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현립 나고야성 박물관
가라쓰시(唐津市)와 겐카이초(玄海町)에 있는 국가특별사적「나고야(名護屋)성터 및 진(陣)유적」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 의한 文祿•慶長의 役(1592년∼1598년, 임진왜란) 출병 기지이며, 일본 열도와 한반도(朝鮮半島)와의 긴 교류사 속에서 그 관계를 일시적으로 단절시킨 불행한 역사의 무대이다. 동시에 나고야(名護屋)성터를 중심으로 반경 3킬로미터의 범위로 펼쳐저 있는 이 유적군은 전국에서 130을 넘는 영주가 집결하여 진영을 구축해 진영을 쳤다고 하는, 일본의 역사상 유래를 볼 수 없는 광역함과 동시에 특이한 유적군이다.
나고야(名護屋)성은 1591년부터 1592년에 걸쳐서 불과 5개월만에 완성된 넓이 17만㎡이 거대한 성으로 당시는 대사성(大坂城)에 이어 전국에서 2번째로 큰 규모였다. 현재에는 성터의 돌담이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 전국에서 모인 무사와 상인으로 인구 20만명을 뛰어넘는 마을이 생겼다. 히데요시(秀吉) 등 조선으로 가지 않은 영주들은 노가쿠(能樂)와 다도와 같은 모모야마(桃山)문화를 나고야(名護屋)에 가져왔다. 1997년(1997년)에는 나고야(名護屋)성터의 야마자토마루(山里丸)(히데요시의 거주하던 곳의 터)에서 모즙(茅葺)의 초암다실유적이 발견되어 큰 화제가 되었다. 또, 文祿•慶長의 役(임진왜란) 때에 한반도(朝鮮半島)에서 많은 사람들이 전국(戦国)영주에 의해 일본으로 끌려 왔다. 그 중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는 도공은 큐슈 각지에서 도자기를 만들었다. 사가현을 대표하는 가라쓰야키(唐津燒), 아리타야키도 이들이 만들기 시작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다. 나고야(名護屋)성터 가까이에 있는 나고야성박물관은 文祿•慶長의 役(임진왜란)을 침략전쟁이라고 규정하고 그 반성 속에서 만들어져 「일본 열도와 한반도(朝鮮半島)와의 교류사」를 테마로 원시시대에서 현대까지의 몇천년의 교류를 나타내는 약 220점의 자료를 상설 전시실에서 전시하고 금후 교류•우호의 추진 거점으로 할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으로 출병하는 왜군들의 출병기지였던 나고야 성이
지금은 한.일간의 문화교류의 장으로 한국의 많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반갑다 돌하르방!
아이들은 일본 자판기 문화 체험중(?)
나고야성터
일본의 깃발 문화, 각각의 영주들이 자신들의 가문을 상징하는 깃발을 만들어 달았다고 하네요.
조선통신사의 행렬
나고야성의 재현 모습
신라의 금관
반가사유상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크게 무찌른 거북선
자신들의 침략전쟁을 인정한 유일한 일본 박물관
금속활자
말썽꾸러기 삼총사
카라쯔라는 곳의 한자명은 당진,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전라남도 당진에서 끌려온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 그 지명을 그대로 사용
오늘의 숙소, 나가사키에 있는 반쇼카쿠 호텔(이곳은 일본 전통 료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오늘 저녁은 뷔페식인데, 나가사키의 명물 나가사키 짬뽕도 있네.
푸짐한 해산물들.
오늘 내 잠자리, 다다미방
저녁을 먹고 오니 이브자리가 이렇게 깔려 있네
방에서 보이는 나가사키의 야경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