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북위(北魏) 숭산(嵩山:河南)의 도사 구겸지(寇謙之:365~448)에 의하여 신천사도(新天師道)가 성립됨으로써 도교는 비로소 그럴듯한 내용과 체제를 가진 종교로 조직되었다. 위진남북조시대 이래로 불교가 점차로 중국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는데 도교는 이론적인 면에서 불교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러므로 불교에 대항하여 도교의 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불교에 못지 않는 종교적인 내용과 체제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부응해서 개선된 조직이 구겸지에 의해서 제창된 신천사도였다. 구겸지는 도교를 청정하게 만들고, 삼장(三張:오두미도의 창시자인 張陵과 그의 아들 衡 및 손자 魯를 합해서 부르는 말)의 거짓된 법, 쌀로 세금을 받는 것, 남녀 합기술 등을 없애버렸다.
그는 오로지 예도(禮度)를 제일로 하고, 복식(복약법)·폐련(명상법)·복기(호흡법)·도인(안마법)·벽곡(식이법) 등의 장생술을 배워 자기의 수행을 완성시켰다. 이것은 바로 천사도의 개혁이 완성되었음을 의미한다. 그후 구겸지는 신천사도의 단위·예배·의식 등의 종교적 의례와 세계관, 신들의 계열, 복장, 부적 등을 제도화하고 정비했다. 그리고 도사의 자격을 4단계로 나누어 법록을 수여했다. 이것으로써 명실공히 도교가 성립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구겸지는 노자(老子)를 도교의 개조로 삼고 자신이 그 정통을 이은 사람이라고 자부했다. 이후로 노자가 도교의 개조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5세기 중엽에는 도교가 국가적 종교의 위치를 획득하게 되었다.
도교의 가르침은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일을 하면 화를 당한다"는 것을 바탕으로 하여 생명의 연장과 현실적 축복을 얻자는 것이다. 도교는 신선방술을 기본으로 하여 고대 중국으로부터 내려온 음양술·오행설·복서(점)·의술·참위설 등을 종합했다. 또한 유교의 세간도덕과 불교의 인과응보설을 교묘히 결합하여 일반 대중에게 안심입명(安心立命)의 위안을 주려고 했다. 그러므로 도교란 한마디로 개괄하기는 어려우나 장수·부귀·행복 등을 구하기 위해 도덕적 선행을 실천하고 귀신에게 제사지내는 종교, 즉 일종의 현세적·공리적 종교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도교는 영적·내세적 종교가 아니라, 육체적 생명(不老長生)과 현세적 삶(現世利益)을 추구하는 종교이다.
이와 같이 도교의 목적이 불로장생이기 때문에 도사들은 양생술 또는 방생술을 중시하여 각 교파 나름대로 독자적인 방법을 고안해냈으며, 또 그 수행에도 힘썼다. 인간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기 위해서는 벽곡(辟穀:오곡을 먹지 않음, 일종의 식이법), 복이(服餌:여러 가지 약의 제조법과 복용법), 조식(調息:심호흡법), 도인(導引:보건체조 또는 안마법), 방중(房中:성생활의 조화) 등의 일을 중시하고 실행해야 한다. 이와 같은 방법들은 신선사상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신선사상에서는 인간이 특수한 수련을 통하여 영생불사하는 신선이 될 수 있으며 그러한 신선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믿음을 갖게 해준다. 이는 전국시대에 생겨서 한나라 때 널리 신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