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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권 전철 5호선
수도권 전철 5호선은 1996년 3월 20일 개통한 서울 지하철 5호선 서울특별시 강서구의 방화역과 강동구의 상일동역, 서울특별시 송파구의 마천역을 잇는 서울특별시 도시철도공사의 도시 철도 노선이다. 노선 안내 등에 사용되는 노선 색은 ●보라색이며, 노선색의 의미는 '황제'이다. 수도권 전철과 서울 지하철(2기 지하철)을 구성하는 노선 중 하나이다. 지하철 사각지대인 서울 강서-도심-강동, 마천지역을 동서로 연결하여 시내 각 지역으로의 접근도를 향상키기고 도심교통 수요를 외곽으로 분산하는 방사형 노선으로 대단위 업무시설이 밀집한 여의도 구간을 통과하는 최초의 서울특별시 도시철도 노선이었으며, 지하철 수혜에서 소외된 강서, 고덕, 마천등에서 도심근접을 40분 이내로 가능하게 함을 목적으로 건설되었다.
이 노선은 최초로 한강을 교각이 아닌 하저터널을 통해 건너는 노선이다(여의나루 - 마포, 광나루 - 천호 구간). 하저 터널은 당시 기술력으로는 광폭 터널을 만들기 어려웠으므로 상·하행선이 구분되어 있는 단선 쌍굴 형태로, 한강 수심보다 약 25m정도 더 깊은 곳에 설계되어 있다.
※ 현재 5호선의 뚜렷한 연장 계획은 존재하지 않으나, 기·종점과 인접하고 있으나 수도권 전철의 수혜를 받지 못한 음영지역인 경기도 김포시와 하남시에서 지속적으로 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 강동구에서는 새로 조성된 강일지구 인근에 추가역 신설을 요구한 상태이다 이에 대해 국토해양부는 2015년까지 하남시에 5호선을 연장키로 하였다 계획 또는 공사가 진행중인 동안 새로운 정보가 추가되거나, 그 내용이 변경될 수 있습니다.
(부호) ☞ (숫자는 역 번호) (☯ 갈아타는 곳) (★ 부 역명)
(510) 방 화(倣 花) 1996년 3월 20일 개통한 강서구 방화3동 410번지에 위치한 방화역은 동명에서 명명된 것이며 방화동의 유래는 동쪽의 마곡동, 서쪽의 과해동 남쪽의 공항동 북쪽의 개화동 및 한강과 접한다, 꽃이 피는 모습과 같이 생긴 개화산(開花山)옆에 있다는 뜻에서 동의 이름이 붙었다, 고려 말(1310년) 양천현에 속하였다, 1896년 경기도 양천군 삼정면에 소속되었으며 1914년 김포군 양서면 방화리가 되었다, 1936년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에 편입되었고 1977년 강서구가 분리 신설되면서 이에 속하게 되었다,
(511) 개화산(開花山) 강서구 방화3동 531-16번지에 위치한 개화산역은 산의 모양이 꽃피는 형국을 하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개화동의 면적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높이 132m의 개화산의 이름을 따 명명된 것이다, 개화산에는 개화사라는 절이 있었으나 지금은 약사암(藥師岩)이라는 암자만 남아 있고, 이 암자는 약사여래(藥師如來)를 주불(主佛)로 모시고 있다, 그리고 이곳 약사암 바로 앞에는 약수터가 있어 주민들의 발길이 끓이지 않고 있다, 특이한 것은, 산 이름이 개화산이어서인지 이 약수 역시 꽃물이 오르는 5~6월이 되면 달짝지근한 물맛을 내며 효능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512) 김포공항(金浦空港) (☯ 인천공항 철도) (☯ 수도권 전철 9호선) 강서구 방화동 744번지에 위치한 김포공항역은 김포공항역 서울특별시 강서구에 있는 서울 지하철 5호선과 서울 지하철 9호선의 전철역이자, 인천국제공항철도의 철도역이다. 주로 김포국제공항을 이용하도록 설계된 역으로, 공항의 국내선 청사와 국제선 청사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 서울 지하철과 공항철도 사이의 환승역으로 분류되기는 하나, 운임 제도의 차이로 인하여 공항철도 이용시에는 추가 요금이 발생한다. 역명 때문에 소재지를 경기도 김포시로 혼동하는 경우도 있으나, 서울 강서구에 있다. 5호선, 9호선, 공항철도 모두 스크린도어가 설치, 운영되고 있다. 9호선의 급행열차는 이 역을 기점으로 시·종착한다. 2010년에 공항철도 노선이 서울역까지 연장될 경우 공항철도를 통해서도 서울지역으로 갈 수 있다.
☞ 역명은 이곳에 김포비행장이 있으므로 해서 붙여졌다, 김포공항은 1939년 당시 경기도 김포군 양서면 방화리에 일본군이 활주로를 건설 하면서 시작된 공항의 역사는 이 후 미 공군이 사용하면서 민간항공기 운항이 허용되고 1954년부터 우리나라도 일부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그 후 1958년 이 되어서야 대통령령으로 김포국제공항으로 지정되면서 1971년 본격적으로 공항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되었다
(513) 송 정(松 亭) 강서구 공항동 27-1번지에 위치한 송정역은 옛 자연부락의 이름에서 명명(命名)된 것이다, 송정이란 조서시대까지는 경기도 양천군(陽川郡) 가곡면(加谷面) 눌언리(訥語里) 송정리(松亭里) 소율리(小栗里)였으나 1914년 눌언리 송정리 소율리를 한데 묶어서 김포군 양서면 송정리라 하였다, 1963년 서울시 지역의 확장으로 서울시 영등포구 공항동으로 개칭 편입되었다, 송정리는 소나무가 많이 심어져 울창했고 이곳에 누가 지었는지 모르는 소나무로 된 정자가 있으므로 그 정자이름을 송정이라 하고 일대를 송정리라 불렸다고 한다,
(514) 마 곡(麻 谷) 강서구 가양동 531번지에 위치한 마곡역은마곡역 서울특별시 강서구에 있는 서울 지하철 5호선의 역이다. 5호선과 같은 시기에 개통되었지만, 주변에 역세권이 없어 12년동안 열차가 정차하지 않았다가 2008년 6월 20일이 되서야 주민들의 요구로 개통된 역사이다. 역사는 역명과 달리 가양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울 지하철 9호선 마곡나루역과는 다르므로 구분한다.
