로지 제도화되고, 노예가 되기 위해 조건화 지워지는 것이다 - 거기서 요리법, 농경법, 사냥, 건축, 모여서 놀고 웃고 하는 걸 배우는 게 아니다. 오로지 시계에 따라 움직이며 시험보고 경쟁하며 그 결과로 신분등급화되어서 매트릭스로 배출된다. 그게 뭐 어떠냐고? 하기야 상급노예든 하급노예든 마찬가지이니 본질은 똑같다.
Even the language that she speaks without effort must be deconstructed for her. An apple will never again be just an apple- it will become a noun, a subject, or an object. Nothing will be left untouched, all must be ripped apart and explained back to the child in Matrixese.
We are taught almost nothing useful during the twelve or so years that we are institutionalized and conditioned for slavery- not how to cook, farm, hunt, build, gather, laugh or play. We are only taught how to live by a clock and conform to institutionalized behaviors that make for solid careers as slaveocrats.
정부 Government
소위 민주국가라고 주장하는 나라는 정부의 사명이자 역할이라 해놓고서 국민에게 봉사한다는 이념을 전파한다. 그런데 정부를 보자:
정부와 법은 힘을 가진 자들이 조직화해서 제도로 표출시키는데, 그 엄연한 목표는 권력을 쥔 자들에게 이익과 힘이 모아지도록 통제권을 행사하는데 있다. 이것은 늘 그렇게 되는 것이다. 과거에 민주정을 하기 전에는 누가 권력을 가졌는지 확인하는 것이 아주 명확했다 허나 이제 권력의 귀재들은 그렇게 하질 않고 숨기고 또 숨기면서 권력을 행사한다. 권력자가 그런 식으로 자신을 은폐하며 권력을 행사하는 일이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사실 대규모로 대형 통제권을 다루는 자는 국민들은 알 길이 없게 되어있다.
In the countries that claim to be democratic the concept of a government created to serve the people is often espoused. Government, and the laws they create and enforce are institutionalized social control for the benefit of those who have seized power. This has always been the case and always will be. In the pre-democratic era it was much clearer to recognize who had power, but the genius of massive democratic states are the layers upon layers of corporatocracy and special interests which so brilliantly conceal the identify of those who really manage the massive apparatus of control.
국가의 역할이란 역사에 있어서 이념체계로 잘 자리 잡았다, 이것을 국가의 효용을 넘어 엄연한 존재성이라고 학교에서 가르친다. 그런데 이미 산업시대를 넘어서 국가의 의미가 달라졌는데도 누구도 이념이 가진 문제를 논의하지 않는다. 국가가 저지르는 일이 무엇인가는 전쟁에서 잘 나타난다. 전쟁을 하려면 이념으로 선전선동을 하고 불구대천의 적을 만들고 또 사건을 테러든 위장작전이든 만들어야한다. 그리고서 국가가 하는일은 인종 학살, 기아, 기만적인 부패로 간다. 헐리우드는 역사물을 내보내면서 국가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악당을 대항하고 정의의 영웅이 국가를 대표해서 악을 척결하는 모습을 그린다. 이런 것에 매료되면 국가가 아무리 기만을 하며 파멸의 전쟁으로 가도 그건 불가피하거나 소악으로 거악을 막았다고 이해를 하는 것이다.
The functions of the state are so well ensconced in dogmatic versions of history taught in schools that almost no one questions why we need anything beyond the bare essentials of government to maintain order in the post-industrial age. The history classes never point the finger at the governments themselves as the propagators and instigators of war, genocide, starvation and corruption. In Hollywood’s version of history, the one most people absorb, ‘good’ governments are always portrayed as fighting ‘bad’ ones. We have yet to see a film where all the people on both sides simply disengage from their governments and ignore the calls to violence.
국가조직은 법으로 구성되는데, 그 말은 국민과 권력 측 조직 사이에 계약을 했다는 의미이다. 그 안에는 국민과 국가권력층간의 주권을 두고서 교환거래를 한셈이다. 허나 이렇게 권력과 계약을 해서 국민을 보호해줄줄 알았던 권력은 20세기만 두고 볼때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그들의 권력과 법은 그대로인데 반해 국민들은 무서운 거대한 살륙전쟁을 치러야했고, 또 끊임없이 국지전을 벌이는데 헤아릴수 없이 많은 국민들이 죽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국가를 앞세운 권력이 저지른 배신행위이다.
