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번 ‘경제 이야기’ 강의를 진행하면서, 나는 주말이 두려울 정도로 약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내 꿈이 작가이긴 하지만, 머릿속에 든 생각을 그대로 남 앞에 펼쳐 보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새삼 느끼고 있다. 하물며 그게 소설이 아닌, 게다가 내 전공도 아닌 경제 이야기인 다음에야.^^
한 가지 걱정되는 게 있다면, 내가 기대했던 것의 절반만큼이라도 너희가 강의 내용을 따라와 주고 있겠는가 하는 점인데...^^;; 이해가 안 되고 있다면 그건 전적으로 내 문장력의 부족 때문일 것이니, 너희가 스스로를 자책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어렵더라도 끝까지 집중해서 읽다 보면, 그래도 뭔가 한두 개쯤은 얻어 걸리는 게 있을 것이다(약간의 여담이지만, 학생은 완벽주의를 버리는 게 중요하다. 공부하다 보면 모르는 게 생기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공부하면서 어려운 문제에 맞닥뜨릴 때마다 ‘나는 머리가 나쁜가봐.’하고 좌절하는 학생이 너무도 많다. 그게 바로 학생이라면 반드시 버려야 할 완벽주의다. 모르는 게 많은 게 정상인 거다. 그걸 질문을 통해 해결해 가는 게 학생이 할 일인 거고.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할 수밖에 없고, 모르는 걸 알게 되기까지는 커다란 인내심이 필요해진다. 그 인내심을 얼마만큼 발휘하느냐가 너희의 발전을 결정하는 것이다).
나는 지난 경제이야기 제3부에서 신자유주의가 국가의 시장 개입을 전면 거부하는 걸 목표로, 자본가들의 이익만을 위해 작동하는 독트린임을 이야기했었다. 오늘 다룰 ‘세계화’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한데, 신자유주의의 확대된 개념으로서 ‘자본가들에게 전 세계 경제를 자유롭게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한을 주기 위한 메커니즘’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제부터 그 표면을 덮고 있는 온갖 긍정적인 위장막을 걷어내고 섬뜩하기까지 한 세계화의 진짜 ‘생얼’을 들여다보기로 하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세계화란 것은 로스차일드를 비롯하여 전 세계 부(富)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또한 일루미나티의 핵심세력이기도 한) 유태계 거대 금융가들의 배만 불릴 뿐, 전 세계 모든 노동자와 농민들, 심지어는 정부들마저도 점점 더 가난해지도록 이끄는 파멸적인 메커니즘이다. 2차 대전 이후 북반구의 선진국이나 중진국들이 겉으로는 화려한 물질문명 속에서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사치를 일삼고 있지만, 속으로는 엄청난 나라빚이 쌓여 가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 소비만능주의의 노예가 되는 대가로, 우리는 휴일이나 밤잠도 잊은 채 열심히 노예노동을 해야 하는 신세로 전락한 지 이미 오래다. 소비하는 게 많으니 당연히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돈을 많이 벌려니까 가족과 함께 밥을 먹을 시간도 없고 충분한 잠을 잘 시간도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물론 그렇게 열심히 일해도 실제로 충분히 많은 돈을 벌고 있는 사람은 얼마 안 된다는 게 더 심각한 문제다).
1980년대만 해도 바쁘게 사는 게 미덕으로 칭송받았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건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어.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 죽어라 일만 해야 하는 걸까?’하는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오늘의 내 강의는 그런 여러분의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작은 빵 부스러기 한 줌 정도의 가치는 가질 것이다.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영화 <매트릭스>에 보면, AI의 지배를 받는 인류의 처참한 미래상이 그려진다. AI에 동력을 공급하기 위한 배터리 공장에 줄 나란히 꽂힌 채 가상 의식 속에서만 평생을 살다가 죽게 되는 인류의 모습에 많은 관객들이 큰 충격을 받았을 법도 한데, 지금 우리의 모습을 냉철히 돌아보면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학창 시절엔 살인적인 입시에 찌들어 공부만 하다가, 대학에 가서도 또 다시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한 피 터지는 써바이벌 매치를 벌여야 하는 우리나라의 경우는 특히 문제가 심각하다 하겠다. 세계에서 압도적인 자살률 1위(2위 국가와의 차이가 엄청나다.) 국가의 위상은 거저 얻어진 게 아니다. 또 설사 그 써바이벌 매치에서 살아남아 운 좋게 직장을 잡았다 해도 다른 나라에선 볼 수 없는 이상한 야근과 회식이 직장인들의 목을 죈다. 공(公)과 사(私)의 구분이 없고, 개인의 사생활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에 사는 것처럼 피곤한 일도 없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대로 인간으로서 최소한으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익마저도 박탈당한 채 살인적인 고강도 저임금의 노동을 강요받는다. 그래서 결론은 ‘대한민국 = 헬조선’이라는 등식이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산업혁명은 물론이지만,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정보혁명은 1970년대나 80년대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류를 바쁘게 만들었으며, 시간뿐만이 아니라 많은 일자리 또한 빼앗아가고 있다(그리고 더 심각한 문제는 이게 한계를 모르고 자꾸만 가속도가 붙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우리 일자리를 전부 다 빼앗으면, 수많은 실업자들을 어쩌겠다는 거지? 정부도 점점 가난해지고 있는데 무슨 수로 그들을 먹여 살릴 건가? 일루미나티가 세계 인구를 5억 정도로 줄이기 위한 대학살을 계획한다는 이야기는 그래서 설득력을 얻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 전 인류를 불안정한 미래로 인도하고 있는 ‘세계화’가 가능했던 것도 바로 이 정보혁명 때문이었음을 먼저 지적하고자 한다.
정보혁명은 분명 많은 장점을 갖는다. 이 점에 대해선 내가 굳이 길게 얘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인터넷 없는 세상을 이제 우리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 정보혁명은 또한 전 세계 투기자본에게 자유로운 이동통로를 제공함으로써 자본주의의 건전성을 크게 훼손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자국(自國) 금융시장을 개방한 대부분의 나라들은 언제라도 이 투기성 거대자본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도 1997년 외환위기 이후 IMF의 요구대로 무장 해제를 당하면서 뼈저리게 경험한 바 있다(물론 김영삼 정부가 현명했다면 IMF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한꺼번에 만기가 도래하더라도 충분히 다 갚을 수 있을 만큼만 돈을 빌렸다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데서 또 빚을 얻어서 돌려막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외환보유고를 초과하여 무리하게 돈을 빌렸는데, 추가로 대출해 줄 거라 기대했던 일본 은행들이 ‘더 이상은 안 빌려줘.’하고 거절하는 바람에 맞이했던 게 1997년 IMF사태인 것이다. 그리고 IMF에서 돈을 빌리는 대가로 우리나라는 철저하게 금융시장 개방을 단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인데, 덕분에 부실 기업과 은행은 물론이고 많은 우량 기업과 은행들마저도 해외 투기세력의 먹잇감이 되어야 했고 국민들은 고통에 허덕여야 했다. 그리고 그 고통은 IMF에서 빌린 돈을 다 갚는 걸로 끝난 게 아니라, 현재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대기업들은 핑계 김에 정규직을 줄이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관행을 정착시켰으며, 노동조합의 힘은 대폭 약화되어 노동자들의 권리가 보호받지 못하는 나라가 된 것이다. 물론 예전에도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노조 자체를 만들 수 없어 고통스럽긴 마찬가지였지만, 그 상황이 더욱 악화된 것이다. 정부 내부에는 신자유주의로 똘똘 뭉친 관료들만 득실거린다는 것도 문제다). (part 3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