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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진학해(續進學解)
어떤 대인된 선생이 개연(蓋然)히 삼대의 지치(至治)에 뜻을 두어 일찍이 스스로 말하여 이르되 삼대시대의 삼대시대가 되는 까닭은 상서학교(庠,序,學校)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의 정책은 우(禹),탕(湯),문(文).무(武) 시대의 문명을 밝혀 덕(德)의 향내를 지극히 하였다. 학교의 정책이 걸(傑),주(紂),유(幽),여왕(厲王) 때에 폐하여짐에 국가를 잃고 망하였으니, 하늘이 재주가 천하고 특별한자를 내려서가 아니고 교육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후세사람들이 삼대의 지치의 공효를 얻고자하나 학교의 정책으로써 아니 하면, 이는 오히려 방원(方圓)을 만들고자 하면서 규구(規矩)를 버린 것과 같은 것이다. 나는 오늘날에 뜻을 얻지 못하였으나 국가가 학교의 흥학정책(興學政策)을 시행하지 않고 놓아버리고, 감히 우리선비들에게 시행하지 않을 것인가? 나는 이에 선각자들에게 종용(從容)하여 물어 말하되, 이른바 학문의 길이란 것이 어떤 것이리오. 선생께서 답하여 말하되 학자가 학자 되는 까닭은 학(學)이란 어떤 것인가? 학(學)이란 반드시 성인의 도에 이르러야 하는 것이니, 그대는 그 학문하는 도(道)를 아는가? 순제와 도척(盜跖)이 한 근원이고 만물들과 내가 한 이치인데, 그대가 어찌 다 알겠는가? 하늘이 준재를 내린다고 이같이 내가 곧 다 말할까 싶다.
대저 하늘이 물건들을 낸 것이 많지 않은 것이 아니니, 날개로 나르는 짐승과 발굽으로 뛰는 짐승이 있고, 비늘로 잠수하는 어류가 있다. 사람의 형상으로 짐승같이 행하는 자가 있고 공중으로 높이 솟은 수목처럼 함께 선자도 있으니, 이 모두는 하늘이 생한 물건이 아닌 것이 없는데, 유독 인간만이 가장 신령한 것은 어찌 그 학문이 있어서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사람이면서 학문하지 아니 한자는, 어찌 금수나 이적(夷狄)의 무리들과 한 가지가 아닐 것인가? 모두가 하늘이 생한 물건인데, 기질과 품성이 치우치고 막힌 것으로 된 물건들이다. 순수하고 온전한 사람으로서 도리어 편색(偏塞)한 물건들과 동류가 되니, 이는 나의 부끄러움이 되는 이유이다. 비록 그러나 편색(偏塞)한 물건들을 다 논하기에는 부족하다. 사람으로서 말하면 천지의 이치를 받아 성(性)이 되고 천지의 기운을 받아 才子(재주)가 되니, 성(性)은 물건마다 선하지 않은 것이 없고, 재주(才子)에는 아름답고 추(醜)한 것의 다름이 있으니, 이는 사람에게 생이지지(生而知之)한자와 학이지지(學而知之), 곤이지지(困而知之)한자의 세 등급이 있는 까닭이다.
재주가 비록 세 등급이 있으나 성(性)은 불선함이 없으므로 진실로 자포자기하지 않고 그 제주와 바탕을 잘 변화시키면, 누구인들 요제 순제가 될 수 없을 것인가. 그 재주와 바탕을 변화시키는 것은 배움에 있는 것이 아닌가. 머리를 곧게 하고 눈과 용모를 단정히 하는 것은 그 몸을 변화시키는 것이고, 곧으면서도 온화하고 너그러우면서도 엄숙한 것은, 기운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모두가 부여받은 성(性)으로서 성인에 이르지 못한 것은 기품에 얽매어 그러한 것이다. 이제 이미 그 기질을 변화시키면 성인의 도를 어찌 먼 곳에서만 구해야 하는가? 이것이 내가 말한 순제와 도척(盜跖)이 한 근원이라는 것이니, 학문은 성인에 이르는 길이다.
