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사를 시작하기전에
나름대로는 많은 연구를 했습니다.
주된 관점은
비용을 최소화하고 두사람정도의 인력으로
겨울에 따듯하고 여름은 시원하며
주변의 재료를 활용할 수 있는 생태적인 집입니다.
이리저리 현장답사와 집짓기 실습참가,
통나무 학교도 다니고, 책도 읽고,웹서핑도하고
귀동냥 눈동냥을 한 결과
위의 조건과 현장사정에 걸맞는 건축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주 재료는 흙, 돌, 나무이며
시멘트는 기초부분에 소량을 쓰기로 했습니다.
건축에 쓰는 나무는 벌목현장에서 흔히 쓰는
6자짜리 육송이나 리기다송을 한자반 길이로 잘라
황토로 쌓아 올리는 방식입니다.
나무껍질을 벗길 필요 없이
그냥 써도 무방한 방식이라 공사가 용이하고
누구나 한번 보면 지을 수 있습니다.
이런 흙집짓기 방식을 4주 과정에 150만원 수강료를
받고 교육을 하는 곳도 있습디다.
숯가마에의 가마건축방식에서 숯가마의 돌대용으로 나무토막을 쓸 것을 착안하고
시작단계에서 같은 방식의 건축물을 컴에서 보고
저거다하고 확정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업체의 지붕방식은 참으로 독특한
독창적인 방식입니다.
난방은 토담집(이화종)의 아이디어를 빌려
거실에서 불 때는 방식으로 결정했습니다.
다른 점은 자연순환 장작 보일러를
아궁이위에 설치하는 것입니다.
이런 집짓기에서 가장 힘든 것이 진흙을만드는 일이며
사람의 힘으로는 너무 벅찬작업이나
기계의 힘을 빌리면 수월하게 할 수 있습니다.
건축비의 대부분이 인건비이며 돈이 있어도
사람구하기가 힘든 세상입니다.
중장비가 필수적입니다.
어차피 귀농를 하면 장비가 필요하므로
굴삭기를 사는 것도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작업장면을 사진으로 올리겠습니다.
여러분들도 따라 하시면 집이 한 채 생길 겁니다
황토집 짓기보다 흙집짓기가 적당항 용어 입니다.
최근 황토관련 책과 방송이 너무 넘쳐나서 붉은색 주토를 황토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전라도지방처럼 주토가 흔하다면 별문제입니다만 이곳은 황토보다도 도자기를 만들 때 쓰는 고령토(백토,카오린)가 생산되는 곳입니다.
막사발의 밭도 깊이 파보면 고령토가 출토됩니다.
고령토가 나는 곳에는 핑크색의 고령토가 주변에 반드시 존재합니다.
암석이 풍화되는 과정에서 고령토의 풍화가 더 진전되면 핑크카오린이 생성되는 듯합니다.
막사발이 집을 짓고 나면 도자기를 구울 가마를 만들 예정입니다.
도자기의 성형은 어느 누구 못지않게 잘 할 줄압니다만 찻그릇이던 다관이든 사발이든 많이 만들어도 굽지 못하면 헛 일입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하듯이...
가마가 있는 분들에게 굽는 작업을 의뢰하면 가마당 상당한 비용이 들어야하니 차라리 산속에 가마를 만들 때까지는 도자기 작업을 쉬기로 했습니다.
전통 장작가마는 망둥이라는 벽돌을 만들어 돔 형태로 쌓아서 만듭니다.
여기에 착안하여 대형 망둥이를 틈날 때마다 만들어 두고 가마도 짓고 집도 지를 작정입니다.
이름하여 에스키모들의 얼음집 이글루를 닮은 황토 굴집이 되는 겁니다.
황토굴집자체를 장작을 쌓아 구워 도자기 집을 지어 보는 것도 재미가 있겠지요
아마 세계최초의 도자기 집이 탄생될 수 있을 겁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흙푸는 작업이야기입니다.
집짓기 현장에서 300미터쯤 떨어진 농장입구의 산모롱이에서 핑크빛이 도는 흙을 가져다 쓰기로 하고 포크레닌으로 파 보니 점질이 우수한 흙을 발견하였습니다.
집터에 흙을 부릴 장소를 경사지게 만들어 두고 1톤 트럭으로 20차 분량의 흙을 퍼 날라서 물을 부어 흙반죽을 해두었습니다.
제바닥의 흙을 쓰면 일도 아닙니만멀리서 흙을 퍼다가 나르는 일이 장난이 아닙니다.
싣는 일이야 포크레인으로 퍼담으면 별 일이 아닙니다만 흙을 내리는 일이 보통일 이 아닙니다.
덤프차라면야 별일이 아니겠지요.
본채의 기초작업을 마쳤습니다.
집터자리가 돌밭이라 터를 다듬으면서 나온 돌들을 집터 한켠에 모아두고 포크레인으로 옮겨서 기초를 쌓았습니다.
쌓을 때는 흙이 묻은 채 막 쌓기로 1차 쌓은 다음 작은 돌들을 틈새에 끼워 넣고 물을 뿌려 흙을 씻어낸 후에 자갈과 모래로 속을 채우고 마지막으로 시멘트를 모래와 섞어 틈새를 메웠습니다.
작업의 속도를 내기위해 모양내기에는 신경을 못쓰는 바람에 울퉁불퉁합니다만 작업을 마치고 보니 그런대로 봐 줄만 합니다.
다음 작업은 통나무를 잘라 벽체를 쌓아야 합니다만 여태껏 나무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벌목철이 아니라 구하기가 쉽지 않을 듯하여 급기야는 산의 낙엽송을 베어다가 써야 할 것 같습니다.
문이 들어갈 문틀용 목재를 사다 두었습니다.
문틀의 두께는 15센티 정도의 원목입니다.
벽이 두터우니 문을 지탱할 문틀도 튼튼해야 합니다.
함께 농사도 짓고 집도 품앗이로 지을 사람을 구하기 위해 홍보성 글을 여러번 올렸습니다만
농사는 관심없고 명상수행을 하는 분이 같이 해보기로 하였다가 일이 힘든 지 지금은 가버렸습니다.
