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의 비암사(全義 碑岩寺)
세종시 관광
위치:세종특별자치시 연기군 전의면 다방리4
문화재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문화재청 자료를 인용한 것이므로 참작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전의 비암사는 조계종 제6교구 마곡사의 말사다. 국보 1점과 보물 2점,유형문화재 4점을 보유한
사찰로 문화재적 탐방의 가치가 있으나 심산유곡에 위치해 관객들의 발길이 뜸한 편이다.
<비암사 극락보전은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여덟 팔(八)자 모양인 화려한 팔작지붕집이다.
언제 지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조선 후기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양식의 건축물이다.
지붕을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이다. 내부에는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으며, 불상 위에 화려한 닫집을 마련하였다.
비암사< 碑岩寺 >는 통일신라< 統一新羅 > 말기< 末期 > 도선국사< 道詵國師 >가 창건< 創建 >한 사찰< 寺刹 >이라고 하나 확실한 연혁< 沿革 >을 알 수 없다. 극락보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집으로 조선< 朝鮮 > 후기< 後期 >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요소가 가미된 다포계< 多包系 > 건축물이다. 전내< 殿內 >에는 닫집(당가< 唐家 >)이 있고 매우 큰 아미타불좌상< 阿彌陀佛坐像 >이
안치되어 있다.> <문화재청 자료 인용>
비암사 전경
유형문화재 제3호:전의비암사3층석탑
극락보전 아미타 여래좌상
국보 제106호.계유명전씨아미타삼존석상:청주박물관 보관
<충청남도 연기군 비암사에서 발견된 이 삼존석상은 4각의 긴 돌 각 면에 불상과 글씨를 조각한 비상(碑像) 형태이다. 정면은 가장자리를 따라 테두리를 새기고, 그 안쪽을 한 단 낮게하여 아미타삼존상을 조각하였다. 커다란 연꽃 위의 사각형 대좌에 앉아 있는 본존불은 얼굴 부분이 갸름한 모습이며, 신체는 건장하면서 안정된 자세를 이루고 있다. 부처가 설법할 때의 손모양을 하고 있는 손은 비교적 크게 표현되어 삼국시대 이래의 전통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양 어깨를 감싼 옷은 사각형의 대좌(臺座)를 거의 덮고 있으며, 대좌 밑의 좌우에는 사자상을 배치하였다. 둥근 머리광배는 3줄의 동심원 안에 연꽃을 장식하고 있다.
사자 등위의 연꽃무늬 대좌 위에 서 있는 협시보살상은 본존불 쪽으로 몸을 약간 튼 자세로, 얼굴은 훼손이 심하여 알아볼 수 없으나 연꽃이 새겨진 둥근 머리광배가 남아 있다. 본존불과 협시보살의 어깨 사이에는 나한상이 얼굴만 내밀고 있으며, 협시보살상의 양 옆에는 인왕상이 서 있다. 불상 위로는 불꽃무늬가 새겨진 광배가 이중으로 있으며, 안쪽의 광배에는 5구의 작은 부처가 새겨져 있다. 광배 밖의 좌우 공간은 한층 더 낮추어 비천상을 새겼다.
양 측면의 하단에는 정면을 향하고 있는 용머리를 조각하고, 그 위로는 연꽃 위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을 표현하였다. 뒷면은 4단으로 나누어 각 단마다 5구씩의 작은 부처가 앉아 있는 모습을 조각하였으며, 불상 사이사이에 사람의 이름과 관직을 새겨 넣었다.
조각이 정교하면서도 장엄하고, 세부 양식에 있어서도 옛 형식을 남기고 있는 점이 계유명삼존천불비상(국보 제108호)과 비슷하며, 만든 연대는 삼국통일 직후인 문무왕 13년(673)으로 추정된다.
1960년 9월, 충남(忠南) 연기군(燕岐郡) 전동면(全東面) 다방리(多方里) 비암사(碑巖寺)에서 발견되었다. 장방형 4면석(面石) 각면에 불상과 명문(銘文)을 조각한 비상(碑像) 형식이다. 정면 양쪽에 둥근 기둥을 세워 감형(龕形)을 이룬 가운데에 테를 두어 명문을 각자(刻字)하고, 그 안에 아미타(阿彌陀) 삼존상(三尊像)이 양각되어 있다.
