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7일 맑음.
새벽 3시 50분 기상. 하늘에는 다행히 별이 총총합니다. 어제 밤 자기 전에 물에 불려둔 누릉지를 끓입니다. 6년 전 안나푸르나 서킷할 때 마지막 하이캠프에서는 물에 불려둔 누룽지가 얼었는데 여기는 더 따뜻한 것 같습니다.
가이드와 포터가 준비하기를 기다려 5시에 출발합니다. 가이드는 랜턴도 없이 왔습니다. 참 대책없는 친구입니다. 할 수 없이 맨 뒤에 세우고 포터가 맨 앞에 갑니다. 항상 느끼지만 랜턴불빛에만 의지해서 가는 산행은 답답합니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여명이 옵니다. 카메라를 꺼냅니다. 우리 진행방향 뒤쪽에서 밝아지기 시작합니다. 그믐달과 샛별이 서로 친구하며 빛나고 있습니다.
진행방향 왼쪽으로 마나슬루 연봉이 서서히 모습을 보입니다.
6시 반경 가는 길이 훤하게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15분쯤 더 가자 왼쪽으로 작은 호수가 나옵니다.
마나슬루쪽에서 눈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이른 아침인데도 눈사태가 일어나는 걸 보면 마나슬루는 위험한 곳이 분명합니다.
6시 57분입니다. 마나슬루에 첫 햇빛이 비칩니다.
좀 당겨본 모습.
아침 햇빛을 받은 산의 모습은 언제봐도 아름답습니다.
7시 8분 좀 더 밝아진 모습입니다.
7시 10분 고개에 도착해서 인증샷입니다. 여기까지는 두 시간 걸렸습니다. 그런데 여기가 라르케 라 고개마루가 아닙니다.
이렇게 완만하고 어찌 보면 평지같은 길을 오르락 내리락 몇시간 더 가야 합니다.
저 앞의 환한 곳으로 가야 합니다.
날은 완전히 밝아 설산과 눈없는 산의 색깔이 뚜렷한 대비를 이룹니다.
푸른색, 흰색, 갈색의 조화
경사도는 거의 없지만 바위가 울퉁불퉁한 길이라 걷기가 불편합니다. 게다가 바람이 엄청 불어서 방풍의는 필수입니다.
지붕없는 돌집이 나타나서 잠시 쉽니다. 미숫가루를 보온병에 담아온 온수에 타먹고 기운을 냅니다.
갈수록 길이 안 좋아집니다. 바위와 얼음이 뒤섞여 어디가 어디인지 구분이 잘 안 갑니다. 이럴 때 필요한 가이드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10시가 다되어 마침내 라르케 패스임을 표시하는 룽다와 타르초를 만납니다.
여기는 쏘롱라 패스나 쿰부의 쓰리 패스와는 분위기가 좀 다릅니다. 고개라는 기분이 별로 들지 않고 좀 밋밋합니다. 그래서인지 뿌듯한 성취감 같은 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내리막은 처음에는 빙하의 오른쪽으로 완만하게 내려갑니다.
전면으로 보이는 경치가 멋있습니다.
줌으로 당겨봅니다.
가파른 내리막길이 나옵니다. 돌멩이들로 미끄럽습니다.
낙석의 위험도 있는 구간입니다. 위험구간에서는 포터 가지가 가이드 역할을 합니다.
군데군데 얼어있어 더 미끄럽네요. 기어이 한번 미끄러졌지만 다친 데는 없습니다.
하산 시작 2시간 후 미끄러운 낙석지대가 끝나고 완만한 구간입니다.
오후 1시쯤 저 밑으로 빔탕이 보입니다.
빔탕에 도착했는데 문이 열려있는 롯지가 없습니다. 배가 고파 일단 미숫가루와 견과류로 배를 채웁니다.
포터 가지와 상의 끝에 아직 시간이 많으니 더 내려가 보기로 합니다.
수목한계선 아래로 내려오자 숲이 짙어집니다. 숲 사이로 보이는 마나슬루의 뒷모습이 장관입니다.