☞ 역사(驛舍) 인근 지역이 월드컵 경기장의 후보지로 선정되고 서울특별시가 마곡지구 택지 개발 계획을 수립함에 따라 역이 미리 건설되었지만, 월드컵 경기장 후보지에서도 탈락하고 택지 개발 계획도 흐지부지되는 바람에 1996년 3월 20일 방화 - 까치산 구간이 개통된 이후 2008년까지 열차가 정차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곡역 남쪽 직선으로 약 500m~1km 떨어진 내발산1동에 마곡수명산파크 아파트 등의 주거공간이 상당수 건설되면서 주민들의 개통 요구가 많아졌고, 2008년 초 서울특별시에서 현장 실사를 한 후 영업을 승인하였다.
이를 위해 내부 시설을 보완하는 작업을 하였고 당초 영업 개시일이 2008년 6월 1일이었으나, 마곡역 1개 출입구와 인접한 공항로에 아파트단지, 주택가와 마곡역 입구를 유일하게 연결해 줄 횡단보도 및 버스 정류장이 설치되지 않은 문제점이 발견되어 실제 개통은 2008년 6월 20일에 이뤄졌다. 한편 그 동안 지지부진했던 마곡지구 개발은 2009년 10월 27일에 와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현재는 마곡역이 주변 지역의 마을버스 등과 연계되고 있으나 마곡지구 개발이 완료될 경우 수요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515) 발 산(鉢 山) 강서구 가양동 968번지에 위치한 발산역은 서울특별시 강서구에 있는 서울 지하철 5호선의 전철역이다. 역명과는 달리 발산동이 아닌 가양동에 있다. 역명은 내 외발산동이 있는 수명산(壽命山)(해발 72,3m)을 경계로 안쪽을 내발산동(內鉢山洞) 바깔쪽을 외(外)발산동의 마을에서 동제를 지내고 수명장수를 빌던 곳이라고 하며, 이 산의 모습이 주발과 같음으로 발산(鉢山)(鉢;바리때 발(鉢)자는 불가에서 대대로 전하는 가사와 바리때“즉,,중의 밥그릇이란 뜻)이라 하여 발산동명에서 유래
(516) 우장산(雨裝山) 강서구 내발산동 723번지에 위치한 우장산역은 강서구 발산동과 화곡6동의 걸쳐 있는 높이 98m의 산, 우장산(雨裝山)은 다양한 체육시설과 휴식공간이 조성돼 있어 주민들이 즐겨 찾는 산책코스다, 옛날 기우제를 지내던 산으로, 이곳에서 기우제를 마치는 날에는 꼭 비가 오므로 모두 우장(雨裝)을 준비했기 때문에 우장산이라 부르던 산 이름에서 유래
(517) 화 곡(禾 谷) 강서구 화곡7동 1075번지에 위치한 화곡역은 동명에서 명명 된 것이다, 화곡동의 유래는 예로부터 땅이 질어 골짝기 사이마다 벼(禾)가 잘되는 곳이므로 화곡동이라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남양군(南陽郡) 남산면 능동 박곡리, 역촌리 화곡리, 1914년 경기도 김포군 양동면 화곡리, 1963년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양동출장소, 양동출장소가 폐지되므로 1968년 영등포구에서 강서구 화곡동이 되었다,
(518) 까치산 (☯ 신정지선) (☯ 수도권 전철 2호선)강서구 화곡1동 343번지에 위치한 5호선 까치산역은 봉제산(매봉산) 일대에는 예로부터 까치가 많이 서식하였으나 화곡동 개발계획에 따라 봉제산 중턱까지 주택이 들어서고 인구가 급증하면서 봉재산 일대의 까치들이 갈 곳이 없어지자 비교적 늦게 개발된 까치산(해발 73, 5m)으로 몰려들게 되어 까치산이라는 산 이름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래서 까치산의 이름 따서 까치산역이라 명명되었다, ※ 2호선 신정지선과 5호선 상일동·마천 방면은 같은 승강장을 사용하지만, 5호선 방화 방면은 지하 2층의 맞이방이나 화곡방면 맨 끝에 있는 통로를 경유해서 상일동·마천 방면 승강장을 경유하여 환승이 가능하다.
(519) 신 정(新 亭) (★ 은행정) 양천구 신정동 949번지에 위치한 신정역은 동명에서 명명되었다, 신정동 유래는 일제에 의하여 만들어진 합성지명이다, 갑오개혁 당시 이곳은 양천군에 속한 오금리, 단산(丹山), 충청촌(忠淸村), 신기리(新基里) 은행정리(銀杏亭里) 등 여러 부락이 있었다, 1914년 3월 1일 조선총독부령에 의하여 지방 행정구역을 폐치, 분합할 때 신기리와 은행정리에서 한 글자씩 취하여 신정동으로 고쳤다, 부역명은 은행정(銀杏亭)으로, 역 내에는 옛 지명인 은행정의 유래에 관한 게시물이 설치되어 있다.