본존(本尊)은 얼굴이 다 부서졌으나 단판(單瓣) 복련(複蓮)의 수미좌(須彌座)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상으로 옷끝은 밑으로 내려 대좌의 반을 덮었고, 옷주름은 좌우대칭으로 표현되었으며, 통견(通肩)의 법의(法衣)를 비롯하여 습의(褶의) 사이에 연주가 곁들여져 있다. 수인(手印)은 설법인(說法印)에 삼도(三道)는 없는 듯하고, 머리에는 연화(蓮華)와 연주(聯珠)로 장식된 둥근 두광(頭光)이 있다.
본존 대좌 밑 좌우에는 안을 향하여 사자(獅子)를 배치하였는데, 바로 그 등 위치에 복련(複蓮) 위에 시립(侍立)한 협시보살(脇侍菩薩)이 있다. 보살상(菩薩像) 역시 얼굴은 모두 부서져 알아볼 수 없으나, 단판(單瓣) 연화(蓮華)가 있는 원광(圓光)이 있고, 목에는 가슴까지 늘어진 짧은 목걸이와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영락(瓔珞)이 걸쳐져 있다. 자세는 정면으로 꼿꼿이 서 있고, 천의(天衣)는 측면에서 길게 늘어져 연대(蓮臺)에 이르러 앞면에서 X자로 교차되었다.
본존과 협시(脇侍)의 어깨 사이에는 원광(圓光)이 있는 나한상(羅漢像)이 얼굴만 내밀고 있는데, 손상이 심하다. 협시상(脇侍像) 좌우에는 인왕상(仁王像)이 연대(蓮臺) 위에 시립(侍立)해 있는데, 반라(半裸)의 상반신에 짧은 목걸이와 아랫배에서 원반(圓盤)을 거쳐 교차되는 긴 목걸이가 걸쳐져 있다. 이 여러 상들 밑에는 단판(單瓣)의 큰 연판(蓮瓣) 9엽(葉)이 각출(刻出)되어 있는데, 이들은 모두 고조(高彫)되어 있다.
윗부분은 1단 낮게 보주형(寶珠形) 거신광(擧身光)이 2중으로 있어 안의 것은 삼존불(三尊佛)을 싸고 있다. 연주(聯珠)로 주상(周像)을 돌린 가운데에 화염(火焰) 속에 5구(軀)의 화불(化佛)이 있고, 밖에는 9구(軀)의 비천(飛天)이 있다. 상단(上端) 좌우 간지(間地)에는 한층 더 낮추어 인동문(忍冬文)과 탑(塔)을 받든 비천(飛天)을 4구(軀)씩 배치하였다.
두 측면에는 아래위 2단에 각각 2구(軀)씩 연경(蓮莖)으로 이어진 복련(複蓮) 위에 악기를 연주하는 낙천좌상(樂天坐像)이 있고, 하단(下端)에는 앞쪽을 향한 용두(龍頭)가 조각되었으며, 간지(間地)에 명문(銘文)이 각자(刻字)되어 있다.
뒷면은 4단을 이루고, 단마다 5구(軀)씩의 작은 좌불(座佛)이 안치되었으며, 간지(間地)에는 인명(人名)이 새겨져 있다. 바닥에 장방형의 촉이 있는 것을 보면, 따로 대석(臺石)이 마련되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 상의 조각은 정교(精巧) 세치(細緻)하며 장엄(莊嚴)을 다하였고, 세부양식에 있어서도 고식(古式)을 남기고 있는 점이 계유명삼존천불비상(癸酉銘三尊千佛碑像)(국보 제108호)과 비슷하다. 이러한 양식과 명문(銘文)에 의하여, 조성연대(造成年代)는 신라(新羅) 통일 직후 문무왕(文武王) 13년(673)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화재청 자료 인용>
보물 제367호:을축명아미타여래제불조살석상:청주박물관 보관
<기축명아미타불비상(己丑銘阿彌陀佛碑像)은 비암사에 있었던 3점의 비상(碑像) 가운데 하나이다. 배(舟) 모양의 큰 돌에 조각을 하였는데, 앞면에만 조각이 있고 뒷면에는 4줄의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다.
