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하는 자
본문: 창세기 39:20∼23
한 젊은 육상 선수가 올림픽에서 명성을 얻은 뒤 성공을 거둔 소감을 말하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발을 내딛는 순간마다 나와 함께 달려주셨기 때문에 제가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스포츠 해설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하나님께서 오늘 당신이 이기도록 도우셨다는 말은 아니지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젊은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았더라면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설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훈련하는 데 필요한 준비도 못했을 것이고,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최고가 되어야 할 필요성도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달려 주셨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오늘 경기에서 이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믿음의 고백입니까? 우리는 너무도 자주 매일의 삶 가운데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단순한 사실에서부터 지금껏 살아온 하루하루 삶의 기적, 그리고 우리가 가진 재능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과 이 세상 속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계신 그분을 인정할 때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동행해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안심할 수 있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
성경은 아름다운 동행자에 대한 얘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동행이란 단어 때문에 유명한 이가 에녹입니다. 에녹은 성경에서 아주 짧게 기록돼 있는데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동행이라는 말 때문에 에녹은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고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동행할 수 있는 분 가운데서 가장 좋은 분이 있습니다. 그분과 동행하면 분명히 복을 받습니다. 그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하나님과 에녹의 동행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에녹에 대한 기록에서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특징이 눈에 띕니다. 에녹의 죽음에 대한 표현입니다. 성경은 에녹이 죽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5장의 에녹이 포함된 족보에서 누가 누구를 낳고 몇 살까지 살다가 죽었다는 표현이 공통적이었지만 에녹은 예외였습니다. 에녹의 죽음을 말할 때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에녹을 너무너무 좋아하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데려가셨던 건 아닐까요?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할 수만 있으면 사랑 받는 자가 됩시다. 그러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경우라면 성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은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만큼 사람은 고독과 외로움에 약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함을 알고 돕는 배필 하와를 창조하셨습니다(창 2:18). 그것도 모자라 주님께서는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들입니다. 이것처럼 우리에게 큰 위로를 주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이것만 확실하다면 우리는 현재의 어떤 고난도 잘 견딜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는 어떤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첫째, 고난이 찾아와도 성실할 수 있습니다. 요셉에게 찾아온 고난은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오히려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노력하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처지에 대해 불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호와를 신뢰하며 선을 행하였습니다(시 37:3).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혔지만 그들은 불평하지 않습니다. 성실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그리고 복음을 증거합니다(행 16장). 이 삶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의 삶입니다. 오늘 나는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을 불평하지 않고 나에게 주어진 일에 대하여 성실히 일을 합니까? 우리의 한계를 인정합시다. 고난과 역경은 성실한 우리의 신앙적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없애주실 줄 믿습니다.
둘째, 모든 일이 형통합니다(23절). '형통케'의 히브리어 '짜라흐'의 뜻은 '번영케 하셨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실한 요셉과 동행하자 요셉의 모든 일이 번영케 되었다는 뜻입니다. 모든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삶에 축복을 주실 수도 그리고 저주를 주실 수도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동행한다는 말은 요셉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 인생에 모든 일이 자꾸 꼬이고 제대로 되지 않을 때 제일 먼저 점검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와 동행하시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면 모든 일이 풀리고 열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동행하기를 거절하신다면 모든 일에서 실패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범사가 형통합니다.
셋째, 환난 중에도 신뢰를 받습니다(21절).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동행하시므로 주님의 은혜가 임하자 도저히 신뢰받지 못할 곳에서도 다른 사람의 신뢰를 받았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음으로써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심을 보여주었습니다(행 5:13). 이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신뢰를 준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람에게도 그의 성실한 모습이 좋은 영향력을 미칩니다. 하나님의 뜻은, 믿는 성도들이 삶의 현장에서 다른 사람의 신뢰를 받음으로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열방에 나타내기 원하십니다.
“교회는 수십 년 다녔지만 믿기 전에 비해 변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성품도 삶도 옛날 그대로입니다. 그러다보니 종종 가정은 지옥같이 느껴지고 교회 생활도 형식적이 되어버린 지 오랩니다. 물론 예수를 자발적으로 증거 해 본 경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교회에만 가면 모범 신자로 대접받다보니 저 자신의 이중성과 위선에 괴로움만 더해갑니다.”
