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 그곳에 가면 불거지와 쑤기미가 있다
장면 (1)
옛날 산자수명(山紫水明)하던 시절의 시골 동산 풀밭에는 어디를 가든지 그 불거지 혹은 부럭데기,
혹은 황우(黃牛)라고 부르는 왕방울 눈에 뿔 달린 초근(草根)을 사랑하는 동물이 있었으니,
사람들이 그 불거지를 참으로 사랑하고 애지중지함이라.
이는 그 불거지로 인해 얻는 유익이 쏠쏠한데다 또한 그 불거지가 핍절하던
그 시절의 동산 1호이고 보면 어찌 그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랴?
물론 때로는 우경으로 전답을 기경할 때야 입에 허연 거품이 나도록 초달을 하지만,
또 조석으로 군불 때어, 따뜻한 쇠죽으로 공양도 하고, 쉴 때도 있어 여물도 주고,
가려운 등도 등 긁개로 시원케 해주고, 가끔씩은 물 샤워도 시켜 주니
부릴 때 부리더라도 호강시킬 때 호강시키니 다 그게 누이 좋고,
매부 좋게 하려고 선심 쓰는 것인 줄 누가 모르랴 !
그 불거지가 21세기에 와서는 근골로 힘쓰는 일이 별로 없어서 할 수 없이
주인의 입을 즐겁게 하기 위해 소씨름판에 출두하던지 아니면 그 맛깔 나는 육미로 인해
도살의 날을 기다리며 그 왕방울을 이리 저리 데굴데굴 굴리며 호출을 받든지
여하튼 간에 이래저래 인간의 눈과 입과 골 밑창 기름을 위해
‘자기 몸을 죽여 사람 몸을 이루어야 할 판’이니 - 이를 일러 ‘살신성인’이라고
후세 사람들은 말을 막 비비꼴 대로 꼬더라. -
푸른 동산 실개천 흐르는 야트막한 동네 앞 풀밭에는 오늘도 방목하는
어진 불거지들이 한번씩 등에 붙은 파리를 긴 꼬리채로 쫓으면서 하릴없이 하오를 즐기고 있었다.
그 앞 실개천 바닥에는 송사리 떼들이 쫄쫄 거리며 물장난을 하고 있고,
그 위로 빛나는 햇살이 정오의 나른한 오수를 싣고 와서는 사람들에게 쏟아 부우니
여기저기서 인생들이 입이 째져라 하품을 하면서 길게 선잠을 자고 나서는
또 다른 불거지들에게 힐끗 힐끔 눈웃음을 주더라.
장면(2)
골짝 바람이 몰고 오다 풀어 놓은 해변의 자락에는 바다아낙네들이 부지런히 조개와 고동을 따고 있었다.
그랬다. 푸진 성찬의 허벅마다 온갖 먹을거리들은 풍성하여 갈고리와 갈퀴마다
걸리고 꿰어지는 것들은 늘 바다의 심장을 건드려 토해 놓는 푸진 해물이었다.
각종 해조류로 이름 붙여지는 바다의 식물도 꽤 괜찮은 수입원이요,
전대를 어느 정도 채워주는 넉넉한 해심의 또 다른 부산물이기도 했다.
그래도 바다에서는 무엇보다도 싱싱한 고기가 으뜸이었다.
그 중에서도 사지를 온전히 갖춘 사람으로 치면 용모가
준수한 고기들이 제값을 받고 사람들의 구미를 만족시켰다.
사실 이런 고기들은 제사상이나 주안상의 요긴한 밑반찬으로 등장하고
이런 것들이 오르기만 하면 젓가락들은 바쁘게 춤을 췄다.
그 수많은 어족 중에도 생긴 것은 조금 그렇다 치더라도 맛이
일품인 고기가 있었으니 바로 ‘쑤기미’라 이름 지어 부르는 고기이다.
그 많은 좋은 이름 다 놔 주고 하필이면 ‘쑤기미’라고 이름을 붙었을까?
그 이름의 내력과 유래는 그런대로 재미가 있으니 가관이다.
우선 생긴 외모부터가 우락부락하다는 것이다.
그 큰 입을 벌려서 하품이라도 하는 날에는 참으로 그 모습이 가관이라는 것이요,
널따란 꼬리지느러미로 이리 살래 저리 살래 흔들 때는
꼬리치는 요부(妖婦)나 탕녀(蕩女)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저 모빠상의 비계덩어리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이 어족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야말로 후안무치(厚顔無恥)요, 안하무인(眼下無人)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날선 등지느러미 부근의 가시나 입 근처의 가시로 쏜다고 해서 ‘쑤기미’라고 한다.
생긴 것은 좀 그래도 이 고기를 탕으로 해 먹으면 참으로 일품인 것은 누구나
그것을 먹고 맛을 평하는 대다수 사람들의 전언(傳言)이다.
자기 몸을 따끈 따근 데워 사람들의 구미에 맞춰 영양보충을 해 주는
그야말로 식당의 풍운아요, 기린아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참으로 얼큰한 아침 해장술의 감초(甘草)요,
쓸쓸한 입맛을 돋우어 주는 저녁 주안상의 별미이고 보면 누가
이 ‘쑤기미’의 살아생전의 모습만 보고 악평을 하리요.
원래 어두육미라고 했고, ‘못생겨도 맛은 좋아’라는 조어(造語)가 생긴 것이 다 이런 연유이고 보면,
앞으로 ‘쑤기미’의 활약상은 두고두고 기대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우리 ‘쑤기미’ ~ 파이팅 !
사실 산들산들 불어오는 해풍(海風)이 가르마를 타는 그 곳에 가면
별유천지 비인간 같은 선경과 무릉도원이 펼쳐지고
기암괴석과 울울창창한 노송이 떼를 지어 군락을 형성하고 있으며
벌건 속살을 내놓고 ‘날 잡아 가소’ 하는
멍게와 개불이 연신 물을 찍찍 쏴대고 온 몸을 비비꼬고 있고,
허연 맛살로 둘이 먹다 하나 까무러쳐도 모를 천하 진미 굴은
클레오파트라와 시이저의 로맨스를 더욱 실감나게 들려주고 있으니,
아 장하도다. 풍광이 빼어나고 맛이 기차게 어우러진 이 빼어난 고장에서 불거지가 들려주는 옛 이야기 하나,
‘쑤기미’가 노래하는 비릿한 바다냄새 이야기
둘, 전설처럼 만들어져 신화처럼 이어져 가고 있었으니 다 오고가는 풍문들,
바람소리, 들 소리, 바닷바람 소리들이 지어낸 뜬 구름 같은 이야기이라. gaeg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