국민의 자유는 오로지 현대사회 시민들에게 천부의 권리로 주어진 것인데, 이것이 사라지고 있다. 국민들은 이미 법과 권력조직에 칭칭 매여져서 제대로 항거조차 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제 국가권력을 뒤에서 통제하는 권력층과 기업지배층을 소환해야할 때가 되었다. 이들의 모습을 드러내 놓고서 국민과의 계약을 새로이 해야만 할 때이다.
The state apparatus is based on law, which is a contract between the people and an organism created to administer common necessities- an exchange of sovereignty between the people and the state. This sounds reasonable, but when one looks at the mass slaughters of the 20th century, almost without exception, the perpetrators are the states themselves.
The loss of human freedom is the only birthright offered to the citizens of the modern nation. There is never a choice. It is spun as a freedom and a privilege when it is in fact indentured servitude to the state apparatus and the corporatocracy that controls it.
7개 사회적 축이 매트릭스 감옥을 만들다 3
The Seven Pillars of the MatrixBy Robert BonomoAug 6, 2014 - 5:57:09 AM
국가조직은 법으로 구성되는데, 그 말은 국민과 권력 측 간에 계약을 했다는 의미이다. 그 안에는 국민과 국가권력층이 주권을 두고서 교환거래를 한 셈이다. 허나 이렇게 권력과 계약을 해서 국민을 보호해줄 줄 알았던 권력은 20세기만 두고 볼때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그들의 권력과 법은 그대로인데 반해 국민들은 무서운 거대한 살육 전쟁을 치러야했고, 또 끊임없이 국지전을 벌이는데 헤아릴 수없이 많은 국민들이 죽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국가를 앞세운 권력이 저지른 배신행위이다.
애국심 Patriotism
애국심은 순전히 추상적 관념이다, 이는 완전히 사회를 통제하려고 만들어낸 이념이다. 사람들은 애국심이 그들의 윤리나 인종, 종교보다 더 상위에 있는 가치있는 이념이라고 배우고 있다. 그것은 거대한 기업으로 변한 국가를 위한 조직적인 유대적 관념이다. 어린 아이로부터 국가라는 거대한 장치를 숭배하라고 세뇌 받는 것이다, 그게 마치 신비로운 신처럼 보라는 것이다. 군신 일체..
Patriotism is pure abstraction, a completely artificial mechanism of social control. People are taught to value their compatriots above and beyond those of their own ethnic background, race or religion. The organic bonds are to be shed in favor of the great corporate state. From infancy children are indoctrinated like Pavlov’s dogs to worship the paraphernalia of the state and see it as a mystical demigod.
국가란 무엇인가? 미국을 예로 들어 보자면, 그것이 실제로 어떤 조직체인가? 그것은 우체국인가, 식약청, 씨아이에이인가? 국가를 사랑하는 것은 세무서와 엔에스에이를 사랑한다는 것인가? 그럼 어떤 사람이 씨애틀에서 온 게 아니고 뱅쿠버에서 왔다면 그들을 다르게 느끼라는 말인가?
이제 1933년부터 미국이라는 국가는 기업이 되었는데, 그 기업은 유태 금융가들이 소유한 것이다. 그러니 국가를 사랑하는 것은 유태인 금융지배자를 사랑하라는 말인가?
그런데 유태인이든 금융지배자이던 결코 미국민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들은 국민과 공감하거나 마음 아파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런 냉담한 지배자를 어떻게 사랑한단 말인가?
우리는 지배자를 평생동안 봉사하고 복종하라고 태어난 것은 아니다. 그 지배자들이 그걸 원할지 모르지만 일방적인 숭배를 하는 것은 가능하지가 않다.
What is a country? Using the United States as example, what actually is this entity? Is it the USPS, the FDA, or the CIA? Does loving one’s country mean one should love the IRS and the NSA? Should we feel differently about someone if they are from Vancouver instead of Seattle? Loving a state is the same as loving a corporation, [ Ron: Arguably, since 1933 most "states" ARE corporations, owned by hidden Jew banksters.]. except with the corporations there is still no stigma attached to not showing overt sentimental devotion to their brands and fortunately, at least for the moment, we are not obligated at birth to pay them for a lifetime of services, most of which we neither need nor want.
