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8회 좋은 '글 쓰기를 위한 탐방'은 ‘발행인에게 듣는 문학인의 길‘ 이란 주제를 정하고 백덕순 시인과 함께 계간문예 사무실을 방문했다.
정종명 이사장님은 바쁜 일정 가운데도 반갑게 맞아 주었다
차를 마시며 소년 시절, 문학도로 청년의 시절을 보낸 것, 소설이 당선되어 문단에 서게 된 것, 등 인생이 걸어 온 길을 생생하게 들려주셨다. 더러 잊고 지낸 부분은 차윤옥 편집국장이 보환을 해 줬다. 함께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 대담의 시간을 가진 몇 시간은, 후학의 길을 걷는 사람으로서 귀한 보물을 손에 쥔 듯 값진 시간이었다. ‘문학인 탐구‘라는 주제로 장석주 선생님이 문학인 조명이라는 기록을 남긴 것이 있지만, 정작 필요해서 찾으면 아쉬움이 많은데 이번 기회에 좋은 정보를 제공해 주신 정종명 이사장님께 감사드린다. 덕분에 이사장을 지내며 문단의 발전을 위해 일한 크고 작은 일과, 소설가로 걸으신 길을 통해 뒤를 걷는 문학인으로, 어떻게 처신하며 어떤 글을 쓰며, 이 사회에 공헌을 할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일시 : 2017년 1월 25일 오전 11:10 – 오후 3:00
장소 : 계간문예 사무실
대담 : 계간문예 이사장(전 한국문인협회 회장) / 정종명
차윤옥 : 계간문예 편집주간
백덕순 : 시인
신재미 : 시인
⚉ 백덕순, 신재미
안녕하세요?
이사장님 이렇게 바쁜 일정 가운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정종명 , 차윤옥
어서오세요 반갑습니다
저희 사무실을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재미
오늘 찾아뵙게 된 것은 사전에 말씀 드렸듯이 좋은 글쓰기를 위한 탐방으로
“발행인에게 듣는 문학인의 길“입니다.
진행은 자유롭게 저희가 대화중 질문을 하면 이사장님께서 화답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백덕순
이런 시간이 익숙한 것은 아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합니다.
이사장님의 어린 시절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정종명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할 거라 생각합니다. 성인이 된 다음에 돌아보면 어린 시절은 미소가 피어나지 않겠는지요. 저 역시 그렇습니다. 1945년 아버지 정봉수(鄭奉守), 어머니 박임득(朴任得) 사이에 3남2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950년도 계초등학교에 입학했으나 6․25전쟁으로 고향인 경북 봉화군 물야면 수식리 독점동으로 피난하여 그곳에서 수식초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겨울이 되면 마을 사람들에게 「심청전」 「춘향전」 「장화홍련전」 같은 책을 읽어 주셨는데 저는 그 시절 우연히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 읽고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 신재미
대부분의 어린이 들은 상상도 못할 나이에 이미 문학의 씨앗을 가슴에 키우셨군요.
⚉정종명
책을 좋아하셨던 아버지와 주변의 환경이 그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경치 좋은 산골은 가슴에 보화를 옮겨 심는 곳이라는 생각입니다. 그 후 1960년 강원도 태백시로 이주했습니다. 태백중학교를 거쳐 1963년에 강릉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요. 그 시절부터 각종 백일장에 나가 입상을 했습니다. 당시 『학원』이라는 잡지에 작품을 투고한 글이 실리는 바람에 전국의 여학생들로부터 편지 받는 재미에 빠져 대학 입시공부는 뒷전이었던 걸 생각하면 웃음이 납니다. 국어는 우수했는데, 수학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아무래도 좀 별나기는 했나 봅니다. 1965년 한․일 회담 반대데모 주동자로 낙인 찍혀 퇴학 위기에서 가까스로 벗어나기도 했습니까요. 방학 중에 쓴 단편소설 「도주(逃走)」가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에서 주최한 전국고등학생 문예콩쿨대회에서 당선을 했는데요 이 작품은 1966년 3월 부산에서 펴낸 문예지 『문학시대』 창간호에 실렸습니다.
⚉백덕순
문인협회 이사장님을 지낼 때 가까이서 뵙고 위대한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양분은 일찍이 청소년 시절부터 충만하셨군요. (모두 웃음)
이사장님은 고등학교 때 이미 명성을 날리는 문인이셨네요.
