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살문을 지나 참도를 따라서 곧장 걸어 들어가면 정자각(丁字閣)을 만나게 된다.
능의 중심 건물인 정자각은 형태가 '정(丁)'자의 모양을 하고 있어서 정자각이라고 한다.
전체적으로 붉은 색을 띄고, 단청이 되어 있다.
정자각은 대부분의 정면 3칸에 측면 2칸
그리고 벽이 없이 기둥만 있는 부분은 뒷면 1칸에 측면 2칸으로 되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홍살문쪽에서 우리가 바라보는 정자각은 정면이 아닌 뒷면이라는 것이다.
정자각의 정면은 왕릉쪽이다. 왕릉의 주인이 왕(또는 왕비)이기 때문이다.
정자각은 왕릉의 제사상이다.민묘로는 상석(床石)이다.
정자각 제사상은 앞면에 배치된 왕릉이 받는다.
조선왕릉 정자각의 지붕 형태는 일반적으로 모두 맞배지붕이다.
그러나 동구릉에 있는 숭릉( 제18대 현종과 명성왕후 김씨의 동원쌍릉) 한 곳만 팔작지붕이다.
정자각은 능에서 제례를 지낼때 정자각 내부에 제례 음식을 차리고 모든 의식을 진행하는 곳이다.
좌우로 한 칸씩 더 있는 것(위 좌측 사진)을 날개 익자를 써서 익랑(翼廊)이라고 한다.
익랑이 있는 곳은 당연히 앞 부분도 2칸이 아닌 3칸으로 다른 곳에 비해서 정자각이 크다.
익랑이 없으면서 앞 부분이 3칸인 곳도 몇 곳 있습니다. 조선 후기로 들면서
정자각의 크기가 커지면서 균형감각을 상실한다.
정자각의 기둥 아래쪽은 흰칠이 되어있고
푸른 선도 위와 아래부문에 그어져있다.
모든 기둥 밑부분이 흰색에 푸른색으로
띠를 두른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주근도배(柱根塗褙)를 한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백색화지를 바르고 청색
화지로 띠를 둘렀다고 한다.
멀리서 보면 마치 기둥이 공중에 떠 있어 정자각도 하늘위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구름 위는 신들이 노니는 공간으로 정자각이 천국에 있슴을 상징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정정남 교수(건축학)
조선왕릉은 생기를 저장-조절하는 기능이 곳곳에서 작동하는 곳이다. 왕릉을 침범 공격하는 사특한 무리는
차단해야한다. 금천을 지나 홍살문을 용케도 통과해 정자각까지 잠입한 나쁜 놈들은 격퇴해야 한다.
바로 정자각 지붕에서 다양한 수호신들이 사방을 철통같이 경계 경비를 하고 있어 그래도 안심이 된다.
"저건 뭐죠?"
"잡상이라고 하는데요. 정자각에는 손오공(손행자), 삼장법사(대당사부),
저팔계가 있죠. 제일 꼭대기에 있는 것은 용의 머리인 용두구요."
"잡상은 왜 올려놓습니까?"
"악귀를 막는다는 벽사의 의미가 있죠."
잡상이란 말 그대로 잡동사니 동물과 사오정도 포함돼 있고
이귀박과 삼살보살에 이르기까지 10여 종이 있다.
잡상은 아무나 지붕에나 올려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닌 귀하신 토우들이다.
잡상은 궁궐과 궁궐에 관련 있는 건물에만 올릴 수 있다.
능도 왕과 왕비가 주무시는 곳이니 정자각에 잡상이 올라간다.
잡상의 유래는 송나라에서 전해졌다고 하며 임진왜란 이후 조선 궁궐 건축물에 유행했고 일본에는 없다.
중국에서는 황제 궁에 11개를 올리고 세자궁은 9개 하는 식으로 지위에 따라 숫자가 정해져 있다.
우리나라는 경복궁 경회루에 11개가 올라가 가장 많은 잡상이 있다.
잡상은 생김새가 알아차릴 수 있게 분명하지 않고 가지가지다.
손오공만 해도 모자를 쓴 잡상이 있는가 하면 모자를 벗긴 잡상도 있다.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진 참도(參道)의 방향은 정자각 앞에서 오른쪽으로 90도 꺾였다가
정자각을 따라 왼쪽으로 다시 90도 꺾인다. 참도는 정자각의 오른쪽(동쪽)으로 이어져서 신도는 왼쪽 계단으로,
어도는 오른쪽 계단으로 따로 오르도록되어 있다. 신도에서 연결되어 오르는 왼쪽 계단을 신계(神階)라고 한다.
어도에서 연결되어 왕이 오르는 오른쪽 계단은 동계(東階)라고 한다.
동쪽 방향의 첫번째 계단이 신계(神階)라 하여 혼령이 오르내리는 계단이고 두번 째의 계단이 어계(御階)라 하여
왕과 제관이 오르내리는 계단이다. 해가 동쪽에서 떠 서쪽으로 지듯 동쪽은 시작과 탄생, 즉 양(陽)을 뜻하고
서쪽은 끝과 죽음, 음(陰)을 뜻한다. 자연의 섭리를 인공적 건축물에 구현한 것이다.