어느 그리스도인의 고뇌에 찬 고백인데요. 이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깊은 고뇌 속에 빠지게 될 때, 그 때가 바로 성령의 격려하시는 음성을 듣는 때입니다. 또한 새롭게 일어서야 할 때이지요. 그리스도인이 이 같은 고뇌 속에 빠져 무력해지는 이유는 한 마디로 새로운 신분에 맞는 삶에서 너무나 멀어져 있기 때문이겠지요. 즉, 그리스도인의 제자로서의 삶보다는 과거의 습관대로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감당해야 할 세 가지 사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한 삶입니다. 아무리 말씀과 기도에 열심을 낸다 할지라도 그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사실은 그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는, 그래서 진정한 믿음의 소유자라고 볼 수 없겠지요.
둘째, 그리스도의 제자는 사랑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사랑을 받기 보다는 주는 삶을 살게 되는데 이것은 말씀에 대한 순종의 결과 받게 되는 선물인 성령의 열매이지요.
세 번째로, 그리스도의 제자는 사랑 중의 최고의 사랑은 복음으로 이웃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임을 깨닫고 자발적으로 복음의 증인으로 나서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게 합니다. 이처럼 말씀대로 순종해서 이웃을 사랑하고 그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는 삶, 이것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이것은 절대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이고 우리가 순종할 때 얻게 되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 성령과 동행하는 자의 삶은 매일 변화됩니다. 가정은 천국이 되고 교회 생활 역시 받는 은혜로 뜨거워집니다. 그 뿐입니까?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승리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원하시는 제자의 삶인 것이지요. 이 같은 충성된 제자들을 통해 오늘도 이 죄된 세상을 변화시키기를 우리 주님께서 얼마나 소망하시는지 모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정에 이런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가족과 이웃들과 동행하며 기쁨과 아름다움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기도: 언제나 나와 함께하시는 주님, 내게 있는 모든 일을 주님과 함께하기 원합니다. 그리하여 나를 통해 하나님이 증거되기 원하오니 주님의 생각을 분변하며 순종하게 하소서. 또한 주님이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자로 살게 하소서. 언제나 나와 함께 해주시는 하나님을 믿사오니 항상 흔들림 없는 임마누엘의 신앙 속에 살아가게 해주시옵소서.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하게 하옵소서. 주와 동행하며 어떤 환경에서도 그리스도인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주님과 날마다 동행하는 삶이 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나의 삶이 주님과 동행함으로 날마다 형통한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다
아내와 나는 교도소선교회 사역의 하나로 수감자들의 자녀에게 선물을 나눠 주는 ‘천사의 나무’ 행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우리가 선물을 전달하기 위해 어느 주택 단지로 들어섰을 때, 아홉 살쯤 돼 보이는 소년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 주었다. 나는 선물을 건네며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했다. 그리고 “이름이 뭐니?”라고 묻자, 소년은 ‘임마누엘’이라고 소개했다. 나는 “임마누엘이라고! 네 이름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니?”라면서 성경의 한 구절(마 1:23)을 읽어 주었다. 얼마 후에 소년의 엄마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소년은 엄마에게 달려가 꼭 껴안으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내 이름이 무슨 뜻인지 아세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뜻이에요!”
범죄가 들끓는 누추한 주택 단지에서 어린아이의 맑은 목소리가 울려 퍼지던 그 순간, 나는 성탄의 메시지가 새로이 선포되는 것을 들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역사에 들어오신 매우 특별한 방법으로 말이다. 그리고 이것을 전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어린아이들의 손을 잡고 임마누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신다는 메시지를 말해 줄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뿐이다.
「참으로 가벼운 세상 속에서의 진리」/ 찰스 콜슨
* 기도: 하나님의 음성 앞에 깨어 있게 하소서.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이 이해되지 않을 때에도 주님의 신실하심을 믿으며 순종하는 의인이 되게 하소서.
/생명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