헐리우드는 역사와 대통령 권력을 내보내면서 외국인/ 테러주의자/ 극단주의자의 적대적 성향을 들이대며 국민이 그에 대항하거나 국가가 그들과 전투를 할때 성원할 것을 선동한다. 그러나 그런 테러전쟁을 지지하고 그에 나서 싸우는 전투원을 아무리 존중해도 국민에게는 끝없이 복종할 것만 요구될 뿐이다. 이것은 애국심이란 일방적인 사랑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왜 전쟁을 위한 애국심말고 국민을 위한 애국심, 민생과 정의 진실을 위한 애국심은 존재하지 않는가?
한편 모처럼 진실을 폭로해도 국민은 그 진실을 정의롭게 누릴수가 없다. 그이유는 진실의 투쟁가를 바로 테러주의자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이러면 국민은 어떻게 애국을 할 수있단 말인가?
Flags, the Hollywood version of history and presidential worship are drilled into us to maintain the illusion of the ‘other’ and force the ‘foreigner/terrorist/extremist’ to wear the stigma of our projections. The archaic tribal energy that united small bands and helped them to fend off wild beasts and hungry hoards has been converted into a magic wand for the masters of the matrix. Flags are waved, and we respond like hungry Labradors jumping at a juicy prime rib swinging before our noses. Sentimental statist propaganda is simply the mouthguard used to soften the jolt of our collective electroshock therapy.
종교 Religion
애국심, 이념이 강력한 것만큼이나 더 높은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은 늘 있다. 종교란 말은 라틴어로 ‘re-ligare’ 라고 되는데 그 의미는 다시 연결한다 reconnect 라는 뜻이다. 그런데 무얼 연결하자는 말인가?
모든 종교 앞에 물어야 할 질문이 있는데, 그대 종교는 우리가 무엇으로부터 단절되었다고 보느냐 하는 질문이다. 종교에서 교리화를 하고 노예를 소유할 권리를 배제하겠다는 것은 비용을 들이는 것이다;
인류를 수준에 따라 관념화하고 어떤 기존의 지위에서 배제하는 것은 사람을 허무한 로보트로 만드는 일이다. 이에 아무리 애국심으로 무장을 한다 해도 영혼을 가진 걸 대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깃발을 흔들고 역사 교육을 하면 매트릭스에서의 허무감을 일시적으로 완화시킬 수있다 , 그래서 종교 사제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As powerful as the patriotic sects are, there has always been a need for something higher. Religion comes from the Latin ‘re-ligare’ and it means to reconnect. But reconnect to what? The question before all religions is, what have we been disconnected from? The indoctrination and alienation of becoming a card carrying slave has a cost; the level of abstraction and the disconnect from any semblance of humanity converts people into nihilistic robots. No amount of patriotic fervor can replace having a soul. The flags and history lessons can only give a momentary reprieve to the emptiness of the Matrix and that’s why the priests are needed.
사람이 우주와 맺고있는 초기의 영적인 연결은 말이 들어오면서 시작된 이중성으로 와해되었다, 도시가 생기고 군대가 양성되면서 사람은 다시 연결을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는 종교에 기반한 신앙을 갖는다. 현자가 갖는 종교 체험을 통해 얻은 신앙은 윌리엄 제임스가 말한 바대로 어떤 누구든지 다시 연결하는 능력을 말한다. 이것은 좀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현재 주류 종교가 하는 예배는 어떤 종류의 위로와 연결을 제공한다, 허나 그들이 연결한 것은 영적 진실 대신에 매트릭스에 접속되는 것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주어지는 설교이야기나 경전을 뒤져서 음미해보면 대개 신이란 존재가 군림해서 살륙의 전쟁을 한다는 이야기를 미화해서 내놓은 것이다. 왜 종교 속에 살륙하는 신이 필요한가? 그렇게 인류에게 무서운 신이 필요하단 말인가?
The original spiritual connection man had with the universe began to dissolve into duality with the onset of language, and by the time cities and standing armies arrived he was in need of a reconnection, and thus we get our faith based religions. Faith in the religious experiences of sages, or as William James put it, faith in someone else’s ability to connect. Of course the liturgies of our mainstream religions offer some solace and connection, but in general they simply provide the glue for the Matrix. A brief perusal of the news will clearly show that their ‘God’ seems most comfortable amidst the killing fields.
