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 딸린 욕실엔 뜨거운 물도 나왔다. 안나푸르나BC를 다녀와 롯지의 분위기를 아는 지라 흥분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거기다 배터리 프리차지까지.... 이제 겨우 트래킹 시작점이니 충전할거야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사이 방전된 배터리를 다시 한 번 체크하며 충전하고, 이부자리는 있었지만 우리 침낭을 사용하고자 처음으로 사용하는 영하 30도짜리 침낭을 침대 위에 펼쳤다. 숨 죽었던 침낭이 마술 처럼 부풀어 오르는 모습이 꼭 내 맘 같았다고 할까...
다이닝 룸으로 올라가 처음으로 우리팀 쿡이 준비한 저녁을 먹고, 커피 대신 럼콕도 한 잔 하고..... 특실인 우리 방으로 들어왔다. 내일 입을 옷과 배낭 짐을 대충 꾸려놓고 일찌감치 침낭속으로 잠수... 쿡이 끓여준 뜨거운 물병을 끌어안고 있노라니, 침낭속의 포근함에 이제까지의 피곤함이 녹아든다.
아!! 어둠속에서 들어오는 창밖 풍광이 별세계 처럼 매혹적이다.
어젯밤 8시반 즈음에 잠들어서 새벽 6시까지.... 세상에 거의 10시간을 한번도 깨지 않고 자다니.... 그동안 누적되었던 피곤함이 정말 컸었던거 같다.
짐을 꾸리고 밖으로 나왔다. 어디서부터 출발한 트래커들인 지 벌써 체열이 올라 반바지에 반팔 셔츠 차림이다. 나는 털모자에 패딩 쟈켓을 입고 있는데....ㅎㅎ
롯지 뒷편으로 보이는 갸려룽(6511m)도 잡아보고,가냘프게 피어있는 야생화도 잡아보고... 지나가는 당나귀 무리도 잡아보고... 롯지 주변 이것 저것 풍광들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독특한 옷차림의 여고생들이 지나간다.
후훗~ 저거 교복?? 햐얀 속바지에 짧은 빨간 치마... 아니겠지? 이 청명한 가을날, 이곳에서도 가을 운동회 준비하나? 뭐...마스게임 같은거... 아이들 표정이 한껏 부풀어 있는것 같다.ㅎㅎ
다이닝 룸으로 들어갔다. 어젯밤 어스름한 등불에선 못느꼈는데, 잘 정돈된 그릇들의 반짝거림과 주방의 정갈함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나도 모르게 절로 그들에게 다가가 '주방이 너무 깨끗하고 이쁘다고 ...' 말해주었다. 그리고 사진을 찍으려는 내게 '잠깐' 하더니, 두 딸도 부른다. 졸지에 가족사진이 되어버린 사진찍기... 그런 모습이 나도 너무 우습기도 하면서도 즐겁고.. 이들도 너무 즐거운 지, 우린 이 사진 한장을 찍으면서 한바탕 웃음 폭탄을 터트렸다. 순간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명랑함에 내 온몸이 밝아져 오는것 같다.
세르파 족들은 원래 타고난 낙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매우 명랑하고 부지런하며 강인하여 상당히 잘 산다고 한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트래킹 준비를 하고 나왔는데, 아직 우리 주방팀은 여유롭다. 햇살에 식기류를 가지런하게 말리고 있고, 그 옆에선 보조 쿡 왕다가 대장님 지시를 받으며 김치를 담그고 있다. 헐~ 찹살가루 봉지가 대장님 손에 있는 걸 보니, 풀을 쑤지도 않고 그냥 넣었나 보네~ ㅋㅋ 아놔~ 저 김치 맛있을까?? 하긴, 찹쌀 풀 안넣어도 맛있잖아~ 그래도 찹쌀가루 넣었으니 더 맛있을 거야~ ㅋㅋ
아침 식사후 김치를 담그느라 출발 시간이 예상 시간보다도 훨씬 늦어졌다. 아무래도 쿡이 없으니, 일일이 대장님 손길이 가야하고, 아직 보조 쿡인 왕다도 음식 만들기에 익숙지 않으니 그럴것이다.
오늘 일정은 남체바자르까지 간다. 우리 처럼 천천히 헤철해가며 걷는 거북이에겐 9시반에 한 출발이 좀 빠듯한 시간이긴 하다.