일반 사람들이 전기 없는 곳에는 살기가 힘든가 봅니다.말로는 생태적인 귀농을 원한다면서도 막상 현실로 받아들이기엔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 많습디다.
최근의 기상여건이 잦은 비를 뿌려 작업에 지장이 많습니다.
초파일 날은 부슬비가 내리는 숲으로 가서 두릅순, 산미나리 더덕,취나물 등을 한 푸대자루 꺽어다가
두릅전도 부치고 숫불에 삼겹살구워 막걸리마시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산은 인간에게 참으로 많은 선물을 준비하고 조건없이 퍼줍니다.
고사리도 제법많이 꺽어다가 삶아 말렸습니다.
제사많은 집의 맏며느리인 집사람은 다른 나물은 별 관심이 없고 고사리만 죽자고 꺽어도 막사발 보다야
많이 못꺽지요. 막사발은 고사리가 많은 곳을 알거든요.
사진의 기초위에 놓여 있는 것은 이집의 핵심인 자연 순환 나무 보일러입니다.
그 밑으로 장작불을 때어서 물통을 덥혀 온수도 쓰고 난방을 하는 방식입니다.
사진의 오두막 지붕너머 동쪽방향 멀리 산능선으로 아침해가 쏫는 답니다.
아침해가 일찍 떠서 새벽양지라 한답니다.
음운변화와 잘 못된 표기로 새목양지로 지도에 표시되어 있답니다.
건너편 산에는 지금은 다 졌습니다만 산 벗꽃이 만발(2주일 전)하였습니다.
숲속에 아주 너른 밭이 있습니다.
오미자도 물론 그 밭에다 심었지요
돈 만들기가 어려운 것이 농촌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일할 만한 나이의 인력은 모두 도시로 가고
평생 숙명처럼 일만하는 노인들이 시골을 지킵니다.
어쩌다가 젊은 사람이 있어도 술 주정꾼 아니면 장애인입니다.
이 노인들마저 떠나시면 한국의 농촌은 황성옛터로 변할 것이 뻔합니다.
돈을 줘도 인력을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노인들은 각자의 농사일만 해도 힘에 벅차 남의 일을 해 줄 여력이 없고
혹 젊은 인력이 있어도 음주로 소일하며 힘든 일은 아예 하지 않으려합니다.
드디어 기초를 완성했는 대 그 작업과정은 힘은 많이 들지만 친 화경적인 방법입니다.
주변분들이 레미콘 몇차 사다가 기초를 하라고 성화였습니다만
레미콘은 구들난방에는 별 무소용입니다.
큰돌로 일정 높이(한자 반)까지 수평을 보아서 쌓은 다음
큰 돌들의 돌틈을 잔돌로 보강하고 자갈에 시멘트를 비벼넣어 빈 공간응 체워 넣어
모래로 몰탈을 만들어 마감을 했습니다.
오수관을 매설하고 아궁이 자리와 굴뚝자리에는 넓적한 돌을 얺어 불길 통로를 만들어
기초를 완성하고 보니 얼추 집을 다 지은 기분입니다.
벽체를 올릴 흙은 주변의 흙 중에서 점질이 높은 흙을
1톤 트럭으로 20차 분량을 굴삭기로 퍼다가 물을 부어 흙반죽을 하여 비닐로 덮어 두었습니다.
인근의 목상에게 부탁한 벽체용 통나무는
늦어도 4월말까지는 구해주기로 한 목상의 말만 믿고 기다리다가
급기야는 구할 수 없다고 오리발이니 낭패를 만났습니다.
작년에 간벌하여 숲속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통나무를 날라다 쓰기로 하였으나 인력이 없습니다.
산에서 나무를 끌어내는 작업이라 하니 힘든 일인 지라 지원자가 없어
어찌 어찌 수소문하여 사람을 구해서 어렵게 통나무를 현장까지 옮겼습니다.
옮겨온 통나무를 기계톱으로 한자 반 길이로 자르는 작업까지 수월찮은 돈과 시간이 들었습니다.
막사발이 워낙 시간이 없어 남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다음은 문꼴만들기 작업입니다.
인근의 제재소에 지름 한자 이상의
외송 통나무 9자 짜리 열토막,
12자 짜리 5토막을 절반으로 켜서 사다두고
미리 계산한 문 크기로 잘라
조립할 준비를 해두었습니다.
이제는 본격적인 벽체작업을 시작할까 합니다만
일손이 없어 장마전에 마치기는 힝이 들 듯합니다.
여러분들 중에서 시간이 되시는 분들은 참여하십시요.
집짓기도 배우고 막걸리도 같이 나눕시다.
물론 품삵도 넘들만큼은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문틀 만들기 작업과 벽체 올리는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문틀은 두터은 흙벽의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지름 한자 이상의 통나무를
절반으로 켜서 다시 두께 반자로 면치기하여 사용했습니다.
길이는 열두자 짜리 5개와 9자 짜리 10개를 제재소에 부탁하여 현장까지 날랐습니다.
2.5톤차로 한차 분량이며 비용은 80만원 정도입니다.
문틀 작업은 동생과 둘이서 한나절 만에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문의 규격을 감안하여 재단을 하는 작업에 시간이 꽤나 걸립니다.
먼저 심재의 중앙에 먹줄을 놓고 길이별로 재단하여
기계톱을 써서 자른 다음에 문의 위치대로 분류해두었습니다.
가로목은 그다지 세밀한 작업을 요하지는 않습니다만
세로목는 상당히 정밀한 작업을 필요로 합니다.
가로목의 아래위로 좌우 반자 위치( 문틀의 두께)에
각목( 다루끼)을 문틀 넓이 만큼 잘라서 못질을 해 둡니다.
문틀을 조립할 때 한결 편리합니다.
문틀 세우는 데에 많은 장정 3명이상의 일손이 필요합니다.
돌담 기초위에 방석 흙을 10센티정도 깔고 문틀의 아래판을 놓고 수평을 봅니다.