앞면에는 부처와 보살의 모습이 여러번 변하는 듯하여 마치 극락세계의 장면을 돌 위에 새긴 것과 같다. 맨 밑에는 연꽃을 둘러 석상 전체의 대석(臺石)으로 삼고 그 위에 난간과 계단을 놓았다. 그 위에는 물결무늬로 연못을 표현했고, 난간 좌우에는 사자를 서로 마주보게 배치했다. 연못 중앙에 큰 연꽃이 있고, 그 위에 본존인 아미타불이 앉아 있다. 좌우에는 서 있는 자세의 여러 불상이 나열되어 있어 엄격한 좌우대칭 수법을 따르고 있다. 크게 새긴 본존불의 옷은 양 어깨를 감싸고 있으며 오른손은 뚜렷하지 않으나 왼손은 가슴 아래에 들고 있다. 본존 좌우에는 보살상이 있고 그 사이에 열반의 경지에 이른 성자인 나한(羅漢)의 상반신만 표현하였다. 보살상 옆에는 사나운 귀신인 야차상(夜叉像)이 한손을 들어 천궁(天宮)을 받들고 있으며, 그 옆에는 수호신인 인왕상(仁王像)이 있다. 본존 위에는 반원 모양으로 5구의 작은 부처가 새겨졌고, 그 위에는 다시 7구의 작은 부처가 표현되어 있다. 이 불상들 사이에는 나뭇가지와 잎이 표현되었고, 구슬과 장신구가 새겨져 극락의 화려한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신라 신문왕 9년(689)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지며, 삼국시대 불상 요소와 새로 들어온 당나라 요소가 혼합된 통일신라 초기 불상양식의 좋은 예로 본존이 아미타불인 점으로 미루어 당시 신앙의 흐름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을 주고 있는 작품이다.
주형광배(舟形光背)와 같은 형태의 하나의 돌인데 조각은 오직 앞면에만 새겨졌고 뒷면에는 4줄의 명문(銘文)이 있을 뿐이다. 또 이 돌의 두께가 위로 올라갈수록 얇아지면서 곡면(曲面)을 이룬 것은, 이와 함께 비암사에서 발견된 2개 석상(石像)과 다른 점이다. 이 석상 또한 군상(群像)을 가득히 새겼는데 다른 것보다도 도상적(圖像的)인 모습을 지니어 1폭의 변상을 대하는 것과도 같다. 그것은 마치 아미타경(阿彌陀經)에 보이는 극락 세계의 장면을 그대로 돌 위에 부각시킨 것과 같다. 먼저 하단에는 단판(單瓣)의 연화좌가 돌려 있고 그 위에 난간과 보계(步階)가 만들어졌으며, 다시 그 위에는 연못이 있어 파상문(波狀文)으로 수면을 표현하였다. 난간 좌우에는 사자가 상대하고 있으며 보계의 좌우에는 연꽃 위에서 합장하는 화생(化生)을 새겼다. 바로 이 연못 중앙에서 큰 연꽃이 솟아났고 그 곳에서 갈라진 연화좌의 중앙에는 본존(本尊)이 앉았으며 좌우에는 직립한 여러 불상이 나열하고 있어, 엄격한 좌우 대칭의 수법을 따르고 있다. 중앙의 좌상은 유달리 크게 새겨졌는데 통견의(通肩衣)며 육계(肉계)가 있고 오른손은 또렷하지 않으나 왼손은 만(卍)자를 새긴 가슴 아래에 들고 있다. 본존 좌우의 보살상은 긴 몸에 본존과 같은 둥근 두광(頭光)을 가졌으며 보관과 장엄구를 세각(細刻)하였다. 그리고 이들 보살과 본존 사이에는 나한(羅漢) 각 1구의 상반신(上半身)만이 표현되었다. 다시 보살상 옆으로는 야차상(夜叉像) 각 1구가 한 손을 들어서 천궁(天宮)을 받들었으며, 다시 그 옆에는 인왕상(仁王像)을 새겼는데, 그 양식은 비암사 계유명(癸酉銘) 석상(石像)의 그것과 유사하다. 그리고 이들 불보살상 윗면에는 화불(化佛)5구가 반원형으로 연화좌에 앉았으며 다시 그 위로는 가장자리를 따라 화불보다도 큰 좌상7구를 배치하였다. 이 같은 작은 불상 사이에는 큰 나무의 가지와 잎이 표현되었으며, 그를 덮고 주옥(珠玉)과 영락(瓔珞)이 사이사이에 세각되어서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경문(經文)에 보이는 극락정토(極樂淨土)의 모습일 것이다. 배면(背面)에는 다음과 같은 명문이 있다. 기축년이월십오일(己丑年二月十五日) 차위칠세부모급□□□□□(此爲七世父母及□□□□□) 아미타불제불보살상(阿彌陀佛諸佛菩薩像) 경조(敬造) 이 석상은 비암사 계유명상(癸酉銘像)보다도 연대가 떨어져서 신라 신문왕(神文王)9년(기원후 689)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자료 인용>
