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葆光의 수요 시 산책 7)
曠野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렷스랴
모든 山脈들이
바다를 戀慕해 휘달릴때도
참아 이곧을 犯하든 못하였으리라
끈임없는 光陰을
부지런한 季節이 픠여선 지고
큰 江물이 비로소 길을 연엇다
지금 눈 나리고
梅花香氣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千古의 뒤에
白馬타고 오는 超人이 있어
이 曠野에서 목노아 부르게하리라
- 李陸史(이육사 1904~1944), 『원전주해 이육사 시전집』, 박현수 지음, 예옥,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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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카눈의 뒤를 따라 백두산에 갔습니다. 7년 만의 재방문입니다. 카눈의 속도가 빨라진다고 해서 우리 백두산 오를 때는 태풍이 지나갔으리라 생각했으나, 갑자기 태풍의 속도가 느려져 심양에 도착했을 때는 카눈이 우리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습니다. 지난 방문 때는 연길로 들어가 가는 길에 용정과 두만강을 찾았으나, 이번에는 심양으로 들어가 오는 길에 광개토대왕릉 유적지와 압록강을 들렀습니다. 백두산은 서파와 북파로 나누어 두 번 올랐습니다. 그때 서파에 오를 때는 비가 왔었고, 정상에 올랐을 때는 안개가 너무나 짙어 천지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분간이 안 되었습니다. 저 아래 어디 있다니 그런가 보다 했지요. 조중경계비 주위에서 사진 몇 장 찍는 것으로 정상에 올랐던 자취를 남기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북파에 올랐을 때는 웬일인가요, 하늘이 가을 하늘처럼 맑아져서 우리는 물빛 푸른 천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백두산 천지를 보려면 삼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둥 이런저런 말들이 오갔지만 하는 말이려니 설마 하고 흘려들었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첫 방문 이틀 만에 봤으니까요. 이번에 북파에서는 천지를 못 봤습니다. 아래에서는 하늘이 맑았지만 정상에 오를수록 점점 더 안개가 짙어지고 바람이 세차지더니 정상에 올랐을 때는 서서 있기도 버거웠을 뿐만 아니라 천지는 안개 속에 가마득하게 잠겨서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어려웠습니다. 한 번 봐서일까요. 사진 몇 장 남기는 것으로 만족하고 지난번 천지를 본 일행은 서둘러 내려왔으나 이번에 새로 합류한 몇몇은 꽤 오래 안개가 혹 걷히기를 기다리며 세찬 바람을 맞다가 내려왔습니다. 그것은 아마 전날 서파에서의 횡재(?) 때문이었을 겁니다. 전날 서파에 오를 때는 비는 없었으나 바람은 거셌고 역시나 오르면서 점점 더 안개가 짙어져 앞을 분간하기가 어려울 지경이었으나 제가 세는 계단을 다 지나 정상으로 오를 때쯤 갑자기 남풍이 불면서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고, 거짓말처럼 천지가 열렸습니다. 제가 쫓아 올라갔을 때 이미 주위에는 사람들이 빼곡하여서 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휴대폰을 높이 들었더니 안개가 일부 천지를 덮고 있기는 했어도 화면에 천지가 보였습니다. 나중에 여럿이 찍은 사진들을 살펴보니 먼저 오른 일행 중 몇은 짙은 푸른 물빛의 천지를 보았더군요. 이 횡재의 시간이 딱 20여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천지는 다시 안개 속으로 자취를 감췄고 몇 번의 바람이 더 있었어도 천지는 우리가 머무는 동안은 다시 열리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그날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하니 우리보다 먼저 올랐다가 내려갔던 이들도 뒤이어 올라온 이들도 그날은 서파에서의 천지는 못 본 셈이지요. 그제서야 아, 실감이 났습니다. 천지를 보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을요. 애초 이번 주 수요시편은 혹시나 해서 미리 써놓고 갔으나 백두산 천지에서 문득 이 시가 떠올라 바꿨습니다. 다들 외울 정도로 익숙한 시라고 생각되어서 발표 당시의 시 그대로 옮겼습니다. 기독교 성경에서 예수는 사람의 아들로 표기합니다. 그러면 예수의 아버지는 누구냐, 이제껏 우리가 알던 상식으로는 하느님(하나님)이었지요. 하지만 결국 배제된 도마복음에서는 예수의 아버지를 ‘사람’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아들’이니 그 아버지가 ‘사람’인 것이 문법적으로는 당연하지요. 제가 학자가 아니니 구구한 설명은 할 수가 없습니다만, 오늘 읽는 ‘광야’의 감상으로 한마디 하자면, ‘다시 千古의 뒤에/白馬타고 오는 超人’은 분명 사람일 것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하니 ‘영웅’도 ‘메시아’도 아닌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깊게 내재된 ‘영웅주의’와 ‘메시아주의’를 저는 자주 곰곰 들여다봅니다. 그렇게 들여다보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은 우리의 싸움은 거의 사이비 ‘영웅’과 ‘메시아’의 대리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이건 이 시인만의 망상일까요. 더위가 한풀 꺾였습니다. 계절은 부지런하게 다가와 늘 광음을 다 보여줍니다. 광光만 볼 것도, 음陰만 볼 것도 아니지요. 세상의 광음光陰을 다 볼 때만이 우리는 진정 새 세상을 볼 것입니다. (20230816)
첫댓글 보광님, 백두산 두 번째 다녀오셨네요! 잘 다녀오셨네요! 저는 2010년에 한 번 참례하였는데, 천지를 볼 수 없었지만, 그 장엄함은 형언할 수 없었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