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국민은 더불어 사는 지혜로운 품성을 갖고 있습니다. 콩 한 쪽을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인정이 넘쳐나는 정겨움이 있고, 어려움에 처해서는 자신의 이익보다는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협동심이 있었으며, 국가의 경제환란기에 '금모으기 운동'에 남녀노소 전 국민이 참여하는 저력이 넘쳐나는 세상을 놀라게 했을 뿐만 아니라, 품질이 좋은 외국산 제품을 말다하고 국산품을 애용하는 애국충정이 강한 국민입니다.
사회의 단면을 들여다보면 언제부터인가 배금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되면서 집단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집단이나 타인을 차별하고 소외시킴으로서 목적을 달성하려는 정제되지 않는 돌출된 행위로 사회의 양극화를 부추기고 대화와 타협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되어 가는 듯합니다.
그리고 우리 국민의 정서는 너무도 깊게 각인된 순혈과 선민에 대한 경직된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이 안타깝습니다. 역사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 우리는 순혈과 단일민족을 지키고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지만 진실의 왜곡은 근대사에 이르기까지 보수 위정자들에 의해 순혈주의와 민족주의는 국민결집의 무기로 사용되면서 국민정서만 피폐해졌습니다.
국제화 개방화의 시류에 따라 대한민국이 다문화사회, 다민족사회로의 전환기에서 더 이상 순혈주의와 민족주의는 명분을 잃었지만 가슴에 남아있는 순혈과 민족주의는 열등의식으로의 혼혈인 배척이나 우월의식으로 국가 인종의 차별 등 사회통합과 정착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등장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혼혈인과 혼혈인 자녀를 둔 사람들에게는 멀고도 먼 나라일까? 5천만 국민을 하나로 결집시켰던 월드컵 경기에서 자랑스럽게 외쳐댔던 대한민국을 이들은 ‘혼혈인이 살 수 없는 당신들만의 대한민국’이라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혼혈인. ‘그들은 누구인가?’
민족상잔의 6.25동란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와 대한민국의 국가안보를 위해 세계 16개국 젊은 연합군장병들은 값진 희생에 대한 감사의 이면에 전란의 와중에 불가항력적인 아녀자에 대한 강제된 행위로 의도하지 않은 출생의 장본인인 것입니다.
이 피해여성에 대해 국가는 대한민국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는 규정을 지키지 못하였고 지키지도 않았습니다.
심지어 혼혈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눈물겨운 분리정책으로 수많은 아동을 해외입양을 보냈으며, 국내에 잔류하는 혼혈인에 대한 책임회피를 위해 피해여성과 그 자녀를 [기지촌 여성과 그 자녀]로 비하 매도하는 정부의 무책임한 처사와 국민의 차별과 편견이 더하여 피해여성과 혼혈인 자녀들은 가정해체와 사회의 냉대와 소외 속에서 통한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편견, 멸시, 따돌림이 당하는 혼혈인 쪽에서 본다면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인간의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짓밟는 것입니다. 차별과 놀림이 혼혈인들에게 얼마나 큰 아픔이었나를 생각해 본 이들이 얼마나 되며, 또한 무관심은 이들을 얼마나 소외시켰을까?
차별과 놀림에 대한 신문기사 내용을 살펴보면, 강모군의 아버지는 흑인 혼혈인. 백인계열의 혼혈인들은 그런대로 차별과 놀림에서 흑인계열의 혼혈인들보다는 덜하다고 했습니다. 동네 아이들은 툭 하면 강군을 놀리고, 괴롭히고, 때렸습니다. 결국 강군은 2004년 겨울 16살의 어린 나이에 농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었습니다.
철용(가명ㆍ21)이 역시 아빠가 흑인 미군으로, 학교를 거의 다니지 못한 철용이는 소외감을 견디다 못해 평택 대로변 육교에 올라 난간에 목을 매고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뭐라고 했을까? ‘사람답게 살고 싶고, 사람답게 살라고 우리를 향해 소리치면서 육교에서 목을 매 목숨을 끊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혼혈인들에게 무간지옥이다. 편견이 유독 심해서입니다. 백의민족 자손이라는 미명 아래 피부색이 다르면 외계인 취급을 한다. 따돌림과 괴롭힘에 시달린 나머지 혼혈아들은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범죄 사각지대에 놓이기 일쑤다. 선의의 피해자일 뿐인데도 말입니다.