⚉정종명
그해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장래에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말을 아버지께 말씀 드렸더니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말씀 하셨지요.
"다리 밑에 가 보면 거지들이 더러운 거적을 덮고 산다. 작가란 그런 거지들하고 함께 밥도 먹고 잠도 잘 수 있어야 하는데, 너 그렇게 할 수 있느냐?"
대학 입시가 시작 되자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에 특기장학생으로 입학했습니다.
마종하, 이동하, 김형영, 임영조, 박건한, 김정례 씨들이 다녔고,
훗날 문단에 등단한 김년균, 오정희, 이경자, 윤정모, 이우선, 장경호,
이남진, 김희원, 이옥희, 안병국은 동기생들입니다.
⚉신재미
현재 문단의 선두 주자들 가운데 이사장님 동기생들이 여럿 있으시군요.
⚉정종명
듣고 보니 그렇습니다.
⚉신재미
소설을 쓰게 된 시기는 언제였나요?
1971년 대학을 졸업했으나 취업이 어려워 낙향할 수밖에 없었는데, 당시에 재워 주고 먹여 준 김년균 형의 호의로 그의 자취방에 들어앉아 500장 넘는 중편소설을 썼습니다.
김년균 형은 재미도 없는 작품을 읽고 '소설 잘 쓴다. 작가 되겠다.' 격려해 주었는데 어느 날 보니 진짜 소설가가 되어 있더군요 동년 4월에 월간 『스포오츠』 취재기자로 입사했습니다.
주간에 구자운 시인, 편집부장에 최범서 작가가 재직했고, 후에 작가로 등단한 황원갑, 이호일 씨가 함께 근무했습니다. 그 해 10월에 김원일 작가가 부장으로 재직하는 도서출판 국민서관으로 자리를 옮겨, 4년 6개월간 근무했습니다.
⚉백덕순
이사장님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요?
⚉정종명
저는 1974년 11월에 결혼했고, 두 아들을 두었습니다.
⚉차윤옥
이사장님께서 문단에 활동하신 시기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정종명
1975년 유익서 이채형 황충상 등을 만나 소설습작 토론회를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만년 신춘문예 낙방생들이었는데, 나중에 이들 모두 작가로 등단했습니다.
1978년에 문예지 『현대문학』에 입사했습니다. 당시 주간에 조연현 선생님,
편집부장에 김국태 작가가 재직했고, 감태준 시인이 함께 근무했습니다.
그 해 가을에 단편소설 「사자(死者)의 춤」이 『월간문학』 신인작품상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습니다.
「떠돌이의 혼」이 발표 된 것이 1979년이었습니다.
1980년 이문열 이외수 윤후명 손영목 서동훈 유익서 김원우 김채원 유홍종 표성흠 등과 작가(作家) 동인을 결성하고 동인지 1집을 민음사에서 출간했습니다.
이 시기부터 열심히 동인들과 어울리며 문인의 길을 걸었다고 봅니다.
후에 강석경 김상렬 김인배 정소성 최학 황충상 등도 참여했는데 귀한 분들 덕에 덩달아 좀 쓰는 작가로 분에 넘치는 평가를 받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1981년 단편소설 「건널목 뛰어넘기」 「고맙습니다」 「겨울 야화」 「회귀전말」 「추방」 「심판」과 중편소설 「우울한 희극」 등을 발표했고, 1983년 단편소설 「오월에서 사월까지」 「이명(耳鳴)」 등을 발표하고, 만 5년간 근무한 현대문학사를 떠나 문예지 『소설문학』으로 직장을 옮겼습니다.
1984년 중편소설 「탈춤」, 단편소설 「사설문담」 등을 발표했습니다.
1985년 동년 5월호부터 『소설문학』에 장편소설 「거인(巨人)」을 연재했습니다. 창작예술사에서 소설집 『오월에서 사월까지』를 출간했고, 제1회 동포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했습니다. 1986년 문예지 『문학정신(文學精神)』 편집장으로 부임했습니다.
이승훈 시인의 추천으로 장편소설 「거인(巨人)」을 「인간의 숲」으로 개제하여 고려원에서 출간했습니다. 1987년 3월 동아출판사에서 간행된 우리 시대 우리 작가 32권 문학전집 중 27권에 장편소설 「거인」이 수록되었습니다.
