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이산(伯夷山)의 동쪽으로는 여항산, 서쪽으로는 방어산이 둘러 쌓여 있으며 쌍안산이라고도 한다.
세조가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를 찬탈하자 생육신의 한사람인 조려(趙旅)선생이
세종 2년(1420년)에 낙향하여 세상을 등지고 현재 이곳 백이산 아래 시냇가에서
낚시질로 은거하여 여생을 보냈기 때문에 어계라 칭하였다.
단종 임금 복위 후 숙종께서 내리신 어계 선조사 제문 중에 어계선생의 절의가
고대 중국의 백이 숙제와 같음을 찬양 하여 쌍안산을 백이산이라 칭하여 내려오고 있다.
본 백이산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봉을 숙제봉(淑濟峯)이라고 하는데,
숙제봉을 부르기 이전에는 쌍봉산(雙峯山)이라 하였으며
양봉 사이 달이 뜬다 하여 월출봉(月出峯)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함안군청 웹사이트 백이산 소개글]
내가 졸업한 군북초등학교 교가가
"'앞에는 백이산이 나즈기 솟아 흩어진 넓은 벌판 역사도 깊다....."로 시작한다.
군북초등학교는 정말 역사가 깊다. 1921년 개교, 내가 45회 졸업
당시 소풍을 백이산, 방어산 등으로 갔었다.
아롱이, 까미만 데리고 고향집에서 어머니와 오전을 보내고
점심 때 쯤 오랜만에 백이산으로 향한다.
마산에서 진주로 가는 경전선이 전철화, 직선화 되면서
최근 군북역이 백이산 근처로 이전
군북역사는 아직 공사중
역사 아래 주차 공간이 많다.
백이산 둘레길도 최근에 생겼다.
백이산 5-6부 능선을 따라 한바퀴 도는 백이산 둘레길 2Km 남짓
백이산은 368m의 그렇게 높지 않는 완만한 경사의 산이다.
군북역에서 백이산 정상까지 2Km
백이산 둘레길 2.26Km
백이산 허리를 한바퀴 빙도는 경사가 별로 없는 평탄한 소나무숲길
명품 산책로다.
이곳 아주 일부만 활엽수가 있고
나머지는 전부 소나무숲
백이산은 활엽수가 조금 밖에 없고
전부가 소나무숲이다.
아롱이 요턱도 못올라와서 올려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백이산에서 여항산으로 연결되는 등산로가 있는데
백이산 정상에서 여항산 정상까지 무려 8Km
언젠가 젊은 까미, 다솜이만 다리고 한번 가볼 생각이다.
브런치도 아니고 점심식사
여기가 숙제봉
소나무가 둘러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숙제봉을 내려와 다시 백이산 둘레길로 간다.
백이산 공룡발자국(경상남도 문화재)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 이영부(61) 전 평광마을 이장이 2004년부터 2005년에 걸쳐 처음 발견한 백이산 공룡발자국이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달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45호로 고시됨에 따라 지정 문화재로 관리하게 됐다.
군북면 명관리 618, 산 59-1, 산 60-1 등 세 필지 3457㎡에 지정된 '함안 명관리 공룡발자국'은
중생대 백악기 지층인 함안층 상부의 퇴적층에서 발견된 것이다.
공룡발자국은 모두 2곳에서 발견됐는데 백이산 서측사면의 태산암에서는
2족 보행의 초식공룡인 조각류가 걸어간 발자국 8개가 발견됐다.
또 4부 능선의 암석이 바깥에 드러난 노두에서는 조각류가 걸어간 4개의 보행렬에서 42개,
4족 보행의 초식 공룡인 용각류가 걸어간 3개의 보행렬에서 21개가 발견됐으며
보행렬을 확인할 수 없는 것 등 총 80여 개가 발견됐다.
발자국을 분석한 결과 9600만~9700만 년 전 초식 공룡이 낮은 호수 주변의 부드러운 펄을
시속 500m 이내의 속도로 천천히 걸어가면서 남긴 발자국이 굳어져 암석이 된 것으로 추정됐다.