혼혈인에 대한 편견이나 냉대는 광복 이후 달라진 게 없습니다. 냉담한 시선이 이들의 가슴에 시퍼렇게 멍들이다 못해 대못을 박고 있습니다. 특히 주한미군과 한국인 사이에서 태어나 군인 아빠가 본국으로 돌아간 뒤 홀로 남은 혼혈아들은 방황과 갈등 속에서 정체감을 잃고 자살 등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부색이 달라 외모만으로 금방 식별이 가능한 혼혈아들은 사회적 멸시와 차별 때문에 제도권 교육을 제대로 마치지도 못하는 실정이 안타깝습니다. 지원한 혼혈아동 4400여명의 학업 상태를 조사한 결과 초등학교 때 전체의 9.8%, 중학교 때 17.5%가 학교를 그만두었는데, 국내 통계청이 조사한 일반 중학교 중퇴 비율인 1.1%에 비하면 천양지차인데 대해 경악을 금할 수 없습니다.
공교육조차 받지 못한 상황에서 사회에 내버려진 혼혈인들은 변변한 직장을 가질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에 동화되기 어려운 현실에서 비행 청소년으로 전락해 마약이나 폭행, 강도, 강간, 살인 등 끔찍한 범죄에 빠져들게 한 원인이 차별과 편견인 것을 아는 이들이 몇이겠습니까?
"혼혈이란 이유만으로 멸시와 놀림은 대항의 수단으로 폭력밖에는 없다." 전 KT&G프로농구 김동광 감독은 놀림과 차별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이들을 제압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했다는 말을 했듯이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었기에 사회문제가 되어 왔었습니다.
이들은 놀림에 대항하여 싸움을 한다면 놀린 가해자는 무죄이고, 놀림에 대항한 혼혈인들은 유죄가 되는 일은 되풀이 된 것입니다. 싸움으로 인해 경찰의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도 놀림을 당하게 되면 경찰관에게까지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있어 결국은 공무집행방해죄까지 덤으로 받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언제나 피해자이면서 피의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들 혼혈인들은 "혼혈인에 대한 각종 편견이 사라지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영원히 '외국인 차별'이란 딱지를 떼어내기 어렵다"고 강조한다. 혼혈인에 대한 경직된 사회인식은 국제결혼이 생소하지 않고, 국제결혼이 증가하고 귀화하는 외국인, 그리고 외국산업연수생이 늘어나고 있는 지금도 의식은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현상 속에서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극심한 성비불균형과 이농현상이 극심해 지면서 한국여성의 결혼가치관이 변화로 차별과 편견의 대상으로 결혼 적령기가 되어도 결혼선택의 여유가 없이 국제결혼을 택했던 이들이 많다는 것이 이를 실감할 수 있게 합니다.
극심한 성비 불균형과 출산율 저하를 걱정하는 소리가 많지만, 요즘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아니면 낳지 말자. 인구감소율을 보인다고 아우성이지만 이에 대해 아무도 동조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아이를 하나만 낳아도 남들처럼 해 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이 되지 못한다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 많을까에 고민하고 있는 반증인 것입니다.
차별과 편견에 대한 사회문제는 어린 청소년에게까지 파급되었다. 그 실례로 초등학교 학생들도 자기가 사는 아파트의 평수대로 편을 갈라 논답니다. 자기보다 작은 평수에 사는 아이들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누가 시켰을까?’ 궁금해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길거리에서 아는 척이라도 하면 우선 어디 어느 동 무슨 아파트에 사느냐는 호구조사로 상대를 친구로 할 것이냐 무시할 것이냐를 평가하는 차별과 편견 풍조가 만연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부모가 이러하니 자식이 어찌 본을 받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좋은 아파트에 넓은 평수에 사는 분들의 품성이나 의식은 부의 가치기준과는 거리가 멀고, 이들이 사회지도층으로 국민을 이끌어 간다고 한다면 누가 따라 줄 것이며, 가능키나 한 일일까? 그런 가정에서 태어난 청소년들의 장래 또한 염려스럽지 않겠습니까?