(520) 목 동(木 洞) 양천구 목1동 925번지에 위치한 목동역은 동명에서 명명되었다, 목동의 유래는 본래 경기도 양천읍에 속한 지역이었으나 일제 때 김포군의 나말, 모세미, 마장, 달거리, 새말,, 엄지미 등 여러 마을을 합하여 목동리가 되었다, 이곳은 조선시대에 나라의 말을 기르던 목장(牧場)이 있었는데, 목동이란 이름이 붙은 연유가 목장 때문이라는 설도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521) 오목교(梧木橋) (★ 목동운동장) 양천구 목1동 405번지에 위치한 오목교역은 서울시 양천구에 있는 서울 지하철 5호선의 역이다. 부역명은 목동운동장앞으로 인근에 목동운동장이 있다 역명은 조선 초 한강의 3대 나루터에 속했던 양화나루를 건너 경인지역으로 통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건너야 했던 안양천 위에 세워졌던 다리이며 당시 오목내라고 불리던 지금의 안양천 위에 다리가 세워지면서 오목교라 불리는 데에는 명명되었다,
☞ 오목교란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옛날 이곳은 물살이 세서 사람들이 건너다니기 힘들었으므로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다리를 놓기로 하였다, 그러나 다리를 놓을 때마다 다리가 떠내려가므로 고심하던 중 한 스님이 이곳을 지나다가 마을 사람들에게 “오동나무로 다리를 놓으면 쉬울 것”이라 말하고 상류에서 오동나무를 떠내려 보내서 그 나무가 멈추는 곳에 다리를 놓아야 하며 다른 장소에 다리를 놓아서는 부질없는 짓“이라 하였다, 사람들은 스님의 말대로 칼산에서 오동나무를 베어 안양천 물에 띄웠더니 과연 지금의 오목교 부근에 멈추므로 여기에 다리를 건설하였다, 그러자 이후부터는 더 이상 다리가 떠내려가는 일이 없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동나무로 다리를 놓았다하여 오목교(梧木橋)라 불리게 되었다,
(522) 양 평(楊 坪) 영등포구 양평동2가 33-79번지에 위치한 영평역은 동명에서 명명된 것이며,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양평동에 위치한 서울 지하철 5호선의 전철역이다. 경기도 양평군에 위치한 수도권 전철 중앙선의 양평역과는 전혀 다른 역이
☞ 양평동 유래는 고려시대 이래 조선시대까지 설치되어 서민들의 한강도강의 중요한 통로가 되었던 양화진(楊花鎭) 근처 벌판에 이루어진 마을이란 뜻에서 불리어진 것이다, “즉,,楊자와 (坪)(벌)자를 따서 양평동(楊坪洞)이라 불렀다, 1930년쯤 주민이 살기 시작한 동으로서 당시 일부는 경기도 시흥군 도림리 일부는 영등포읍 당산리에 속하였다, 1936년 4월 동리명이 일제식의 정으로 바뀌어 지게 되었다, 1914년 당산정과 양평정을 통합하여 당산, 양평 양화정이라 칭하고 1946년 10월 일제 식 동명이 우리의 동명으로 바뀌게 되었는데 이 때 양평동으로 바뀌었다,
(523) 영등포구청(永登浦區廳) (☯ 수도권 전철 2호선) 영등포구 당산동3가 370번지에 위치한 5호선 영등포구청역은 인근에 영등포구청이 있어 명명되었고 영등포란 명칭은 조선시대에 있는 성황당에서 영등포굿을 했던 관계로 영등포라는 이름이 불리어지게 되었다,
(524) 영등포시장(永登浦市場) 영등포구 양평로 72 )영등포동5가 45번지)에 위치한 영등포시장역은 1936년 일제칙령에 의거 영등포시장이 형성되었고 1967년 당시 시장의 명에 의거 현대화 상설시장으로 된 이름에서 명명되었다,
(525) 신 길(新 吉) (☯ 수도권 전철 1호선) 영등포구 노량진로 361 (영등포동 1가 36-7번지)에 위치한 신길역은 동명에서 명명된 것이다 신길동의 유래는 문헌상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1914년 일제에 의하여 경기도 시흥군 하북면 지역으로 신길리의 상방하관(上方下串)이라 부르던 곳이었다, 1936년 경성부에 편입되었고, 1943년 경성부 영등포구역 관할하에 있다가 1946년 영등포구 신길동이 되어 현재에 이루고 있다, 신길동에는 조선시대부터 영등포에서 바로 서울로 들어가는 방학호진(放鶴湖津) “즉,, 방아곶나루가 있다,
(526) 여의도(汝矣島) 영등포구 여의도동 3번지에 위치한 여의도역은 동명에서 명명된 것이며 여의도의 유래는 한강 가운데 율도(栗島) “즉,, 밤섬과, 여의도(汝矣島)라는 두 개의 섬이 모래톱에 나라니 있었고 그중 여의도는 특히 메마른 모래땅에 불과하여 농작물(農作物)을 심어도 금방 말라죽는 쓸모없는 땅이었으므로 이 두 문자(文字)의 여의(汝矣) ”너의라는 뜻 ‘곧, 너나 가져라 하여 여의도라 불렀다고도 하고, 또는 여의도가 홍수로 인하여 휩쓸 때에도 제일 높은 곳인 지금의 국회의사당 양말산만은 물속에 잠기지 않고 나타나 있어 부근 사람들이 그것을 나의섬 너의섬하고 지칭하던 데에서 얻어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527) 여의나루(汝矣나루) 영동포구 여의도동 85-1번지에 위치한 여의나루역은 여의나루터 옛 명칭에서 명명되었다, 옛날 마포와 여의도를 잇는 나루터가 마포와 여의도 동쪽에 형성되어 교통을 원활하게 하였으나 한강다리 건설로 없어졌던 여의나루터에 1986년 유람선 선착장이 개장되었다,
(528) 마 포(麻 浦) 마포구 도화2동 160번지에 위치한 마포역은 마포구지명에서 명명된 것이다, 마포는 조선시대 한강 나루터의 하나로 삼개라고 부르던 곳이며, 이를 한자로 옮겨 마(麻 = 삼마, 字) 포(浦 = 개포 字)라 하였다, 1944년 10월 서대문구에서 나누어져 마포구가 신설되면서 용산구의 일부를 병합한곳이며 서울의 서남부 저지대(低地帶)에 위치하여 과거에는 장마만 지면 물난리를 겪어 온 곳 이기도하나, 한강의 강구(江口)로서 6, 25 전까지만 하여도 서해(西海)의 어선(漁船)들이 출입하여 결빙(結氷)을 제외 하고는 새우젓 배들이 활기를 띠었던 곳이지만 휴전선 관계로 배가 들어오지 못하게 되면서부터 항구로서의 구실을 상실하고 말았다,