말을 마치기 전에 또 묻는 자가 있어 말하되 모두에게 있다는 이 성이라는 것이 무슨 성질인지 알지 못한다 하였다. 선생께서 답하여 말하되 하늘이 음양과 오행으로써 만물을 화생(化生)하니, 사람이 이 기운을 받아 나면,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성(性)이 되는 것이다. 본체의 체(體) 된 것을 성(性)이라 하고, 본체의 용(用) 된 것을 정(情)이라 하니, 중용(中庸)에서 그 성(性)과 정(情)을 통섭(統攝)하는 것을 마음(心)이라 하니, 아직 발(發)하지 아니한 것을 중(中)이라 하고, 이미 발(發)한 것을 화(和)라 한다. 이를 믿는 것을 신(信)이라 말하고, 이를 공경(恭敬)하는 자를 경(敬)이라 말하니, 이것을 지켜서 잠시도 그침이 없는 것을 성(誠)이라 말한다. 하늘이 충(衷)을 내렸다 하는 강(降)이 바로 이것이요, 성인께서 만민을 교화하신 교(敎)가 바로 이것이요, 생민하심에 병이(秉彛)를 내리신 병(秉)이 이것이요, 배워서 때로 익힌다 하는 습(習)이 바로 이것이니, 학자가 학문하는 도에 어찌 오직 성(誠)과 경(敬)이 귀하다고 하지 않겠는가?
아! 사람이 나서는 고요해야하고, 담박(澹泊)하고, 욕심이 없는 것, 이것이 성인이 주장하는 정(靜)인 것이다. 형체가 이미 생겨나면 형체가 외물과 감촉하여 그 마음이 움직일 것이니, 그 마음이 움직여서 칠정(七情)이 발출되고, 정(情)은 이미 탕진되고 성(性)은 끊기게 된다. 전(前)에 물욕에 이끌리어 마음이 혼미하고 가려져서, 망연히 알지 못하고 막연부지(漠然不知)하여 깨닫지 못하니, 참으로 애통하도다. 그러나 천리는 민멸되지 않아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진 것에 출척(怵惕,惻隱)해 했다면 이는 본연의 밝은 마음이 있음으로서 발현된 것이다. 그 발현된 마음으로 인하여 그것을 확충하면, 이는 어두운 것이 깨달아진 것과 같은 것이다.
탕진한 가운데서도 그 정(情)을 다잡아서 마음에 합하게 하여 그 산만한 마음을 수습한 뒤에 마음에 고요함을 주장하게하고 그 성(性)을 깎고 다듬은 뒤에 길러서 그 싹을 기르고, 담연(澹然)하여 욕심을 줄이고, 욕심을 줄이고 또 줄여서 욕심이 전무한데까지 이르면, 존심양성(存心養性)의 도가 거의 지극하게 될 것이리라.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잊지 말고, 부지런 부지런히 하여 게으름 피지 아니하며 앉을 곳에 앉고 설만한 곳에 서며, 서있으나 수레에 타나 충신독경(忠信篤敬)의 자세를 잃지 아니하고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경계하여, 날마다 세 가지로 성찰하고 부지런히 힘써 유연하게 하여 성인의 반열에 이를 것을 기약한다면, 이는 복희(伏羲)와 문왕(文王)이 회복했다고 말하는 것과 부자께서 말씀하신 성공은 한가지인 것이다.(性者 反之) 탕(湯).무(武)가 反之한 이유(理由)와 안자(顔子) 증자께서 극기복례(克己復禮)한 방법은 학문하는 자들의 으뜸으로 삼는 것이다. 그들도 장부요 나 또한 장부이니, 그것을 희망한다는 것은 옳은 일이나 어찌 성인은 본래 생이지지자(生而知之者)라고 말할 수 있으나 학문하지 아니하고서 이를 수 있으리오?
저으기 한스러운 것은 대저 자포(自暴)자는 그것을 거부하고 믿으려하지 않는 자이고, 자기(自棄)한자는 그것을 아애 끊어버리고 하지 않으니, 사람의 형상을 지니고 사람의 행실을 못하여 금수의 행동을 보이게 되면, 모두가 그 추잡함을 알게 되고, 그것은 그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본 것은 알지 못하나, 역시 자기의 금수 됨을 본 것과 같으니 심히 애통하도다. 비록 그러나 이 같은 사람은 모두가 내형제의 전연(顚連:가난하고 의지할 곳이 없음)을 깨닫지 못한 자이다.