결국 이들의 가정은 교육적 기능은 없이 불법 편법이라도 자식의 안위를 위해 부동산 투기 등으로 또 많은 돈을 벌려고 혈안이 될 것이나, 늙어 자식에게서 존경받는 부모로서의 존재의 가치를 찾을 수 있을까에 의문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결혼가치관의 변화의 단면을 볼 수 있는 사건이 있었다. 일전에 재벌 딸 행세를 하며 결혼을 미끼로 20억 원을 챙겨 외국으로 도망간 사건이 있었는데 국민 대다수는 그 여자에게 돌을 던지기보다는 그 여인에게 속은 속 빈 졸부들에게 조소를 보냈을 것입니다. 부모가 학교재단 이사장에다 모 신문 회장이라니까 껌뻑하는 세상이니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살라고 자식들에게 가르칠까?
이러한 사회현상과 시류에 편협하여 차별과 편견은 당연한 것처럼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놀림과 따돌림이 증가하면서 커다란 사회문제로 등장하기에 이르렀으며, 놀림과 따돌림은 차별과 편견에서 오는 것으로, 열등의식의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이너리티(Minority)를 차별과 편견의 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국제결혼이 꾸준하게 증가하면서 예전에는 '집안 망할 일'이라 치부하던 일이 이제는 생소하지 않을 정도로 우리 사회 내부에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나는 국제결혼 가족이나 그 자녀들은 아무런 이유 없는 차별과 편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차별과 편견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무관심으로 지나치며 이들의 소외감을 무시합니다.
이농현상을 막고 사회안정을 꾀하기 위해 국제결혼을 장려하기만 했지 국제결혼으로 태어 날 혼혈인 아동에 대한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했다는 것은 우리 정부 기관이 이러한 문제에 얼마나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국제결혼 가정의 자녀들이 입학적령기에 들어서면서 심각한 사회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자녀 교육의 큰 몫을 담당하고 있는 외국인 주부들의 언어소통의 문제와 문화적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여 이에 따라 자연 그 자녀는 언어발달이 늦어지고 사회와 학교에서 적응력이 현저히 떨어져 동화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정체감의 혼란은 정서발달에 심각한 영향을 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이 국제결혼 가정의 자녀들이 사람을 만나기를 싫어하는 대인 기피증을 갖고 있으며,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일까? 답은 간단합니다. 이들을 소수집단이라고 차별하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것이 원인인 것입니다.
더불어 사는 차별없는 사회를 열어야 합니다. 자유민주주의는 권리와 의무의 테두리 안에서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고, 나의 자유도 침해당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준수해야 할 것입니다.
법은 이러한 약속을 지탱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것인데,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를 받는데도 법은 아무런 역할이나 강제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차별금지법은 물론, 소외계층을 지원하는 법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차별과 놀림이 아무런 죄의식 없이 무의식중에 무차별적으로 일어나는 데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발생한다. 국민의 경직된 의식을 개혁하여 차별과 놀림이 없어지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차별금지법의 제정과 아울러 청소년을 가르치는 교사의 기본연수 등에 차별과 놀림의 폐해와 차별금지에 대한 교육과목이 채택되어야 하고, 일반 공무원도 당연히 교육돼 져야 할 것이다. 법 제정과 아울러 국민의식개혁을 위한 노력도 따라야 할 것입니다.
사회의 상대적 약자인 소수집단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차별과 편견이 없는 아름다운 사회를 열어봅시다. 더불어 사는 지혜로운 품성을 회복하고, 콩 한 쪽을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인정이 넘쳐나는 정겨움으로 어려움에 대처하는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협동심이 일어나게 하여, 더불어 사는 차별없는 세상을 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