(529) 공 덕(孔 德) (☯ 수도권 전철 6호선) 마포구 공덕2동 423번지에 위치한 5호선 공덕역은 동명에서 명명된 것이며 공덕동의 유래는 1913년 고양군 용강면(龍江面)에 속하였다가 1936년 경성부의 관할구역을 확장하면서 고양군 용강면으로 되어있던 지금의 마포구의 대부분이 다시 경성부 구역으로 되었으며 1944년 구제도(區制度)를 신설하면서 마포구 공덕동이 되었다, 이곳은 만리재, 아현(阿峴), 대현(大峴) 등의 고갯마루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내려간 언덕지대이다, 그러므로 큰 언덕이 큰덕로 부르던 것이 한자로 바꾸면서 공덕(孔德)으로 변한 것으로 보고 있다,
(530) 애오개 마포구 아현동 612번지에 위치한 애오개역은 아현동을 우리말로 애우개라 부르던 곳으로 애우개는 애오개를 뜻한다, 또 애오개는 만리재와 대현(大峴) 사이의 작은 고개, 작은 아이 같은 고개라는 뜻으로 애오개역으로 명명 된 것이다, 일설에는 애고개를 넘어서 어린아이들의 시체를 묻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이곳 283번지에는 옛 서활인서터의 표석이 서있다
(531) 충정로(忠正路) (★ 경기대입) (☯ 수도권 전철 2호선) 중구 충정로 3가 58번지에 위치한 5호선 충정로역은 동명에서 명명되었다, 충정로의 유래는 조선조 한성 서부 반송방(盤松坊)에 속했으며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때 순국자결한 충정공(忠正公) 민영환(閔泳煥)(* 을사보호조약을 반대하다 뜻을 이르지 못하여 단도로 자결하여, 여의정의 추증 되었고 안국동 노타리의 동상이 있었으나 와룡동 비원 앞 정원으로 옮겼다)의 시호를 따서 부친 이름이다,
일째 감정 기에는 갑신정변(甲申政變)당시 일본공사 다시마(竹添進一郞)의 이름을 따서 죽첨정(竹添町)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해방 이듬해 일본식 이름을 없앨 때 서대문구 충정로1가가로 1975년 10월 시 조례에 의해 중구 서소문동 사무소 관할이 되었다, 조선시대에 역마(驛馬)를 빌려주는 고마청(雇馬廳)이 있었으므로 고마청골이라 불릴 때 도 있었다, 또한 유기전(鍮器廛)이 있어 유기전골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532) 서대문(西大門) 종로구 평동 90번지에 위치한 서대문역은 중국과 통하는 의주로의 관문으로 도성 서쪽의 정문이다, 지금은 헐리고 없지만 서대문에서 명명 된 것이다, 서대문은 근세 개화기에 이르러 미국인 콜브란이 전차길을 놓는데 서대문에 이르러서는 옆으로 비켜 갈 수도 없으므로 서대문 문구멍으로 전차가 다니게 하려니 문구멍이 작아서 전차가 통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길바닥을 몇 자나 파내었더니 그 후 전차가 지나면 추춧돌이 흔들리고 기왓장이 떨어지는 등의 수난을 겪다가 1914년 일제의 손에 의하여 마침내 헐리게 되었다, 이때 서대문 건물을 경매에 부쳤는데 당시 염덕기(廉德基)라는 사람에게 205원에 낙찰되어 그가 서대문을 헐어갔다고 한다,
(533) 광화문(光化門) (★ 세종문화회관(世宗文化會館) 종로구 세종로14(도렴동 83번지)에 위치한 광화문역은 인근 광화문에서 명명된 것이며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서울 지하철 5호선의 역이다. 부역명은 세종문화회관 인근에 광화문 광장과 세종문화회관, 광화문이 있다.
※ 광화문은 경복궁의 남쪽에 있는 정문으로, ‘왕의 큰 덕(德)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의미로 광화문이라 이름 지었다. 1395년에 만들어졌으며, 2층 누각인 광화문 앞의 양쪽에는 한 쌍의 해태 조각상이 자리 잡고 있다. 광화문에는 문이 모두 세 개 있는데, 가운데 문은 왕이 다니는 문이고, 나머지 좌우의 문은 신하들이 다니던 문이었다. 광화문의 천장에는 주작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임진왜란에 소실(燒失), 1865년 대원군이 재건하였다, 일제가 총독부를 건립 하면서 동쪽 건축 문 옆으로 옮기었는데 6, 25 동란(動亂)으로 또 다시 소실된 것을 1968년 12월 11일 전 박정희 대통령이 중건 원 위치에서 좀 뒤로 복원하였지만 시멘트 콘크리트건물이었다, 2007년 해체하여 목조로 복원되는 광화문은 경복궁 정문 옛 자리를 찾아 2009년 말 준공예정이다,
(534) 종로3가(鍾路3街) (★탑골공원 인사동 문화거리) (☯ 수도권 전철 1호선, 3호선) 종로구 국악길 지하 16 (돈의동 46번지)에 위치한 1, 3, 5호선 의 전철역이다. 5호선 종로3가역의 부역명은 탑골공원이며, 역명판에는 탑골공원·인사동 문화거리(塔골公園·仁寺洞)로 표기하고 있다. 인근에 탑골공원과 종묘가 있다. 이와 비슷한 역으로는 고속터미널역을 예로 들수 있다.
(535) 을지로4가(乙支路 4街) (☯ 수도권 전철 2호선) 중구 주교동 122번에 위치한 5호선 을지로 4가역은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서울메트로와 서울특별시 도시철도공사의 역이다. 서울시 도심지역의 역이기 때문에 이 역에서 다음역인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까지는 2호선과 5호선이 나란히 달린다.
(536) 동대문역사문화공원(東大門歷史文化公園) (☯ 수도권 전철 2, 4호선) 1983년 9월 16일에 개통한 중구 을지로 7가 지하 1번지에 위치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은 2, 4호선 환승역이다, 역명을 변경하기 전의 이름이었던 동대문운동장역은 인근에 1926년 개장한 동대문운동장이 위치하고 있어 이름이 붙어졌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동대문운동장의 옛 이름은 서울운동장으로 역명 역시 서울운동장역이었으나, 1985년 7월 27일 동대문운동장으로 개칭과 함께 역명도 개칭되었다.
