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8과 예수님은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면서요?
남자를 모르는 처녀(동정녀)가 아기를 낳았다면 어느 누구도 처녀의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처녀가 사실이라고 주장하더라도 전혀 설득력이 없을 뿐입니다. 그런데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실 구원자 예수님이 처녀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말을 믿으라는 말인가요? 인간을 구원한다면서 왜 하필 그런 방법으로 구원자가 세상에 와야 한다는 말입니까?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증명할 만한 수단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믿으라는 것입니까? 이럴 때에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성경 밖에는 없습니다. 물론 믿는 사람은 이렇든 저렇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전혀 의심 없이 진실로 받아들입니다만, 믿음 이외에는 방법이 없는 이 사실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성경 밖에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마나 더 타당성 있는 근거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은 당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어떤 이유를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 당위성이라는 것도 성경에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이미 예언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이미 작정하신 것이 바로 메시아의 동정녀 탄생이라는 것입니다.
1) 왜 마리아와 요셉입니까?
작은 시골 마을의 처녀인 마리아에게 메시아 탄생의 신비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약혼자 요셉에게도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어떤 사람이기에 하나님께서 택하셨을까요?
1. 약혼한 상태의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 전해준 핵심은 무엇이었습니까? (눅 1:30~33)
“30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 네가 아들을 낳을 것인데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다윗의 후손으로 메시아가 될 것이다.
∎ 마리아는 물론 이스라엘 백성이었으므로 메시아 대망사상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믿었다. 당연히 그들은 다윗의 후손들이었고 다윗을 통하여 메시아가 오시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금의 이스라엘에서도 그것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천사는 예루살렘을 비롯한 유대교 사상의 중심지나 또는 제사장들이나 바리새인들의 가정에 오신 것이 아니라 북쪽 갈릴리에서도 작은 마을 나사렛의 한 처녀에게 오셨다. 분명한 이유가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알고 순수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있는 한 사람이 필요하셨던 것이다.
2. 하지만 천사의 다음 말을 듣고 마리아는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눅 1:37~38)
“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38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천사의 말에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에게 이루어질 줄을 믿었다.
∎ 물론 마리아는 처음에 의아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34) 이 처음 말씀을 그대로 믿는다면 어딘가 이상한 사람일 것이다. 인간 세상에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천사가 사촌인 엘리사벳도 나이가 많지만 임신한 것을 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이야기하자 마리아는 그 자리에서 즉시 신앙고백을 드린다. 이것이 마리아의 위대성이다. 하나님께서 이런 고백을 드릴 단 한 사람으로 마리아를 부르신 것이다. 이런 믿음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어리석거나 순수하거나 믿음이 아주 탁월하다고 해도 결코 믿을 수 없을 것이다. 믿음이 큰가 작은가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이 근원이 어디에 있는가의 문제이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단 한 사람, 그것을 믿을 사람으로 마리아를 부르신 것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특정한 부르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3. 하지만 요셉이 또 문제였습니다. 요셉의 꿈에 천사가 나타났을 때 요셉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마 1:24~25)
“24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 꿈에서 주신 주의 사자의 말을 믿고 그대로 순종하여 아내를 데려왔다.
∎ 요셉도 역시 순수한 믿음이 사람이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과 교류가 별로 없는 사람일 수도 있고 교회에서 뛰어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두드러지지 않은 청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사실이 드러났다. 약혼녀 마리아가 자신과 동침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임신했던 것이다. 요셉은 이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고 그냥 파혼하고자 했다. 그런데 꿈에 주의 사자가 나타나서 그녀의 임신이 성령님으로 인한 것임을 전해주었다. 물론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요셉은 그것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믿을 수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믿을 수 있을까? 하나님은 바로 그런 사람을 찾으셨던 것이다. 꿈에서 들은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여 약혼녀를 데려왔고 출산할 때까지 동침하지 않았다. 요셉은 찾기 어려운 순수한 믿음의 소유자였다.
4.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쓰실 만한 사람의 특징이 마리아와 요셉에게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참고 신 1:36)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께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
➔ 오직 여호와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자를 기다리시고 찾아 쓰신다.
