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妖女 月花의 죽음
항주성의 홍등가에서는 조그만 사건이 일어났다.
어떤 가게보다도 성업중이던 월화루의 주인이
갑자기 가게를 팔기 위해 매수자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이틀 전,
월화는 자신 앞으로 일천 냥 짜리의 은표(銀票)
열 장이 도착했다는 전갈을
평소거래하던 금화전장(金華錢莊)으로부터받았다.
이것은 철혈무정 석무심이 네 번째 자객과도 거래가 끝나면
그녀에게 지불하겠다고 말한 액수였다.
그녀는 일이 너무 빨리 이루어진데 놀랐다.
중개료가 들어왔다는것은
그녀가 추천한 사 인을
석무심쪽에서 이미 확보했다는 증거였다.
어쨌거나 이것으로 철혈무정 석무심의 손아귀에서는
벗어났다고여긴 월화는
즉시 자신의 가게를 매물로 내놓았다.
그리고 워낙 성업중인 월화루라 즉시 여기저기서 입질이왔다.
가게를 내놓은 그날만 해도
칠팔명의 상인들이 월화루의 매매에 관심을 갖고
찾아왔을 정도였다.
그 중 몇 사람은 월화의 가게를 적극적으로 원했지만
월화가 요구하는 금액과 지불 조건에는 모두 난색을 표했다.
그녀는 그들에게 두 가지 조건을 요구했다.
즉 확실한 가격을 정하고
그 금액을 즉시 현찰로 지불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조건에 맞는 사람은 아직 없었다.
액수도 액수지만 그정도의 막대한 현찰은
아무나 쉽게 조달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시라도 빨리 이쪽 일에서 손을 떼어야겠다고 생각한 월화는
내심 초조해졌다.
하지만 지난 칠년간 심혈을 기울여 키워온
월화루를 헐값에 넘길 수야 없는 일이다.
그녀는 좀더 적당한 매수자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기를 작정했다.
사실 월화는 팽노대로부터 은퇴하라는 충고를 들었을 때부터
마음 속으로 이 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결심했었다.
돈이라면 이미 여생을 풍족히 즐기고도 남을 정도로 벌었다.
게다가 철혈무정 석무심의 요구대로 자객들도 수배해주었으니
이제는 더 이상 머뭇거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한 가지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그것은 이미 무림맹의 눈길이 그녀에게 붙었다는 것이다.
특히 끈질기기로 이름난 귀견수(鬼見手) 조중의 감시망에 걸린이상
그녀의 운명은 자신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
남의 손에 달린 것이다.
지금도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조리,
하다 못해 그녀가 지금까지 은밀히 감추어온
지난날의 과거까지도 파헤쳐져 조중의 귀로 들어가고 있었다.
팽노대(彭老大) 역시 월화가 돌아간 이후로
웬지 마음이 편치 못했다.
특히 이틀 전 월화로부터 모든 일이 잘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몇 장의 은표가 수고비조로 도착했을 때는
정체모를 이 불안감이한층 더 심해졌다.
그러나 날짜가 다시 며칠 경과되었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그의 불안도 차츰 멀어져 갔다.
전단강(錢塘江)의 넓은 강줄기 위로 달이 떠올랐다.
화사한 은빛의 월광이 어둠을 환히 밝혔다.
오늘 밤 팽노대는 자신의 배에서 손님들을 초대하여
연회를 벌이고 있었다.
한 달에 한두 번씩 명사들을 초청하여 연회를 하는 것은
그의사업을 위한 면도 있지만
실제로는 자기 과시욕의 수단이기도 했다.
비천한 백정(白丁)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유달리 과시욕이 강했던 것이다.
이경(二更) 무렵이 되자 연회는 최고조에 달했다.
조그만 나룻배들이 부지런히 범선과 나룻터를 왔다갔다 하며
손님들을 실어나르고
연회장에는 산해진미와 진귀한 술로 가득했다.
갑판에서는 특별히 초청된 가무단이 화려한 공연을 벌이고 있고
그 앞에는 오십여 명의 손님들이 모여 있었다.
팽노대는 손님들 사이를 돌아 다니며 분위기를 북돋았다.
오늘밤의 손님들 중에는
관부의 인물도 있고 대상인도 있었으며
몇몇강호의 거물들도 눈에 띄었다.
