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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을도 소만(小滿)치성 도훈:
신령스러움을 드러내는 자연스러운 생활
2013.5.21(음 2013.4.12)
성사재인을 하려면 우리가 정말로 자연스러운 생활을 통해 가지고, 진리를 증명해내야 되겠다 하는 게 오늘 얘기의 주제예요. 가수들도 앨범을 낼 때, 대략 500에서 1000번 정도 불러야지 앨범에 녹음을 한대요. 그러니까 처음에는 노래가 자연스럽지 않은 거지요. 그런데 10번, 20번, 100번 정도 되면, 자신과 가사가 어느 정도 동화가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 500번 정도 되면 노래하고 일치가 된대요. 자기가 인위적으로 생각을 하지 않아도, 그 가사에 몰입하게 되고, 그 음율에 몰입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가사와 작곡자 노래가 내 것이 되는거지. 그래야 거기서 감정이입이 자연스럽게 되지요. 그런데 그렇게 하더라도 어떤 노래는 히트하고 어떤 노래는 히트하지 않는 거지요. 그러니까 가수조차도 자연스럽게 되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을 한다는 거죠.
천지개벽경 서문에서 우리가 읽었지만 ‘자연지리를 천지위도하시고 천지지도를 상제위용하사 통리삼계만상하시니...’하잖아요. 자연스러운 이치가 도라는 거지요. 그러니까 천지가 자연스러운 이치를 내기 위해서 얼마나 무한한 공부를 하겠어요. 상제님도 그런 말씀을 하시잖아요. 천지가 풍운조화를 지으려 할 때에도 무한한 공부를 들인다고 하잖아요. 천지가 짓는 풍운조화는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잖아요. 자연스러운 것이 도이기 때문에, 그렇게 상제님께서 자연지리를 기회로 만들어 놓고 도수를 짜셔가지고 천지공사를 해놓았다 말이지요. 그런데 상제님은 그것을 신도로써 짜놓았어요. 운수가 그렇게 굴러가도록 짜놓았기 때문에 상제님 제자들은 현실하고 조금 벗어날 수가 있었어요. 왜냐하면 신도로써 그 정신을 오로지 담지하기 때문에. 그래서 무슨 도수, 무슨 도수, 하고 도수가 나오잖아요. 상제님 고수부님 제자들은 자기들의 모든 것을 바쳐서 혈심을 바쳐서 신도에다 그 정신을 박아놓고 마음을 박아놓았다는 거지요. 그래서 쉽게 말하면 그것을 관리감독을 하는 거지요.
그 이후에 우리는 뭘 해야 되냐? 자연스럽게 현실속에서 그것을 드러내야 된다는 것이에요. 가수가 500번 1000번 해가지고 그 노래 가사하고 율조가 나오듯이, 천지가 풍운조화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듯이, 그것을 현실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내야 되는 것이지요. '아 OOO 저 사람 참 자연스럽구만. 아 참 아름답고, 진리에 사는 것 같구만.', '우리 OOO님 정말로 자연스럽게 강의하시고 그러시구만.' 하는 그런 자연스러움이 넘쳐나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천지의 자연스러움 속에는 신령함이 있어요. 조용필 같은 그 불후의 명곡의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면 거기에서는 신령스러움이 배어 나와요. 신령스러움이 배어나올 때 심금을 울리고 감동을 주거든요. 상제님은 자연스러운 생활 속에서 신령스러움을 드러내는 것을 우리보고 하라는 얘기예요. 그래서 오늘 여기 봉독한 내용을 보면,