만일 우리가 아브라함시대의 종교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국가개념과 유사한 행동을 하는 신을 보게 된다, 그 신은 사랑받고 추앙받기를 무척 원한다. 그 은 존재하지도 않는 것 같은 다른 신을 무척 경계하는데, 정부가 그렇듯이 엄청 사회 광적 편집증 성향을 표출한다. 신이 명령하면 신에게 대항한 적들은 홍수로 쓸어버리고 또 죽음의 천사가 한밤중에 와서는 적의 자식들을 전멸시켜버리기 까지 한다. 게다가 원자탄, 티비, 네이팜탄, 문화혁명으로 쓸어버린다. 미국인이 부르는 '성조기여 영원하라' 국가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다;
"너의 조국을 사랑하라, 그 깃발, 역사, 신을 사랑하라, 이런 모든걸 신이 창조했다" 라고 노래한다. 이렇게 싸우고 지배하는 신의개념을 세대를 거쳐서 이어간다. 종교는 그런 것을 가르치는데 연결하고 자시고 할게 없다. 종교자체가 사회권력이며 또 전쟁과 지배 이념이니 연결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If we focus on the Abrahamic religions, we have a god much like the state, one who needs to be loved. He is also jealous of the other supposedly non-existent gods and is as sociopathic as the governments who adore him. He wipes out his enemies with floods and angels of death just as the governments who pander to him annihilate us with cultural revolutions, atom bombs, television and napalm. Their anthem is, “Love your country, it’s flag, its history, and the God who created it all”- an ethos force fed to each new generation
7개 사회적 축이 매트릭스 감옥을 만들다 4
The Seven Pillars of the MatrixBy Robert BonomoAug 6, 2014 - 5:57:09 AM
너의 조국을 사랑하라, 그 깃발, 역사, 신을 사랑하라, 이런 모든걸 신이 창조했다 라고 노래한다. 이렇게 싸우고 지배하는 신의개념을 세대를 거쳐서 이어간다. 종교는 그런 것을 가르치는데 연결하고 자시고 할게 없다. 종교자체가 사회권력이며 또 전쟁과 지배 이념이니 연결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구경거리, 구경놀음 Circus
구경놀음이 슬프게 만드는 이유는 그것이 그리 즐길만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다. 기분 나쁜 표현이지만 노예신세를 생각해보자, 노예는 저녁무렵 시계를 보면서 이제 즐길 시간이라고 간주되기에 야구장이나 축구장을 찾아간다, 또 젊은이라면 클럽을 향할 것이고, 나이가 있다면 티비 앞으로 가거나 영화관으로 갈 수도 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이 주는 애니팡게임을 포함해서 전자기기를 갖고 구경놀이를 한다, 이것들은 대부분 사람을 통속적이고 저급한 감각의 프로퍼갠더 속으로 몰입하게 만든다.
사람이 길들여지는 존재 Homo domesticus 로서 그에게 맞는 울타리 안에 들어가서 즐기라고 허용되고 또 본인도 전심으로 즐거워한다면 그녀는 한주간에 토요일, 일요일에 실컷 즐기고, 일년에는 15일간의 휴가로써 농장이나, 리조트에서 우유를 마시며 즐거워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후 그녀가 일하기에 너무 늙었다면, 목초장으로 인도되어서 구멍에 공을 넣는 게이트볼이나 또는 앞마당 골프를 하게 된다.
The sad thing about circus is that it’s generally not even entertaining. The slaves are told it’s time for some fun and they move in hordes to fill stadiums, clubs, TV, cinemas or simply to stare into their electrical devices believing that they are are being entertained by vulgar propaganda.
As long as Homo domesticus goes into the appropriate corral, jumps when she is told to and agrees wholeheartedly that she is having fun, than she is a good slave worthy of her two days off a week and fifteen days vacation at the designated farm where she is milked of any excess gold she might have accumulated during the year. once she is too old to work and put to pasture, holes are strategically placed in her vicinity so she and her husband can spend their last few dollars trying to get a small white ball into them.