온갖 부류의 명사들이 뒤섞인 연회는
팽노대의 기분을 즐겁게했다.
그리고 이처럼 다양한 교우 관계는
팽노대의 사업에도 막대한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도 그런 말은 입 밖에도 내지 않았다.
그저마시고 웃고 즐기고 있을 뿐이었다.
삼경(三更)이 가까워질 무렵
팽노대는 작은 나룻배에서
자신의범선으로 옮겨 타는 한 사나이를 발견했다.
나이는 삼십 세 가량이었는데
혈색이 아주 좋아 보이는 장사꾼차림의 인물이었다.
그의 몸매는 호히호리해보일 정도로 날렵했지만
반면 어깨는 아주 넓고,
눈꼬리가 약간 아래로 쳐져서 인심 좋은 사람으로 보였다.
팽노대는 이 사나이가 연회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가 누군지알아차렸다.
팽노대는 항상 자신을 불안하게 만드는 사나이가 왔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그 사나이는 팽노대가 곧 자신을 찾아올 것을 확신한 듯
그에게는 일별도 하지 않고 선실로 내려갔다.
*
잠시 후, 팽노대는 손님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연회장을 빠져 나왔다.
그는 사닥다리를 타고 갑판 아래 선실로 내려갔다.
그를 늘 만나던 선실의 문 앞에 도착한 팽노대는
숨을 한 번 깊숙이 들이마신 후 문을 열었다.
그 손님은 의자에 편안히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주인인 팽노대가 들어왔지만
손님은 모른 체하고 느릿하게 술을 마셨다.
빈 술잔이 탁자에 놓여지자
손님은 비로소 시선을 팽노대에게돌렸다.
{팽노대!}
팽노대는 빙그레 웃었다.
{어서 오게. 기다리고 있었네.}
팽노대가 사람좋게 웃어보였지만
손님의 입가에는 반대로 서늘한 미소가 번졌다.
{당신 같은 사람이 그런 얼간이 같은 행동을 하다니 정말 놀랍소.}
냉혹한 눈빛을 흘리며 손님은 천천히 일어서더니
가벼운 걸음으로 팽노대 앞에 와서 섰다.
그 사나이의 손이 채찍처럼 자신의 목덜미를 향해 뻗어왔지만
팽노대는 태연히 웃었다.
그리고 마침내 새하얀 여인의 옥수처럼
길고 수려한 손가락이 목덜미를 가볍게 만져도
팽노대는 여전히웃고만 있었다.
{언젠가는 이 손으로 당신을 죽이게 될거요.}
미소를 잃지 않는 팽노대의 그 모습에
손님은 입꼬리를 실룩이더니 손을 거두며 말했다.
{당신은 이 날까지 단 한 번도 실수를 한 적이 없었어.
그런데다른 사람도 아닌 팽노대 당신이
이런 얼간이 같은 짓을 하다니
정말 어이없는 일이야.}
손님은 그대로 돌아서 다시 탁자 앞으로 가서 술을 가득 따랐다.
그리고는 단숨에 그 독한 옥호춘(玉戶春)을 들이마셨다.
{팽노대! 실수에 대한 대가는 치루어야지.
당신의 그 멍청한 짓으로 인해
이번 일에 조금이라도 차질이 생긴다면
내 반드시 이곳으로 돌아와 끝장을 내주겠소.}
{알았네. 충분히 각오가 되어있네!}
팽노대는 사람 좋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눈앞에 있는이 손님의 말에 한점의 의문도 갖지 않았다.
그는 한 번 내뱉은 말은 반드시 실행하는 인물이다.
{븐명히 말해 두지만...}
손님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당신은 어쩌면 이번 실수의 뒷수습을 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렇지만 내가 한 경고는 기억해두는게 좋아!}
{미안하네. 허나 그녀는 정말 좋은 여자였네.}
팽노대는 쓸쓸히 말했다.
{하하! 이거야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일이군.}
팽노대의 말에 손님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문둥이한테라도 가랑이를 벌릴 그 화냥년이
좋은 여자라고? 하하! 정말 실망인데!
천하의 인마(人魔) 팽조께서망령이 드셨나?
늙으막에 시궁창같은 계집에게 순정을 느끼시다니말이야!}
팽노대는 손님의 조롱 섞인 어조에 소태 씹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 손님의 비난과 조롱에 항변할 방법이 없었다.