높은 부분을 망치로 두드려 수평을 맞춘 다음
좌우의 세로목을 세우고 미리 못질하여둔 각목 위치로 중앙 먹줄을 맞춘후
대못 질을 하여 1차 고정하고 수직물반을 봐서 지지대로 고정하고
좌,우 세로목을 세운 후에 문틀의 상판을 얹어서 못질을 하여 고정합니다.
먼저 거실 출입문과 방문들을 세우고
창문은 일정 높이 까지 벽체를 쌓은 후에 문틀을 세웁니다.
벽체쌓기는 쉬운 듯 하면서도 어려운 작업입니다.
미리 잘라 옮겨둔 한자 반 길이의 통나무를 단면을 내벽 기준선에 일치시키고
망치질로 다지며 수평을 잡고 나무주위로 흙 반죽을 채워 넣는 작업입니다.
2인 1조로 작업을 하며 흙반죽은 굴삭기로 작업하여
쌓을 위치까지 옮겨 두면 일이 수월합니다.
이때 반드시 비닐로 꼭꼭 덮어서 흙이 굳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번 주말까지는 지붕까지 완성을 할 계획입니다만
생각처럼 일이 될른 지는 미지수입니다.
일은 하늘이 하는 것 아닙니까?
다만 얼심히 할 따름입니다.
꽤나 인내를 요구하는 작업이 흙집의 벽체를 쌓는 작업이다.
벽체가 낮을 때 쌓기는 여반장이다만
높아짐에 따라 흙을 퍼올리는 일이 참으로 힘들다.
당초 외벽높이를 2.30 미터, 내벽을 2.60 미터로계획하였으나
주 출입문1.90 미터, 문틀 두께를 감안하면 2.30높이에다가
대들보를 얹을 통나무 20센티를 더하면 2.50 미터이다.
결과적으로 내벽의 높이는 2.80 미터가 되며
흙집치고는 매우 높은편이다.
말이 3미터지 올라가면 꽤나 높다.
3미터 가까운 높이까지흙을 퍼 올리는 일도 힘들지만
높은 벽체에 걸터 앉아 수직으로 벽을 쌓는 일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흙벽을 쌓는 작업은 속도보다는 꼼꼼한 작업을 요구한다.
반자 정도의 진흙을 깔고 벽돌로 쓰는 통나무를 얹은 담에 망치로 두두려
수평과 수직을 잡고 그위에 디시 진흙을 매우쳐서 얹어 쌓아나가는 작업의 연속이다.
고소 공포는 누구에게나 있는 바
만약의 안전사고에 대비해서 비계목으로 작업대를 세워서 하는 것이 원칙이나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그냥 작업을 하다보니
높은 곳은 주인인 내가 올라 갈 수밖에 없다.
일 손이 딸려 시골 노인분들께 벽체쌓기 작업을 부탁하니
왕년의 솜씨를 발휘하여 높은 곳에서도 잘도 쌓으신다.
경험없는 젊은이 보다 훨씬 잘 쌓으신다.
벽체의 마무리 부분은
지름반자정도의 통나무를 벽체의 길이많큼 잘라
벽체의 상단에 고정시키는 작업이다.
벽체의 끝부분에서 반자정도의 위치에
철사(반생이라고 함)를 적당한 길이로 잘라서 미리 끼워두었다가
벽체가 굳은 담에위에 걸쳐둔 통나무와 묶어서 고정시키고 흙으로 덧씌워 마감한다
그 위에 석가래를 얹어 대 못으로 고정하느니 많큼
튼실하게 작업을 해야한다.
막사발이 짓는 집은 주변에서 잘 볼 수 없는 특이한 구조다.
둥근 방이 거실 양쪽에 있고
방과 방을 연결하여 뒷벽을 쌓고
몸체전체의 절반되는 부분에 상량이 올라가는 중앙벽이며
양 방의 앞으로 3.5 미터정도 지점에 벽을 쌓아
두 방을 연결하면 거실겸 부엌이 되는 구조다.
지붕은 크게 3부분으로 나뉘어 진다.
독립된 방들의 지붕이 우산처럼 둥근 독립구조로 만들고
방들의 지붕보다 한자정도 낮게 맞배지붕형태로 집 몸체의 지붕을 덮는 구조다.
상식을 벗어난 집의 구조이기에 주변 사람들로 부터 의외로 많은 질문을 받는다.
일일이 설명을 하려면 입만 아플 뿐이다.
충분히 설명을 해도 이해가 안가는 눈치다.
그나저나 몸체의 벽쌓기를 마치고 대들보를 올리는 작업을 시작했다.
계획보다는 일이 늦어져 상량을 하리라고 예상치 못해 제물이 없어 고사도 없이
길이 4미터 지름한자의 통나무를 거실의 좌우로 중앙벽체와 전면의 벽체상단에 고정하는 것이 첫 작업이다.
사람이 들어 올리기에는 너무나 무거워 굴삭기로 올리기로 결정했다.
통나무 양쪽으로 대못을 쳐 균형잡는 줄을 묶고
퉁나무 무게중심부위에 쇠줄을 감아 굴삭기 바가지에 걸고
굴삭기의 출력을 높여 통나무를 얹었다.
실수 한번이면 기껏 쌓은 벽체를 무너뜨릴 수도 있기에 참으로 긴장되는 작업이다.
굴삭기의 바가지를 최대한 높이 들어 올리니 고공에 매달린 통나무가 마구 춤을 춘다.
이런 작업은 크레인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나
여의치 못해 포크레인으로 하는 작업이라 조종간을 잡은 손에 마구 땀이난다.
진동을 최소화 하기 위해 아주 천천히 집쪽으로 이동하여
적당한 위치를 잡고 삽을 내려 고정한 후에 천천히 내리기 시작했다.
조종간을 아주 섬세하게 작동하는 것이 관건이다.
미리 묶어둔 줄을 조종하여 첫번째 통나무를 벽체위에 무사히 안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첫 작업의 성공으로 나머지 통나무도 올리고 상량을 올리기 직전 마지막 작업을 하다
잠깐의 실수로 끼껏 올린 나무들을 무너뜨리고 이 때 넘어지는 통나무에 받혀
작업중이던 동생과 조선생이 부상을 입었다.
