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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수보리(須菩提)입니다.” “이렇게 반가우신 분을 만나게 되니 얼마나 감사(感謝)한지요.” “수보리(須菩提)는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님과,” “석가세존(釋迦世尊)님과,”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님과, 함께 동행(同行) 하면서 빛 세계의 아름다운 이상향(理想鄕)을 노래하고, 고행(苦行)과 원념(怨念)에 사로잡힌 중생(衆生)들을 위하여 노랫소리를 이용, 인도자(引導者)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답니다. “수보리(須菩提)야, 수보리(須菩提)야,” “네가 이상향(理想鄕)의 도(道)를 아느냐?”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님의 선문(先聞)이십니다. “그냥 그냥입니다.” “수보리(須菩提)야, 수보리(須菩提)야,” “네가 중생(衆生)들의 고통(苦痛)을 해원(解寃)할 수 있느냐?”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님의 선문(先聞)이십니다. “그냥 그냥입니다.” “수보리(須菩提)야, 수보리(須菩提)야,” “네가 자비(慈悲)가 무엇인지 아느냐?” 석가세존(釋迦世尊)님의 선문(先聞)이십니다. “그냥 그냥입니다.” 세 분께서 제 답(答)을 들으시고 말씀 하십니다. “그래, 수보리(須菩提)야, 잘 하였구나.” “이상향(理想鄕)의 도(道)도,” “중생(衆生)들의 고통(苦痛)을 해원(解冤)하는 방법도,” “자비(慈悲)라 하는 것도, 모두 ‘그냥 그냥’ 이니라.” “왜 업(業)을 짓고, 그 업(業)의 도(道)를 해결하려 전전긍긍(戰戰兢兢) 하다가 그것에 걸려 넘어지는 고, ‘그냥 그냥’ 걸리지 말고 넘어가려무나.” “마음(mind)이 모든 업장(業障)의 기본(基本)인 것을, 그것을 배우지 못하고, 그 작은 공간(空間)이면서, 모든 우주(宇宙)를 담고 있는 그릇 속에 무엇을 가득 채우고서도 무거워서 버거워하며, 스스로 채찍질들을 하고들 있구나.” “모든 해결책(解決策)은 그 마음(mind)의 그릇에 있나니, 우주(宇宙)를 담을 만한 그릇과, 작은 것 밖에는 담지 못하는 종지가 되기도 하나니, 이 모두가 마음(mind)먹기에 달려있는 것 아니더냐! 자비(慈悲)는 아무리 채워도 가득 메워지지 않고, 세상의 모든 멍에(yoke)는 조금만 채워도 그 무게에 짓눌려 쓰러지고 말지.” 세 분의 말씀이 계속되셨습니다. “수보리(須菩提)야, 너는 양면(兩面)의 거울(mirror)이란다. 자신(自身)의 모습을 비추어 주기도 하지만, 상대방(相對方)의 모습도 비추어 주어서 서로의 마음(mind)을 단정히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너의 역할이란다.” “수보리(須菩提)야,” “중생(衆生)과 선인(仙人)과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느냐?” 석가세존(釋迦世尊)님의 선문(先聞)이십니다. “네, 세존(世尊)이시여!” “중생(衆生)들은 모든 것에서 답(答)을 얻으려 하고, 선인(仙人)들은 ‘그냥 그냥’이 아닌지요.” “수보리(須菩提)야, 너의 대답(對答)이 옳도다.” “모든 사물(死物)과, 삼라만상(森羅萬象)에는 그 세상(世上)들만의 자비(慈悲)와 공덕(功德)이 있으며, 자유로움이 내재(內在)되어 있으니, 그것에 정답(正答)이 있을 수가 없단다. 그래서 중생(衆生)들은 보이는 것에서 답(答)을 찾으려 인생(人生)을 허비(虛費)하지만, 선인(仙人)들은 보이는 그대로를 ‘그냥 그냥’으로 보는 것뿐이란다.” “답(答)을 찾기 위하여 집착(執着)을 하게 되면서 형상(形象)에 묶이고, 자신(自身)마저도 모든 자유(自由)를 속박(束縛)당하고 마는 우(愚)를 범(犯)하는 것이 중생(衆生)들이라 하는 것이니라.” “선인(仙人)은 답(答)을 찾으려 애쓰지 않으며, 모든 것들을 ‘그냥 그냥’ 바라보기 때문에 묶이지도 않고, 자신(自身)마저도 ‘그냥 그냥’ 놓고 보니 자유(自由)함을 누리는 것 이란다.” “보이던, 보이지 않던, 그 모든 것들이 다 ‘그냥 그냥’ 인 것을...” “수보리(須菩提)야,” “중생(衆生)들에게 자비(慈悲)를 설법(說法)하는 방법(方法)은 무엇이더냐?”