∎ (수 14:10~11) 85세가 된 갈렙이 45년 전 가나안 땅을 정탐할 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신명기 본문이다. 그런데 가나안을 정복할 때 거인 아낙 족속의 크고 견고한 성읍을 분배할 차례가 되었는데 갈렙이 이 땅을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갈렙이 이렇게 결단한 것은 45년 전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 때문이었다. 갈렙에게 이런 순수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땅을 그에게 주셨던 것이다. 마리아와 요셉이 바로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하나님은 마리아와 요셉이 존재할 때까지 그리스도의 보내심을 기다리고 계셨다. 왜냐하면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기 예수를 낳을 만한 믿음을 가진 ‘단 한 사람’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2) 이미 성경의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메시아의 동정녀 탄생은 상황에 따라 그냥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인간타락 이후에 인간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이미 계획하고 계셨던 일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마리아를 통해 성취된 것입니다.
1. 하와를 유혹하여 선악과를 먹는 불순종의 죄를 짓게 만든 뱀에게 하나님은 어떤 저주를 내리셨습니까?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 여자와 원수가 되어 여자의 후손이 머리를 상하게 하고 뱀은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 여자와 원수가 되는 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징계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뱀의 후손이 어떻게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또 여자의 후손은 뱀의 후손이 아니라 뱀의 머리를 직접 상하게 한다고 하셨다. 여기에서 뱀이 후손은 마귀의 자녀 곧 하나님을 원수 삼은 죄인들을 의미한다. 끝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고 마귀를 따라 지옥으로 떨어질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마귀는 후손이 있을 수 없고 또 불신자들을 마귀의 자녀라고 부르기 때문이다(행 13:10, 요일 3:10). 실제로 그들은 여자의 후손(예수님)을 십자가 못 박았다.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은 그냥 자연인이 아니라 하나님과 여자의 후손의 원수 된 사람이요 마귀의 자식들이다. 뱀이든 뱀의 후손이든 모두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지옥으로 떨어질 자들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이요 저주였다.
2.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뱀은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히 2: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 발꿈치를 상한다는 말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뜻하고,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것은 부활로 마귀를 영원히 이기신 것이다.
∎ 마귀는 이미 패망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여자의 후손인 예수님께서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마치 죄에게 패배하신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셨을 때 그것은 마치 죽음의 권세에게 패배한 것처럼 보였다. 여기까지는 뱀이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한 것이었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가 아니라 머리를 상하게 만든 것처럼 보였다. 예수님이 죽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을 때에는 전혀 다른 양상이 펼쳐졌는데, 사실은 여자의 후손은 발꿈치를 상한 것이었고 마귀는 머리를 상하여 이제 멸망의 마지막 단계만 남기게 되었던 것이다. 마귀의 죽음의 권세는 이제 더 이상 아무 위협이 되지 못하게 되었다. 여자의 후손인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하고 그 뒤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죽음이 두려움을 줄 수 없게 된 것이다.
3. 여자의 후손이란 그리스도 예수님은 말합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겠습니까? (마 1: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 예수님의 호적상 아버지가 요셉인데 요셉은 다윗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성령님으로 잉태되셨다.
∎ 영으로는 남자의 다스림을 받지 않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여자의 후손으로 예수님께서 나셨지만 육으로는 성경에 예언된 대로 다윗의 자손 중에서 나셔야만 했다. 영적 요소와 육적 요소를 동시에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예수님 자신도 하나님이면서 인간이시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그리스도와 다윗의 자손에 대해서 설명하시면서 육으로는 다윗의 후손이지만 영으로는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하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것은 다윗 자신이 성령에 감동되어 고백한 내용이었다.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막 12:36) 예수님은 가문으로는 다윗에 속하지만 영으로는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4. 이스라엘은 원래 남자의 계보를 말하는데 왜 예수님은 여자의 후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 마리아라는 한 여자의 후손 곧 성령님의 후손이라는 말이다. 예수님은 사람의 후손이 아니라 임마누엘 하나님이시다.
∎ 인류의 구원자를 성령으로 잉태한 여자의 후손이라고 지칭하신 것은 남자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불순종한 하와에게 벌을 내리시는데 그것은 출산하는 고통을 더함과 함께 남자의 다스림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창 3:16). 이후로 모든 인간은 함께 죄를 지은 남자의 다스림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인류구원계획은 이루어질 수 없다. 죄를 가지고 태어나는 인간, 곧 남자의 다스림을 받은 인간을 어떻게 구원자로 삼으시겠는가? 하나님은 남자(사람)의 다스림을 받지 않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은 마리아를 통하여 메시아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다.
3) 말씀이 육신이 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성경은 말씀(Logos)이 곧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의 말 속에는 과장이나 거짓이 있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1. 인간구원은 죄인인 인간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말씀 곧 하나님께서 이것을 어떻게 해결하셨습니까?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이 되시기로 하셨다. 곧 말씀이 인간의 육신으로 태어나 세상에 거하시는 것이다.
