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미 예수님!
저는 귀 본당(퇴계원 성당)의 박소이라는 자로부터 고소를 당해 몇일 전 남양주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고 온 엄성웅 빈첸시오입니다. 한국 나이로 63세인 저는 26년 전에 영세한 가톨릭 선교사입니다.
저는 퇴계원 성당의 박소이라는 자가 전혀 사실무근의 글을 전 국민이 보는 홈피('굿뉴스' 자유게시판)에 귀 본당인 퇴계원 성당의 이재성 안드레아를 완전한 사탄으로 몰고 가는 글을 올렸기에 그 박소이를 댓글로 탓한바 있습니다.
당시 저는 이재성 안드레아 형제가 추교윤이라는 신부로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마음의 상처를 받고 고통스러워 함을 일찍이 알았기에 주님의 사랑으로 치유 받기를 간절히 기도드리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박소이라는 해괴한 인간이 자칭 추교윤의 호위무사를 자청하고 나서서 이재성 안드레아 형제를 공개적으로 비하하고 전국의 뭇 사람들로부터 인간 이하의 쓰레기로 취급 받도록 만들려는 목적의 글을 '굿뉴스'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을 통해 접하고 아연실색 했습니다.
그러했기에... 저는 본 카페(퇴계원 천사)에 올라와 있던 박소이의 글 원문에 대해 '사탄' '추교윤의 호위무사' 등의 표현으로 그 박소이를 책망한바 있습니다. 물론, 오랜 세월을 주님 보시기에 기쁜 일만을 하고자 결심하며 살아온 저로서는 좀은 과격하고 본인의 기본 소양과는 다른 차원의 표현이었음을 인정하며 주님께 진실로 사죄 드립니다.
그러나... 박소이라는 그 인간에게는 일말의 미안함이 없습니다. 그자가 저지른 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위안을 가지기에 말입니다. 어제도 지금도 또 내일도 박소이라는 그 비신앙인에 버금가는 인격체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0.1%도 없습니다. 들은 바에 의하면 박소이라는 자는 퇴계원 성당에서 제의실 봉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본당에는 여럿 단체가 있고 많은 봉사직이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제의실 봉사는 그 무엇보다 주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자리이기에 몸과 마음이 특별히 정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박소이라는 자가 과연 그것에 걸맞는지 좀은 의아합니다.
저는 유교적인 집안 출신이라 유소년 시절에 그렇게도 갈망했던 성직자의 길을 가지 못하고 세속의 길을 걷고 있는 평범한 신앙인입니다. 출세를 원하신 어머님의 간곡한 바램을 거역하지 못해서 상대를 졸업하고 직장인 생활을 하다가 퇴직한 후 지금은 무역업을 하고 있습니다.
한 맺힌 성직자의 길을 조금이나마 보상 받고 싶어서 가톨릭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공부를 섭렵한 선교사입니다.
한국천주교회에서 공인한 평신도 신학교와 선교사학교 등에서 만10년을 정식으로 신학공부에 매진하고 나름대로 가톨릭교리 책을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본당과 교구에서 왠만한 직책도 맡아 보았고 왠만한 봉사직도 두루 섭렵했습니다.
선교사학교 봉사직(교수)을 6년여 수행 한바도 있습니다.
위는 자랑이 아닙니다. 오직 말보다 실천이 무엇이냐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해서... 저 나름대로는 과거와 현재는 말할 것 없이 앞으로 남은 여생도 오직 하느님의 참 사랑을 실천하면서 훗날 하느님을 뵈올 때의 사심판에서 당당한 모습이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즉 영원한 생명의 길인 현세에서의 죽음을 준비함에 소홀함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장기 기증운동의 초창기인 오래 전에 제 몸을 하느님께 봉헌한 사람입니다. 영생을 믿고 부활을 믿었기에 기쁜 마음으로 아내와 자식들의 동의서명을 받은 후 기증확약서에 서명하고 본당 신부에게 권유했다가 생뚱맞은 말 하지 마라는 말을 듣고 한국천주교회 성직자의 참 모습이 이런 거였구나 하며 놀라기도 했습니다.