찬찬히 살펴보니 큰부상은 아니라 다행이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정밀진단을 받아 보도록 동생을 대구의 병원으로 보내고
오후에는 보다 신중하게 작업을 하고
다음날 마을 분을 더 동원하여 상량을 무사히 마쳤다.
다음에 격식을 갖추어 상량제를 올려야
지난 주말(6.15)에는 석가래를 걸었습니다.
이 집의 지붕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각 방은 파라솔 형태의 독립지붕을 갖고
몸체의 지붕은 방 지붕보다 낮게 맞배집 지붕형태이며
처마는 라운드형으로 마감됩니다.
각 방 벽체의 높이가 몸체의 높이보다
한자 이상 높은관계로 우선 몸체의 석가래를 올려
지붕을 만들고 지붕위로 흙을 올려
각 방의 벽체를 쌓을 계획입니다.
석가래의 굵기는 말구3치, 길이는 열두자로
애시당초 산의 간벌목을 베어다 껍질을 벗겨
쓰기로 했으나 시간이 여의치 않아
대구의 석가래목 전문 상인을 통해
하나에 9,000원씩 주고100여개를 사서
현장까지 5톤차로 옮겨 두었습니다.
껍질을 낫으로 대충 벗긴 상태이고
노지에 오랫동안 방치하여 건조상태는 양호하지만
껍질이 썩어 거무튀튀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입니다.
석가래는 그라인더에 사포를 끼워
사포질을 하면 됩니다.
사포질을 하면 기계음과 함께
나무가루가 무수히 날리며
나무의 하얀 속살이 드러납니다
사스 때문에 유행하는 새로나온 마스크를 끼고
사포질을 하면 그라인더의 진동과 소음,
날리는 나무가루 먼지로 인해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더욱이 낙엽송에는 잔가시가 있어서
살을 찌르면 몹시 따갑습니다.
사포질을 하다보면 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온몸이 따끔거리며 숨도 제대로 못쉬니
참으로 고통스러운 작업입니다.
이 작업도 하다보면 요령이 생겨
일이 조금 수월해집니다만
여자가 작업하기에는 조금 무립니다.
일손이 없어 답답한 마음에
집사람이 작업을 자청하여
작업요령을 가르쳐주니
처음에는 힘들어 하다가
일이 손에 익고 부터는 오히려 재미있어 합니다.
다음 작업은 석가래위에 올라갈
송판의 대패작업입니다.
옛날에는 싸리대나 대나무, 수수대를 역어
석가래를 덮고 알매흙을 아래 위로
붙이는 방식이었으나
우리집에는 송판을 덮기로 했습니다.
제가 집짓는 다는 소식을 듣고 주변의 아는 분이
수입화물 나무컨테이너를 뜯은 판재를 구해주어서
1톤차로 한차 분량을 실어둔 것을
석가래위에 덮기로 했습니다.
전동대패질을 해보니 의외로 재목이 좋았으나
보관을 제대로 못해서 썩어버린 것이 많습니다.
몸체부분에는 긴 송판을 써야하나
방부분의 송판은 썩은 부분을 도려 내어
짧게 잘라서 써야하니 그나마 손실을 많이
줄일 수 있습니다.
집짓기를 위해 미리부터 버리는 자재를 모아 둔 것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송판들을 사다가 쓰려면
송판 값만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석가래 작업을 위해 농사일로 바쁜
마을 노인분들에게 도움을 구했습니다,
과거에 집을 지어본 경험들이 있는 분들이라
작업계획을 설명해 드리니 이해가 빠릅니다.
하지만 지붕의 물매(경사도)가 너무 없다고
걱정들을 하며 경사를 높이라고 충고를 합니다.
집짓는 방식과 의도를 설명드리니
그제서야 이해를 합니다.
석가래가 납엽송이며 굵어서
대못치는 것이 힘이듭니다.
전동드라이버로 한치 정도 미리 파고서
엔진 오일을 칠하고 못을 박았습니다.
낙엽송을 목수들이 싫어하는 것도
다 마른 후에는 못이 잘 안들어 가는 것과
가시가 많다는 것입니다만
곧은 성질과 단단함은 또다른 장점입니다.
하루 종일 작업하여 석가래를 다 걸고 처마부분을
각목(다루끼)로 마감했습니다.
처마는 흙집의 특성을 감안하여
1미터 이상 길게 뽑았습니다.
석가래 작업을 마치고 나니
다소곳한 흙집의 자태가 드러납니다.
비소식이 있어 미리 만들어둔 덮개로
집 전체를 덮었습니다.
올해는 유난히 비가 잦습니다.
이 날은 지붕 석가래위에
송판을 덮는 작업을 했습니다.
먼저 대패질하여 둔 송판을 석가래 위로 올리고
지붕의 끝 부분부터 못을 쳐서 송판을 붙이기 시작하여
몸체 지붕 대부분을 덮었으나
지붕의 곡선부분의 몇몇 곳은 시간이 없어
마무리를 뒤로 미루었습니다.
송판의 못을 치는 작업을 온 종일 반복하다보니
팔목이 얼얼하며 내 팔이 아닌 듯 합니다.
작업은 대체로 간단한 편이나
석가래와 송판이 만나는 부분의 높낮이가 다른 곳은
자귀로 높이를 갖게 다듬은 후에 송판을 고정해야합니다.
그리고 지붕의 경사각이 달라지는 부분(곡선부분)은
곡선의 휘어짐을 감안하여 송판의 붙임방향과 길이가 달라집니다.
동네 노인분 두분이 주로 못질을 하고
막사발은 원형톱을 들고 석가래 연결부분에
필요이상으로 긴 부분의 송판을 잘라내고
곡선부분의 불필요한 부분도 먹줄을 먹여 일직선으로 잘라 내었습니다.
노인들이라 못하나 박는 데에 몇번의 망치질을 합니다만
막사발은 세 번이면 상황끝입니다.
하루 종일 작업을 하여 그럴 듯한 지붕이 만들었습니다.
