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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년된 암소와 삼년된 암염소와 삼년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지니라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취하여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 는 아브람이 쫓았더라(창세기 15:9~11).>
많은 사람들이 보신을 위하여 다양한 식품들을 찾아다니며 먹고 마신다. 보양식품 들 가운데는 우리가 흔히 주위에서 보는 것들도 있고 어떤 것들은 약간 혐오스러운 것들도 있다. 소위 몬도가네식 식품들이 그것이다. 생사탕은 아직도 많은 남정네들에게 정력식품으로 인기가 있고 지렁이는 토룡탕으로, 자라는 용봉탕으로 팔리고 있다. 그리고 갓 태어난 돼지도 고단백질 식품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축복의 언약을 세우는 과정에서 삼년된 암소와, 삼년된 암염소, 삼년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하여 제사를 지내라고 말씀 하셨다. 왜 하나님은 하필 삼년된 것들만 원하셨을까? 세상 사람들의 기준으로 보면 가장 품질이 좋고 먹기 좋은 시기의 것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실 앞에서 열거한 동물들의 고기는 삼년 정도 된 것이 가장 품질이 좋다. 너무 어리면 고기가 덜 성숙해서 맛이 없고 너무 늙으면 질기고 뻣뻣해서 맛이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단지 고기 맛이 좋은 연령의 것이기 때문에 삼년된 것들을 원하셨을까? 그 답은 하나님만이 아시는 것이겠지만 나는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그것은 사람의 정성이 깃든 제물을 원하셨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삼년동안 정성스럽게 키운 것을, 가장 가격이 높을 때 바치게 하셨으니 말이다. 주님께서 ‘너희 보물 있는 곳에 너희 마음도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사랑이 깊으면 깊을수록 내 것을 아끼지 아니하고 최선을 다하여 선물도 준비하고 꽃도 준비한다. 연애시절을 되돌려 보면 아마도 이해가 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내 돈을 쓰고도 아까와 하지 않고 기뻐할 수 있는 마음, 그것이 곧 사랑의 마음이다. 하나님도 그런 사랑의 마음을 원하셨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나님께서는 제물을 바치는 사람들의 형편의 범위 내에서 최선의 선물을 받기를 원하셨다. 삼년된 암염소를 바칠만한 사람이 암염소가 아까워 수양을 바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셨고, 집비둘기 밖에 바칠 형편이 안되는 사람이 집비둘기를 바쳤다고 섭섭해 하지도 않으셨다. 다만 자신의 형편에 맞는 최선의 선물을 원하셨다. 레위기 14장에 보면 암소나 수양과 같은 제물을 바칠 힘이 되지 못하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를 바쳐도 좋다고 기록되어 있다. 참으로 자상하고 좋으신 하나님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동물을 불에 태워서 드리는 방법도 있고, 제단에 피를 뿌리게 하는 방법도 있고, 쪼개서 드리는 방법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과 축복의 언약을 하시면서 동물을 쪼개서 제사 드리라고 말씀 하셨다. 왜 하나님은 여러 제사법들 가운데 이때는 동물을 쪼개서 제사 드리라고 말씀 하셨을까? 여기에 대한 해답 역시 하나님만이 아신다. 그런데 나는 이 구절을 묵상하면서 진한 감동이 밀려왔다. 하나님께서는 동물을 쪼개 제사를 드리는 것처럼 우리의 가슴을 쪼개 바치시기를 원하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슴을 쪼갠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 앞에 열어 보인다는 의미이다. 사람 사이에서도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너무 믿어주지 않으면 ‘가슴을 쪼개 보여줄 수도 없고’하면서 안타까워한다. 그렇다. 우리는 풀리지 않는 답답한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 할 때 ‘나 같은 것이 이런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지’라는 생각을 버리고 우리의 가슴을 쪼개 하나님께 보여 드려야 한다. 비록 우린 자신의 죄악으로 인하여 더럽고 추한 모습이 부끄럽고 죄송스러워도 주님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십자가의 보혈을 지나 흠 없이 티 없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가슴을 쪼개 주님 앞에 자신의 문제들을 아뢰야 한다. 그러면 선하신 주님은 반드시 그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다른 동물들은 모두 중간을 쪼개서 제단 위에 올려 놓았다. 