내가 그 형제의 전연(顚連)을 보고 구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뿐만 아니라 사람으로 살면서 그래서야 앞에 말한 나르는 새들과 달리는 짐승과 잠수하는 고기들은 모두가 하늘이 낸 물건들이라면, 이 또한 나와 함께할 수 있는 자들이니, 어찌 그들로 하여금 함께하고자 아니하는가? 이는 군자의 학문으로 시작은 반드시 자기를 이룬 것으로 말미암고 마침은 반드시 물(他人)을 이룸에 귀착되는 것이다.
격물치지(格物致知)로 말미암아 성의정심(誠意正心)에 이르고, 수신으로 말미암아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에 이르니, 아는 것은 반드시 행하고 행함에는 반드시 그 정사(政事)를 위한 위를 얻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삼대의 시기에 선각자는 이로써 교화하였고, 아직 알지 못한 자는 이로써 배웠다. 군에는 상(庠)이 있고 나라에는 국학(國學)이 있어서, 집집마다 봉작(封爵)할만한 습속이 있었으되, 성인의 말씀이 멀고 인멸되니 어찌하랴. 성경현전(聖經賢傳)이 쇠잔하고, 교육이 해이하여 그 근본에 힘쓰지 아니하고, 한갓 기예만 일삼았다. 기본을 익히지 아니하고 먼저 오언시를 배우며 대학의 도를 듣지 아니하고 한갓 훈고(訓詁)의 학풍을 받아 성현의 말씀을 사장학(詞章學)에 이용하고, 그 종지(宗旨)를 궁구(窮究)하지 않아 성경현전(聖經賢傳)의 글을 입이나 귀로만 익혀서 마음에 체득하지 못하니, 이는 궤짝을 사두니 보물이 돌아온다는 말과 같아서, 나는 그것이 옳은 일인지 알지 못하겠다.
아! 유가의 학문이 이에 한번 이르렀으니, 공맹으로 하여금 세상에 나게 하심은, 어찌 공자의 서서(棲棲)와 맹자의 호변(好辯) 하는 일에 그치겠는가. 말이 이에 이르렀으니 이 또한 다행한 일이다. 무릇 지금의 학자가 어찌 학문하는 도의 방법을 안다고 하리오. 학문한다면서 학문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면, 나는 그 학문한다는 것이 무슨 학문인지 알지 못하겠다.
후진의 선비들로 하여금 나의 말을 다할 수 있는 자가 있다면, 비록 성인이 되기에 무난할 것이나 미진한 것이 있다면, 또한 군자의 허물된 것을 돌아보게 함을 놓치지 아니하여, 학문에 정진하게 하면 무슨 어려움이 있으리오. 선생의 말은 여기서 그치니 제자들은 듣고 그것을 공부하여, 마침내 그것을 깨닫게 되기를 바라노라.
* 1) 孟子ㅣ 曰自暴者는 不可與有言也ㅣ오 自棄者는 不可與有爲也ㅣ니 言非禮義를 謂之自暴也ㅣ오 吾身不能居仁由義를 謂之自棄也ㅣ니라:離婁上 10章 맹자 가라사대 스스로 해롭게 하는 자는 가히 더불어 말을 두지 못할 것이오, 스스로 버리는 자는 가히 더불어 하옴을 두지 못할지니, 말함에 예의를 비방함을 ‘자포’라 이르고, 내 몸이 능히 인과 다못 의에 거하지 못한다 함을 ‘자기’라 이르느니라. : 2) 莫切於九容(막절어구용) : 아홉가지 태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進學益智 足容重 手容恭 目容端 口容止 聲容靜 頭容直 氣容肅 色容莊:구용擊蒙要訣 / 학문을 깊게 하고 지혜를 더하는 것 발의 용모는 무겁게 움직여야 함. 