다음 작업은 송판위에 부직포를 깔고 흙을 덮어야 합니다.
흙위로 방수시트를 깔고 피죽 너와를 올리면 작업이 끝납니다.
이날은 미완성으로 남아 있던
원형방의 벽체를 마저 쌓는 일입니다.
몸체보다는 한 자 이상 높이 쌓아야 하는 관계로
상당히 높습니다.
아침일찍부터 포크레인을 이용하여
흙반죽을 했습니다.
벽체가 두터운 관계로 매우 많은 흙이 필요합니다.
중장비를 사둔 것이 매우 요긴하게 쓰입니다.
중장비 없이 손으로 작업을 한다면
그 고생이 막심할 뿐더러
일의 진척도 더딜겁니다.
흙반죽을 하여 1차 트럭으로 한 대 분량을 실어다
작업장 아래 세워두고 두사람은 차위에서 삽으로
벽체 높이까지 퍼올려주고
벽체위에서 한사람은 쌓고
한사람은 진흙과 통나무를 날라주는 방식으로
작업을 합니다.
방의 벽체가 3미터 이상 높아짐에 따라
트럭의 짐칸위에서 흙을 퍼 올려도
무척이나 힘이듭니다.
급기야는 흙을 뭉쳐서 던져 올리는 방법으로
한차 분량의 흙을 사용한 후부터
속도는 늦으나 포크레인으로
지붕까지 흙을 올렸습니다.
수원에서 귀농을 위해 집짓기 체험을 하러온
노총각 정철씨가 젊다는 죄하나로 하루 종일
흙을 퍼 올렸습니다.
혹독한 집짓기 실습을 한 셈이지요.
흙반죽 현장에서 집짓기 현장까지는
약 50미터의 거리입니다만
포크레인의 느린 걸음으로는
한번 왕복에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포크레인 한바가지의 흙은 사람이 삽으로
몇십번을 퍼야하는 분량입니다.
막사발은 하루종일 포크레인으로
수십번을 왕복하며 흙나르는 작업을 했습니다.
기계음으로 고막이 얼얼할 지경입니다.
포크레인으로 흙을 퍼 올리고 부터는
작업속도가 빨라져서 해거름할 때 쯤
벽체쌓기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비소식이 있어 천막을 씌웠습니다.
천막이 워낙커서 한 두명으로는 들지도 못합니다.
다음주에는 각 방의 석가래를 걸어야 하겠지요
막사발이 흙집을 짓는다니까
하느님이 시샘을 하시는 지
비님를 끝없이 보내 주시는 군요.
덕분에 일도 못하고 거적으로 덮어둔 집을
멀거니 쳐다만 보며 찌짐붙여 막걸리로 소일합니다.
어쩌다 날이 개이면 부리나케 천막을 걷고
일을 합니다만 일의 진척이 더딥니다.
흐린날 벽체를 쌓을 때는
한 자 정도 높이로 쌓는 것이 적당합니다.
더 이상의 높이를 한꺼번에 쌓으면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악천후 속에 고군분투하여
둥근방의 벽체쌓기를 마쳤습니다만
중도리 작업과 이어 석가래 작업을 앞두고
계속 비가 내려 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두막의 그늘막 한켠에 비가 들이치지 않는
간이 작업장을 만들고 원형방 위에 설치될
상량목을 만들었습니다.
어떤 이는 이를 두고 전병통이라 합니다만
얼핏 들어서는 과자이름이 연상됩니다.
이해를 돕기위해서 전병통이라는 이름 대신에
"원형석가래 상량목" 또는 "우산형지붕 상량목"이
더 적당할 듯합니다.
원형 상량목은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지름 40센티정도의 통나무를 한 자 반 길이로
자른 다음에 아래 위 반 자 부분을 남겨두고
중간부분(10센티)을 깊이 10센티정도
장구형태로 잘라 내고 다듬어서 만듭니다.
기계톱을 다룰 줄만 알면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두개를 만들어 아래부분을 사포질하여 만드는 데에
꼬박 3시간이 걸렸습니다.
그중 안방에 올라갈 상량목의 아래부분에
연꽃무뉘를 조각한다는 것이 완성하고 보니
연인 지 국화인 지 완벽하지는 않으나
그런대로 만들어 져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흙집을 짓는다는 얘기를 듣고
TBC(대구 방송)에서 취재를 나왔습니다.
비가 많이 와 농장 입구의 흄관으로
묻은 길이 무녀져 우중에 무거운 촬영장비를
들고 지고 여섯명의 취재팀이 들이 닥쳤습니다.
취재 온다는 얘기는 들었으나
장마비에 설마 올수 있을까 했습니다만
직업이 직업인 지라 억수 빗속을 뚫고
산골 오지까지 찾아 왔습디다.
생명기행이라는 다큐제작팀입니다.
덕분에 젊은 피디의 주문에 따라
팔자에 없는 어설픈 연기자 노릇을 했습니다.
7월 11일(금), 12일 (토) 이틀동안 찍었답니다.
방송은 7월 15일 (화) 19:00에 있다고 하니
관심있는 분들은 시청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 토요일은 하늘이 봐 주시는 지
비가 잠시 멎었습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부랴부랴 원형방 석가래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원형 토담위에 미리 얹어둔 중도리목(석가래를
고정하기 위해 토담의 맨위에 얹는 통나무)을
꺽쇠를 박아 연결하고
토담과 중도리목을 반생으로 묶어
단단히 고정시켰습니다.
토담을 가로 질러 통나무 투토막을 걸치고
상량목의 높이 조정을 위해 송판을 쌓은 다음에
원형상량목을 방의 중심부위 상단에 올려두었습니다.
미리 다듬어둔 석가래를 상량목의 홈에 끼워
직결피스를 박아 고정시킵니다.
다음에 중도리 부분을 고정합니다.
열십자 형태로 석가래를 걸고
다음은 팔 등분하여 석가래를 겁니다.
이런 순서로 방 하나에 24개의 석가래를 겁니다.
8개의 석가래를 고정한 후에
지붕위로 올라서 봤습니다.
