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돌봄에세이
새우젓 호박찌게
음식에 대한 사랑보다 더 진실된 사랑은 없다고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말했다. 음식이 인간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귀한 존재라는 의미이다. 사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행복해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것도 추억이 깃든 음식을 먹을 때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격이다. 음식은 기억을 소환하는데 매우 유효하다. 음식 맛의 절반이 추억인 까닭이다. 얼마 전에 이 사실을 새롭게 깨달았다.
우연히 핸드폰을 보다가 새우젓 호박찌게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요리과정을 자세히 살펴본 건 아니고 완성된 모습만 스치듯 보았을 뿐이다. 어느 새 내 머릿속에선 한 번 해봐야지, 하는 생각이 밀려 들어왔다. 그런 참에 아내에게 새우젓 호박찌게 한 번 해볼게, 하고 말을 건넸다. 아침식사 때 국과 찌개 당번은 내가 도맡아했으니까. 아내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고, 나는 새우젓 호박찌게에 대해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뭐 해먹을까 궁리하다가 냉장고 야채 칸을 열었다. 애호박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전에 봤던 새우젓 호박찌게 사진이 초고속으로 떠올랐다. 마침 국 끓일 재료도 마땅치 않은 차에 잘 되었다 싶었다. 또 전에 한 약속도 지킬 겸, 오늘 아침은 이거로 정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새우젓 호박찌게는 사실 요리라고 할 것도 없다. 재료도 많이 들어가지 않고 요리과정도 쉽다. 조선호박, 새우젓, 다진 마늘, 물, 부추 또는 파 정도만 있으면 된다. 따로 육수를 준비할 필요가 없는 간편식 찌개라고 할 수 있다. 먼저 물을 붓고 새우젓을 한 스푼 푼다. 물이 끓으면 반으로 도톰하게 자른 호박을 넣고 다진 마늘을 넣은 후 마지막에 부추나 파를 넣으면 된다. 이미 새우젓으로 간이 되어 있으므로 취향에 따라 후추나 청홍고추를 넣으면 끝이다.
이렇게 보글보글 찌개를 끓여 아침 밥상에 슬렁슬렁 내놓았다. 아침에는 꼭 국이나 찌개가 있어야 하는 장모님은 이게 뭐냐고 물었다.
“새우젓 호박찌게입니다. 맛이 어떠세요?”
“맛있는데.”
장모님은 내가 하는 요리에 별다른 표현 없이 맛있다고 해준다. 간혹 음식 맛이 짜다, 맵다 하는 정도의 평을 하기도 하지만,
장모님이 맛있다고는 했지만 종전의 반응과는 느낌이 조금 달랐다.
“처음 드셔 보세요?”
장모님은 그렇다며 고갯짓을 한다.
“이게 뭐야? 나도 처음인데.”
아내도 처음 맛본다며 덩달아 거든다.
‘이럴수가!’ 어릴 적 나에게 새우젓 호박찌게는 흔한 음식이었다. 그런데 처음이라니, 믿기지가 않았다. 나는 경기도에서 나고 자랐지만 장모님은 전라도 분이니 지역에 따라 주로 해먹는 음식이 다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의 입맛은 어머니 입맛과 닮았다.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이 곧 나의 입맛이 되었다. 어머니는 강원도 분이었고 주로 경기도에서 사셨다. 이번에 한 새우젓 호박찌게 역시 어머니가 자주 해주던 음식 중 하나였다. 내가 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맛은 반갑게도 어머니가 해주던 그 맛과 비슷했다. 어릴 적에 먹던 맛은 새우젓의 비릿내가 강하게 풍겼지만 이번엔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일 것이다.
어머니는 요리 솜씨가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못하는 요리는 없었다. 특별한 재료를 가지고 하는 요리보다는 밭에서 갓 따온 재료로 즉석에 끓여대고 무치는 요리, 오래 묵힌 소스를 가지고 하는 요리가 전부였다. 감자국, 무국, 시금치국이 그러했고, 두부찌개, 콩비지찌게, 된장찌개가 그러했다. 그중에 새우젓 호박찌게도 들어가 있었다.
어머니는 재료만 있으면 금세 뚝딱 한 상을 차렸다. 거칠지만 정감 있는 맛이 어머니 음식의 특징이었다. 특히 새우젓 호박찌게는 독특했다. 내가 다른 음식보다 이 찌개를 쉽게 떠올리는 것은 밥상에 많이 올라와서이기도 하겠지만 새우젓과 호박의 절묘한 조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새우젓의 감칠맛과 호박이 주는 달큰한 맛의 궁합이 잘 맞았다. 나는 그 찌개에다가 밥을 말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직접 해본 새우젓 호박찌게를 맛보며 어머니의 맛이 떠오른 건 이래저래 반가웠다.
어릴 적 우리 집 부엌은 부뚜막 뒤로 광이 있고, 아래로는 지하창고가 있었다. 냉장고가 따로 없었기에 신선식품은 지하로, 건어물 등은 부엌 뒤편의 광으로 옮겨졌다. 부뚜막에는 세 개의 가마솥단지가 걸려 있었는데, 작은 솥단지를 가운데 두고 큰 단지가 양옆으로 놓여 있었다. 오른쪽은 주로 국이나 찌개를 끓이거나 두부를 만들 때 사용했고, 왼쪽 단지는 소여물을 끓이는 용도로 쓰였다. 가운데 솥단지는 밥을 하고, 누룽지를 끊이는데 사용했다.
아침이고 저녁이고 밥을 할 때면 왕겨를 이용해 음식을 했다. 이때 풍로를 연결하여 왕겨가 잘 타도록 바람을 불어넣었다. 뭔가가 끓으면 부뚜막 솥단지에는 하얀 수증기가 부엌문을 타고 올라갔다. 그 어마어마한 수증기가 새어나오는 광경은 입을 벌릴 정도였다. 화재가 나서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과 흡사했다. 그 광경은 뭔가 대단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표시였고, 한참을 지켜봐도 싫증이 나거나 지겹지 않았다. 언제나 신기하고 경이로운 모습이었다.
하늘로 솟구치는 수증기를 넋 놓고 바라보다보면 어느 새 밥상이 차려졌다. 밥상을 옮기는 어머니의 콧잔등에는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혔다. 그것을 보노라면 연민의 마음이 들었다. 어머니의 땀방울은 혼자서 억척스럽게 집안을 꾸려 나가야 했던 숨가쁜 삶의 징표였다. 분주하고 고단하지만 그렇다고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 그녀에게 가로놓여 있었으니까.
어머니는 그 누구에게도 불평과 불만을 털어놓지 않았다. 10년 넘게 남편의 병치레를 하면서도 열 마지기가 넘는 농사를 지었고, 육남매를 학교에 보냈다. 홀몸으로 감당하기에 벅찼을 텐데도, 내가 아는 한 어머니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어린 나에게 어머니를 두렵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 어머니의 음식을 더 이상 먹을 수 없다. 어머니는 3년 전에 돌아가셨다. 어머니 음식 맛을 보려면 내가 요리를 해야 한다. 그런데 재료도 똑같고 하는 방법도 다르지 않는데 뭔가가 부족한 건 뭘까. 애석한 노릇이다. 어머니가 살아계셨을 때와 지금은 다르고, 나 또한 어릴 적 나는 아닐 테니까 달라지고 변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건만 왠지 섭섭하고 그리운 것은 어머니와 똑같은 음식 맛을 낼 수 없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 분의 부재가 새록 마음을 파고들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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