∎ 인간구원은 자력으로는 불가능하다. 그 말은 누군가 인간보다 월등한 어떤 존재가 인간을 대신해야 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으로 이끌어주지 않으면 끊어진 관계가 회복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종교가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인간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신다. 따라서 인간구원은 하나님이 친히 인간이 되어서 인간을 대신하는 길만이 유일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말씀은 곧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셨다는 뜻이다. 그분이 바로 삼위 가운데 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생명으로 여기고 하나님으로 믿어야 하는 이유이다.
2. 동정녀 잉태는 의학적으로는 전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 이 일을 성취하십니까? (창 1:24)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명령하시면 모든 일이 가능해진다. 태초에 하나님은 말씀으로 모든 과학을 명하셨다.
∎ 최고 권력자가 아랫사람들에게 명하면 그 명령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물론 그 권력자가 스스로 행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 명령대로 움직일 뿐이다. 똑같은 의미는 아니지만 하나님도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직접 어떤 과정을 거치신 것이든지, 아니면 천군천사들을 움직이신 것이든지 하나님의 의도대로 모든 만물이 창조되었다. 모든 생명을 창조하신 분이 처녀의 몸에서 그리스도를 잉태하게 하실 수 없을까? 천지창조를 믿는다면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도 믿는 것이다. 말씀을 인간의 언어로만 해석하면 모든 것이 곤란해진다. 이 말씀은 전능자의 의지를 말하는 것이다. 그 절대 진리를 말씀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세상은 전능자의 의지를 따라 창조되었고 인간구원은 전능자의 의지를 따라 사람에 의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에 의한 동정녀 잉태와 탄생을 성취하였던 것이다.
3. 다른 생물들은 말씀으로 만드셨지만 사람은 흙으로 만드시고 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이유는 무엇입니까? (창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 사람의 코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써 생령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인간구원을 가능하게 하셨다.
∎ 생령이라는 말은 영적 존재라는 말이고 그것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곧 하나님은 일방적인 본능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성적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다는 말이고 그것은 곧 인간창조의 목적 자체가 하나님께서 교제하시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다. 결국 뱀으로 다가온 마귀가 하와를 유혹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려버렸지만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원래의 창조목적을 버리실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이 되기로 작정하시고 성취하시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4.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통한 구원을 우리는 어떻게 받을 수 있습니까? (히 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 곧 성령님의 감동으로 동정녀 탄생과 죄 사함의 은혜를 깨닫고 구원받을 수 있다.
∎ 과학적으로는 입증할 수 없지만 동정녀 탄생으로 말미암은 구원을 경험한 사람들에 의해 체험적으로 입증은 가능하다. 물론 동정녀 탄생을 직접 경험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진리를 통하여 구원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면 나머지 모든 성경 진리를 전부 믿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보이지 않고 경험할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 참 믿음이다.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은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을 누가 못 믿겠는가? 그러나 보이지 않고 경험할 수 없는 것을 믿는 데에는 특별한 믿음이 필요하다. 그 믿음은 인간의 지식이나 경험으로 얻어질 수 없다. 복음의 진리를 믿고 싶다고 아무리 간절하게 구하고 찾아도 사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물론 그럴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셔서 믿음을 주실 수 있다. 그것도 자기 노력으로 얻어질 수 있는 믿음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가질 수 있는 믿음이다. 성령님의 감동으로 모든 구원은 이루어지고 동정녀 탄생도 믿어지는 것이다.
4) 예수님이 무죄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의 두 번째 당위성은 죄인들을 위해 대속자가 되시려면 죄가 없어야 하기 때문에 남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동정녀를 통해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1. 우선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는 사실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이 죄의 상태에 있기 때문에 죄를 범하고 있고 그래서 하나님의 의에 도달할 자가 없다.
∎ 여기에서 죄라는 단어의 뜻을 잘 알아야 한다. 똑같이 ‘죄’ 라고 불러도 근본적인 죄가 있고 파생적인 죄가 있다. 근본적인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를 의미한다. 소위 원죄라고 부르는 죄이다. 파생적인 죄는 윤리 도덕적인 죄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는 말씀은 모든 인류가 전부 하나님과 완전히 멀어진 존재들, 곧 씻을 수 없는 죄인들이 되었다는 말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짐으로써 모든 인간 사이이 죄들 곧 윤리 도덕적인 죄가 범람하게 되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에서는 제 아무리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의롭게 산다고 해도 그것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는 없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사라진 상태에서 영원히 회복할 수 없는 죄의 상태에 갇혀있는 사람들이었다.