그 이후 시간이 흘러 2003년 3월 1일 동대문축구장이 철거, 2007년 12월 18일 동대문야구장이 철거되어 동대문운동장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으나, 철거 후에도 인지도가 높아 역명을 유지하다가 동대문운동장부지에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을 짓게 되면서 결국 역명을 개명하게 되었다. 역명은 간혹 동대문구에 위치한 역으로 오인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중구에 있다. 동대문역도 동대문구가 아닌 종로구에 있다.
☞ 역명 변경 2009년 10월 동대문운동장이 철거된 자리에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 문을 열었다. 이에 서울시에서는 10월 29일 이 역의 이름을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으로 변경 고시하였고, 12월 1일부터 바뀐 역명을 사용한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긴 9글자 역명을 가지고 있다.
(537) 청 구(靑 丘) (☯ 수도권 전철 6호선) 중구 신당4동 294번지에 위치한 청구역은 서울특별시 중구에 위치한 서울메트로와 서울특별시 도시철도공사의 전철역이다. 역명은 법정동이 아닌 옛 지명인 자연부락에서 유래 된 것이며 현재의 신당2동은 충현동(忠峴洞)으로 불려 지는데 이곳이 장충동과 경계가 되기 때문이다, 또 신당3동은 약수동(藥水洞)으로 한남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버티고개에 위장병에 특효가 있다는 약수가 있어서 유래된 것이다, 신당4동은 청구동(靑丘洞)이라고도 하는데 이곳 이름은 우리나라의 옛 이름인 청구를 딴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신당5동은 문화동(文化洞)이라고도 부르며, 신당6동은 동화동(東化洞)으로도 불려진다, 아마도 문화동의 동쪽 일대이기 때문에 부르게 된 것으로 보이나 출처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신당동에는 충현동, 약수동, 청구동, 동화동, 문화동등 여러 동명들은 법정동명에서 제외 되여도 지하철역 약수역 청구역이 있어 아직도 사용하고 있으며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538) 신금호(新金湖) 성동구 금호동2가 223-1번지에 위치한 신금호역은 3호선의 금호역이 있어 5호선은 신금호역으로 명명된 것이며, 신금호역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위치한 서울 지하철 5호선의 전철역이다. 개통 이전에는 무수막역으로 불렸으며, 승강장 벽은 동굴 형태의 벽을 가지고 있고, 주변이 경사지형인 탓에 깊이도 42.12m로 매우 깊은 곳에 위치해 있다.(지하 8층) 행당역처럼 역 주변은 좁은 골목길이다. 서울 지하철 3호선 금호역과 혼동할 수 있으나, 아주 매우 멀리 떨어진 서로 다른 역이고 관계도 별로 없다.
(539) 행 당(杏 堂) 성동구 행당2동 317-241번지에 위치한 행당역은 동명에서 명명된 것이다, 행당 동명 유래는 조선 후기 때부터 칭해 내려온 것으로 행당 초등학교 동쪽 산 일대에는 아기씨당이 위치한 곳에 옛 부터 살구나무와 은행나무가 많아 행당동이라 하였다, 1936년 조선총독부령 제8호에 의하여 경성부에 소속시켜 행당동이 되었으며 1943년 총독부령 163호에 의해 앞서 동대문 출장소가 동대문구와 성동구로 나뉘어져 행당동은 성동구에 속하였다, 1964년 서울시 헌장 제1조에 의하여 일제식 동명을 모두 없앨 때 행당동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아기씨당의 주신은 결혼을 하지 않은 고귀한 신이며 매년 10월 초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540) 왕십리(往十里) (☯ 수도권 전철 2호선 ☯ 수도권 전철 중앙선) 성동구 행당동 192번지에 있는 5호선 왕십리역은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있는 전철역이다. 2호선, 5호선, 중앙선이 운행 한다 역명은 동명에서 명명되었다,
☞ 왕십리 유래 무학 대사가 조선의 도읍지를 정하려고 이곳을 살펴보는데 소를 모는 늙은이로 변신하여 나타난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소를 몰고 오다가 『이랴, 이놈의 소가 미련하기가 마치 무학 같구나, 어째 바른 길을 두고 지름길로 가려드느냐』하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무학도사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학은 소를 몰고 가는 그 노인을 얼른 뒤를 쫓아가 땅에 무릎을 끓고 절을 하면서 『죄송하지만 말씀 좀 여쭈어 보겠습니다!』하니 그 노인은 돌아다보지도 않은 채, 무슨 말이오? 하며 그대로 소를 몰고 가는 것이다, 무학은 다시 쫓아가면서, 지금 듣자 하오니 소한테 무학같이 미련하다고 하셨는데 저의 생각(生覺)에는 이곳이 도읍지(都邑地)로 가장 알 맞는 것 같아 결정을 하였는데 어디 더 좋은 곳이 있으며 소승에게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간청을 하였다, 그런 것을 내가 어찌 안단 말 이오 하고 그 노인은 그냥 소를 몰고 가려고 하는 것을 무학은 다시 절을 하고 엎드려 강청했다, 그 노인은 그제 서야 걸음을 멈추고 여기에서 십리만 더 가 시오 하고 손을 들어 가르쳐 주어 마침내 궁궐의 자리를 정했다는 전설이 있어 왕십리라고 부르게 된 동명에서 유래