하루의 일과는 그녀가 출근하면 카페인이 듬뿍 들어간 커피를 홀짝이면서 그녀의 정신이 집중된 상태로 일을 최대한 컴터 스크린 상에서 만들어낸다. 그리고 하루일과 후엔 매트릭스가 허용한 카타르시스 음료인 알콜을 마시고 다음날 다시 카페인의 하루가 시작되기 전의 몇 시간을 잠잔다. 그런데 신은 마리화나 등을 통해 들어가는 환각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나 또는 그녀의 육화 초기의 계약 상태로 가는 걸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고맙게도 그렇게 존재성을 깨닫는 물질이 금지되었다. 다만 알콜은 많이 마시라고 권해진다. 매트릭스는 아침에 커피 마시는 걸 좋아하고 저녁엔 알콜, 그러면 그 사이에는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On a daily basis, after the caffeinated maximum effort has been squeezed out of her, she is placed in front of a screen, given the Matrix approved beverage (alcohol), and re-indoctrinated for several hours before starting the whole cycle over again. God forbid anyone ever took a hallucinogen and had an original thought. We are, thankfully, protected from any substances that might actually wake us up and are encouraged stick to the booze. The matrix loves coffee in the morning, alcohol in the evening and never an authentic thought in between.
초기 상태란, 우리가 완전한 몸으로 '완전한 사랑'을 꿈꾸면서 들어왔던 상태를 말한다, 그때 우리는 부드러운 포옹을 받으며 달콤한 말, 헐리우드식 드라마로 채워져 있었다. 이것은 매트릭스가 몰아넣은 은근한 암시였을 것이다, 미의 여신 비너스가 매혹하는 모습은 그녀가 약속한 일탈적인 길로 기꺼이 가게 만드는 마의 유혹이었다. 낭만적인 사랑을 미끼처럼 엮는 것이고 우리는 감상으로 젖은 거짓과 양심없는 소비주의의 길로 팔려갔다. 스스로도 그게 길 인줄로 여기고 내달려 왔던 것이고..
On a more primal level we are entranced with the contours of the perfect body and dream of ‘perfect love’, where our days will be filled with soft caresses, sweet words and Hollywood drama. This is maybe the most sublime of the Matrix’s snares, as Venus’s charms can be so convincing one willingly abandons all for her devious promise. Romantic love is dangled like bait, selling us down the path of sentimentally coated lies and mindless consumerism.
돈 Money
돈은 가장 확실한 성공이다. 수십억의 인구는 그들이 깨어있는 삶의 거의 모든 시간을 돈을 벌고 또 쓰는데 소진한다, 실제로 돈이 무언지를 알지 못한채 그러는 것이다.
홀로그램이 만들어내는 이 세상에서 사람이 돈이 없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오로지 숨 쉬는 것만 허용된다. 모든 인간의 활동에는 돈이 요구되는데 먹든지 마시든지, 옷을 입든 사랑의 동반자를 찾든지 말이다.
종교는 태생적 영혼의 이야기로부터 왔다, 애국심은 동족을 살리자는 본능에서 왔다, 하지만 돈은 지배자들이 고안해 낸 것인데 - 가장 환상적이며 인류를 길들이는 최고 효율의 도구로 온 것이다.
지배자들은 돈이야 말로 진정한 가치를 지닌 것이라는 관념을 노예에게 확신시켰다, 왜냐하면 과거 경험을 되새기면 정말 돈이 그런 일을 하기 때문이다.
지배자들이 돈을 그들의 컴퓨터 바깥과는 완전히 분리시킨다면 그들은 마침내 완전한 통제권을 쥔다. 지배자들은 마지막 문을 걸어 잠그며, 모든 전선을 전기철조망으로 둘러치는 것이다. 그들은 돈을 아무 근거가 없이 종이위에 단지 인쇄해낼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18세 소년에게 이자를 내면서 4년 동안 쓰라고 대출을 준다. 그 젊은이는 그 돈으로 술을 마시고 프로퍼갠더를 기억하며 서서히 부채의 늪에 빠지는 것이다, 그것이 결코 끝이 나지 않는 영원한 굴레임을 나중에야 알게 된다.
Money is their most brilliant accomplishment. Billions of people spend most of their waking lives either acquiring it or spending it without ever understanding what it actually is. In this hologram of a world, the only thing one can do without money is breath. For almost every other human activity they want currency, from eating and drinking to clothing oneself and finding a partner. Religion came from innate spirituality and patriotism from the tribe, but money they invented themselves- the most fantastic and effective of all their tools of domestication.
