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제주4.3 70주년. 봄이 일흔 번째 다녀가는 동안 4․3의 진실은 차츰 선연해졌으나 그것은 여전히 완결 짓지 못한 이야기로 남아 있다. 희생자 추모, 유가족 위로 등의 해결은 고사하고 아직 올바른 역사적 이름조차 얻지 못한 제주4.3. 항쟁이라고 해야 할까? 혹은 사태나 사건? 그것이 무엇이든 4.3은 “가장 아름다운 땅에서 일어난 가장 비극적인 일”임에 분명하다. 이를 위무하기 위해 제주4.3을 기억하는 한국작가회의 소속 91명의 시인들이, 제주4·3 70주년 기념 시 모음집’ 『검은 돌 숨비소리』를 펴냈다.
이번 시 모음집을 발간에 앞장 선 제주작가회의(한국작가회의 제주지회) 지회장 이종형 시인은 “잊지 않는다는 것, 기억한다는 것만이 4․3의 전부가 아닐 것입니다. 4․3의 역사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 그 성찰의 시간이 바로 지금입니다. 4․3 영령들을 위무하고 진혼의 술잔을 따라 올리는 마음으로 방방곡곡의 시편을 모았습니다. 제주4․3 70주기를 맞는 이 봄날 붉은 꽃을 따라간 푸른 잎들도 돌아와 아문 상처 위로, 새살이 돋아야 할 때입니다.”라고 발간 취지를 밝혔다.
“가장 아름다운 땅에서 일어난 가장 비극적인 일”에 대하여
- 4.3을 기억하는 시인들의 특별한 시 91편
『검은 돌 숨비소리』에는 4․3의 고통스런 역사와 4.3정신 등을 소재로 한 시 91편이 담겨 있다. 제주 지역은 물론 전국 각지 작가들의 신작시를 1편씩 모았다. 원로 신경림, 정희성, 이시영 시인부터 안현미, 장이지, 김성규 등 젊은 시인에 이르기까지 총 91명의 시인이 참여했다. 이 가운데 특히 김수열, 이종형, 홍경희 시인 등 제주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시인들이 주도적으로 힘을 모았다. 국내를 대표하는 이들 시인들은 『검은 돌 숨비소리』에서 저마다의 절절한 목소리로 4.3의 아픔을 노래했다.
흙은 살이요 바위는 뼈로다
두 살배기 어린 생명도 죽였구나
신발도 벗어놓고 울며 갔구나
모진 바람에 순이 삼촌도
억장이 무너져 뼈만 널부러져 있네
- 정희성 「너븐숭이」 전문
때죽나무 가지 위에 하나둘
날갯짓 숨기고 모여들어
석 잔의 술을 따르고
깊게 무릎 꿇어 절을 올리는
한낮의 풍경을 가만 가만 지켜보는
검은 눈동자들
청동 제사상 위 소박하게 진설된 제물들을 보며
자정의 제례가 끝나기를 기다리다 끝내
졸음을 쫓아내지 못하고 꾸벅꾸벅 조는 아이처럼
서로의 부리와 부리를 맞대고
대를 잇는 기억을 나누며
오늘을 잊지 말자고
부디 잊지 말자고
마치 환생의 순간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숲의 생명들이 다시 하나가 되는 날
한라산 까마귀들도 함께 음복하는 제삿날
- 이종형 「산전山田. 3」 전문
『검은 돌 숨비소리』에 담긴 91편의 시를 차분히 읽다 보면, 4.3이 70년 전 과거가 아니라 여전한 현재임을, 지금 이 순간의 절통한 통증임을 느낄 수 있다. 역사의 상처를 되새기고 동시에 한층 성숙한 내일을 모색하고자 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독자들은 각각의 시편들에서 특별한 울림을 얻게 될 것이다. 4.3의 아픔으로 일그러진 시 속 낱낱의 얼굴들을 통해 역사적 상처를 보다 깊숙이 들여다보는 것은 물론 그 상처를 여기서 먼 어느 땅이 아니라 바로 지금 내가 발 딛고 있는 이곳의 것으로 넉넉히 보듬어 안게 될 것이다.