(541) 마 장(馬 場) 성동구 마장동 772번지에 위치한 마장역은 서울시 성동구에 있는 서울 지하철 5호선에 있는 역이다. 역명은 동명에서 명명되었다, ☞ 마장동의 유래는 남쪽 중랑천 건너에는 뚝섬이 있으며, 서초구에 서초동이 있다, 마장동은 조선 초기부터 말을 기르던 양마장(養馬場)이 있었으므로 마장동이라 하였는데 제주도 같은 데서 말이 한양으로 올라오면 암놈은 지금의 자양동(紫陽洞)과 모진동(毛陣洞)으로 보내졌고, 수놈은 마장동의 말 목장에 보내서 길렀기 때문에 마장동이라 하였다,
(542) 답십리(踏十里) 성동구 용답동 99번지에 위치한 답십리역은 서울특별시 성동구와 동대문구의 경계선인 천호대로에 있는 서울 지하철 5호선의 전철역이다. 인근에 서울특별시 도시철도공사 사옥과 서울 지하철 2호선의 성수지선 용답역도 이 역에서 상당히 가까우나 환승은 되지 않는다. 출입구는 동대문구 답십리와 성동구 용답동에 걸쳐 있다. 역명은 동명에서 명명되었다
☞ 답십리동의 유래는 동대문으로부터 십리 떨어졌다고 하여 붙여진 것에 해당이 되며 또는 상감님 전답(田畓)이 10리 밖에 있다고도 하고, 성저십리라 부르던 곳이므로 답십리라 하였다고 한다, 새말(신촌), 아랫말, 윗말, 원말 등을 합하여, 답십리동이라 하였다,
(543) 장한평(長漢坪) 동대문구 장안동 416번지에 위치한 장한평역은 1975년 동(洞)을 통폐합 조절할 때 새로 생긴 장안동이 되었으나, 신라시대에 장한성(長漢城)이 축조되어 인근지역이 장한벌 또는 장한평으로 불렸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장안평으로 잘못 불려 왔던 것을 삼국시대부터 불리워진 이 지역의 옛 지명으로 다시 찾아 장한평역으로 명명된 것이다,
(544) 군 자(君 子) (★능동(陵洞) 광진구 능동 277번지에 위치한 군자역은 서울특별시 광진구에 있는 서울특별시 도시철도공사의 전철역이다. 서울 지하철 5호선과 서울 지하철 7호선이 운행된다. 부역명은 능동(陵洞)으로, 경기도 시흥시의 안산선 4호선 정왕역에 존재했던 수인선의 군자역과 차별화하기 위해 추가되었다.
☞ 역명유래 군자동의 유래는 옛날 어는 왕의 일행이 거동하다가 마침 이곳 남일 농장터에서 묵게 되었는데 그날 밤 동행하던 왕비가 옥동자를 낳았으므로 이곳을 군자동이라 하였다고 전하며 지금도 이곳을 명리궁터라고 부르기도 한다,
(545) 아차산(峨嵯山) (★ 어린이대공원 후문) 어린이 대공원 후문 앞 광진구 능동 256번지에 위치한 아차산역은 서울특별시 광진구에 위치한 서울 지하철 5호선의 전철역이다. 부역명은 어린이대공원후문으로, 인근에 아차산과 서울어린이대공원 후문이 있다.
☞ 역명은 구의동과 관장동, 경기도 구리시 경계에 있는 높이 286,8m의 산 아차산의 이름을 따 명명된 것이다, 아차산은 남행산(南行山)이라고도 하며 아차산(阿且山)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다, 산줄기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솟았으므로 남행산이라 부른다고 하며, 삼국시대의 (장한성(長漢城);즉,아차산성이 있다, 또 이 산 위에는 봉수대가 있어 양주 대이산의 봉화를 받아 남산의 첫 번째 봉화대에 보낸다, 백제의 개로왕이 고구려 장수왕의 군사를 맞아 싸우다가 패해 적장에 사로잡히고 처형된 곳도 이 산이라고 한다,
(546) 광나루 (★ 장신대) 광진구 광장동 237번지에 위치한 광나루은 서울특별시 광진구에 위치한 서울 지하철 5호선의 역이다. 부역명은 장신대이다. 장신대는 장로회신학대학교의 준말이다. 상일동·마천 방향의 천호역과 하저 터널로 연결된다. 2009년에 스크린도어 설치공사가 완료하였다.
☞ 역명유래 광나루는 신라시대에는 북독(北瀆)이라 하여 중사(中祀)를 행하였고 고려시대에는 양진(楊津)이라 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하사(下祀)로 제사를 받들었고 이 때 부터 광나루 즉 광진이라 하였다, 관진은 육로로는 서울에 광주로 통하며 뱃길로는 멀리 충주를 거쳐 동래(東萊)로 또는 원주를 지나 동해안으로 향하는 요충의 도선장(渡船場)이었다, 이곳 189~20번지에 옛 광나루터의 표석이 있어 명명된 것이다,
(547) 천 호(千 戶) (★ 풍납토성) (☯ 수도권 전철 8호선) 강동구 천호2동 455번지에 위치한 천호역은 동명에서 명명된 것이며 서울특별시 강동구에 있는 서울특별시 도시철도공사의 역이다. 서울 지하철 5호선과 서울 지하철 8호선의 환승역으로 송파구 풍납동과 인접하고 있다. 부역명은 풍납토성(風納土城)으로 인근 천호대교 근처에 풍납토성이 있다. 서울 지하철 5호선은 광나루역과 하저 터널로 연결된다.