오후 4시가 넘자 숲은 이제 원시림으로 바뀝니다.
숲 속에서 하얀 말이 마치 산신령처럼 신비롭게 보입니다. 민가가 가까워진다는 건데..
오후 5시 촐리카르카라는 곳에 도착. 그런데 여기도 집들이 다 잠겨있고 사람은 없습니다.
아침에 출발한 후 어느덧 12시간이 지났습니다. 나는 슬리핑백이라도 있지만 포터는 담요도 없습니다. 다리가 아프지만 더 내려가보기로 합니다. 배낭에서 무릎보호대를 꺼내 찹니다. 그리고 랜턴도 꺼냅니다.
시간은 어느 덧 6시가 넘어 깜깜해졌는데 마을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마침내 6시 반경 깜깜한 가운데서 집이 몇 채 있는데서 멈춥니다. 사람은 없지만 문이 없는 창고같은 곳이 있습니다. 랜턴으로 비춰보니 동물사료같은 것 저장하고 때로 자기도 하는지 나무침상같은 것도 있습니다. 여기서 오늘 밤을 지내기로 합니다. 포터는 다른 빈 건물을 찾아 들어갑니다.
젖은 옷을 갈아입고 물을 끓여 일본에서 공수해온 알파미에 부어 밥을 만들고 CJ식품의 마파두부와 같이 먹으니 아주 맛이 좋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건조쌀은 일본 알파미가 제일입니다. 비록 문도 없이 뚫려있는 창고지만 오늘 하루의 긴 산행을 무사히 마치고 3천 미터 이하로 내려와 잠을 자니 잠자리가 아늑합니다. 오늘 수고한 포터 가지에게 특별 팁으로 천 루피를 줬습니다.
첫댓글 저는 2009년 10월에 캠핑 트레킹으로 간 적이 있어서 추억을 더듬으며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대지진 이후 랑탕의 소식은 많이 접했는데 정작 진원지인 고르카 소식은 별로 없어서 마나슬루 소식이 궁금했는데 생각 보다는 덜 하지만 제법 변했군요. 라르케 패스 부근의 오르는 길과 빔탕 내려가는 길은 눈이 많았는데 겨울인데도 눈이 없네요. 기후 변화 때문인지 올해 만의 현상인지 궁금합니다. 라르케 패스 지나서 보이는 안나푸르나 연봉의 모습들은 여전히 멋있네요. 나머지 여정의 모습도 기대하겠습니다.
위 사진은 라르케 패스 오를 때고 아래 사진은 라르케 패스 지나서 입니다. 많이 달라졌지요?
@산조아 네. 2009년이면 텐트 트레킹밖에 안되던 시절이죠. 지금은 많이 변했습니다. 산조아님이 올리신 사진의 지점들이 다 눈에 익습니다. 제가 알기로 1-2월의 히말라야는 10-11월이나 3-4월에 비해 오히려 눈이 적다고 합니다. 다만 성수기때는 눈이 있어도 트레커가 많아 길이 곧 뚫리지만 1-2월에는 어쩌다 눈이 오면 길이 뚫리지 않아 패스 넘기가 어렵습니다. 사진으로 보니 눈쌓인 라르케패스가 더 운치가 있네요.
@씨나 건기라 그렇군요. 저희는 소티콜라 부터 로 까지 계속 비를 맞으며 갔었는데 그 때문에 눈이 많이 쌓였을 수도 있겠네요. 그나저나 가이드는 정말 제대로 된 가이드를 구해야겠군요. 어려움이 많았을텐데 오랜 경험으로 노련하게 헤쳐나가심에 박수를 보냅니다.
당시 힘은 꽤 들으셨겠죠
잘 선택하신 하루의 강행군 너무 멋져보입니다
짝짝짝짝짝~~~
감사합니다. 강행군이기는 했습니다.^^
실패없는 성공없다고.하루건너뛰어서 무사히 라르케를 넘어 다행임니다.축하드림니다.
감사합니다. 운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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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했습니다. 그러나 따뜻한 곳에 내려오니 편한 기분도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