2. 우리가 모두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은혜 덕분에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될 수 있습니까? (엡 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를 믿음으로써 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면 죽음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그렇다고 죄인 된 우리의 죽음으로 관계가 회복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또한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해서 죽는다고 해도 그것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할 수 있는 것도 물론 아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신 죽으심 곧 그의 피로써만이 구원에 이를 수 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우리의 구원이 죽음과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믿음은 생명이라도 아낌없이 드릴 수 있는 믿음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생명 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구원은 생명을 걸어야 지킬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할 것이다.
3. 하지만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으려면 어떤 전제가 있어야 하겠습니까? (요일 3:5)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 그 피가 죄가 없는 분의 피라야 한다. 그래서 동정녀 탄생이 필수인 것이다. 죄가 없는 분이 죄인 대신 죽으셔야 한다.
∎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는데, 왜 예수님의 피로써만이 구원에 이를 수 있겠는가? 그것은 예수님의 피가 특별하여 인간의 죄가 전혀 들어있지 않은 무죄한 피인 까닭이다. 예수님은 완전한 신성과 인성을 모두 소유하신 분이신데, 예수님이 인간이시라면 어떻게 예수님의 피로써만 구원에 이를 수 있겠는가? 그 해답이 바로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인 것이다. 아무리 예수님께서 신성을 지니셨더라도 인간관계에 의해 태어나셨다면 모든 인간에게 드리워진 죄의 속성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런데 예수님은 인간관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곧 성령님에 의해 잉태되셨기 때문에 인간에게 유전되는 근본적인 죄가 없는 분이다. 아담에 의해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배를 통해 탄생하신 분이 예수님이시고 그 예수님의 피는 우리는 깨끗하게 씻어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반드시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셔서 원죄가 없는 분이셔야만 했다.
4. 예수는 그냥 혁명가였다, 성령께서 잠시 머물렀었다는 이단의 주장이 타당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행 10:43)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 그렇다면 예수님은 죄를 가진 인간에 불과하므로 구원은 불가능하게 된다. 그래서 성경은 지속적으로 예언한 것이다.
∎ 혁명가였다는 주장은 일부 진보적인 입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논리이고, 성령께서 잠시 머물렀다는 주장은 인성을 부정하는 논리이다. 신성이 환상으로 인성에 임했다는 가현설의 영지주의, 신성과 인성이 합해져 하나의 위격만 존재한다는 단성론 등은 기독교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펼쳐져왔던 이단적인 주장들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가지신 분으로, 완전한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의 몸 속에 거하셨던 분이시고, 완전한 인간이시지만 죄는 없으신 분이다. 만약에 예수님의 신성만을 강조하면 그 어떤 형태로 오시든지 인간의 죄는 절대로 해결하실 수 없다.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으로 태어나셨지만 단지 성령으로 잉태되심으로써 죄가 전혀 없으신 분이시다. 그것만이 인간을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5) 예수님이 대표자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천사가 아니라 동정녀 탄생을 통해서라도 사람으로 태어나셔야만 하는 세 번째 당위성은 모든 사람의 대표자가 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의 수만큼 대신 죽으셔야 합니다.
1. 예수님께서 대표자로서 죽으신다고 해도 인간의 죄 사함이 효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반드시 필요합니까? (롬 14: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 죄를 짊어지시는 것만으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야 죄 사함이 성립될 수 있다.
∎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대신 죽으셨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인간의 죄가 씻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죄를 해결하지 못하신다면 비록 그리스도께 모든 죄가 전가되었다고 해도 죄 자체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 죄를 해결하는 방법이 무엇이겠는가? 죄로 인하여 발생한 사망을 이기셔야만 죄를 깨끗하게 씻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곧 사탄이 하와를 속여서 선악열매를 따먹게 함으로써 세상에 죄가 들어왔고 그 죄 때문에 사망이 인간에게 왔다면, 그리스도께서 그 죄를 이기셨다는 증거를 무엇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완벽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곧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그 죄를 이기심으로써 인간에게 드리워있던 모든 죄를 소멸시키셨던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인 것이다.
2. 예수님의 피로 우리를 구원하시려면 사람과 동일한 조건을 갖추셔야 합니다. 어떤 과정을 보여주셨습니까? (히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 죄가 없는 분으로서 인간이 겪어야만 하는 모든 일을 우리들과 똑같이 감당하셨다. 그래서 우리가 고통을 이기게 하신다.