손의 용모는 공손해야 함. 눈의 용모는 단정해야 함. 입의 용모는 신중하게 가짐 소리의 용모는 조용하게 해야 함 머리 모양은 똑바로 가져야 함 숨소리의 용태는 정숙히 가져야 함. 얼굴의 용모는 장엄하게 가져야 함. 3) “帝曰 夔아 命汝하야 典樂하노니 敎冑子호대 直而溫하며 寬而栗하며 剛而無虐하며 簡而無傲케 호리니 詩는 言志오 歌는 永言이요 聲은 依永이오 律은 和聲하나니 八音이 克諧하야 無相奪倫이라사 神人以和하리라” :舜典24章 순임금이 이르시기를, 기야! 네게 전악을 명하노니 장자(長子 : 경대부의 適者)들을 가르치되 곧으면서도 온화하며 너그러우면서도 엄하며 굳세면서도 사납지 아니하며 간략하면서도 거만하지 않도록 하라. 詩는 뜻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고, 歌는 말을 늘임(장단)을 이르고, 聲은 늘임에 의지하는 것이고(즉 고저청탁), 律은 소리를 화합함을 이르니, 여덟 가지 음이 능히 어울리어 서로 해치거나 질서를 잃음이 없게 해야만 신명과 사람이 화합하리라. 4) 喜怒哀樂之未發을 謂之中이요 發而皆中節을 謂之和ㅣ니 中也者는 天下之大本也ㅣ오 和也者는 天下之達道也ㅣ니라 :中庸1章 희노애락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을 때를 中이라 이르고 나타났지만 節에 맞게 함을 和라 하니 中이라 하는 것은 천하의 큰 근본이요 和라는 것은 천하의 통한 道이니라(모두가 가야 할 길이니라) 5) 王歸自克夏하시고 至于亳하사 誕誥萬方하시다. 王曰: 嗟아! 爾萬方有衆이여! 明聽予一人誥하라. 惟皇上帝이 降衷于下民하사 若惟恒性하시니 克綏厥猷면 惟后니라. 湯告3章 임금님께서는 하나라를 정복하고 돌아오셔 박(亳)땅에 이르러 온 세상에 크게 고하시었다. 임금님이 말씀하시기를, “아아! 그대들 온 세상 백성들이여! 나 한 사람의 말을 밝게 들어주오. 위대한 하느님께서 낮은 백성들에게 올바름을 내리시어 언제나 올바른 성품을 가진 사람을 따르도록 하셨으니, 그분의 길을 따를 수 있다면, 임금 노릇을 제대로 할 것이요.” 6) 或有問於予曰 詩는 何爲而作也ㅣ오 予ㅣ 應之曰 人生而靜은 天之性也ㅣ오 感於物而動은 性之欲也ㅣ라 : 詩經序 혹자가 나에게 묻는 이가 있어 가로되 시는 어찌해서 지었는고? 내 응하여 가로대 사람이 나서 고요함은 하늘의 성품이오, 물건에 느끼어 움직임(감동함)은 성품의 욕심이라. 7) 不以三者衒之則民不知所慕 澹然無欲 雖有智者無所用巧矣 卽因三者之自然 而不尙不貴不見 所謂爲 無爲也 이세가지를 자랑치 아니하면 백성이 어디 치우치게 정 붙일 데를 몰라 담백해진다. 그렇게 욕심이 없어지면 비록 간괴한 자라도 그 재주를 쓸데가 없을 것이다 곧 이 세 가지가 온 곳은(*因) 자연이라서 높일 것도 아니고 귀하게 여길 것도 아니고 눈에 띄게 틔는 것도 아니니 이를 일러 하염없음이라 할 것이다.(*하염없음이 한다, 또는 제절로 그렇게된다{되는 것이라} 할 것이다). 8) 程子ㅣ 曰學以至乎聖人之道也ㅣ니라 學之道는 奈何오 曰天地儲精에 得五行之秀者ㅣ 爲人이니 其本也에 眞而精하고 其未發也에 五性이 具焉하니 曰仁義禮智信이오 形旣生矣에 外物이 觸其形而動於中矣니 其中이 動而七情이 出焉하니 曰喜怒哀懼愛惡欲이라 情旣熾而益蕩하면 其性이 鑿矣라 故로 學者는 約其情하야 使合於中하고 正其心하야 養其性而已라 然이나 必先明諸心하야 知所往然後에 力行以求至焉이니라 :雍也 2章 註 정자 가라사대 배워서 써 성인의 도에 이름이니라. 