그날 팽노대는 월화가 돌아간 후 곧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월화의 교태와 애원에 혹해서
눈앞에 있는 이 인물을 동원함에 있어
지켜야할 규칙을 가볍게 생각한 것이다.
따라서 이 손님이 당연히 자신에게 책임을 추궁해 올 것을
그는각오하고 있었다.
{우린 상호간의 반드시 지켜야할 약속이 있었는데
당신은 그것을 깨뜨렸소.}
손님은 다시 냉혹한 어조가 되며 술을 따랐다.
{우리들의 일에서는 실수를 범한 사람은
누구든지 목숨으로 보상해야 돼.
나도 언젠가 실수를 하는 날에는 단단한 보상을 받게되겠지.}
그의 단호한 말에 팽노대는 소리없이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당신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쪽은 흰머리가 나기 전에 손을 떼고 싶다는 것이지.
실수를 범하기 전에 말이오.}
손님은 술의 향기를 음미하는 듯 코를 술잔에 가까이 했다.
{이번 일만 끝이 나면 나는 한가롭게 지낼 수 있지.
여전히 분주한 당신과는 다르게 말이오.
나에 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당신 뿐이지.
헌데 그것이 좋지 않단 말이다.}
그는 고개를 돌려 무감동한 시선으로 팽노대를 쳐다보았다.
일점의 감정도 들어있지 않은 그 냉혹무비한 시선은
흡사 냉혈의 독사의 그것과도 같았다.
그 눈빛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숱한 위기와 역경을 극복해온인마 팽조조차도
섬뜩한 오한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언제나 철두철미한 당신이
우리사이의 사업에 다른 사람을 끼어 넣다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실수였지. 내 자신의...!}
손님의 추궁에 팽노대는 힘없이 대답했다.
{정말 어리석은 짓이었지. 얼간이처럼 말이야.}
손님도 냉소하며 그의 의견에 동조했다.
{그랬네. 정말 내가 눈에 무어가 쒸웠던 게야!}
팽노대는 손님의 비난에 동의했다.
그 자신도 손님의 말대로라고믿고 있었다.
분명히 이 손님은 모든 것을 조사했을 것이다.
그는 어줍잖게 속이려고 해서 속일 수 있는
상대가 아닌 것이다.
*
팽노대도 이번 일의 사술에 또 하나의 고리인
월화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 무서운 인물이 알아차릴 것을 알고 있어야 했다.
팽노대가 월화를 도와준,
즉 비밀보장이란 면에 있어서범한 실수는
월화가 간절히 그를 필요로 했고
또 팽노대는 미처 모충의사건을 몰랐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같은 구차한 설명은 해봐야
오히려 자신의 실수를 더욱 커지게 할 뿐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 다른 방법으로 부딪쳐 봐야 한다.
{하여간 큰 일거리를 달라고 했던 것은 잊지 말게!
어쨌든 이번일은 자네에게도 좋은 기회였으며,
그것을 월화가 가져왔던 것이네.}
[그녀에게 돈을 주어셔 적당히 따돌릴 수도 있었소.]
하지만 손님은 팽노대의 어줍잖은 변명따위는 일소에 부쳐버렸다.
[당신의 그 노쇠한 머리가,
젊은 계집에 대한 추악한 욕정이
얼토당토 않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 것이오.]
손님의 신랄한 비판에
팽노대의 눈꼬리가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노부를 너무 몰아붙이지 말게나!
자네도 언젠가 실수를 범할 날이 있을 걸세.}
{아마 그런 일이 일어나기는 하겠지.}
손님은 냉랭히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피하려고 노력하지.
그 일을 위해서 산더미같이 많은 돈이 필요하고..!}
{그래서 어떻게 할 작정인가?}
팽노대는 불안한 표정으로 갼절히그를 응시했다
{월화와 만나서 이야기를 해볼 작정이오.
그리고 나서 상태를 살펴봐야지.}
{그녀를 해치지 말게.}
팽노대는 노기를 참으며 말했다.
{자네의 비밀이 드러날 정도가 아니면
목숨만은 살려 주도록 하게나.}
하지만 손님은 대답할 뜻이 없는 듯이 보였다.
그는 의자에 편안히 기대고 눈을 감았다.
무슨 생각에 잠긴 듯했 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윽고 그는 기댔던 의자에서 일어서면서 눈을 떴다.