# 안내성에게 일러 가라사대 “불의로써 남의 자제를 유인치 말며 남의 보배를 탐내지 말며 남과 서로 싸우지 말며 도한(屠漢)과 무당에게 천하게 대우하지 말라.”
# 안내성에게 일러 가라사대 “농사에 힘써 밖으로 봉공의무(奉公義務)와 안으로 선령제사(先靈祭祀)와 제가양육(齊家養育)의 일을 힘써 몸을 잘 닦을 지어다.”하시니라.
상제님께서 제자들한테, 영원한 자연스러운 생활을 현실 속에서 너희들이 증명하라는 것이예요. 제자들 중에 김형렬, 안내성, 박공우 이런 사람들이 있는데, 이 제자들을 샘플로 해서 천하 창생들에게 가르침을 내리는 거예요. 안내성을 봤을 때, 선천 상극 세상에 살다보니까 독기와 살기에 영향을 받아서 자연스러운 생활을 잊어버렸다는 거예요. 자연스러운 생활 속에서 신령스러움을 잊어버렸다는 거예요. 그래서 안내성이 부족한 것을 지적해서 얘기하는 거예요. 상제님이 “불의로써 남의 자제를 유인치 말며...”이렇게 말씀하시잖아요. 이것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안내성 이 양반한테는 불의로써 남의 자제를 유인하는 기질이 있다는 거지요. 또 보면,“남의 보배를 탐내지 말며 남과 서로 싸우지 말며.” 안내성에게는 이런 기질이 있다는 거예요. “도한(屠漢)과 무당에게 천하게 대우하지 말라.”안내성 성도가 처음에 상제님 제자를 하겠다고 할 때, 상제님께서 아주 냉정하게 내치잖아요. 이런 동학쟁이 같은 놈이라고, 순 불한당 같은 놈이라고. 그래서 굶기기도 하고, 밥도 안준단 말이에요. 그런데 안내성이란 사람은 천선생(天先生)을 찾아다니느라고 중국 가서 십팔기(18技)를 배우기도 하고, 나름대로 주유천하를 한 거요. 동학을 했으니까 자기 나름으로는 하느님, 천주님을 만나가지고 소원성취를 하려고 그렇게 돌아다녔는데도 불구하고, 상제님을 만나기는 만났는데 상제님이 안들이거든요. 왜냐하면 상생의 자연스러움을 찾아가야 하는데 버르장머리를 고치려고. 아까 얘기한 그런 기질이 있으니까, 보통 각오가 아니면 안내성 성도가 자연스러운 생활을 찾아가겠냐 이거예요. 마음 고치기가 죽기보다 어렵다고 하는데, 죽기보다도 어렵다는 그 마음을 고치려는 각오를 가지고 당신의 제자가 되어도 그것을 할똥말똥하는데, 웬만치 해가지고서는 안되잖아요. 그래서 문전박대도 하고 아주 뭐 이리저리 혹독하게 시험하시다가 제자로 삼잖아요. 그런 다음에 안내성에게 맞춤 교육을 시키는 거라. 안내성을 샘플로 해가지고, 삼계에 있는 신명들과 인간들은 들으라 이거요. 자연스러운 생활속에서 신령스러움을 찾아가려면, 안내성이 가지고 있는 이런 기질을 고치라 이거예요.
“불의로써 남의 자제를 유인하지 말며”, 불의한 방법으로 남의 자제를 유인하지 말라는 거예요. “남의 보배를 탐내지 말며, 남과 서로 싸우지 말며.” 안내성 성도가 일본 사람하고 싸우니까, 너 내 문에서 물러나가라고 호통을 치잖아요. 얼마나 호통을 쳐요. 그래서 안내성 성도가 깜짝 놀라죠. 그래야 안내성 성도가 버르장머리를 고칠 것 아니에요. “도한(屠漢)과 무당에게 천하게 대우하지 말라.”안내성 성도가 자기가 도를 닦는다고 하니까 교만하고 거만했던 거예요. 무당이라든가 도한이라고 소 잡고 돼지 잡는 백정들 이런 사람들한테 아주 거만하게 대했다는 거예요. 상제님이 그러잖아요. 앞으로의 세상은 양반제도가 없어지고 계급차별이 없어진다고요. 그런데 안내성이 그런 기질이 있으니까 ‘너 이놈아 날 따르려면 그런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된다.’ 그래서 누구나 다 천주의 성품이 있고 태을의 생명이 있으니까 태을의 신성함이 있으니까, 자연스러운 그런 생활 속에서 신령스러움을 그렇게 해서 찾아 가야 하는데, 너한테는 이런 기질이 있다. 안내성한테 이렇게 했으니까 옆에 있는 성도들이 상제님한테 배울 것 아니에요. ‘아, 그렇게 하면 안되겠구나.’ 또 이것을 통해서 상제님 돌아가신 후에 제자들이 배우고, 제자들이 돌아가신 이후에 우리들이 배우고.. 우리들이 그대로 따라 배우잖아요. ‘아, 안내성을 통해가지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구나.’ 만일에 OOO 도우님이 상제님 제자였다면, OOO 도인을 샘플로 해가지고 뭐라고 얘기했을까 한 번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나한테 부족한 뭔가를 끄집어 내서 이렇게 얘기했을 거란 말이지요. 그렇지 않았겠어요?