배우는 도는 어떠한 것입니까? 가라사대 천지가 정기를 저장함에 오행의 빼어난 것을 얻은 것이 사람이 되니 그 근본에는 참되어 고요하고, 그 발하지 아니함에는 오성이 갖추어졌으니 가로대 인의예지신이고, 형체가 이미 나옴에 바깥 물건이 그 형체에 접촉되어 속에서 움직이니 그 중이 움직여 칠정이 나오니 가로대 희노애구애오욕이라. 정이 너무 극성하여 더욱 방탕하면 그 성질(본성)이 파헤쳐지느니라(포악해지느니라). 그러므로 깨닫는 자는 그 (칠)정을 간략히 하여 중에 합하게 하고, 그 마음을 바르게 하여 그 성품을 기를 뿐이니라. 그러나 반드시 먼저 저 마음을 밝혀서 가는 바를 안 연후에 힘써 행해서 써 이름을 구하느니라. 9) 立則見其參於前也ㅣ오 在輿則見其倚於衡也ㅣ니 夫然後行이니라 서면 그 앞에 참여함을 보고, 수레에 있으면 그 멍에에 의지함을 볼지니 무릇 그런 연후에 행할 지니라. :衛靈公5章 註): 其者는 指忠信篤敬而言이라 參은 讀如毋往參焉之參이니 言與我相參也ㅣ라 衡은 軛也ㅣ라 言其於忠信篤敬에 念念不忘하며 隨其所在에 常若有見하야 雖欲頃刻離之라도 而不可得然後에 一言一行이 自然不離於忠信篤敬하여야 而蠻貊도 可行也ㅣ라 其라는 것은 충신독경을 가리켜 말함이라. 참은 (『曲禮』에 나오는) 毋往參焉의 참과 같으니 나와 더불어 서로 참여함을 말함이라. 형은 멍에라. 말하건대 그 충신독경에 늘 염두에 두고 잊지 아니하며 그 있는 바를 따라서 항상 보는 것 같아서 비록 잠깐이라도 떠나고자 하더라도 가히 얻지(떠나지) 못한 연후에 한 말과 한 행실이 자연히 충신독경에 떠나지 아니하여야 만맥도 가히 갈 수 있음이라. 10) 言有敎, 動有法, 晝有爲, 宵有得, 息有養, 瞬有存. :近思錄 [爲學088] 말에는 가르침이 있고, 행동에는 본받음이 있고, 낮에 할 것이 있고, 밤에 얻을 것이 있고, 숨쉼에도 길러짐이 있고, 깜빡거릴 때도 보존함이 있어야 한다. 11) 孟子ㅣ 曰堯舜은 性者也ㅣ오 湯武는 反之也ㅣ시니라 맹자 가라사대 요순은 성인 자요, 탕무는 돌이키셨느니라 : 진심장하 <제33장> ‘堯舜性者也 湯武反之也’는 정확히는 ‘堯舜性之者也 湯武反之者也’라고 써야 하는데 앞에서는 ‘之’를 빼고 뒤에서는 ‘者’를 뺐는데, 이러한 문체를 ‘互丈’이라 한다. 註) 性者는 得全於天하고 無所汚壞하야 不假修爲하니 聖之至也ㅣ오 反之者는 修爲以復其性하야 而至於聖人也ㅣ라 程子ㅣ 曰性之反之는 古未有此語러니 蓋自孟子發之하시니라 呂氏 曰無意而安行은 性也ㅣ오 有意利行而至於無意는 復性者也ㅣ라 堯舜은 不失其性이오 湯武는 善反其性이니 及其成功則一也ㅣ니라 성이라는 것은 하늘에서 온전함을 얻고 더럽히거나 무너짐이 없어서 닦고 함을 빌리지 아니하니 성인의 지극함이오, 돌이킨다는 것은 닦고 하여서 써 그 성을 회복하여 성인에 이르름이라. 정자(明道) 가라사대 ‘性之’와 ‘反之’는 옛날에 이러한 말이 있지 않더니 대개 맹자로부터 발명하심이라. 여씨(呂大臨) 가로대 뜻(의도)이 없이 편안히 행함은 성이오, 뜻이 있어 이롭게 행하여 뜻이 없음에 이르름은 성을 회복함이라. 요순은 그 성을 잃지 아니했고, 탕무는 그 성을 잘 돌이켰으니 그 성공에 미쳐서는 하나이니라. 