☞ 천호동의 유래는 1936년 광진교(廣津橋)를 놓을 때부터 마을이 이루어진 곳이다, 본래 광주군 구천면 곡교리(曲橋里)였던 곳으로 굽은 다리가 있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예로부터 수천 호가 살 것이라는 풍수설이 있어 천호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548) 강 동(江 東) (☯ 마천지선) 강동구 천호3동 447번지에 위치한 강동역은 서울특별시 강동구에 위치한 서울 지하철 5호선의 역이다. 이 역은 서울 지하철 5호선 본선과 마천지선이 분기하는 환승역이다. 상일동행과 마천행의 승강장이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고 번갈아 정차하므로 이용에 주의하여야 한다. 1섬 1상대식으로, 방화역 방면의 상행선이 두 개의 노선을 쓰는데, 이 중 하행선에 인접한 노선은 본선에서, 반대쪽 노선은 마천지선에서 들어오는 노선이다. 일부 열차는 이 역에 시·종착한다. 역명은 인근에 강동구청이 자리하는 관계로 구를 대표하는 의미에서 쓰여 졌다, 강동구는 1979년 10월 강남구에서 분구되면서 신설되었다,
(549) 길 동(吉 洞) 강동구 길동 378번지에 위치한 길동역은 동명에서 명명되었다, 길동의 유래는 길(吉) 이라는 글자는 그 유래에 대하여 여러 설이 있다, 곧 이 마을이 한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주변에 높은 산이 없으므로 물난리나 산사태 등 천재지변(天災地變)이 없어 살기 좋은 곳 길(吉)한 복지(福祉)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그전 길동의 모양이 나뭇가지처럼 길게 생겼으므로 기리울이라 불렀던 마을에서 연유(緣由)된 것이라고도 한다,
(550) 굽은다리 (★ 강동구민회관앞) 강동구 명일1동 312-12번지에 위치한 굽은다리역은 서울특별시 강동구에 위치한 서울 지하철 5호선의 역이다. 부역명은 강동구민회관앞(江東區民會館앞)으로 인근에 강동구민회관이 있으며, 삼성테스코 소유의 대형할인점 홈플러스 강동점과 연결된다. 역명은 강동구 천호동의 옛 지명인 '곡교리(曲橋里)'를 고유어로 풀이한 이름이다. 한편 구천면길의 둔촌로와 암사대로 사이 지역에 이 '굽은다리'의 변형으로 보이는 '고분다리'란 지명이 있는데, 이는 서울 지하철 5호선 굽은다리역과의 연관성은 없다. 천호동 십자성마을 근처에는 '굽은다리' 라는 길 이름이 남아 있다.
(551) 명 일(明 逸) 강동구 명일동 312번지에 위치한 명일역은 동명에서 명명된 것이며 서울특별시 강동구에 위치한 서울 지하철 5호선의 역이다. 2009년 3월 1일 현재 스크린도어가 설치되고 있어, 서울 강동구의 지하철 역사 중 스크린도어가 가장 먼저 설치되는 역사가 된다.
☞ 명일동의 유래는 지금으로부터 약 1천년전 고려 성종11년(994)에 현재의 강동구 명일동 지역에 명일원(明逸院)이라는 공공숙박시설이 들어서면서부터 비롯되었다, 당시 공무원이 지방 출장길에 숙식을 제공 받는 공공시설을 원(院)이라고 하였는데 명일원은 이 가운데 하 나이다,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광주목(廣州牧)에 속해 있다가 1895년 고종 때에 제정되었던 도제(道制)가 폐지되고 전국이 23부(府) 337군(郡)으로 개편될 때는 한성부 11군중 광주군에 속하였다, 1986년 전국을 다시 13도(道) 339군으로 개정하고 5등(等)으로 구분하였는데 명일동은 경기도 38군중 1등에 해당되는 광주부에 소속되었다,
(552) 고 덕(高 德) 강동구 고덕동 310번지에 위치한 고덕역은 동명에서 명명된 것이며 서울특별시 강동구에 위치한 서울 지하철 5호선의 역이다. 지하역이지만 건물의 북쪽 출구에선 역사가 지상으로 노출되는 것이 특징이다. 역 구내엔 세븐일레븐 편의점이 들어서 있다.
☞ 고덕동의 유래는 일명 고덕리라고 부르며, 부근에는 고지봉(高志峰)이라는 산이 있다, 고려 말엽에 형조참의를 지낸 이양중(李養中)이라는 선비가 있었다, 이성계가 혁명을 일으켜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하자 이양중은 충신열사불사이군(忠臣烈士不仕二君)“즉,,두 임금을 섬길 수가 없다 하여 이곳에 숨어 살았다, 그 후 왕이 된 태종이 옛 친구의 정을 생각하여 이양중을 한성부윤 곧 서울시장에 임명하였으나 이를 받지 않았으며, 또 태종이 광주(廣州)에 거동하여 그를 부르자 평민 옷차림으로 거문고를 가지고 임금을 찾아뵈옵고 밤새도록 서로 술잔을 권하면 옛 우정을 회고하였다고 한다,
태종은 그의 아들 우생(遇生)을 데려다가 벼슬을 시켜 그의 높은 덕에 보답하였으므로 이곳을 고덕리 또는 고더거리라 부르다가 뒤에 서울시에 편입되면서 고덕동이 되었다, 또 이곳 한강에 있는 산은 그가 세상을 피하여 은거(隱居)한 곳이므로, 그의 높은 뜻을 기려 고지봉이라 이름이 붙였다고 한다,
(553) 상일동(上一洞) 강동구 상일동 148번지에 위치한 상일동역은 서울특별시 강동구 상일동에 있는 서울 지하철 5호선의 역이다. 인근에 고덕차량기지가 있어 5호선의 전반적인 본선 종착역으로 시·종착 기능을 수행한다. 경기도 하남시와 가까워서 강동구뿐만 아니라 버스를 통해 하남 시민들의 지하철 이용 수단으로도 이용된다. 강동공영차고지와 매우 가까워, 서울 강동구의 동단에 위치하고 있는 지리적 여건에 비해 많은 버스를 환승할 수 있으며, 최근 강일지구 주민들과 경기도 하남시 주민들이 상일동역 이후로의 연장을 서울특별시 도시철도공사에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하남 미사 보금자리주택지구 조성으로 인하여 2015년(예정)에 (가칭)미사역 까지 연장될 예정이다. 역명은 동명에서 명명되었다,
☞ 상일동은 하일동과 같은 지금 고덕천으로 부르는 게내(‘즉,해천(蟹川)를 중심으로 일제 때 붙여진 이름이다, 게내는 지금 한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고덕천을 말하는데 이곳에서 게(게 해蟹 자)가 많이 잡혔으므로 게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일제 감정기인 1914년 4월 1일 지방 행정구역을 폐치(廢置)(폐지 한채 버려둠) 분합할 때 명일동과 같은 구천면에 속하였으며 게내를 중심으로 게내의 위쪽은 상일동, 게내 아래쪽은 하일동이라 하였다,
☟ 마천지선
(548) 강 동(江 東)(☯상일동 본 선) 상일동선과 마천지선으로 갈리지는 역
(P 549)둔촌동(遁村洞) 강동구 둔촌동 416번지에 위치한 둔촌역은 동명에서 명명된 것이며 서울특별시 강동구에 위치한 서울 지하철 5호선 마천지선의 역이다. 개통 당시에는 역 번호가 554번이었다. 출입구는 둔촌동과 성내동에 걸쳐있다.