또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농사에 힘써 밖으로 봉공의무(奉公義務)와...” 농사에 힘쓰지 않았다는 거요. 직업에 충실하지 않고 도 닦는다고, 허랑방탕하게 지냈다는 거요. 그러니까 ‘이놈아, 도를 닦는 것은 사람이 삼시 세 때 먹고 살려는 일인데, 네가 농사에 힘쓰지 않으면 어떻게 네가 도를 제대로 닦냐!’ 야단치는 거예요. 직업을 가져야지. 봉공의무란 뭐요? 나라의 법을 잘 따라서 세금도 내고 해야 하는데 직업이 없으니 무슨 세금 낼 일이 있겠어요? 그러니까 안내성 성도가 그랬다는 거요. 도만 닦는다고 상제님만 찾고 하느님만 찾는다고 주유천하 하면서 거들먹거리기 좋아하고, 나는 도 닦으니까 좀 나쁜 짓해도 괜찮고, 그런 것이 있었다는 거예요. 선령제사와 조상제사에 소홀했었다는 거예요. “제가양육(齊家養育)의 일을 힘써 몸을 잘 닦을 지어다.”안내성 성도가 이렇게 안했다는 거예요.‘이렇게 안하고서 네가 어떻게 내 제자가 되냐?’상제님의 말씀이 이 얘기거든요. 이걸 상제님께서 삼계에 선포한 것이에요. 안내성을 샘플로 해서 선포를 했단 말이에요. ‘내가 지금 안내성을 내세워가지고 안내성의 단점을 얘기해서 장점으로 돌리려고 하지만, 너희들 가슴에 손을 얻고서 각자 양심에 비추어서 생각해 봐라. 너희들도 안내성과 다를 게 뭐가 있느냐.’ 이런 얘기에요. ‘안내성보다 나은 놈 손들어봐!’ 이거거든.
자연스럽다는 것은 물 흐르듯이 가는 거요. 진리의 언어는 쉬워요. 쉽고 간단하단 말이에요. 상제님이 안내성을 통해서 이야기하지만, 알고 보면 무서운 얘기잖아요. 이것이 천지의 법도라는 거예요. 상제님 고수부님이 운영하는 삼계 법도인데, 쉬운 말이잖아요.도의 깊이가 넓고 깊고 높으면 언어가 아름다워요. 간단해요. 그런데 그것을 모르는 거라. 야단치는 사람이 도가 높은 줄 알지만, 사실은 점잖게 부둥켜안는 사람이 도가 더 깊은 거예요.
공자를 보면, 공자가 얘기한 것이 뭐냐 하면 ‘도가 뭡니까?’ 하니까, 공자가 도의 필요성에 대해 결정적으로 딱 한마디 해요. ‘조문도 석사가의 -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도라는 것이 그렇다는 거요. 아침에 듣고서 저녁에 죽을 수 있는 게, 그게 도라는 거예요. 생사가 달렸다는 거예요, 생사가. 태어나고 죽고 하는 것이 자연스럽잖아요. 자연스럽지만 거기에 생사가 달렸다는 거요. 공자가 얘기하는 것은 조문도 석사가의,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이것이 도라는 거요. 그런 도를 찾았느냐는 거예요. 석가모니도 그러잖아요. ‘도가 무엇입니까?’ 쉽게 말하면 ‘법이 무엇입니까?’ 잔잔한 미소를 짓잖아요. 얼마나 자연스러워요. 너무나 자연스럽기 때문에 사람들이 못 알아듣잖아요. 자연스러운 것을 본받는 것이 쉬운 것 같지만 그렇게 어려운 거요. 쉬운 것 같지만. 노자는 뭐라 그래요? 도는 뭐냐? 도덕경에 보면 도는 흘러가는 물을 보라 이거예요. ‘도는 물이라’이거예요. 얼마나 간단해요. 물을 보라 이거예요. 물을 보면 도를 안다는 거예요. 예수는 ‘도가 뭡니까?’ 하니 ‘이웃을 사랑하라.’ 그게 도라는 거예요. 얼마나 간단해요. 이웃을 사랑하고 흘러가는 물과 같고, 잔잔한 미소 짓고,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이게 도라는 거예요. 얼마나 자연스러워요. 자연스러움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도를 잃어버린 거예요. 상제님은 자연스러움을 찾으시는 분이에요. 상제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시잖아요. 너희들은 절대로 자연스러운 생활을 벗어나지 말라. 자연스러운 생활을 벗어나는 것은 도가 아니라는 거예요. 가정에서, 직장에서, 국가에서 어떤 위기상황이 오더라도 자연스러운 생활을 벗어나지 말라는 거예요. 그 속에서 신령스러움을 드러내라 이거예요. 그것이 도라 이 말이요. 그게 죽기보다 어렵다는 것 아니예요.