뭐 늦게 출발하면 어떠랴~ 겨우 대장님 포함한 대원이 셋 뿐인걸~ 얼마든 지, 스케줄 조절이 가능한 팀 구성이다.
우리 짐을 진 포터들은 어느새 우리 시야에서 사라졌다.보통은 15~20kg의 두 사람의 짐을 한 포터가 지는데, 우리 포터들은 우리 한 사람의 짐을 지니, 그들에게는 조금은 가벼운 무게일 수도 있다.
우리는 늦게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변 풍광들에 눈길을 두고 헤철하며 여유있는 걸음을 걸었다.
그물 망에 잔뜩 살림 집기들을 담아 저울 처럼 양쪽 균형을 맞춰 메고 가는 박물장수의 모습이 새롭다.
해발고도 3000m가 되는 깊은 히말라야 산중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다. 어쩌면 이들에겐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이런 삶의 방식이 그대로 이어지고 또 편할 지도 모르겠다. 아니, 누구보다도 우리가 그런 삶을 이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곳에 자동차가 들어오는 도로가 절대 생기지 말아야 하니까...
그러나 안나푸르나도 그렇고 이곳도 점점 자동차가 높은 곳까지 들어오고 있다.
팍딩에서 남체바자르까지 가는 길도 어제와 같이 사방이 꽃이다. 들꽃이라기 보다는 롯지와 이들이 사는 집들 주변을 예쁘게 가꾼 꽃들.... 그래서 거대한 산 봉우리 밑에 지어진 낡고 초라한 집들이 자연의 일부가 되어 더 아름다워 보인다.
집집마다 작게 만들어져 있는 마니차도 그렇고...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수시로 눈에 띄는 라마스톤도 그렇고... 이들의 삶 깊숙히 박힌 불교의 진리를 느끼게 한다.
하긴 왜 안그렇겠는가~ 나도 이 길을 걸으면서 마니차와 라마스톤을 볼때 마다 절로 기도가 나오거늘... 이 험준한 히말라야 깊은 속에서 살아가자면 어찌 신에 대한 믿음이 커지지 않겠는가~ 인간의 힘이 대자연의 힘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한 지...그 누구보다 이들이 잘 알 터이다.
출발할때 날씨가 그렇게 좋았는데 어느사이 하늘엔 구름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9월 말인데...아직도 몬순이 완전히 끝나지는 않은건 지... 비교적 조살레까지는 평지길이라 전혀 힘들지 않다. 힘듦보다는 되려 오며 가며 감동과 행복에 젖은 트래커들과 인사 나누는 일에 그저 즐겁기만 하다. 잠시 더위에 지칠라 치면 이내 계곡이 나와 단숨에 더위와 땀을 씻겨주는 타라코시 강바람 또한 기막히다. 마치도 평생에 처음 맞는 듯한 한가롭고 평화로운 천국의 여유라고 할까... 따듯한 햇살 아래 빛이 나도록 깨끗하고 이쁜 사가르마타 국립공원을 걷는 일은 최고의 호사가 아닐 수 없다.
팀스 체크 포스트다. 뒤에 대장님이 카드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더니, 그냥 가라고 통과 시켜준다.
세찬 물줄기와 예쁜 들꽃, 오두막에 사로잡혀 오르다 보니, 바로 물레방앗간이다. 아주 작은 공간에 방아 찧는 맷돌 하나 놓고 혼자서 열심히 밀을 빻고 있었다. 소설속에서나 등장하는 물레방앗간을 이곳 히말라야에 와서 직접 보다니....ㅎㅎ
몬주에 도착했다. 찬란한 가을 햇살 때문일까... 청명한 마을 풍광이 눈이 시리도록 선명하게 들어온다. 지나가는 트래커들도 많지않고... 고요함과 여유로움까지 더해져 마치 다른 세상속을 걷는것만 같다.
돌로 지어진 깨끗한 건물에 노오란 색깔의 한련화가 가지런히 피어있는 롯지가 눈에 띄었다. 그 앞으로 놓여있는 테이블과 하얀 의자가 ...왠지 저곳에 꼭 앉았다 가야하겠다는 기운을 불어 넣었다고나 할까...
커피도 한 잔 마실겸 그곳으로 들어섰다. 메뉴 판을 보니, 왠지 커피보다 달달한 핫쵸코가 당긴다.