동쪽 두 계단 가운데 하나는 수려한 구름무늬를 새긴 소맷돌(난간)과 삼태극 무늬의 고석(鼓石·북 모양의 둥근 돌)을 화려하게 꾸몄다.
다른 하나는 소박한 계단만 갖췄다.
여기에도 신성한 세계와 세속 세계를 구분하는
원리가 숨어 있다. 화려한 계단은 선대 임금의
영혼이 땅을 떠나 구름을 밟고 하늘로 올라가는 상징이다. 왕릉 입구 홍살문의 삼태극과 상통하는 고석의 삼태극은 참도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기호이기도 하다. 그 옆 간소한 계단은 임금이
이용한다.
동구릉에 있는 태조의 건원릉은 2태극이며, 융건릉의 건릉(健陵)은 4태극이다. 선정릉의 정릉은 태극이 아닌 다른 문양이다. 신계의 소맷돌 문양은 대부분 풍화로 인하여 잘 보이지 않는 곳이
많다. 헌인릉의 헌릉(獻陵) 신계는 모양이 이상한 것을 보면 일부 땅속에 묻혀 있는 것 같다.
여주의 영릉(英陵)과 영릉(寧陵)은 동계가 신계 양 옆으로 있다.
황제의 능으로 조성된 홍유릉의 유릉은 능제가 달라서 그런지 침전 정면에서 침전으로 바로 올라가는 신계와
동계가 신계 양옆으로 있다.동쪽에도 신계와 동계가, 서쪽에는 서계만 있는 것이 아니고 신계도 있다.
참고로 정자각의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아무렇게나 오르내리는 것이 아니다.
정자각에서의 행보법(行步法)은 연보합보(連步合步)라 하여 올라갈 때는 왼쪽 발을 먼저 디딘 후 오른발을 합친다.
반대로 계단을 내려올 때는 오른발을 먼저 딛고 왼발을 합쳐 같은 자세로 내려온다.
그 이유는 예법도 예법이거니와 옛날사람들의 옷자락이 길기 때문에 계단에서 옷자락을 밟아 넘어지는 것을
예방하는 조상의 지혜가 엿보인다.
서계의 옆에는 신계가 없다. 정자각 왼쪽(서쪽)으로는 내려가는 계단이 하나 뿐이다.
왜냐하면 동쪽의 신계로 올라온 왕과 왕비의 혼령은 제사가 마친 후 정자각에서 왕릉쪽으로
난 돌다리를 건너 바로 왕릉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정자각 능상 쪽에는 문이 나 있다.
동쪽 계단으로 올라온 왕의 영혼이 이 문을 통해 봉분으로 홀연히 올라간다고 생각한 것이다.
서계는 제관이 예감으로 내려갈 때도 사용하며사당이나 사묘에서도 동입서출(東入西出)의
법도를 따른다. 정자각 앞면(사초지 쪽)에 문과 다리가 있다.
이 문은 정자각에서 봉분 앞까지 펼쳐진 언덕인 푸른 사초지와 그 위 봉분 문·무석인, 장명 등
같은 조각을 어렴풋이 보여주면서 정전의 어두운 공간 앞으로 펼쳐진 또 하나의 신비로운 경관을 창조한다.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의 소전대이다. 크기나 장식 기법 등에서 고려조를 계승한 느낌을 강하게 준다.
소전대는 제례의 마지막 절차인 축문을 불태우는 의식을 행하는 곳이다.
예감(瘞坎)은 제를 올린 뒤 폐백과 축판(祝版)을 묻는 구덩이로서 ‘瘞埳(예감)’이라고도 한다.
예감은 길쭉한 석재(石材)로 4면을 막은 형태이다.
안쪽이 우물처럼 움푹 들어가 있고, 바닥에 전돌을 깔았다고 한다.
예감을 설치한 것은 축문을 태울 때 능에 불이 날 염려가 있어서 묻는 형태로 바뀐 것이라고 한다.
예감에는 축문 외에 비단 1필과 음식물을 함께 묻는다고 한다.
정자각 앞쪽의 북동쪽에는 산신석(山神石)이 있다. 산신제를 지내는 산석(山石)이다.
산석은 일반 문중 선산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선산의 경우 산석은 무덤 봉분 윗쪽에 있다.
산의 주인인 산신이 무덤의 주인보다 더 높기 때문에 윗쪽에 모신 것이다.
보통 산신제를 먼저 올린 뒤 무덤에 제사를 드린다.
왕릉은 민묘와는 다르다. 왕이라는 신분 때문이다. 왕릉의 산시석은 사초지 아래 두었다.
왕릉에서는 능제를 지낸 다음 산신제를 올린다.
|
첫댓글 조영희 선생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먾이 많이 궁금한 내용을 이제야 알게되여 대단히 감사 드립니다. 감사 감사 감사 >주근도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