12) 顔淵이 問仁한대 子ㅣ 曰克己復禮ㅣ 爲仁이니 一日克己復禮면 天下ㅣ 歸仁焉하나니 爲仁이 由己니 而由人乎哉아 :顔淵篇 1章 안연이 인을 여쭈온대 공자 가라사대 자기를 이기고 예를 회복함이 인이 되니 하루라도 몸을 이기고 예를 회복하면 천하가 인을 허여하나니 인을 함이 내 몸에서 말미암으니 다른 사람에게서 말미암으랴. 13) 成覵이 謂齊景公曰彼丈夫也ㅣ며 我丈夫也ㅣ니 吾何畏彼哉리오하며 顔淵이 曰舜何人也ㅣ며 予何人也오 有爲者ㅣ 亦若是라 하며 公明儀ㅣ 曰文王은 我師也ㅣ라 하시니 周公이 豈欺我哉시리오 하니이다 : 藤文公 1章 성견이 제경공에게 일러 가로대 저도 장부이며 나도 장부이니 내 어찌 저를 두려워 하리오 하며, 안연이 가로대 순임금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고, 하옴이 있는 자가 또한 이와 같다 하며, 공명의가 가로대 문왕은 내 스승이라 하시니 주공이 어찌 나를 속이시리오 하니이다. 14) 전연 顚連 :어려움을 당함 15) 大學 英祖大王 序文 : 大學之書에 有三綱焉하니 曰明明德 曰新民 曰止於至善也ㅣ오 有八條焉하니 曰格物 曰致知 曰誠意 曰正心 曰修身 曰齊家 曰治國 曰平天下也ㅣ라 次序井井하고 條理方方하야 其學問之道는 紫陽朱夫子序文에 詳備하니 以予蔑學으로 何敢加一辭리오마는 然이나 是書ㅣ 與中庸으로 相爲表裏하야 次序條理ㅣ 若是暸然而學者ㅣ 其猶書自書我自我면 可勝歎哉아 대학의 글에 세 가지 강령이 있으니 가로되 밝은 덕을 밝히는 것과 가로되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과 가로되 지극히 선한 데 그치는 것이요, 여덟 가지 조목이 있으니 가로되 사물에 이르는 것과 가로되 앎을 이루는 것과 가로되 뜻을 성실히 하는 것과 가로되 마음을 바로하는 것과 가로되 몸을 닦는 것과 가로되 집을 가지런히 하는 것과 가로되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가로되 천하를 평치하는 것이다. 차서가 정연(井然)하고 조리가 반듯하여 그 학문의 도는 자양 땅에 사는 주부자(주희)의 서문에 자세히 갖추었으니 내가 배움이 없으면서 어찌 감히 한 말씀을 덧붙이리오 마는, 그러나 이 글이 『중용』과 더불어 서로 표리가 되어서 차서와 조리가 이같이 밝은데 만약 배우는 자가 그 오히려 글은 글대로이고 나는 나대로이면 가히 어기어 탄식하랴(가히 탄식을 이겨낼 수 있으랴)! 蔑 : 없을 멸 暸 : 밝을 료 16) 古之學者爲己,其終至於成物。今之學者爲物,其終至於喪己。:近思錄 爲學 66 옛날에 학문하는 자는 수신을 하여 마침내 사물을 완성하나ㅡ 오늘날의 학문하는 자는 남에게 보이기 위하여하여 마침내 자기를 잃기까지 이른다. 誠者는 非自成己而已也ㅣ라 所以成物也ㅣ니 成己는 仁也ㅣ오 成物은 知也ㅣ니 性之德也ㅣ라 合內外之道也ㅣ니 故로 時措之宜也ㅣ니라 :중용 25장 성실하다는 것은 스스로 자기를 이룰 뿐만이 아니라 물건(남)을 이루는 바이니, 자기를 이루는 것은 인이요, 물건(남)을 이루는 것은 지혜니 성품의 덕이니라. 내외의 도를 합함이니 그러므로 때로 둠이 마땅하니라. 