80킬로가 넘는 체중임에도 튼튼하게 버텨주었습니다
미리 다듬어 올려둔 32개의 석가래를 두개의 방 위에
골고루 분산하여 다 얹을 즈음에
다시 비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부랴부랴 거적을 덮어 비설거지를 했습니다.
일요일도 하루종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실내에서 할 수 있는 구들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시멘트 블록을 괴임돌로 쓰고
돌 구들장 대타로 슬레이트를 쓰기로 했습니다.
아궁이 부분에 블록을 쌓아 함실(불이 타는 부분)을
만들고 블록은 진흙으로 투텁게 싸서 발랐습니다.
함실을 만들고 불길이 지나가는 고래를 만들고
출입구 부분부터 슬레이트를 덮었습니다.
구들 놓는 작업이 그중 난공사입니다.
다른 작업은 잘 못되면 수정보완이 손 쉬우나
구들의 특성상 사후 수리가 어렵기 때문에
남다른 신경을 써야합니다.
집짓기가 이리도 힘들 줄이야 예전에는 미처 몰랐습니다.
하나의 공정을 마치면 이어지는 다음공정
미쳐 준비되지 못한 자재 구하기, 잦은 비, 장비 고장, 등등의 사유로
일을 추진하는 데에 많은 애로사항이 있답니다.
한편으로는 전국의 곳곳에서 달려와
내 집을 짓는 정성으로
조건없이 도움을 주시는 많은 님들 덕분에
별 무리없이 짓고 있습니다.
정준영님, 바위섬님, 앵무동님, 청향님,
중완님, 팔자소관님, 먹물님, 뽀오님
님들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비오는 틈틈히 원형방의 석가래 작업을 마쳤습니다.
다음 작업순서는 원형방 지붕의 송판을 붙이는 작업입니다.
몸체지붕의 송판작업보다 잔손이 더 많이 갑니다.
원형방 하나에 총 24개의 석가래가 있으므로
송판을 한바퀴 돌려 치기 위해서는
24토막의 송판이 필요하므로 23번의 톱질을 해야합니다.
석가래의 맨 끝부분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송판을 붙이는 작업을 합니다.
지붕끝에는 길이가 긴 송판부터 위로 갈수록 짧아지는 송판까지
그 많고 많은 송판을 자르고 망치로 못질을 해 댄 끝에
송판 덮기 작업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6명이 매달려 꼬박 이틀동안 작업을 했습니다.
다음은 지붕에 흙 올리기 작업입니다.
지붕위에 흙을 덮기 전에 부직포를 깔았습니다.
전통한옥은 석가래위에 울을 역어 붙인다음
흙반죽으로 알매를 쳐서 아래위로 바르는 방법입니다만
반죽된 흙은 마른 흙에 비해 무게가 많이 나가는 관계로
마른 흙을 얹기로 했습니다.
흙을 깔기전에 부직포를 까는 것은
마른 흙이 송판의 틈으로 떨어 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지붕 끝 처마부분은 얇게 5센티 정도 깔고
윗부분으로 갈수록 10센티정도 두껍게 흙을 깔아
면을 평평하게 고른 다음 단열 효과를 높이고 경사를 주기 위해
톱밥을 15센티 정도 깔아 주었습니다.
톱밥의 부식과 벌레를 방지하기 위해
톱밥위에 50킬로 가량의 소금을 뿌렸습니다.
다음 작업은 누수방지를 위해
방수시트(아스팔트부착 고무판)를 덮는 작업입니다.
장마기간 중이라 시급히 방수시트를 덮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어느 작업과정이든 어렵고 힘이듭니다만
방수시트 덮는 작업은 처음인지라 약간의 시행착오를 격었습니다.
시트의 앞 뒷면을 구분하여 뒷면이 위로 향하도록 덮어 주어야 합니다.
비닐 커버를 벗길 수 있는 부분이 뒷면입니다.
끈적거리는 아스팔트가 칠해져 있어서
너와를 얹으면 접착이 잘 됩니다.
붙일 때는 완벽한 접착을 위해
가스 토치로 아스팔트를 살짝 녹여서 접착부분 끼리 붙여주면
완벽하게 접착이 되며 누수 또한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습니다.
않았다 일어섰다 누웠다를 반복하여 어스름까지 작업을 했으나
작업을 마치지 못해 다음날로 미룰까 하다가
비 온다는 예보도 있고 하늘에 먹장구름도 짠뜩 끼어 있어
저녁식사 후에 야간작업을 강행하기로 했습니다.
모두들 죽었다하는 표정입니다.
비가 올 때마다 거적을 씌우고 벗기기를 몇 차례인가?
거적이 작기나 한가,
밤중에 갑자기 내리는 비 때문에 민방위 훈련은 몇번이나 했던가
넓이 15미터, 길이가 20미터이니
적어도 5명은 있어야 덮고 벗길 수 있습니다.
오늘은 기필코 거적대기를 졸업하리라
혼자 맘 속으로 되뇌입니다.
저녁식사 후 잠깐 휴식을 하고 발전기를 돌려 불을 밝히고
작업을 계속한 끝에 밤 10시가 훨씬 지나 지붕을 모두 덮었습니다.
드디어 지긋지긋한 거적대기를 졸업한 것입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비가 내립니다.
처마 끝을 타고 떨어지는 빗물을 바라 보며
입가에는 미소가 번집니다.
몸은 파김치가 되었어도 기분은 날아 갈 듯합니다.
비를 맞으며 한동안 바라봤습니다.
바로 이 맛이 집 짓는 맛입니다
구들작업과 바닥 미장
막사발이 집을 짓는 곳이 전기도 없는 워낙이 깊은 산골이다 보니
찾아오는 사람들마다 질문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 무섭지 않느냐는 질문이 가장 많습니다.
도둑이나 강도들이 돈 되는 도시에 가지 뭣 하러 전기도 없는 산 속에 오겠습니까?