독기와 살기를 풀어내야지. 그러한 자연스러운 생활이 나온다는 거요. 누가 나한테 안 좋은 얘기를 하면 벌써 주먹부터 나가잖아요. 이게 욱하고 나가잖아요. 그게 부자연스럽다는 거요.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거요. 미소라는 것도 자연스럽잖아요. 잔잔한 미소도 내가 성질내면 미소가 되나요? 울그락불그락 하지. 사람이 목숨을 바치는 게, 우리 부모가 자식한테 목숨 바치잖아요. 천륜한테 목숨 바친다니까. 목숨 바치는데 가장 값어치있는 것이 천륜한테 목숨 바치는 거예요. 그래서 차경석 성도한테 영원한 사업을 하라는 거예요. 자연지리 속에서 세상을 안돈시키는 그 일이 바로 ‘도제천하’거든요. 그런 도제천하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독기와 살기를 빼야 된다는 거예요. 욱하는 마음을 빼야 되고 한 쪽으로 주먹이 가면 이쪽으로 잡고 입에서 욕을 하면 입을 막고 눈을 부라리면 눈을 감고, 귀가 이렇게 하면 귀를 막고. 그래서 공자는 그것을 ‘극기복례’라고 해요. 자기를 극복한 것. 독기와 살기를 잘 극복을 해서 풀어 없애가지고 자연스러운 예를 찾는 것. 그 길을 가라는 거예요.
상제님께서 우리한테 요구하는 것은 뭐냐? 너희들은 자연스러운 생활을 통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신령스러움을 드러내게 하라는 거예요. 자연스러운 생활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도고십장 마고십장’이라고, 자연스런 생활을 벗어나도록 항상 유혹이 들어와요.자연스러운 삶을 방해하는 그런 것이 온다니까요. 그럴 때마다, 나를 시험에 들게 한다 생각하면서 좀더 객관적으로 여유롭게 자연스러운 생활을 하는 사람이 바로 상제님의 사람인 거고, 자연스러운 사람이 진법의 사람인 거고, 자연스러운 사람이 바로 신령스러운 사람인 거지요. 우리 태을도인은 자연스러운 길을 가는 사람이에요. 태을도는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런 길이라. 자연스러운 길이 가장 큰 길이잖아요. 오늘이 소만치성인데, 소만이 되면 생명이 만화방창해 가지고 푸르러요. 생명도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고, 더불어서 병원균도 나오지요. 병도 나오고 약도 나온다는 거예요. 소만의 계절이 도고십장 마고십장의 계절이에요. 이 계절 속에서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상제님 가르침을 받아가지고 자연스러운 생활을 해나가야 되는데, 자연스러운 생활을 방해하는 그런 요소들이 많으니까, 정말로 조심조심해가면서 상제님 도가 칭찬받을 수 있도록, 자연스러운 생활을 통해 가지고 백 년 증산종단을 매듭지어야 된다 이거예요. 자, 그런 다짐을 하면서 출사표를 던집시다!
첫댓글 정리하시느라 애쓰셨습니다. 많이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녹취하느라 수고하셨습니다. ^^
강증산과 고판례는 천지부모님이십니다.
태을도인들은 천지부모님의 위격을 바로세우고 태을맥을 바로잡아 천륜을 밝히는 도의 자식들입니다.
태을맥과 천륜을 세우는 일은 자연지리로 후천 상생세상을 맞이하는 선후천 교차기의 영원한 사업입니다.
밝은 가르침 감사합니다. 녹취해주신 충경님 감사합니다.
자연지리는 생명에게 평안한 길이요 모든 사람에게 행복한 길 이군요.
말씀에 감사드리고 또한 녹취록에 감사드립니다.
참석 못했는데 이렇게 올려주셔 감사합니다.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녹취해서 이렇게 읽을 수 있도록 글 올려주신 충경님께 감사드립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냥 공부 공부 공부 군요~ㅋㅋㅋ
당시의 잊고 지나갔던 것들을 다시 일깨워 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자연스러운 것은 서로에게 편안하고 아름다고 합리적인 것 같습니다.
자연지리는 누구에게나 통용되고 이해되는 진리이네요.
자연지리를 나의 삶에 이화시켜 자연스러운 생활을 해 나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