They have convinced the slaves that money actually has some intrinsic value, since at some point in the past it actually did. Once they were finally able to disconnect money completely from anything other than their computers, they finally took complete control, locked the last gate and electrified all the fences. They ingeniously print it up out of the nothing and loan it with interest in order for 18-year-olds to spend four years drinking and memorizing propaganda as they begin a financial indebtedness that will most likely never end.
보통의 미국인이 서른살이 될 때 부채는 엄청나게 늘어나서 그들은 부채에서 헤어날 길이 없다는 절망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주택모기지대출을 안고있으며 신용카드, 학자금 대출, 자동차대출을 마치 산타클로스로부터 받은 것이라는 꿈에서 깨어난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왜 지배자는 종이에 인쇄해서 돈을 만들거나 또는 컴퓨터 숫자를 만들어서 돈을 만드는데 반해 자기들은 뼈 빠지게 일을 해야 돈을 버는지를 묻지를 않는다.
돈을 화폐로 간주하게끔 궁글려대는 사기의 천재들은 다른 어떤 사람도 돈을 인쇄하지 못하게 하며 또 백악관 권력을 자기들의 말대로 하게끔 만든다. 국민들이 은행에 대해서 왜 종이에 인쇄해서 돈을 만들며 그런 권리를 독점하느냐고 항변하면 금융지배자들은 그게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라고 질책한다. 그러면서 장황한 거짓말을 내 놓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국민이 노예가 되는 일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고 여기게 된다.
By the time the typical American is thirty the debt is mounted so high that they abandon any hope of ever being free of it and embrace their mortgages, credit cards, student loans and car loans as gifts from a sugar daddy. What they rarely asks themselves is why they must work to make money while banks can simply create it with a few key strokes. If they printed out notes on their HP’s and loaned them with interest to their neighbors, they would wind up in a penitentiary, but not our friends on Wall Street- they do just that and wind up pulling the strings in the White House. The genius of the money scam is how obvious it is. When people are told that banks create money out of nothing and are paid interest for it the good folks are left incredulous. “It can’t be that simple!” And therein lies the rub- no one wants to believe that they have been enslaved so easily
7개 사회적 축이 매트릭스 감옥을 만들다 5
The Seven Pillars of the MatrixBy Robert BonomoAug 6, 2014 - 5:57:09 AM
미국인들은 왜 지배자는 종이에 인쇄해서 돈을 만들거나 또는 컴퓨터 숫자를 만들어서 돈을 만드는데 반해 자기들은 뼈 빠지게 일을 해야 돈을 버는지를 묻지를 않는다.
돈을 화폐로 간주하게끔 궁글려대는 사기의 천재들은 다른 어떤 사람도 돈을 인쇄하지 못하게 하며 또 백악관 권력을 자기들의 말대로 하게끔 만든다. 국민들이 은행에 대해서 왜 종이에 인쇄해서 돈을 만들며 그런 권리를 독점하느냐고 항변하면 금융 지배자들은 그게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라고 질책한다. 그러면서 장황한 거짓말을 내놓는 것이다.
문화 Culture
컬처는 신비성을 쥐고있으려는 노력이다, 이것은 신화를 대신한다 Culture is the effort to hold back the mystery, and replace it with a mythology.
– 테렌스 맥키나 Terence McKenna
테렌스가 즐겨 말했듯이, " 문화는 우리의 친구가 아니다." 그것은 진실된 체험을 하는 길에 대용품으로 존재한다. 사람들이 점점더 많은 공동체를 만들때, 그들은 샤만 무당을 통해 직접적인 영적 체험을 하는걸 목사가 하는 종교적 설교로 대신했다. 드럼을 치고 땀을 흘리는 것이 디지털로 기업화된 잡음을 대체한다. 그리고 지역 마을의 이야기는 헐리우드식 소란스런 영화가 대체한다, 비판의 사고력은 학술을 입은 이론으로 대체되는 것이고.
만일 돈이 매트릭스에 고정시키는 족쇄라고 한다면, 문화는 그것의 운영시스템이다. 필터를 거치고, 중앙 집중되고, 심하게 조작되어도 문화는 모든 신화를 대규모 인류통제 목적으로 결합시킨다. 그렇기에 오로지 강인한 영혼만이 거기서 빠져나가는 것이다. 사람이 애국심이든, 종교이든, 돈이든 지켜 볼 때 조작이 들어있음을 파악하는 것은 비교적 쉽다. 허나 문화로 스며들어 올 때는 이야기가 다르다.