{팽노대, 당신은 늙었소.}
손님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당신을 존경하오.
이 일에 월화라는 얼간이 창부를 끼여들게 했다는 것은
실로 유감이오.}
팽노대는 굴욕감에 앞서서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
어쨌든 이 승냥이같은 친구는
이 자리에서 자신을 죽이거나 할 작정은 아닌 것이다.
{그녀는 석무심이 협박에 어쩔수 없이 당신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오.
당신은 그녀의 썩어빠진 몸뚱아리에 혹해서
무림맹에 맛있는뼈다귀를 던져 주고 말았소.}
손님은 천천히 문 쪽으로 향했다.
{그녀를 어떻게 할지 지금은 모르겠소.
하지만 만일에 그녀가 나를 위험한 지경에 몰아넣는다면
내 나름의 방법으로 해결하겠소.}
단호한 그의 말에 실린 뜻은 너무도 분명했다.
이제까지 그래왔듯이 이 위험한 인물은
자신의 비밀을 지키기위해서는
어떤 냉혹한 짓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다.
팽노대는 손님이 나간 다음에도 잠시 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월화에게 위험을 알려 주고 싶었지만
결국 상대에 대한 공포가그에게 침묵을 명령했다.
날씨가 화창한 사월 어느날의 축시(丑時) 무렵,
관복(官服)을 입은 삼십대의 관인이 월화루에 들어섰다.
약간 마른 얼굴에 적당히 구레나룻을 기른 이 인물은
당삼관(唐三觀)이란 이름을 지닌
항주성 형부(刑部) 소속의 포리(捕吏)였다.
그는 이 며칠 동안 일어난 몇 건의 살인사건으로
골머리를 썩고있다.
거기에다 무림맹의 감찰전 소속 무림인들이
요근래 부쩍 눈에많이 뜨이고
월화루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정보를 접하자
곧 조사를 나온 것이었다.
월화루는 아침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당삼관은 이내 월화의 요염한 자태를 감상할 수 있었다.
전에도몇 번 그녀의 자태를 보기는 했어도
이렇게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었다.
사실 월화루의 술값은 다른 곳보다 곱절이나 비싸다.
평소라면형부 포리의 박봉 수준으로는
월화의 접대를 받는다는 것은 힘든일이었다.
당삼관은 내심 월화의 미색에 침을 꿀꺽 삼켰다.
오늘 따라 자신의 마누라가 그렇게 추물처럼 생각이 들 수 없었다.
{저를 보자고 하셨다는데 무슨 일이신가요?}
사내를 은근히 유혹하는 윤기도는 월화의 음성에
당삼관은 퍼뜩정신이 들었다.
{아... 별 것은 아닙니다.}
급히 대답을 하며 다시 한 번 그녀의 자태를 살폈다.
(염병할, 지독히 예쁘군.
이런 여인이라면 단 한 번 품고 죽는다해도 여한이 없겠다.)
내심 월화의 자태에 비몽사몽간을 헤매는 당삼관이었다.
*
산전수전 다 겪은 월화가 당삼관의 그같은 응큼한 속내를
못 알아챌 리 없다.
그녀의 표정에 일순 불쾌한 빛이 스쳤다.
평소라면 이런 작자는 상대조차도 않았을 월화였다.
하지만 그래도 상대는 관부의 인물이다.
게다가 일전 모충의 일로 인해 마음이 불안해진 그녀는
억지로좋은 얼굴을 꾸미며 당삼관에게 말했다.
{아시다 시피 아직 문을 열 시간이 아니라서...
별다른 용무가 없으시다면 돌아가 주세요.}
{그게 저... 월화루를 내놓았다는 소식을 듣고
혹시 부근의 건달들에게 협박이라도 당한 것이 아닌가 해서...}
당삼관은 비지땀을 흘리면서도
자신의 직분을 지키기 위해 무척애쓰고 있었다.
월화는 그런 당삼관의 모습에 한숨을 돌리며 억지로 웃었다.
{물론 그런 일은 없어요.}
월화는 웃음을 멈추고 차분히 말했다.
{제가 가게를 내놓은 것은 이 장사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예요.
그리고 개인 사정도 있고 해서...}
당삼관은 월화의 말에 충분히 공감을 가졌다.
종종 이런 일에 종사하는 기녀들 중에도
좋은 사내를 만나 화류계에서 벗어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저는 일이 있어서 들어가봐야겠어요.}
월화는 재빨리 몸을 돌리고 안으로 사라졌다.