17) 謂孔子曰來하라 予ㅣ 與爾言호리라 曰懷其寶而迷其邦이 可謂仁乎아 曰不可하다 好從事而亟失時ㅣ 可謂知乎아 曰不可하다 日月이 逝矣라 歲不我與ㅣ니라 孔子ㅣ 曰諾다 吾將仕矣로리라 :陽貨 1章 공자에게 일러 가로대 오시오. 내가 그대와 더불어 말하리라. 가로대 그 보배를 품고 그 나라를 어지럽도록 함이 가히 인이라 하는가? 가라사대 옳지 않도다. 종사를 좋아하면서 자주 때를 잃음이 가히 지혜라 이르랴. 가로대 옳지 않다. 해와 달이 가니라. 세월이 나와 더불지 않느니라. 공자 가라사대 기다려주지 않느니라. 공자 가라사대 그렇다. 내 장차 벼슬하리라. 0. 棲棲 :거마를 어거하는 일, 0. 棲棲遑遑 : 쉴 틈도 없이 노심초사함, 세상을 바로잡기 위하여 仲尼는 棲棲했고 墨子는 遑遑했다는 말이 있음 0. 好辯:好辯客 변설로 남에게 이야기하기를 좋아함햇고 묵자는 0. 性者는 得全於天하고 無所汚壞하야 不假修爲하니 聖之至也ㅣ황황햇다는 말이오 反之者는 修爲以復其性하야 而至於聖人也ㅣ라 程子ㅣ 曰性之反之는 古未有此語러니 蓋自孟子發之하시니라 呂氏 曰 無意而安行은 性也ㅣ오 有意利行而至於無意는 復性者也ㅣ라 堯舜은 不失其性이오 湯武는 善反其性이니 及其成功則一也ㅣ니라 성이라는 것은 하늘에서 온전함을 얻고 더럽히거나 무너짐이 없어서 닦고 함을 빌리지 아니하니 성인의 지극함이오, 돌이킨다는 것은 닦고 하여서 써 그 성을 회복하여 성인에 이르름이라. 정자(明道) 가라사대 ‘性之’와 ‘反之’는 옛날에 이러한 말이 있지 않더니 대개 맹자로부터 발명하심이라. 여씨(呂大臨) 가로대 뜻(의도)이 없이 편안히 행함은 성이오, 뜻이 있어 이롭게 행하여 뜻이 없음에 이르름은 성을 회복함이라. 요순은 그 성을 잃지 아니했고, 탕무는 그 성을 잘 돌이켰으니 그 성공에 미쳐서는 하나이니라./盡心下33장 註 [論語注疏 陽貨]/。"(馬曰:"言孔子不仕,是懷寶也。知國不治而不為政,是迷邦也。")"好從事而亟失時,可謂知乎?"曰:"不可。"(孔曰:"言孔子棲棲好從事,而數不遇,失時,不得為有知。")"日月逝矣,歲不我與。"(馬曰:"年老,歲月已往,當急仕。")孔子曰:"諾,吾將仕矣。"(孔曰:"以順辭免。") 0. [小學]/(集說) 陳氏曰 明 明之也. 倫 人倫也. 凡百八章 진씨 말하기를 明은 밝음이고, 倫은 인륜이다. 모두 108장이다. 0. 孟子曰 設爲庠序學校하여 以敎之는 皆所以明人倫也라 하시니 稽聖經하며 訂賢傳하여 述此篇하여 以訓蒙士하노라. 맹자 말씀에 "상(庠) 서(序) 학(學) 교(校)를 설치하여 가르침은 모두 인륜을 밝히기 위함이다," 성경을 상고하고 현전을 바로 하여 이편을 짓고 어린 선비를 가르친다. 0. (集說) 朱子曰 庠 以養老爲義 序 以習射爲義 校 以敎民爲義 皆鄕學也 學 國學也 倫 序也 父子有親 君臣有義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 此 人之大倫也 庠序學校 皆以明此而已 吳氏曰 稽 考也 訂 平議也 주자 말씀에 庠은 노인 봉양함을 義로 삼고, 序는 활쏘기 익힘을 義로 삼고, 校는 백성 가르침을 의로 삼는데 모두 鄕學이다. 學은 국학이다. 倫은 序이니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이다. 이는 사람의 큰 윤리이다. 상, 서, 학, 교는 다 이를 밝히려는 것일 뿐이다. 오씨가 말하기를 稽는 고찰함이다. 訂은 平議이다. |
續 進學解