중편소설 「우울한 희극」을 고려원 소설 문고본으로 출간했습니다. 1988년에 소설집 『이명(耳鳴)』을 도서출판 동아에서 출간했고, 1989년에 전상국 작가의 추천으로 장편소설 「아들 나라」를 강원일보사에서 발행하는 『월간태백』에 연재했습니다.
동년에 중편소설 「숨은 사랑」, 단편소설 「피아트 볼론따스 뚜아」 「서울은 천국이다」 등을 발표했습니다.
장편소설 「거인」이 MBC 미니시리즈 8부작으로 방영되었습니다.
⚉ 신재미
이사장님의 말씀을 듣다보니 굉장히 열심히 창작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90년대에는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요?
1990년 중편소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느 몽상가의 빗나간 운명론」 「빠른 바람은 소리로 남는다」 「아무도 죽지 않는다」 등을 발표했습니다. 장편소설 「아들 나라」가 세계일보 출판국에서 출간되었고, 이듬해 12월 영화로 만들어져 대한극장에서 상영되었습니다. 이듬해에 중편소설 「그러나 사랑은 아름답다」 등을 발표했습니다. 1992년 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역사소설 「거물(巨物)」을 서울경제신문에 연재했습니다. 1993년 소설집 『숨은 사랑』을 동아출판사에서 출간했습니다. 1994년 11월부터 1995년 9월까지 대동일보에 역사소설 「제왕의 춤」을 연재했습니다.
⚉백덕순
이사장님의 말씀이 매우 흥미진진합니다.
후반기 들어 활동하신 내용을 말씀해 주십시요
⚉정종명
1995년 7월에 역사소설 『신국(新國)』(전3권)을 문예산책에서 출간했습니다. 11월에 역사소설 『대상(大商)』(전2권)을 한국경제신문 출판국에서 출간했습니다. 1997년 단편소설 「의혹」에 이어 「빛과 그늘」 「내 사랑 내 곁에」, 중편소설 「꼭꼭 숨은 입」 등을 연달아 발표했고. 1999년 3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영남일보에 장편소설 「욕망의 늪」을 연재했습니다.
IMF 시절인데도 월 300만원의 원고료를 받았으니 지금생각해도 감사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1999년 10월 소설집 『의혹』을 뿌리출판사에서 출간했습니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동문회에서 주관하는 서라벌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신재미
이사장님의 말씀을 듣다보니 정말 굉장히 열심히 창작하시고 땀 흘리며 살아 오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천년에 들어서는 어떻게 문단 생활을 하셨는지 들려주세요.
⚉정종명
2001년 3월부터 경기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출강을 시작해서 2010년 2월까지 강사ㆍ겸임교수ㆍ대우교수를 거치면서 수필쓰기, 소설쓰기, 동화쓰기 등을 강의했습니다.
같은 기간에 롯데백화점 잠실점 MBC문화센터에서 소설쓰기를 강의했고, 2001년 12월 수필집 『사색의 강변에 마주 앉아』를 출간했습니다. 2002년 11월에 박양호 손영목 유만상 유익서 이채형 정동수 정성환 최학 황충상 등과 『소설마당』 1집을 출간했습니다.
2003년에는 한국소설가협회 이사로 피선되었습니다.
⚉차윤옥
그 시절부터 문단의 일을 보기 시작하셨군요.
⚉정종명
그런 셈이지요 2005년 1월에 국제펜클럽한국분부 부이사장에 피선되었습니다. 이사장에는 문효치 시인, 부이사장에는 김종상 아동문학가, 이수화 시인, 이길원 시인, 김학 수필가가 동반 당선되었습니다. 2005년 9월부터 현재까지 숭실사이버대학교 방송문예창작학과에서 소설작법을 강의했습니다. 경기대학교에서는 우수강의자 표창을 받고, 한국사이버대학교에서는 240개 과목 중 상위 10%권에 드는 우수 강의자로 평가받았으니 가르치는 일에도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2006년 여름부터 1년간 수필전문지 『수필과 비평』 소속 창작아카데미에서 수필쓰기 지도강사로 출강했습니다. 2007년 2월에는 한국문인협회 편집국장으로 부임했고, 2010년 10월까지 『월간문학』 『계절문학』 등 편집 실무를 담당했습니다. 동화 「어른들은 모른다」를 발표했으며. 2009년 장편소설 『올가미』를 출간했습니다.