저는 지인 중에서 성직자도 꽤 많습니다. 제가 펴낸 가톨릭교리 책을 보고 감명 받았다는 성직자도 꽤 있습니다. 제 절친 중 두 친구의 아들들이 현직 성직자이고 저의 이종 처제도 수도자(본당에 파견된 수녀가 아니고 평생을 몸으로 희생하는 수녀직입니다)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신부와 수녀에 대헤서도 알만큼 아는 정도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제 주변의 그 많은 신부와 수녀는 추교윤 같은 막되먹은 사람은 단 한명도 없습니다.
추교윤 같은 그런 자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려는 것은 곧 가톨릭교리 무지의 발로이겠지만 충고를 악으로 되갚으려는 것은 더 큰 죄악임을 깨우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스도의 3직(사제직, 예언직, 왕직)은 직무사제직인 신부에게도 일반사제직인 평신도에게도 동등합니다.
다만, 평생 복음삼덕(순명, 정결, 청빈)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신부들이기에 직무사제라 하고 세속에서 하느님의 사업을 실행하며 살아가는 평신도이기에 일반사제라 함인데 무엇 때문에 맹종하며 알량거려야 하는지 되묻고 싶습니다. 가톨릭교리에서 흠숭의 대상은 오직 한분이신 하느님 뿐이시며, 순명 또한 하느님께만 드려야 함에도 무슨 근거로 신부를 흠숭하고 순명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흔히들 '순명하라 순명하라'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데, 순명 또한 그 대상은 사람이 아니고 교회이고 하느님이십니다. 일부 몰지각한 신부들이 교회에 순명하라는 교리를 자기 자신들에게 접목해서 왜곡하지만 그것은 크게 잘못된 안하무인의 교리 해석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물론, 존경할만한 신부님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신부님들에게 존경을 표합니다.
그러나, 성인들에게 표하는 공경과 성모님에게만 표하는 상경과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에게만 표하는 흠숭을 구분하지 않고 교만에 빠져있는 일부 신부들에게 하느님처럼 복종하는 평신도도 문제 있거니와 그것을 은근히 바라면서 군주 행세를 하려는 신부들은 더더욱 문제라고 감히 판단합니다.
특히. 더 높은 경지의 도덕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가 신부 아니라 뭐라해도 존경 같은 존칭어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그래서 저는 추교윤 같은 인간을 신부라고 생각지도 않고 오히려 시정잡배 그 이하로 생각합니다.
신부들은 그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그 스스로 환속하지 않으면 평생을 신부직으로 살아간다는 교회법을 탓하기 전에 그 스스로 양심을 속이면 하느님의 심판이 반드시 따를 것이라 확신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신자의 3대원칙(양심, 율법, 믿음) 중에서도 양심을 첫째로 꼽았습니다.
하느님의 선물인 자유의지를 인정하지만 그 자유의지가 개인의 양심 안에서 움직여야 곧 인간이라는 특혜를 누릴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신부 대우는 커녕 인간이하 더 나아가 동물 이하로 취급 받아 마땅하지요. 성직자라면 더 엄격한 양심의 잣대가 필요하며, 또한 제의실 봉사도 스스로 엄격한 양심의 잣대가 필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성찰하고 통회하고 정개 하겠습니다.
따라서, 원인 제공자인 박소이 님... 회개하시고 똑바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고고한 신앙심이 무엇이고 어디까지인지는 모르나 남을 함부로 고소하고 남을 피해주는 행동거지야말로 당신 스스로 사탄임을 입증하는 것임을 간과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전에 한국천주교회의 성화운동이었던 '내 탓이로다'를 되새겨 보기를 정중히 권고합니다.
또한 새로 부임하신 신부님!
제의실에서 자주 보고 자주 대화하니까 죄인도 천사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바로 그런 세속적인 판단이 교회를 무너뜨리고 있음을 기도 중에 기억하시기를 감히 부탁합니다.