당삼관은 이대로 돌아가기는 싫었지만
장본인은 사라졌으니 도리가 없었다.
집사가 몇 푼의 돈을 집어 주며 헤헤거리는 것을 뒤로 하고
당삼관은 월화루를 떠났다.
당삼관이 돌아가고 나자
월화는 깊은 한숨을 쉬며 고운 아미를찌푸렸다.
당삼관의 갑작스런 방문은
그녀의 긴장된 마음을 한층 더 고조시켰다.
당삼관이라는 이 인물에 대해서는 그녀도 들어서 알고 있다.
항주성 형부의 소속인 그는
치밀하면서도 끈덕진 면이 있는 인물이다.
몇 번인가 술좌석에서 그의 이름을 들은 적도 있었다.
비록 관직은 낮지만 무예가 높고 집념이 강한 탓에
항주성 일대의 녹림인들이 그를 사갈시(蛇蝎視)하고 있다는 것도...!
그녀는 지난 수 년 이래로 이렇게 긴장과 불안에 떨기는 처음이었다.
이런 저런 탓에 그녀는 그 날 오후에
월화루의 매입 건으로 찾아온 손님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밝은 등잔 불빛 아래 앉은 이 사나이는
햇빛에 그을린 듯 거무스름하면서도
살이 찐 듯한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몸에는 고급스런 비단천을 두르고 있고
아랫배까지 제법 튀어나온 그의 모습은
영락없이 제법 재력을 지닌 시골의 부자처럼 보였다.
{호호 어서 오세요 대인.}
월화는 요염한 미소를 띄우며 한껏 애교 어린 표정을 지었다.
자신을 청해성(靑海省)애서 온 상인이라고 밝힌
이방춘(李方春)이라는 이자는
월화의 자태에 넋을 빼앗겨 버렸는지
허둥지둥 몸둘 바를 몰라했다.
{허허! 정말 좋은 가게로군요.}
이방춘은 가게를 둘러보면서 들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저희 가게는 이곳 항주에서는
최고의 주루랍니다.}
월화는 요염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건물은 이 년 전에 새로 수리를 했고
기녀만도 칠십 명이나 돼요.
거기에 일꾼까지 합치면 고용인이 이백 명을 넘는답니다.}
{허어! 정말 굉장하군요.}
이방춘은 감탄했다는 듯이 말했다.
{정말 좋은 주루랍니다.
항주성에서 새로운 사업을 하기에는 더없이 적격이예요.}
월화의 자화자찬에 이방춘은 헤벌레 해져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 것 같소이다.
그런데 그동안 장사를 하신 영업 장부를 볼수 있을까요?}
{당연히 그래야죠.}
적극적인 이방춘의 자세에
월화는 기쁜 듯이 외치며 걸음을 돌렸다.
{저를 따라 오세요. 장부는 내실에 있답니다.}
그녀는 생글거리며 서둘러서 내실을 향했다.
(호호! 봉(鳳)이 제발로 굴러 들어왔구나.
보아하니 청해에서 제법 돈을 벌어
지금은 중원에서 새로운 사업을 하려는 것이겠지.
만일 흥정이 잘 안되면 내 몸으로라도 녹여버려야겠다!)
월화는 내심 뿌듯한 흥분을 누르며 내실로 들어갔다.
좀 무리한가격을 불러 협상이 잘 안되더라도
한번 자신의 몸을 안게 해주면만사형통일 것이다.
어떤 수를 쓰더라도 이 시골 졸부에게
골치덩이인 월화루를 떠넘겨야겠다고 다짐하는 월화였다.
*
월화는 이방춘을 자리에 앉게 하고는
자신의 비밀금고에서 몇권의 장부를 꺼냈다.
{이것이 지난 반 년 동안 매상을 기록한 장부예요.}
이방춘은 월화가 내민 장부를 건성으로 슬쩍슬쩍 훑어본 후
담담히 말했다.
{이것 말고도 또 다른 장부도 보여 주시겠소?}
월화의 눈에 의아로운 빛이 스쳤다.
{다른 것이라면...?}
{주루의 매상이 아닌 다른 것 말이오.}
이방춘의 목소리는 더 이상 대시진의 화려함에 들뜬
시골 졸부의 어수룩한 것이 아니었다.