작가 소개
강덕환 강방영 강봉수 고영숙 고우란 고재종 권선희 권혁소 김경윤 김경훈 김광렬 김규중
김문택 김병심 김병택 김석교 김 섬 김성규 김성주 김수열 김수우 김순남 김순선 김승립
김연미 김영란 김영숙 김요아킴 김용락 김윤숙 김은경 김정숙 김준태 김진수 김진숙 김진하
김해자 김희운 김희정 나종영 문경선 문동만 문무병 문상희 문순자 박관서 박남준 박두규
박소란 박찬세 백남이 서안나 서정원 석연경 손세실리아 송 상 송태웅 신경림 안상학
안은주 안현미 양동림 양전형 오광석 오승철 오영호 유용주 유현아 이덕규 이민숙 이상인
이시영 이애자 이은봉 이정록 이종형 장영춘 장이지 정우영 정찬일 정희성 조진태 조한일
진순효 최기종 한희정 허영선 허유미 현택훈 홍경희 황규관
목 차
강덕환 4․ 3이 뭐우꽈?
강방영 사혼死婚한 삼촌
강봉수 할미꽃
고영숙 붉은 도감圖鑑, 동백
고우란 배반의 동백숲
고재종 도철의 시간
권선희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권혁소 바람의 속내
김경윤 섬은 무덤이었다
김경훈 아무런 이유 없이
김광렬 아픔의 간격 사이에서
김규중 월령리 선인장
김문택 흙 한 줌
김병심 성산포
김병택 보안처분 청구서
김석교 강동휘 선생님
김 섬 블랙리스트
김성규 진아영秦雅英
김성주 한라산으로 난 길
김수열 몰명沒名
김수우 호명呼名
김순남 제주고사리삼
김순선 산 증인 큰넓궤
김승립 태극기 휘날리며
김연미 북촌 팽나무
김영란 진눈깨비
김영숙 제주 벚꽃
김요아킴 진혼을 위한 서곡
김용락 잠들지 않는 남도
김윤숙 흰 구두 한 켤레
김은경 나는 죽다 살았지만
김정숙 잘 익은 자두를 보면
김준태 제주濟州, 1948년 • 72
김진수 산굼부리
김진숙 사월, 광장으로
김진하 묵은 집터에 새 집 세우니
김해자 밤의 명령
김희운 별도봉, 찔레를 품다
김희정 두 개의 한라산
나종영 오늘은
문경선 속솜허라 3
문동만 이마
문무병 강알 터진 옷
문상희 울혈비鬱血脾 죽음에게 바침
문순자 4․3 그 다음 날
박관서 나라가, 나라가!
박남준 잔인한 비문
박두규 길가의 꽃들은 하나둘 피어나고
박소란 눈
박찬세 심해
백남이 고백
서안나 위미리 동백
서정원 스냅 사진
석연경 곶자왈 동백이 토틀굴로 흘러들 때
손세실리아 알앙 골아줍써
송 상 팽나무
송태웅 바람의 행장
신경림 별을 찾아서
안상학 나는 그저 한남댁이올시다
안은주 1948
안현미 깊은 일
양동림 돌가기
양전형 피뿌리풀꽃
오광석 과거에 묻힌 이름
오승철 꿩을, 풀다
오영호 표석 앞에 서다
유용주 토끼 사냥
유현아 오늘의 달력
이덕규 분신焚身
이민숙 바람, 의 묘지
이상인 한라산 동백꽃
이시영 복원
이애자 하얀 평화
이은봉 떠오르는 말들
이정록 따뜻해질 때까지
이종형 산전山田. 3
장영춘 선흘 겨울 딸기
장이지 April
정우영 폐광을 해체하라
정찬일 오름에 새겨 넣는 문장
정희성 너븐숭이
조진태 울음이여 오라
조한일 1948 묵은 장터
진순효 학교에서
최기종 제주도 오름
한희정 슬픈 해후
허영선 비정한, 모살판의 그대를 만나
허유미 각명비
현택훈 지다리 설화
홍경희 불망기不忘記
황규관 돌아가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