밤에 무섭지 않음은 낮 풍경에 어둠만 덧씌운 것이 밤이니
귀신이 나타난들 저나 나나 피차에 외로운 처지니
막걸리나 한 잔 나누며 저승소식이나 들어봄직도 하건만
아무리 기다려 봐도 정작 나타나는 귀신이 없으니 무서울 것은 없으나
다만 허락없이 산속에 들어가 아끼는 약초나 나무껍질등을 채취해 가는
얌체 약초꾼들은 반갑지 않은 이 곳의 유일한 불청객입니다.
땅값이나 구입경위 등에 대한 질문도 상당히 많습니다.
땅도 땅 나름이며 전, 답, 임야, 대지로 땅의 용도가 다름에도
모두 같은 용도로 취급하여 평당 얼마 어쩌구 합니다.
마치 백화점에서 상품을 고르듯 강원도 정선 얼마, 평창 얼마이니
이곳은 얼마쯤이 적당하지 않느냐고
이 곳 사람들이 들으면 기분 나쁠 정도로 이곳의 땅값을 낮게 메긴다.
도시를 떠나 귀농을 생각하면서도 서울에서 몇 시간 거리니 어쩌니 하며
서울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하며 서울에서 멀다는 이유하나로
남의 땅값을 폄하하는 사람들이 과연 어디 가서 살 터전을 잡을 수 있을 지가 의문입니다.
한 술 더 떠서 뒤에 산이 있고 앞에는 시냇물이 흐르며
임야와 밭이 절반정도씩 있는 그림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땅을 찾으며
값은 싸야된다고 강변하니 이 노릇을 어쩔 것입니까.
이런 분들을 만나면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전기에 대해서도 그렇게 불편하게 여깁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살다가
당면하는 문제들을 하나 하나 해결해 나가는 것도
삶의 재미라고 생각합니다만
대부분의 귀농 희망자들이 그렇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답답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애시당초 이 곳에서 생태문화마을을 만들려고
같이 할 사람들을 찾기 위한 지금까지의 방법이 틀렸음을 알았습니다.
그런 사람을 찾기보다는 만날 때를 기다리렵니다.
세월이 가다보면 이 곳과 인연이 닿는 분들을 만날 수 있겠지요
막사발에 이어 수도산에 입주할 첫 주민이 입주하였습니다.
삼십대 초반의 젊은 김경수님과 마음이 넉넉한 안주인, 지백이, 지호, 서희
이남 일녀 다섯 가족이 막사발이 짓는 흙집으로 입주하기로 했습니다.
다섯 살 먹은 지백이는 9월부터 증산초등학교의 유치원에 나갈 예정입니다.
4살짜리 지호도 그냥 형따라 다닌다고 합니다.
적막한 산 속이 애들의 노는 소리로 시끌벅적하니 사람 사는 곳인 듯합니다.
요즘은 열심히 병아리를 키우고 있습니다.
병아리 밥주는 것이 애들에게는 아주 재미있는 듯합니다.
앞으로도 인연이 닿는 분들이 입주할 날을 기다립니다.
총 다섯 가족이 입주하여 품앗이로 흙집을 짓고 마을을 이룰겁니다.
드디어 구들 작업을 마쳤습니다.
지난 두주일에 걸쳐서주 셋이서 6일을 열심히 한 덕택에
장장 22평 전체 흙집에 구들을 깔았습니다.
고임돌은 시멘트 블록으로 하고 구들장은 슬레이트(대골)를 썼습니다.
고임돌과 구들장은 자연석을 쓰는 것이 원칙이나
작은 방 하나 정도는 자연석으로 구들을 깔 수 있으나
넓은 면적을 다 깔기에는 재료를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아쉽지만 저 나름대로 구들깔기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슬레이트로 구들을 까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아궁이 부분에 함실을 만들어 줍니다.
구들 바닥에서 방바닥 높이를 감안하여 블록 두장 높이로 쌓습니다.
형태는 둥근 방의 생김새를 감안하여 둥글게 만들고
블록을 진흙으로 투텁게 싸서 바릅니다.
블록이 열에 약하기 때문에 직접 불이 닿는 부분은
반드시 흙이나 돌, 두꺼운 철판을 사용해야 합니다.
함실에서 굴뚝까지 뜨거운 연기가 골고루 퍼져
방 전체가 따듯하도록 고래를 만들어 줍니다.
블록으로 넓이 한자가 넘지 않도록 블록을 쌓아 줍니다.
블록과 블록 사이에는 진흙을 채워 고정시킵니다.
진흙이 열을 받아 건조되면 단단하게 고정이 될 겁니다.
고래를 만들고 난 뒤에 슬레이트를 덮어 줍니다.
블록 윗 부분에 방석으로 진흙을 3치정도 쌓아주고
슬레이트를 얹어 지긋이 눌러주면 단단하게 고정이 됩니다.
1차 슬레이트를 덮은 다음에 진흙을 세치 정도 깔아
골고루 편 다음 다시 슬레이트를 깔아줍니다.
진흙위에 슬레이트를 덮어 지긋이 눌러 슬레이트의 요철 자국을 만들고
슬레이트를 들어낸 다음 슬레이트 사이에 틈이 없도록
손으로 주물러 일일이 요철부위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 위에 다시 슬레이트를 덮고 지긋이 밟아주면
아래, 위의 슬레이트가 밀착이 되어 견고한 방바닥을 만들 수 있습니다.
두겹의 슬레이트 부분의 두께는 3치에서 4치가 적당한 것 같습니다.
두장의 슬레이트를 다 깔고 나면 위에 마른 흙을 네 다섯치 정도 깔아 줍니다.
바닥이 얇으면 축열이 안되어 쉬 뜨겁고 쉬 식어버립니다.
마른 흙이 축열층의 기능을 한다고 봅니다.
마른 흙 위에는 숯을 한치 정도 깔아 줍니다.
건습을 방지하고 숯이 가진 기능성을
취하는 것이 이왕이면 좋겠지요.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황토숯방이 되겠지요
마지막으로 고운 흙을 반죽하여 마감 미장을 합니다
지구의 온난화로 인해
우리나라의 기후가
아열대 기후로 바뀐다는 가설이
현실로 실현되는 듯 합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내리는 비로
주식이 되는 작물은 말할 것도 없고
고추와 과일을 비롯한 거의 모든 농사를 망쳐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농민들의 삶을 힘겹게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태풍 올해는 장마...