참고로, 오래 전의 사건이지만 제가 직접 겪은 일을 신부님에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가 교구의 선교사학교 봉사를 할 때입니다. 저희 본당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던가 봅니다. 주임신부의 해괴한 작태 때문에 본당 신자가 썰물처럼 떠나고 청년회도 없어지고... 그 사건으로 청년회 몇명이 교구에 투서를 넣었던가 봅니다(저는 나중에... 다 끝난 뒤에 알게 된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신부가 교구 고발자로 저를 지목하여 소위 신부의 호위무사격 몇명과 어울려서 저를 패륜아 취급하며 대부분의 신자들(전체 신자는 아니고 어느 본당이든 주축세력이 있게 마련인데 그런 Opinion Leader격 신자들을 지칭합니다)에게 아예 잘근잘근 씹고 다녔다 했습니다. 저는 교구봉사가 워낙 힘들고 중요해서 본당에는 주일미사 참례 외에는 시간적인 문제로 전혀 정보가 없었습니다. 물론 교구 투서 투자도 몰랐고 상상 그 자체도 못했는데 엉뚱한 저를 지목해서 한 인간을 짓뭉갰던 것입니다. 그것도 몇달 동안이나...
몇달이 지난 뒤, 그 주임신부와 제가 합석한 우연한 자리에서 만취한 그 신부가 공개하더군요. ..... 중략
결론은, 그 신부를 명예훼손으로 처벌하려고 후배 변호사와 모든 준비를 끝내고 원로 성직자이신 존경하는 스승 신부님에게 총고해를 했습니다. 그 스승 신부님의 간곡한 만류로 그 악질 신부(?)를 용서 했습니다. 아무 관련도 없는 그 스승 신부님이 같은 성직자로서 죄인이라 하시며 저에게 용서를 빌기에 어쩔 수 없이 넘어간 사실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이 정의구현사제단 List에 버젓이 자리잡고 있음을 최근에 알고 또 한번 놀랐습니다.
100% Fact 입니다. 제가 왜 이런 사실을 감히 말씀 드리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위에 말씀 드린바 있듯이 일방적이거나 세속적인 판단은 곧 심각한 오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신부님에게 무례한 말씀 드렸음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경찰서 조사관으로부터 '사건 같지 않은 일로 고소하고 조사 받는 천주교를 이해 할 수 없다' 또는 '그 신부님은 이런 일에 내몰라라 하느냐?'라는 말을 들을 때 얼굴이 화끈 거렸습니다.
저도 가톨릭 신자임이 부끄럽고 선교사임이 부끄럽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재성 안드레아 형제에게 한 말씀 올립니다.
박소이라는 자가 회개하여 공개 사과를 하지 않겠다고 끝까지 고집 부린다면 즉시 무고 및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를 청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두 계명(하느님사랑과 이웃사랑)을 말씀 하시면서 그 마져도 오직 사랑 하나로 묶어 버렸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기에 그자가 회개하고 공개 사과하면 모든 허물을 지우고 하느님 안에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하지만, 끝까지 불의와 타협함은 곧 하느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 감히 단언합니다. 하느님의 원의를 거역하는 적그리스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저의 소견입니다. 안드레아 형제가 제 의견에 적극 동의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퇴계원 성당의 모든 형제 자매님들에게 주님의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신부와 평신도의 동등을 밝힌 제 논조에 억지 반론할 분(신부 말이 곧 예수님 말씀처럼 맹종하는 얼빠진 신자들)들을 위해 제 책에서 일부만 발췌하여 아래와 같이 정리합니다. 아래 4번(요셉 가르뎅)은 우리 평신도가 세상에서 하느님의 삶을 살고 있다는 정의입니다. 즉 제대 위에서만의 주님 알현이 전부가 아니고, 우리는 '우리 앞에 계시는 성부 하느님'과 '우리와 함께 계시는 성자 하느님'과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 하느님' 즉 성삼위와 항상 함께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1) 독일의 저명한 예수회 신학자 알로이스 그릴마이어(A. Grillmeier, ?~1998년 9월 13일. 1937년 사제품을 받고 기초신학과 교의신학 교수로 활동하다가 1994년 추기경에 서임되었으며, 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년>의 신학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추기경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문헌을 풀이하는 그의 1963년 초안에서 “사제직에는 모든 세례 받은 사람들이 포함되며, 축성된 사제라 하여 이 공통적인 사제직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라고 정의하였다.
