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6]
『개벽』 창간 100주년 기념
개벽사 이야기
-경성교구의 한 칸 반짜리 온돌방에서 창간하다.
심암 이동초_서울교구
1920년 6월 25일 창간한 『개벽』은 올해로
창간 100주년을 맞는다. 천도교인이라면
개벽잡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개벽지를 간행한 개벽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분은
별로 없어 보인다. 중앙총부에서 개벽 창간
100주년을 맞아 무슨 기념행사를 한다거나 또는
학술발표회를 개최하려는지 아직 공지하는 바가 없어
알 수가 없다. 중앙총부에서 기념행사를 갖지 못한다면
신인간에서라도 작은 행사를 기획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면서 신인간 지면을 통해 개벽사 터(址)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1920년 6월 8일 동아일보 등 일간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開闢』 창간을 알리는 광고를 실었다.
“신문조례에 의한 월간잡지 개벽, 본사에서 경영하는 언론잡지 개벽(언론, 학술, 문예, 종교)은 조선문화의 발전을 자부하고 처음으로 出世하였습니다. 조선은 이로부터 개벽이 됩니다. 개벽의 정신은 신조선의 정신이오 개벽의 생명은 신조선의 생명이외다. 시대를 乘하야 개벽을 당하는 근역(槿域) 2천만이시여 개벽을 맞으소서. 개벽을 사랑하소서. 6월 25일 창간, 매월 정기간행. 경성부 송현동 34번지 전화1104번”
1919년 9월 2일 천도교는 삼일운동으로 중앙총부 간부들이 대부분 검거되어 교단이 큰 위기에 처하게 되자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천도교청년교리강연부>를 설립되었다. 교리강연부에서는 편집부, 음악부, 체육부를 두고 그 첫 번째 활동사업으로 언론기관지를 발행하자는 중론에 일어나자 편집부(편술부)에서는 이두성, 이돈화 박달성 등이 잡지 간행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1919년 12월 천도교청년교리강연부 주최로 2백여 명이 참가하는 임시교리강습회를 개최하는데 이때 1920년 1월부터 월간잡지를 발행하기로 결의하였다. 제호는 박내홍의 제안에 따라 『開闢』으로 정하고 종류는 종교 학술 문예 잡조 등으로 지정하여 12월 20일 이두성(李斗星)의 명의로 당국에 출판허가원을 제출하여 이듬해 5월 22일에서야 신문지법에 의한 잡지로 『개벽』의 출판허가를 받았다. 그리고 박천군 출신의 청년회원 최종정(崔宗禎)과 변군항(邊君恒)이 기부한 재원으로 송현동 34번지 중앙총부의 북쪽 뒷집에 있는 경성교구(한성교구, 서울교구)의 한옥 한 칸 반짜리 온돌방을 빌려 개벽사 사무실로 정하고 이곳에서 『개벽』을 창간하였다.
기념관 앞에서 개벽사 직원 일동이 기념 촬영한 사진
이와 같이 『개벽』은 송현동 34번지 경성교구의 한 칸 반짜리 온돌방에서 창간하였고 이듬해 2월 28일에는 월보사 및 청년회와 함께 경운동에 신축된 중앙총부 본관 2층으로 옮겨왔다. 그 후 개벽사는 1925년 1월에는 신축된 <대신사출세백년기념관>으로 사무실을 옮겨와 붉은 벽돌에 <개벽사>간판을 붙이고 1층은 업무국으로, 2층은 편집국으로 사용하였다. (백년기념관은 1924년 6월에 착공하였으나 10월 28일 대신사탄신기념식은 공사 중인 상태로 거행하였으며 1925년 1월 27일에 준공하였다.)
1926년 개벽사는 백년기념관의 1층과 2층의 복도에 있는 사무실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여전히 공간이 부족하여 기념관 옆에 있는 손재기 집을 제본부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개벽사는 1926년 8월 『개벽』이 발행 금지를 당해 폐간된 이후에도 1934년 11월에는 개벽 속간을, 광복 후 1946년 1월에는 개벽 복간을 하는 등 한국전쟁 때까지 백년기념관에 사무실을 두었다. 그 후 1967년 12월 21일 제9차 임시전국대의원대회에서 보성사와 개벽사 복구문제를 토의하였고, 이듬해 1968년 3월에는 “개벽사 및 보성사 부활추진위원회”를 발족하기도 하였지만 실행되지 못하고 말았다.
이상과 같이 개벽사의 역사(터)를 살펴보면 1920년 창간 때부터 1921년 2월까지는 송현동에, 1921년 3월부터 1924년까지는 본관 2층에 있었고, 1925년부터 한국전쟁 때까지는 기념관에 있었다.
그런데 현재 중앙대교당과 15층짜리 수운회관 건물이 들어서 있는 경운동 88번지 경내로 들어오는 동쪽의 정문 양편에는 콘크리트 기둥이 세워져 있다. 중앙총부(또는 수운회관 입주업체)에서는 양쪽의 기둥 위에 세운 장대를 이용하여 각종 교회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을 걸어 놓고 있는데 홍보 효과가 얼마나 있는지는 몰라도 정문 밖에서 보면 현수막을 걸어 놓은 모습은 경내의 전경과는 잘 어울려 보이지는 않는다.
수운회관 정문에 붙어있는 <개벽사 터>
그리고 남쪽의 기둥에는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한국문인협회에서 현대문학 표징사업으로 <개벽사 터> 동판을 만들어 붙여 놓았다. 정문 기둥에 개벽사 터를 알리기 위한 표지판을 기둥에 부착한 것도 이상하지만 내용을 읽어보면 개벽사 터(유적지)에 관한 내용과는 거리가 멀게 생각된다. 1995년 동판을 부착할 때 외부기관인 한국문인협회에서 중앙총부의 승낙을 받아 부착한 것이겠지만 당시에 중앙총부는 어떤 심사 과정(현재 교서편찬위원회)을 거쳐서 승낙하였는지 좀더 신중한 검토를 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제 개벽 창간 100주년을 맞으면서 교단 차원에서 <개벽 100년의 역사>를 바로잡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