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님의 선문(先聞)이십니다. “네,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님,” “자비(慈悲)란?” “하늘님의 마음(mind)인 것을,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여야 중생(衆生)들이 쉽게 들을 수 있으므로 제가 몸의 보시(普施)를 통하여 널리 행(行)하는 것이 자비(慈悲)가 아닐는지요.” “수보리(須菩提)야, 감사(感謝)하구나.” “오늘 중생(衆生)들의 계율(戒律)에 자비(慈悲)가 꽃을 피우겠구나.” “수보리(須菩提)야,” “무상(無想)하다 하는 것도 념(念)인 것을 어찌 ‘공(空)’이라 할 수 있느냐?”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님의 선문(先聞)이십니다. “네,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님,” “무상(無想)하다 하는 것은 말하는 존재(存在)가 있는 것이며, 존재(存在)가 있다는 것은 무(無)가 아닌 유(有)의 세계(世界)인 즉, 모든 만물(萬物)의 호흡(呼吸)이 존재(存在)하고, 생명(生命)들이 존재(存在)하니, ‘공(空)’이라 하는 것은 될 수 가 없겠으나, 무릇 유(有)한 존재(存在)가 기운(氣運)을 멈추고, 우주(宇宙)의 운행(運行)을 이어주던 마음(mind)을 정지(停止)시키니, 유(有)가 정지(停止)하여, 무(無)의 정적(靜的)인 세계(世界)가 펼쳐집니다. 비록, 찰나지간(刹那趾間)이라 하나 이것은 ‘공(空)’이 될 수 있으니, ‘공(空)’이라 하는 것 또한 될 수도 있나이다.” “수보리(須菩提)야,” “너의 경지(境地)가 거기까지 미치었더냐!” “자고(自古)로, 모든 법계(法系)는 ‘공(空)’에서 꽃을 피운다 하였거늘, 그것을 알고 있었구나.” “중생(衆生)들이 살고 있는 어지러운 세상(世上)에서도, 아름다운 연꽃을 피우는 만다라(曼陀羅)의 용화세계(龍華世界)가 수보리(須菩提)에 의하여 이루어 질 수 있겠구나.” “세상(世上)의 허물(fault)이 커서 무아지경(無我之境)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였으나, 수보리(須菩提)의 수행(修行)이 부처(Buddha)를 이루었구나.”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님,”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님,” “석가세존(釋迦世尊)님, 감사(感謝)하나이다.” “세상의 법(法)이 없다하나, 양심(良心)의 법(法)이 존재하며, 세상의 도(道)가 없다하나, 마음(mind)의 도(道)가 있으니, 지운다하는 것은 위선(僞善)이요, 마음(Mind)의 모든 법(法)과 도(道)는 어떠한 기준과 색깔이 존재(存在)하지 않으니, 그저 ‘그냥 그냥’이 아닐 런지요.” “세 분을 모시고 선문답(先聞答)을 하는 시간(時間)을 가졌습니다.” “너무 감사(感謝)하고, 감사(感謝)하답니다.” “사람들은 움직임 속에서 마음(mind)을 찾고, 세속(世俗) 속에서 마음(mind)을 찾나이다.” “하지만 현재(現在)의 모든 것들이 찰나지간(刹那趾間)이라 하나, 분명히 움직임이 멈추었고, 마음(mind)의 진동(振動)이 잠시 멈추었으니, 마음(mind)을 비우시고, 진동자(振動子)를 조정(調定)하면, 우주(宇宙)의 아름다운 영상(映像)과, 보이지 않던 세계(世界)가 더욱 아름답게 펼쳐지지 않을는지요.” “수보리(須菩提)는,” “보이지 않는 석가세존(釋迦世尊)님의 마음(mind)에서,” “보이지 않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님의 마음(mind)에서,” “보이지 않는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님의 마음(mind)에서,” “자비(慈悲)의 진동자(振動子)를 보았으며, 그 진동자(振動子)를 통하여 중생(衆生)들의 마음(mind)을 연결하려 합니다.” “나무 아미타 수보리 사바하” (南無 阿彌陀 須菩提 娑婆訶) “나무 관세음보살 수보리 마하” (南無 觀世音菩薩 須菩提 摩訶) “나무 붓다 보디 스바하” (南無 buddha bodhi svaha) “바리 바리 수바리 옴바리” (鉢盂 鉢盂 須鉢盂 唵鉢盂) 처음부터 지금까지 자비(慈悲)로써 이끌어 주신 세 분의 귀하신 분들과, 천상(天上)에서 수보리(須菩提)님과의 만남을 허락하신 하느님께 영광 돌립니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수보리님 감사합니다. _()()_
감사합니다.
그냥 그냥 입니다~
마음의 한계를 뛰어 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네요~ 있는 듯 없는 듯 그냥 흘려 보냄이 공 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