명관리 공룡발자국은 보행렬이 잘 확인되는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화석으로 발자국의 둘레와 깊이가 원형에 가까운 것이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경남도 문화재로 지정됐으며 앞으로 학계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함안군은 명관리 공룡발자국이 문화재로 지정됨에 따라 기존 공룡발자국과 연계해 관광자원화한다는 계획이다.
함안군에는 많은 공룡발자국 화석이 분포해 있으며 그 중 여항 외암리 공룡발자국은 앞발자국이 뒷발자국의 바로 뒤에
찍혀 있다. 이는 뒷발이 앞발 위치까지 도달하는 데 한 걸음으로는 불가하고 두 걸음을 걸어야 하는 특수한 걸음걸이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고, 앞발자국에 발목뼈 자국이 선명해 앞다리에 발이 없음을 보여주는
세계적으로 매우 귀중한 화석이다.
또 새는 공룡에서 진화했는데 함안층의 새발자국 화석은 공룡이 번성한 백악기에 이미 새가 출현했음을 알려주는
매우 희귀한 화석으로 새발자국 화석으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연구·발표될 정도로 지질학적·생물학적으로 가치가 높은
자연사 자료이다.칠서지방산업단지 조성과정에서발견된 대치리 공룡발자국도 함안박물관으로 옮겨 그 원형을 볼 수 있도록
전시하고 있는 등 공룡발자국 화석의 보고인 함안군은 학술적으로 가치가 높은 화석의 중요성을 알려나가는 한편
앞으로 공룡발자국을 둘러보는 관내 관광투어도 계획하고 있다.
[2012년 3월 5일 경남도민일보 기사]
군북역사
함안군민, 의령군민이 이용하는 KTX 역사
인구 6천명의 군북에 KTX가 선다는 것이다.
함안군청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읍,면 홈페이지가 있고
그기 군북면 홈페이지에 34개 마을 지명 유래도 나와있다.
나는 중암리에서 태어났고 현재도 89세 노모와 형이 살고 있다.
대학시절 붓글씨 배울 때 낙관을 중암(中岩)으로 하기도 했고
인터넷 초창기에 별명을 중암으로 하기도 했었다.
모로실 여명 마을에 음성나환자촌이 있었다.
장날에 선글라스 쓰신 분들이 닭 팔러 나온 것을 보기도 했었고
운동회날 학부모들 중 선글라스를 쓰신 분들이 있었으나
당시에 나는 그분들이 나환자인줄을 몰랐었다.
아버지의 아주 친한 친구 한분이 음성나환자로 나중 부산 나가 살았는데
이분께서 내 이름을 지어주셨다고 직접 그분에게서 들어 알게 되었다.
이분 고향에 오거나 명절이면 우리집에 한번씩 왔었고
농사꾼과는 거리가 먼 깔끔한 화이트칼라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분이었다.
내가 의과대학 다닐 때 아버지와 부산 부암동 그 분 댁에 들렸을 때는
실명하였고 손가락, 발가락은 다 뭉게져 없었다.
당시 그분, 아버지, 내가 겸상으로 저녁을 먹은게 마지막
2년후 그 분 돌아가셨고 유언대로 화장하여 고향강에 뿌렸다는 소식만 들었다.
◎ 중암(中岩)
- 군북면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고 옛날부터 장시(場市)가 있어 마을이 형성되었고 마을
뒷산에 큰바위가 있어 중암(中岩)이라고 부른다고 함
◎ 모로(慕老)
- 임진왜란 당시 마을이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왜군들이 모르고 이 마을을 스쳐지
나갔다 하여 모로실이라고 하며 새각담은 늦게 생긴 마을이라 하여 “새동네”라는 듯임
◎ 여명(黎明)
- 1983년 2월 15일 모로마을에서 분동 됨
- 1951년경 “한센씨병”환자들이 집단적으로 정착하면서 생긴 마을이며
사회적으로 배척받고 병마로부터 고통받는 “한센씨병”환자들에게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뜻으로 여명(黎明))이라고 불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