그런데 유독 새는 가슴을 쪼개지 않고 그대로 올려놓았다. 믿음의 조상 아브람이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이 역시 아브람에게 직접 물어보기 전에는 해답을 얻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한두 가지 유추해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삼년된 암소와 삼년된 암염소, 삼년된 수양들을 잡아 각을 뜨고 쪼개서 올려놓는 일은 간단하고 쉬운 일이 아니다. 제물을 잡는 현장은 피비린내가 진동 했을 것이고 삼년된 대형 동물들의 중간을 쪼개서 제단에 올려놓는 일 역시 매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가장 값진 것들을 하나님의 명령대로 수행한 아브람은 너무 피곤한 나머지 몇 푼 나가지도 않는 새를 바라보면서 ‘이런 것 하나쯤이야 어떠려고’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렇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러한 아브람의 행동은 너무나 큰 하나님의 징벌로 다가왔다. 아브람이 깊이 잠든 중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라(창세기15:13)’고 말씀 하셨다.
하나님과 축복의 언약을 맺는 성스럽고 복된 자리에서 새를 쪼개 바치지 않은 작은 실수 하나가 이렇게 큰 대가로 되돌아 왔다. 실제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라를 잃고 400년 동안을 유리하는 슬픔을 맛보았다. 창세기에 기록된 내용을 역사가 증명했다. 여기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마지막 뒤처리에 대한 중요성이다. 힘든 일을 계속하다보면 누구나 지치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러한 지침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여 마무리를 깔끔하게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잘 하다가 끝에 가서 마지막 힘든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꼭 한두 가지 실수를 범하는 사람이 있다. 성공한 사람들과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마지막 까지 최선을 다하여 일을 잘 마무리하는 사람들에게는 성공이라는 보상이 주어지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실패라는 좌절이 주어진다.
창세기 15장에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고 싶은 말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은 흠 없고 티 없는 것들이어야 하며, 기도는 가슴을 쪼개듯이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마음을 다한 선물은 사람을 기쁘게 한다. 아내가 남편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생일이나 기념일을 맞이하여 최선을 다한 선물은 가정의 평화를 가져온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의례적인 선물이 아닌 마음을 담은 선물이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대화를 나눌 때도 자신의 마음을 쪼개듯이 해야 한다. 마음을 쪼깨듯이 말한다는 것은 진실된 말을 한다는 것이다. 진실된 대화 속에서는 부정한 것들이 틈을 타지 못한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도 가슴을 쪼개듯이 대화를 하면 오해로 인해 벌어질 수 있는 문제들을 사전에 막을 수 있다. 아브람이 새를 쪼개지 않고 제단에 올려놓았을 때 솔개가 그것을 채가려고 했다. 부정이 틈을 탄 것이다. 오해는 이렇게 아주 작은 사소한 일로부터 온다. 오늘 하루 힘들더라도 마지막 까지 최선을 다하고 깔끔한 마무리로 성공을 향하여 달려가자.
<오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마음을 담은 한송이 꽃을 선물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
첫댓글 마음을 쪼개고 쪼개어 함께 대화를 나눌만한 사람이 있어서 즐겁고 감사합니다.
너무나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정말 어떠한 일에 집중해서 그 일을 하다보면 중요한 뼈대의 일들이 있고, 어쩌면 사소해 보이는 소소한 일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 동안 이러한 소소한 일들을 너무 간과하고 지나치는 실수를 범하고 살아왔던것 같습니다. 하나님말씀에 순종하면서 비록 내가 보기에는 작아보여도 그 것을 행하게 하신 이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지말고 모든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진실로 내 마음을 쪼개어서 다른 사람을 섬기며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가슴에 와서 닿는 귀한 글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