주인장은 우리에게 음료를 대접하고는 곧장 또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들 세르파족의 근면함을 이곳에서도 또 느낄 수 있다.
잠시 후 주인장은 우리에게로 왔다. 젊은 나이에 이 롯지의 주인이라고 해서 놀라워하며 매우 부자라고 했더니, 함박 웃음을 터뜨리며 좋아한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우리의 여정이, 로왈링의 타시랍차 패스를 넘을거라고 했더니,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두 팔을 불끈 들어 올린다. '매우 강한 사람이라'고....ㅋㅋ
햇살을 피해 한 참을 처마 밑에 앉아 있으니 이내 옷깃으로 한기가 스며든다. 다 벗어 재꼈던 재킷을 다시 껴입고 이제는 햇살 아래 테이블에 앉았다.
롯지앞에 높이 세워둔 하얀 깃발이 바람에 휘날렸다. 그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자니, 친구 이풀이 한참을 설명해 준다.
저 불경이 적혀있는 하얀 깃발을 '룽타'라고 하는데, 바람타고 불경이 멀리 퍼지라고 높은 기둥에 불경이 적힌 깃발을 달아 놓은다는 것이다.
아!! '바람타고 멀리 퍼지라...'
정말 너무나 감동적이고 멋진 말이 아닐 수 없다. 마니차를 돌릴때 마다 종소리를 내어 세상을 깨우치게 한다는 불가의 진리와 함께 이 룽타의 진리까지 더해서 이들의 삶의 모습까지 더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느껴져 왔다.
얼마 동안을 그 호젖함에 젖어 있었던 것일까.... 뒤늦게 김치 담그고 뒷정리 하고 출발한 키친보이들이 우리가 있는걸 보고 롯지로 들어섰다. 그들도 따듯한 티를 한 잔 했다. 그리고는 쿡-덴쟈의 소식을 전해준다.
어제 이후 아직까지 루크라 공항에 구름이 많아 비행기가 착륙하지 못하고 되돌아 가 덴쟈도 두번이나 비행기를 타고도 결국 착륙 못하고 되돌아 갔다는 것이다.
아~ 안타까움에 작은 한숨이 터진다. 쿰부히말에 들어섬이 시작부터 그리 호락 호락한 것이 아니란걸 또다시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한참을 걸어 우리 짐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식당에 도착했다. 이곳이 우리가 점심을 먹을 곳... 오늘 점심은 전투용 비빔밥... 부엌을 사용하니, 예의상 뭘 좀 팔아줘야 한다고..설렁탕 국물과 삶은 감자를 시켜 메뉴는 풍성해졌다. 오늘 점심 요리도 쿡이 없으니, 대장님이 보조 쿡을 데리고 계속 애를 쓰신다. 그나 저나 쿡이 내일은 꼭 비행기를 타고 올 수 있어야할텐데... 좀 걱정이 된다.
여기까지 오면서 우리 보다도 더 거북이인 말레이시아의 한 커플을 만났다. 부인이 사진을 좋아하는 지...연신 찍어대는것을 기다리며 다 지켜 봐주고 ..보듬어 주는것이 여간 정스럽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분들을 이 식당에서 또 만났다. 얼마나 성품이 다정다감한 지, 그렇게 반가워하는 거다. 직업이 의사인 이들은 귀국일은 오픈해 놓은 상태로 여유있는 시간을 보낼거라 했다. 이들의 걸음걸이로 벌써 알아차렸지만, EBS까지 가는건 아니고, 그저 이곳에서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만 오를거라고 .... 온 얼굴에 배어있는 이 부부의 행복감을 보니, 아마 히말라야에 오는것이 이들 부부에겐 버킷 리스트였지 않을까...생각 했다. 기념 사진도 한 컷 찍고....ㅎㅎ
여기서 부터 '사가르마타 국립공원'이 시작된다. 네팔 사람들은 '에베레스트'를 '사가르마타'라고 부르는데, 산스크리트어로 '하늘의 이마'라는 뜻이다. 티베트어로는 '초모랑마'(세상의 어머니) 로 불리운다. 사가르마타가 '에베레스트'라 이름 붙여진 것은 1852년 영국인에 의해 처음으로 측량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는데, 그 측량대장의 이름을 빌어 '에베레스트'라 불리기 시작했다. 참으로 '에베레스트'라는 이름보다 '사가르마타(하늘의 이미)'나 '초모랑마(세상의 어머니)' 라는 원래의 이름이 훨씬 고고하고 위용에 걸맞는 이름이다. 외부인이 들어와서 이름도 제멋대로 바꾸어 부르고....ㅠㅠ
길다란 타라코시 강 흔들다리 위에 서니 예쁜 마을이 보인다. 롯지가 형성되어 있는 '조살레' 다. 그런데 뜻밖에도 오늘의 일정을 이곳에서 마친다는 것이다. 아침에 너무 늦게 출발해서 남체바자르까지 가기엔 좀 무리고, 마침 쿡 덴쟈도 오지 않았으니 일정을 하루 늦춰서 오늘 여기서 묵고, 내일도 남체바자르까지만 가자는 것이었다. 여정 중간에 하루 여유 날이 있으므로 초반부터 좀 빗나가기는 하지만 일정에 차질은 없으니 걱정할 일은 아니다. 암튼 내일은 남체바자르에서 쿡을 만났으면 하는 바램 뿐이다.