내년에는 또 어떤 기후변화가 있을 지
농촌에 희망의 밝은 해가 언제쯤 비칠까요.
없는 시간에 흙집을 짓는 막사발도
시도 때도 없이 오는 비가 가장 큰 장애물입니다.
비 때문에 생계를 걱정하는 농민들 앞에서
내색도 못하고 속만 태운답니다.
이번 주도 어김없이 비가 내리는군요.
주말에도 비가 온다고 하니 걱정이 앞섭니다.
본 채 공사는 바닥미장을 마치고 군불을 때서 말리고 있으나
날씨가 워낙 습하여 잘 마르지를 않습니다.
욕실을 비롯한 집 안쪽의 벽면도 잘 마르지를 않습니다.
장작도 준비를 못해 불도 못 지피고 있답니다.
요즘은 별채를 짓고 있습니다.
별채는 지름 4.1미터의 둥근 방으로
뒤편에 작은 욕실이 있는 구조로 지을 예정입니다.
자연을 최대힌 방안으로 끌어 들일 수 있도록
동쪽과 남쪽에 두 개의 커다란 통창을 만들고
통창사이에 한국식 벽난로인 코굴을 설치할 예정입니다.
난방은 구들난방 방식을 택하고
아궁이는 북쪽에 굴뚝은 남쪽으로 둘 작정입니다.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쓸 예정이며
차를 마시는 茶室로 꾸밀 것입니다.
사락 사락 눈내리는 겨을 밤에
장작 타는 소릴 들으며 차를 마시면
신선이 따로 없겠지요.
먼저 터를 닦았습니다.
비오는 틈틈히 집터 뒤의 흙을 굴삭기로 퍼 옮겨
마당의 낮은 부분에 채워 넣고 고르게 편 다음
별채 바닥자리를 단단하게 다졌습니다.
경사진 밭을 집터로 만들었더니
마당의 앞부분에 흙을 메우는 데에 예상외로 많은 흙이
소요되어 터를 다듬는 데 꼬박 3일이 걸렸습니다.
별채 기초에 필요한 막돌은
터를 다듬을 때 나오는 돌들을 골라
집터 한쪽에다 모아 두었습니다.
터를 다 고른 다음에는 기초바닥 줄긋기 작업을 합니다.
방의 중심자리에 쇠 파이프를 박고
반지름길이 (2.05M)의 줄을 묶어 콤파스로 그리듯 원을 그립니다,.
욕실자리까지 석회가루를 뿌려 선을 선명하게 그려주고
급·배수를 위한 관을 묻을 자리를 파고 관을 매설합니다.
관을 다 묻고 다시 선을 그려 줍니다.
굴삭기로 집터 주변에 미리 모아두었던 막돌들을
기초 쌓을 위치에 옮겨 두고 손으로 기초를 쌓습니다.
먼저 불이 들어갈 아궁이 자리와 굴뚝자리를 잡고
고인돌을 쌓듯이 쌓아 줍니다.
벽체가 올라갈 자리는 비교적 큰 바위 수준의 돌을
미리 그어둔 선을 따라 1차 쌓고
그 위에 비교적 작은 막돌을 한자 반 높이로 쌓아가며
큰 돌 틈을 적당한 크기의 잔 돌 들로 채워줍니다.
이때 망치로 두들겨 가며 돌의 흔들림이 없도록
쌓아 주는 것이 요령입니다.
이제 반나절 정도만 작업하여 기초 막돌 쌓기를 마치고
시멘트 몰탈을 만들어 틈을 메우면 기초를 마칩니다.
이번 주말까지는 끝낼 예정입니다만
일은 하늘에 달려 있으니 좋은 날씨를 빌어야 하겠지요
흙이 묻어 있는 돌을 쌓아도 무방합니다.
기초를 다 쌓은 후에 고압의 물로 씻어내고
시멘트로 틈새를 메우면 되겠지요.
지난 주말에도 어김없이 비가 오는 가운데
막사발 카페의 회원들이 자연염색 실습을 위한
정기모임을 가졌습니다.
자연에 귀의하여 살고 있는 회원들과
자연으로 삶의 회귀를 열망하는 정열로 가득한 젊은이들이
뜨듯하게 군불지핀 문도 없는 흙집에서
강원도 옥수수와 더덕으로 만든 반말들이 천세주와
마산의 유명짜한 중리 막걸리 한말들이를 다 마시며
숨겨둔 속내를 다 드러내 타령과 춤으로 끼를 발산하며
서로의 삶을 나누는 값진 밤을 보냈습니다.
자고 일어나자 마자 눈꼽 떼고 황토염색부터 시작했습니다.
당초 황토, 쑥, 꼭두서니염색을 계획했으나
일기가 워낙이 나빠 황토와 꼭두서니만 하기로 했습니다.
황토염색 염료용으로 멀리 전라도 영광에서 퍼온 황토 흙을
작년에 쳐 들어온 태풍 루사에 모두 다 빼앗기고
막사발이 대구 근교 성주에서
새로이 발굴한 황토 흙을 퍼다가 만든 염료로
올해 처음으로 황토염색을 했습니다.
색이 나쁠까 염려를 했습니다만 너무나 고운 색깔이 나와
참말로 기분이 좋았습니다.
멀리 영월 사는 동강님은 색깔에 반하여
흙푸러 가자고 성화를 내기에 한 푸대자루의 흙을 선물했더니
입이 귀까지 찢어 지도록 좋아합니다.
아침식사 후에는 꼭두서니 염색을 했습니다.
꼭두서니를 삶아 염액을 추출하여
철장과 명반을 써서 적갈색과 홍색으로 물들여 보았으나
햇볕에 말려 보지를 못해 결과를 제대로 알 수는 없었습니다.
안개인 지 구름인 지 뿌연 오두막에
고운 황토물이 들어 이쁜 그림이 산 속에 펼쳐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