낮으막하나 듣는 사람의 숨통을 조이는 듯한
섬뜩함이 배인 도살자(屠殺者)의 음성이었다.
이방춘의 그 표변(豹變)에 월화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사라졌다.
{무...무슨 말이예요?}
놀라 더듬거리던 월화는
잠자코 그녀를 쏘아오는 한쌍의 서늘한시선에
그만 심장이 오므라드는 느낌이 들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굶주린 야수의 눈빛이 이러할까?
한 점의 생기도 보이지 않는무심한 동공은
깊은 바다의 심연처럼 고요했다.
공포가 얼음덩어리처럼 목구멍을 메워오고
얼굴에도 그러한 흔적이 여실하게 드러났다.
그녀는 지난 몇 년동안 몇 가지 실용적인 무예를 수련해왔고,
웬만한 고수 정도는 흔적없이 살해할 수 있는
교묘한 수법을 시전할수 있었다.
하지만 이방춘이라는 이 사나이 앞에서는
그 모든 것이 전혀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 짧은 사이에도
그녀는 몇 번인가 살수를 시전하려고 생각을했지만
매번 사나이의 냉혹한 눈빛에
전신의 힘이 쭉 빠져 버리는것이었다.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표정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월화의 나약함이 얼굴에서 역력히 볼 수 있었다.
이방춘, 아니 월화 자신의 중개로 고용된
제사(第四)의 자객 담사(潭邪)는
이 여인을 살려둔다면
자신에게 막대한 위험이 닥쳐올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이런 여자를 다그쳐서 정보를 알아내기란 간단한 일이다.
{당...당신은 누구예요?}
월화는 얼어붙은 듯한 목구멍을 억지로 쥐어짜내어 물었다.
문득 담사의 입가에 특유의 서늘한 미소가 스쳤다.
조소하는 듯한, 아니 비웃는 듯한 회색의 미소였다.
{내가 한 말의 의미를 이미 알고 있을텐데...
그렇지 않소 루주}
한 순간 월화의 신형이 부르르 떨렸다.
{내가 당신의 수고로 화룡전장(火龍錢莊)으로부터
황금 오천 냥을 받은 사람이오.}
담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당... 당신이...?}
담사는 무표정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나에게 무엇을 원하는 것이예요?
내 역할은 당신을 그들에게 소개하는 것으로 끝났는데...!}
마치 무엇에 홀린 것처럼 말이 그녀의 목구멍에서 술술 흘러나왔다.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말하시오.}
담사는 의자에 앉으면서 말했다.
{세세한 부분까지 당신이 알고 있는 모두를!}
월화는 한참동안 열심히 지껄였다.
마치 말을 하므로써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나이를
쫓아낼 수 있다는 듯이,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정확히 이야기함으로써
자기에게 내려질판결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그녀는하나도 숨김없이 모두 말했다.
담사는 의자에 앉은 채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의 표정은 한점의 표정도 없었다.
월화는 상대방의 반응을 예측할 수 없었다.
다만 그녀가 추천한사람이
모두 사인(四人)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담사의 눈빛이 굳어졌다.
{네 사람?}
{그래요. 당신과 또 다른 세 사람이예요.}
그녀는 말을 계속했다.
{한 사람이 실패하더라도
남은 사람들이 계속 일을 할 수 있도록 그들은 계획한것이예요.
그들은 사중(四重)으로 확실히 손을 쓸것이예요.}
갑자기 그녀는 입을 다물고 경계하는 눈빛으로 담사를 노려보았다.
{내가 어쩌자고 이런 말을 당신에게 들려주고 있지요.}
월화는 불길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무래도 이 일에 관해서는
저보다도 당신이 더 상세히 알고있는 것 같은데...}
담사는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조금은 알고 있소. 그렇지만 당신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하여
모두 말해 주시오. 당신의 역할도...!}
{나는 단지 중간에서 소개를 했을 뿐...}
{계속하시오.}
담사의 이 말은 명령과 위협이 내포되어 있었다.
그녀가 문득 공포감이 다시 살아나고
말이 저절로 입에서 흘러나왔다.
*
월화의 말은 담사를 놀라게 했다
. 살인자는 혼자가 아니라 또 다른 세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모충의 입에서 이미 어느 정도의 정보가
무림맹으로 새어 나갔을 것이다.