↳ 따라서 직무사제직(職務司祭職, 서품 받은 사제)은 일반사제직(一般司祭職, 세례 받은 평신도) 과 모순된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통적인 그리스도 사제직을 보증해 준다.
2) 그릴마이어(A. Grillmeier)는 공의회 <교회헌장> 10장의 해석에서 “서품 받은 사제는 일반사제의 품위와 사명을 상승시키거나 강화시킨 것이 아니라 일반사제에 대해서 사제직의 품위와 권위의 새로운 양상을 제시한 것이다. 따라서 일반사제도 축성된 사제로부터 기인한다”라고 정의하였다.
↳ 직무사제(職務司祭)와 일반사제(一般司祭)는 특수한 양상으로서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일반적이거나 특수한 참여의 바탕위에서 서로 동격(同格)이다.
3) 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회헌장>을 구성 편집하였던 벨기에의 요셉 쉬넨스(Cardinal L. J. Suenens, 1904~1998년. 신학자로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공헌을 한 철학 및 신학박사. 1962년에 추기경에 서임되어 벨기에 브뤼셀 말린 대교구장직을 역임하였다) 추기경은 <교회의 선교>라는 책에서 “교회 안의 사도직은 성직자의 독점물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 이는 곧 사제(司祭. 라 Sacerdos, 영 Priest)의 과제는 고립될 수 없으며, 아울러 평신도들을 염두에 두지 않고서도 정의될 수 없다고 결론지어진다.
4) 노동청년회 창설자인 요셉 카르뎅은 평신도 사도직의 수행실체(遂行實體)를 “여기 여러분의 작업대가 제대입니다”라고 분명히 밝혔음은 평신도 자신들의 삶이 바로 ‘교회’ 라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 신앙의 참된 가치를 더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첫댓글 사제가 사제다워야 하며
평신도가 평신도다워야
교회가 바로 세워집니다.
복음말씀대로 사는 게 하느님과 예수님, 교회의 일치이며
하느님나라의 건설, 예수그리스도왕국 건설 입니다.
무지한 병신도가 제왕적 사제를 만들어 냅니다.
우리에 굳건한 믿음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사랑.
기쁜소식인 복음선포 입니다.
우리는 제왕적 거짓사제를 믿고 추종하는 것 은 아닙니다.
그것은 무당을 믿고 따르는 죄악 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에 행동하는 참 신앙인이 되어야 하며,
성경말씀을 받아들이고 실천한다면
하느님, 예수님 이름을 팔아 먹고사는 거짓사제와 무당을 추종하는
무식하고 추악하며 불쌍한 개때무리들이 생겨나지 않을 것입니다.
바오로사도께서는 성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거짓사제와 개떼들을 경계하며 조심하라고!
참 신앙으로 하느님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하신
엄빈체시오, 이 안드레아형제님께
깊은 감사 인사드립니다.
한심한 것들...불의를 행한 자가 거꾸로 고소까지 했다고요??? ㅎㅎㅎ
한국 천주교의 한심한 실상들이 여기저기에서 불거져 나오니까 이제 한숨 밖에는 휴~~
도대체, 박소이라는 사람이 신자는 맞습니까? 그러지 말고 신부 시다바리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은데요.
하느님 찾지 말고 추교윤 하느님 찾아 다니시지 왜 그럴까요? 아무리 봐도 박소이 개인이 저지른 짓이 아닐거라 봅니다. 그냥 두지 마시고 반드시 뿌리를 뽑아 주세요. 박소이라는 사람이 허위사실을 전국에 유포하고 거꾸로 고소까지 했다니 당연히 사회법 처벌은 물론이고 그가 한 짓 그대로 전국에 알려야 합니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함을 보여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