보물 제368호:비암사 반가사유보살:청주박물관 보관
<미륵보살반가사유비상(彌勒菩薩半跏思惟碑像)은 그 생김새가 탑비(塔碑)를 닮았다 하여 비상(碑像)이라 불리는데, 아래쪽의 대좌, 중앙의 사면석, 위쪽의 덮개돌이 모두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T자형을 이루고 있는 이 비상은 정면에 왼발을 내리고 오른발을 왼쪽 다리에 올린 반가상을 크게 새기고 있다. 오른손을 들어 뺨에 대고 생각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반가상은 머리에 화려한 관(冠)을 쓰고 있으며 목걸이와 구슬장식을 갖추고 있다. 양 측면에는 두손에 보주를 들고 정면을 향하고 있는 보살입상이 새겨져 있는데, 반가상을 본존으로 삼아서 3존 형식을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뒷면에는 보탑(寶塔)을 크게 새겼는데 이 보탑으로 보아서 정면의 반가상이 미륵보살을 형상화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4각형의 대좌에는 중앙에 둥근 화병을 놓고 그 좌우에 꿇어 앉은 공양상을 조각하였는데, 대좌의 양 측면에도 정면을 향해 꿇어 앉은 공양상을 표현하였다.
이 석상은 삼국시대 우리나라에서 유행한 미륵신앙을 배경으로 크게 발달한 반가사유상 양식의 귀중한 유품이며, 만든 연대는 조각솜씨로 미루어 보아 충남 연기군 비암사에서 함께 발견된 계유명전씨아미타불삼존석상(국보 제106호)과 같은 673년으로 추정된다. 백제가 멸망한 지 얼마되지 않은 시기에 그 영역에서 조성된 이들 석상은 백제의 석조미술 수준을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예이다.>
<문화재청 자료 인용>
감로수
당간지주:괘불탱화 걸이대
석가모니불이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는 장면을 그림으로 나타낸 영산회상도로
화의 길이는 863㎝, 폭은 486㎝ 규모이다. 1657년(효종 8) 화원 신겸이 조성하였으며,
17세기 이후의 불화들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군도 형식을 띠고 있다. 도상의 내용이
1652년 신겸이 조성한 안심사 괘불과 같으므로
이 불화를 모본으로 하여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평시 걸어 두지않고 보관했다가 큰 불사가 있을시 괘불걸이대에 건다.
대웅전은 극락보전 좌측에 있는데 근세에 새운 듯하다
중앙당우가 극락보전
대웅전
대웅전 탱화
범종각
명부전
명부전 지장보살
명부전 탱화
명부전 :기도 드리는 여인
오관요(五觀寮):요사채
설선당:강설과 참선을 하는 강당
비암사 입구 전경
도깨비도로
전국에 도깨비도로가 여러 곳에 있다.지형상 착시현상으로 나타나는 신비한 도로인데,
제주,의왕, 언양 등 , 한번 들릴 기회가 있으면 물병으로 실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비암사쪽의 도로
도깨비 도로 는 '신비의 도로'라고도 불리는데
길가에 세워둔 차가 내리막길이 아닌 오르막길로 가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는 도로
오르막 길 같으나 실재는 내리막 길
시작점에서 120m 지점
비암사로 가는 도로:먼 곳이 높은 쪽이다.
♬저 구름 흘러가는 곳(따 온 것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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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자료 잘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네```푸른화원님, 세시관광, ,비암사. 한적,깨끗대웅전탱화,범각,도깨비도로,뻑최고찿아갈게요,
제주에서만보았는데 언양, 비암사,신비도로,상세히알려주셔.
잘 보았습니다.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