有大人先生。慨然有志於三代之治。而嘗自言曰。三代之所以爲三代者。以其有庠序學校之敎也。學校之政。明於禹湯文武。而至德馨香。學校之政。廢於桀 紂幽厲。而國家喪亡。非天之降才爾殊也。其所以敎之者然也。後世之欲效三代之治。而不以學校之政。是猶欲爲方圓。而舍其規矩者也。吾不得志於今世。而縱不以學校之政行之於國家。敢不施之於吾黨之士乎。吾於是從容於函丈之間而問曰。所謂學之之道。何如也。先生解之曰。學者之所以爲學者。學何事也。學必至於聖人之道也。子知其所以學之之道乎。舜跖同源。物我一理。子豈盡知之乎。吾將盡言之乎。夫天之生物。不爲不多。有翔而飛者。蹄而走者。鱗而潛者。有如人形而獸行者。有如參天而幷立者。此莫非天生之物。而獨謂人最靈者。豈非有其學乎。然則人而不學者。其不同於禽獸夷狄之類乎。均是天生之物。而氣稟之偏且塞者爲物也。以純全之人。而反類於偏塞之物。此吾之所以爲羞也。雖然。偏塞之物。不足論也。以人而言之。則受天地之理而以爲性。受天地之氣而以爲才。性無有不善。而才有美惡之殊焉。此人之所以生知,學知,困知之有三等也。才雖有三等。而性無有不善。故苟非暴棄。而變其才質。則孰不可以爲堯舜乎。變其才質。其不在於學乎。頭容直。目容端者。變其體也。直而溫。寬而慄者。變其氣也。 以均賦之性。而未至於聖者。拘於氣稟而然也。今旣變其氣質。則聖人之道。其可求之於遠乎。此吾之所謂舜跖同源。學而至聖人之道也。言未旣。又有問者曰。均有是性者。不知其何性也。先生解之曰。天以陰陽五行。化生萬物。人受是氣而生。則爲仁義禮智信之性焉。體之之謂性。用之之謂情。至於中而統其性情之謂心也。未發之謂中也。已發之謂和也。信此者。謂之信。敬此者。謂之敬。持此而無所間斷者。謂之誠。上帝降衷。降此者也。聖人敎萬民。敎此者也。生民秉彝。秉此者也。學而時習。習此者也。學之之道。其唯誠敬之爲貴乎。嗚呼。人生而靜。澹然無欲。此聖人之主靜者也。形旣生矣。則外物觸形。而動其中矣。其中動而七情出焉。情旣蕩而其性鑿焉。物欲引之於前。昏蔽之於中。茫然無知。漠然無覺。其可痛哉。然而天理未嘗泯滅焉。怵惕於孺子之入井。則此心本然之明有以發矣。因其發而擴充之。則是猶夢者之覺也。約其情於蕩淫之中。而使合於中。收其心於放散之後。而使主於靜。養其性於斧斤之餘。而長其萌蘖。澹然而寡欲。寡之又寡。以至於無。則存養之道。庶幾乎盡矣。而念念不忘。勤勤無怠。坐於斯。立於斯。參前倚衡。晝有爲。宵有警。日以三省。孜孜汩汩。期至于聖域。此羲文之所謂復。而夫子之所謂成功則一者也。湯武之所以反。顏曾之所以復。而是爲學者之所宗也。彼丈夫。我丈夫。希之則是。豈可謂聖本生知。非學所能至也。竊恨夫自暴者。拒之而不信。自棄者。絶之而不爲。得人之形。而無人之實。視禽獸之行。皆知其汚。而不自知其人之視己。亦猶己之視禽獸。甚可痛哉。雖然。若是之人。皆吾兄弟之顚連而不覺者也。吾見其兄弟之顚連。而不以濟之乎。非徒在人而然也。向所謂飛者走者潛者。皆是天生之物。則是亦吾與者 也。豈不欲使之咸若乎。此君子之學。始必自於成己。終必歸於成物。由格致而至於誠正。由修身而至於治平。知之而必行。行之而必得其政者也。此三代之時。先達者以是而敎焉。後進者以是而學焉。術有庠。國有學。有比屋可封之俗矣。柰何聖遠語堙。經殘敎弛。不務其本。而徒事末藝。未知甲乙。而先學五言。不聞大學之道。而徒受訓誥之學。以聖賢之言。用之於詞章。而不究其旨。以經傳之文。習之於口耳。而不體於心。是猶買櫝而還其珠。吾未知其可也。嗚呼。儒者之學。一至於此。使孔孟生於此世。則其勤豈止於棲棲好辯哉。言至於此。是亦幸矣。凡今之學者。其知所以學之之道乎。學之而不知其所以爲學之道。則吾不知其所學何學也。使後進之士。有能盡吾說者。則雖爲聖人無難。而有所未盡。則亦不失爲寡過之君子。其於進學。何難之有。先生之言止於是。弟子聞而文之。遂爲之解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