갑자기 내실에는 침묵이 흘렀다.
월화의 말이 모두 끝이 난 것이었다.
{그것 뿐이오?}
담사가 물었다.
{그래요. 이제 내가 아는 것은 모두다 이야기를 했어요.}
월화의 손이 갑자기 말과 동시에 흔들렸다.
쉬이잇!
순간 비릿한 내음을 풍기는 붉은 연기와 더불어
녹색빛을 띤 세가닥의 강침(鋼針)이 쏘아왔다.
강침의 속도는 빛살처럼 빨랐다
. 게다가 월화와 담사의 거리는불과 반 장도 채 되지 않는데다
너무나 갑자기 일어난 살수였다.
누구라도 이 한수의 암수는 도저히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였다.
아니 월화는 그렇게 확신했다.
헌데 담사는 눈앞으로 날아드는 그 강침들을 보면서도 태연했다.
마치 무슨 일이 벌어진지도 모른다는 듯이...
그러나 월화가 던진 강침이 막 그의 얼굴에 박히려는 찰나였다.
콰당!
갑자기 담사의 몸은 앉아있던 의자와 함께 뒤로 벌렁 넘어지는것이 아닌가?
그로 인해 월화의 회심에 찬 살수는 허망하게 무위로 변해 버렸다.
파팍!
담사를 지나친 세자루의 강침은 창틀에 박혀버렸고,
그 직후 담사의 몸은 족제비처럼 날렵하게 튀어올라
월화의 시야로 확 달려들었다.
[크륵!]
들부들 떨리는 입술 사이로
헛바람이 새는 듯한 야릇한 소리가 빠져나왔다.
공포로 두눈을 부릅뜬 월화의 가녀린 목을
여자의 그것같이 새하얗고 긴 손가락이 틀어쥐고 있었다.
{홍살독연(紅煞毒煙)에 우모강침(牛毛鋼針)이라.
제법 수법은 좋았으나 암습이라면 내가 전문이지.}
담사는 냉혹하게 웃으며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무언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고
월화는 무슨 말을 하려는듯 핏기 바랜 입술을 벌렸지만
종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꺾었다.
숱한 사내를 유혹하여 진을 빼먹었던 탐스런 몸뚱이는
이제 다만 혼백이 떠난 고깃덩어리에 불과하게 되었다.
항주의 홍등가를 휘어잡고 있던 밤의 요화(妖花) 월화는
그렇게길지 않은 생을 마감하게 된 것이다.
담사는 추하게 무너져내린 월화의 시신을
아무렇게나 방구석에던져버렸다.
방금 한 사람의 생명을 뺏고도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표정도 없었다.
월화의 시신을 팽개친 그는 잠시 느릿하게 주위를 살펴보았다.
이어 그는 너무도 태연하게
내실의 구석구석을 세밀하게 살피기시작했다.
그런 그의 태도는 침착했다
. 흡사 자신의 안방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유가 있었다.
그는 월화의 비밀금고에 들어 있는 것을 가능한 많이 챙겼다.
부피와 무게가 나가는 금붙이나 보석들을 제외했는데도
황금으로 일만냥 가량의 전표가 담사의 수중에 들어왔다.
{위험을 가중시킨 대가로 받아두겠다.
또 이번 일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당분간 이곳의 일은 강도사건으로 꾸밀 필요도 있지.}
나지막히 독백하며 그는 적당히 내실을 어질렀다.
누가 봐도 강도가 들어와 월화를 목졸라 죽이고
돈을 훔쳐간 것으로 여길 것이다.
완전히 해야 할 일이 끝나자 담사는 허리를 쭉 세웠다.
잠시 동안 방 안을 다시 한 번 점검한 연후
그는 태연히 밖으로걸음을 옮겼다.
담사가 월화의 내실에서 가게로 나오자
월화루의 집사가 재빨리달려왔다.
{헤헤 안녕히 가십시오.}
담사는 인심 좋은 웃음을 지으며 태연히 밖으로 나갔다.
{표정으로 보아 흥정이 잘된 같은데...}
집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급히 내실로 달려갔다.
자신의 목줄이 달려 있는 월화루의 앞날이 궁금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계 속
|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 드립니다
ㅈㄷ
감사합니다
~♡♥♡~ 아싸,쵝오 항상 감사~♡♥♡~
즐감하고 갑니다.
즐독입니다
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