☞ 둔촌동명 유래 둔촌동 뒤 일자산 서남쪽에 있는 굴로 된 바위, 둔굴(遁窟)은 이집(李集)이 신돈(辛旽)의 학정(虐政)을 피해 이곳 바위굴에서 은거하였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곳은 광주(廣州) 이씨의 시조이며 고려 말의 은사(隱士) 둔촌(遁村) 이집(李集)이 일시 거주한 사실이 있으므로 호를 따서 둔촌동이라 한 것이다, 이곳도 명일동과 같이 구천면에 속하였다가 1963년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어 둔촌동이 되어 오늘에 이루고 있다, 둔촌동은 옛날에는 천호동과 성남시를 잇는 구도(舊道)에 면한 한촌(寒村)에 불과한 농촌마을이서 유적지나 전설 및 설화는 남아있지 않다,
(P 550) 올림픽공원 (★ 한구체대) (☯ 수도권 전철 9호선 예정) 송파구 방이동 89번지에 위치한 오림픽공원역은 88올림픽을 계기로 형성된 오림픽공원과 올림픽기자촌 및 선수촌 아파트를 배경으로 역사(驛舍)가 위치함으로써 명명된 것이다, 부역명은 한국체대(韓國體大)로, 인근에 서울 올림픽 공원과 한국체육대학교가 있다. 5호선 최초 개통당시에는 역번호가 555번이었으며, 향후 서울 지하철 9호선 3단계 구간이 개통되면 환승역이 될 예정이다.
(P 551) 방 이(芳 荑) 송파구 방이1동 217-2번지에 위치한 방이역은 서울특별시 송파구에 있는 서울 지하철 5호선 마천지선의 역이다. 개통 당시에는 역 번호가 556번이었으며, 한때 방이동역으로 일부 노선도에 표기된 적도 종종 있었다. 또한, 서울 지하철 9호선의 환승역 후보역으로 올랐다가 거리상과 역 이용률을 고려해 900m 위에 있는 올림픽공원역으로 결정되면서 낙방되었다. 역명과는 달리 방이동이 아닌 오금동에 있다
(P 552) 오 금(梧 琴) (☯ 수도권 전철 3호선)송파구 오금동 44-2번지에 위치한 오금역은 동명에서 명명된 것이며 서울특별시 송파구 오금동에 위치한 5호선 마천지선의 역이다. 개통 당시에는 역번호가 557번이었다. 건설 당시 3호선과의 환승역이 될 것에 대비해 환승 안내판 등의 시설을 미리 구비하였고, 2010년 2월 18일에 서울 지하철 3호선이 오금역까지 연장되면 환승역 및 종착역이 될 예정이다.
☞ 오금동의 유래는 이곳에 오동나무가 많고 가야금 만드는 사람이 살았기 때문에 전래되었다는 설과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사가 쳐들 오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난하게 되었다, 임금 일행이 이곳을 황급히 지나다가 백토고개에 이르러 잠시 쉬어가게 되었는데, 궁궐에서만 생활하던 임금인지라 갑자기 먼 길을 달리다 보니 오금이 너무 아파 “아이구 내 오금이야” 하고 한탄했다 하여 이곳을 오금골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P 553) 개 롱(開 籠) 송파구 오금동 165-1번지에 위치한 개룡역은 서울특별시 송파구에 위치한 서울 지하철 5호선 마천지선의 역이다. 개통 당시에는 역번호가 558번이었고, 역명도 개농역이라고 하였다. 그러다 2000년 한글 표기법에 맞게 농자를 롱으로 역명을 개정하였다. 역명은 조선 인조 때 임경업장군이 갑박산에서 고리궤을 주어와서 현재 가락2동 근린공원 위치에서 고리궤을 열어보니 투구와 갑옷이 나왔다하여 개룡이란는데서 유래
(P 554) 거 여(巨 余) 송파구 거여1동 20번지에 위치한 거여역은 동명에서 명명된 것이며 서울특별시 송파구에 위치한 서울 지하철 5호선 마천지선의 역이다. 개통당시에는 역번호가 559번이었다. 거여동은 그 연원이 분명하지 않다, 본래 광주군 중대면의 지역으로 거암(巨岩)이라는 인물이 살았으므로 거암리라 부르다가 이것이 변하여 {김리}, {겜리}라 하였다, 일제 때인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이곳의 잔버드리, 개롱리, 뒷말 등을 합하여 거여리라 하였고, 1963년 3월 1일 서울시에 편입 되었다,
(P 555) 마 천(馬 川) 송파구 마천1동 183-94번지에 위치한 마천역은 동명에서 명명되었으며 서울특별시 송파구에 있는 서울 지하철 5호선 마천지선의 종점역이다. 개통당시에는 역번호가 560번이었다. 경기도 하남시에 인접해 있으나 하남시내로 통하는 도로는 없다. 수도권 전철안에서 서울 지하철 8호선의 암사역과 함께, 종착역이면서 상대식 승강장을 갖고 있는 유이(唯二)한 역이다. 또, 서울도시철도공사가 관리하는 역사(驛舍) 중 상하행 개찰구가 분리되어 있는 몇 안 되는 역이기도 하다.
☞ 마천동의 유래는 병자호란 때 마을 뒤에서 용마가 나와 임경업(林慶業) 장군이 그 말을 타고 출전하였다는 마산(馬山)(일명 천마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또한 노인들 사이에 전해오는 말로는 임경업장군이 마산을 지나다가 백마물이란 곳에서 물을 먹었는데 이곳은 아무리 가뭄이 와도 물이 계속 나온다고 하여 마천동(馬川洞)이라 하였다, 마산에는 천마공원이 조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