따듯한 햇살 찾아 밖에 나와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님 어두침침한 방대신 환한 빛때문에 밖에 나선 것일까....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은 어디서든 이쁘다~특히 이곳 히말라야에서는...
오늘 일정이 우리에겐 좀 아쉬울 정도로 짧았나?? 아마도 그랬던것 같다. 아쉬움에 좀 더 걸어 올라도 보고 다시 되짚어 내려도 가며 카메라에 주변 풍광을 담아본다.
대부분 트래커들은 하루에 팍딩에서 부터 남체바자르까지 가기 때문에 이곳 조살레는 아주 성수기가 아니면 손님이 없는 편이란다. 오히려 그래서 난 이 롯지가 맘에 들었다. 우리밖에 없어 한적하고 고요해 평화로운 느낌 마저 든다.
방에 들어가니, 낡고 허름했지만 천창까지 있어서 누워서 하늘이 보이니 얼마나 낭만적인 지, 거기다 작게 나있는 복도끝 문을 여니, 방마다 주욱 이어진 발코니가 강을 향해 나 있어 세찬 물소리 하며 또다른 운치를 더해 주었다. 햐아~~ 너무 좋은데~ㅎㅎ
히히낙낙 즐거움을 안고, 더운 물 한 양동이를 사서 핫샤워도 하고, 자그마한 빨래도 했다. 팍딩도 그랬는데, 여기도 얼마나 물이 좋은 지 아주 미끌 미끌 유연하다. 그리고 시간적 여유도 있으니, 이참에 얼굴 피부 관리나 해야겠다 싶었다. 주방으로 가서 꿀을 조금 얻어 팩 재료를 섞어 얼굴에 좌악 펴 발랐다. 샤워장 앞에 있는 거울앞에서 이 모습을 하고 있는 날 보더니, 같은 여자라고...이곳 주인장의 딸이 환하게 웃는다. 세상에~ 히말라야에 와서 천연 꿀팩이라니....나도 참...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는것 같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같이 한참을 웃어 재꼈다. ㅋㅋ
오늘 저녁 식사는 백숙과 럼콕으로 만찬을 벌였다. 고추가루에 겨자와 마늘...기타 양념을 넣어 만든 대장님의 특제소스로 맛이 일품이다. 낼 아침은 백숙을 삶아낸 국물에 닭죽을 쑤어 먹을 것이다. ㅎㅎ
한 밤중에 히말의 정령에 이끌려 밖에 나오니, 깜깜한 하늘에 별천지 세상이 환상적이었다. 한 참을 고개 들고 하늘의 별속에 담그고 있다가 잠시 또 욕심을 부려본다.
"우리 침낭 들고 밖에 나와 누워 있을까?"
그러곤 침낭을 펼 자리를 이리 저리 탐색해 보았다. 아무래도 에어매트를 불어서 깔아야 할것 같아 이내 귀찮아져서 참기로 하고 다시 고개를 하늘에 묻은 채 서 있었다. 어느새 이 환상적인 별천지 세상에 익숙해진 거다.
아놔~ 내가 처음 히말라야에 왔을땐 저 아름답고 매혹적인 별세계 모습에 빠져 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탁자 위에 누워서 1시간도 더 있었거늘....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실려 한없이 별속을 유영했었어~ ㅎㅎ
Asha (야샤 )
Mystic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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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름다운 날들 원문보기 글쓴이: 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