문화는 우리가 숨쉬는 공기처럼 자연스럽고 시간에 구애되지 않는 것이며 우리 자신의 존재성과 켜켜이 공유되어져 있다. 그러니 어디까지가 나 자신의 개인적 분별이고 어디서 문화가 말을 하는지를 분간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
As Terence loved to say, “Culture is not your friend.”1 It exists as a buffer to authentic experience. As they created larger and larger communities, they replaced the direct spiritual experience of the shaman with priestly religion. Drum beats and sweat were exchanged for digitized, corporatized noise. Local tales got replaced by Hollywood blockbusters, critical thinking with academic dogma.
If money is the shackles of the matrix, culture is its operating system. Filtered, centralized, incredibly manipulative, it glues all their myths together into one massive narrative of social control from which only the bravest of souls ever try to escape. It’s relatively simple to see the manipulation when one looks at patriotism, religion or money. But when taken as a whole, our culture seems as natural and timeless as the air we breathe, so intertwined with our self conception it is often hard to see where we individually finish and our culture begins.
통제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길
Escaping the Grip of Control
누군가는 이런 매트릭스가 진짜냐고 물으며 그게 그렇게 강한 지배력이라면 우리의 위대한 마음을 써서 왜 이야기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왜 이런 문제를 토론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소크라테스를 전공하는 피터 킹슬리 학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학자들이 발견한 것을 논의하느냐 안하느냐라는 의문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있다. 또 학자가 국민들로부터 진실을 알리느냐 아님 막느냐라는 의문에 대해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이 있다.
그런 중대한 사회적 진실을 다루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것을 취급하는지를 알면 모든 것이 명백해진다. 그들에게는 진실은 장식물로 표출하는 일이 된다. 그들은 국민에게서 진실을 막으려 드는데, 그게 국가안보에 관련되거나 사회불안을 조장한다고 구실을 달면서 그런 행위를 한다.
그들은 깊은 수준의 진실을 덮으려 국민에게 집단적 환상을 조장하는데 학자들은 알고서 방조한다.
물을 발견한 사람이라 해서 누구나가 물고기 일 수는 없다. 물을 떠나기 위해서 또는 플라톤의 동굴을 떠나려면 용기가 필요하고 그 통제를 넘머 뭐가 있는지를 아는 지식이 필요하다. 2,300년전 플라톤은 매트릭스를 떠나려는 사람을 위해 동굴의 우상이란 이야기를 기록했다. 동굴에서 오로지 그림자 춤만을 추는 가부키 연극을 보던 사람이 이제 태양이 빛나는 세상으로 나가려는 극한적인 몸짓과 같다.
Some might ask why this all-pervasive network of control isn’t talked about or discussed by our ‘great minds’. Pre-Socratic scholar Peter Kingsley explains it well:
“Everything becomes clear once we accept the fact that scholarship as a whole is not concerned with finding, or even looking for, the truth. That’s just a decorative appearance. It’s simply concerned with protecting us from truths that might endanger our security; and it does so by perpetuating our collective illusions on a much deeper level than individual scholars are aware of.”
Whoever discovered water, it certainly wasn’t a fish. To leave the ‘water’, or Plato’s cave takes courage and the knowledge that there is something beyond the web of control. Over 2,300 hundred years ago Plato described the process of leaving the Matrix in the Allegory of the Cave as a slow, excruciating process akin to walking out onto a sunny beach after spending years in a basement watching Kabuki.
이렇게 깨어나는 걸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는가? 사람들은 결코 바다에 가본적이 없는데 그곳에 가서 헤엄을 치는 광경을 어떻게 묘사할 수가 있단 말인가? 당신은 할 수가 없다, 하지만 당신이 그런 사람을 위해 창문을 깨서 열어 제치면 그래서 만일 충분하게 많은 창문이 열어 제껴지면 환상은 빛을 잃어버리게 된다
출처:http://blog.daum.net/petercskim/7871084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매트릭스란 무엇인가?를 잘 설명한 것 같아서...
우리 카페에는 안 어울릴려나? 뜬금없다 생각하면 패스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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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매트릭스란 무엇인가?를 잘 설명한 것 같아서...
우리 카페에는 안 어울릴려나? 뜬금없다 생각하면 패스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