⚉백덕순
이사장님께서 걸어 온 길을 보니 초반기 5년 시간 가는 줄 모르셨겠어요.
⚉정종명
자랑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진짜 열심히 살았습니다.
2010년 1월에 한국소설가협회 이사로 피선되었습니다. 2001년 3월부터 9년간 강사ㆍ겸임교수ㆍ대우교수로 출강해 온 경기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강의를 2010년 2월 말로 마감했습니다.
2010년 10월 한국문인협회 편집국장을 사임하고, 다음 카페 한국문학발전포럼을 개설했습니다. 2010년 12월 김송배(시인) 김종섭(시인) 진동규(시인) 한분순(시조시인) 이광복(소설가) 정목일(수필가) 박성배(아동문학가) 등과 <숨은 사랑>을 도서출판 청어에서 출간했습니다.
2011년 1월에 사)한국문인협회 제25대 이사장으로 당선되었으니까요.
당년에 사)한국문화예술저작권협회 이사로 선임되었습니다. 사)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이사로 선임되고,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으로 선임되었습다 .
2012년 3월 사)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부회장에 취임했습니다.
2013년 7월 한국문인협회평생교육원 초대 원장에 취임했습니다. 10월 제45회 대한민국문화예술상(문학)을 수상했고,
2014년 4월 한국문인협회평생교육원 소속 문학낭송가회 회장에 취임했습니다.
2015년 2월 13일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을 퇴임했습니다. 3월 문예지 <계간문예> 발행인으로 취임했고, 계간문예창작원을 설립했습니다.
⚉ 차윤옥
문인협회 이사장 당시 옆에서 일을 하며 느낀 것은 정말 대단한 열심 DAN을 지니고 태어나신 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문학축제, 시낭송대회 등 여러 가지 일을 개발하고 진행해 오시는 걸 보며
저절로 존경심이 우러나왔으니까요. (다 함께 웃음 )
⚉ 백덕순
거주하는 집이 가까운 관계로 가끔 사무실을 들리면 나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도 했다는 걸
이 시간에 고백하게 되는 군요. ( 웃음)
⚉ 정종명
당시에 백 시인을 비롯해서 여러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요. 일일이 이름을 거론 한다면 한 나절이 걸려도 다 못할 겁니다. 이 시간을 빌어 당시에 마음과 사랑으로 후원해 주시고 격려해 주신 여러분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신재미
지금 하시는 일이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정종명
지난 시절을 돌아보면 눈 깜빡할 사이인 듯 한데 환갑을 지났습니다. 거창한 계획은 없습니다. 이사장 퇴임 후 전념하고 있는 문학발전포럼과, 계간문예. 계간문예창작원, 한국문학낭송플러스를 통해 많은 분들이 행복을 나누며 살기를 바랄 뿐입니다. 저를 돕고 있는 차윤옥 편집장, 계간문예 작가회 박성배 회장, 동화구연을 지도하는 홍성훈 교수, 낭송플러스 이두의 교수, 문학낭송 플러스 허갑주 회장 이 분들이 수고가 많은데 감사드립니다.
⚉ 신재미
오늘 바쁜 가운데도 귀중한 시간을 내어주시고 마음에 쌓아 두셨던 보석창고를 열어주신 이사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진행 된 8회 ‘좋은 글쓰기 탐방’ 가운데 가장 보람 된 시간이었습니다.
끝까지 함께 해주신 차윤옥 편집 주간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아 그리고 늘 자리를 빛내주시는 백덕순 시인께도 감사드립니다.
--------------------------------------------------------------------------------------------------------
제 8회 모임-계간문예 탐방
일 시 : 2017년 1월 25일 수요일 오전 11시 30분
모임 장소 : 지하철 1,3, 5호선 종로 3가역 5번출구 (11시 30분)
* 계간문예 방문 (발행인에게 듣는 문학의 길 )
* 점심 식사
* 서울의 중심점 견학
* 쌈지길 견학
* 시가연 차담
------오후 4시 해산 예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