∎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다는 것에는 참으로 깊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은 인간의 모든 죄와 고통과 모욕과 조롱을 전부 겪으셨다는 점이다. 공생애 사역을 통해서도 인간의 모든 약점과 슬픔과 아픔을 겪으시고 다 해결해 주셨지만, 특히 체포당하시고 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까지 스스로 겪으셨던 모든 아픔과 비난들은 인간이 죄로 인하여 겪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결핍과 차별과 육체적, 정신적 고통들을 빠짐없이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데도 불구하고 죄로 인하여 겪어야만 하는 인간의 모든 아픔들을 친히 경험하셨던 것이다.
3.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죄 씻음과 함께 치유와 회복을 얻을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벧전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 십자가에 달려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채찍에 맞음과 모욕을 당하심으로써 육신의 치유와 심령의 회복을 가능하게 하셨다.
∎ 인간의 모든 죄를 담당하신다는 뜻은 그 죄로 인하여 파생되는 모든 종류의 인간의 고통들도 모두 담당하신다는 뜻이다. 십자가의 고통을 통하여 예수님은 인간의 모든 종류의 아픔들을 치유하시게 된 것이다. 만약에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아픔들을 직접 겪고 느껴보지 않으셨다면 인간을 향한 사랑은 완전할 수가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모든 인간의 아픔들을 친히 품으시고 인간을 대신하여 죽으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인간의 입장에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니라 아예 우리 인간이 죄셔서 십자가에서 부활하신 것이었다.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반드시 부활할 것을 믿어야 한다.
4. 구약의 짐승제사와 연결할 때 예수님은 이 땅에 어떤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오신 것입니까?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 하나님과 죄인들 사이에 화목제물이 되시기 위함이다. 대표자로서 단 한 번의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것이다.
∎ 수도 없이 행해지던 그 많은 제사들을 통해서도 이스라엘은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제사장은 공식적으로 매일, 매주, 매월, 절기 때마다 제사를 집전했는데 그 어떤 때라도 매일 제사를 드린 후에 드렸고, 백성들이 개인적으로 드려야 하는 수많은 제사를 다시 맡아서 드렸지만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모든 죄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은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이 죄가 쌓이고 쌓여서 결국 멸망해버렸다. 그것을 해결한 방법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이었다. 짐승들을 아무리 많이 죽여도 죄가 사라지지 않았지만 죄 없으신 예수님 한 분의 제물 되심으로써 인간의 죄는 완전히 사라졌다. 예수님은 인간이 대표자이셨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롬 5:17) 이 말씀처럼 인간의 첫 번째 대표자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멸망하게 되었다면 인간의 두 번째 대표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가 인간에게서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두 번째 대표자는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셔서 죄가 없으신 분이어야만 했던 것이다.
6) 사람이면서 하나님이심을 믿습니까?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예수님은 사람이면서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으로서 사람들의 죄를 씻으시기 위해 완전한 보통 사람으로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여기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죄인인 사람들의 죄를 사해주시고 구원해 주시고 영생을 허락하시려면 사람들과 똑같은 존재여야 하되 죄가 없는 분이어야 합니다. 그 어떤 사람이 누군가의 죄를 대신해서 감당할 수는 없습니다. 다 같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가 없으신 한 분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인간의 모든 죄를 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해당되는 분은 하나님이신 예수님밖에는 없습니다. 그런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1. 예수님께서 보통 사람이라는 점에서 당신은 어떤 은혜를 받게 됩니까? 사람으로서 당하신 고난을 생각해보십시오.
∎ 나의 죄성과 연약함, 상처와 고통을 전부 다 알고 계신다.
2. 예수님께서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당신에게 어떤 은혜를 줍니까? 하나님의 속성을 생각해보십시오.
∎ 하나님은 전지하시고 전능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변함이 없는 분이시다.
마무리 기도
우리를 위해 친히 이 땅에 내려오셔서 우리와 똑같은 삶의 과정을 체득하시고 우리의 죄와 상처와 죽음을 감당하시고 승리하게 하신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믿고 거기에 의지해서 영생을 얻게 하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비록 우리가 예수님의 그 구원의 공로를 따라 살지 못할 때가 너무나도 많이 있지만, 우리가 그 사랑과 은혜 가운데 사는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가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의지하면서 세상의 모든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날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더욱더 그리스도 예수님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그렇지만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에 대해서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보통 사람들에게는 믿기 힘든 진리인 것도 사실일 것입니다. 복음은 이런 모든 것은 전부 포함할 때 구원의 능력이 있는 것인데 이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들을 먼저 잘 깨닫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로 하여금 더욱 확고한 믿음을 가지게 하시고 그 확신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늘 승리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우리의 믿음도 성령님의 능력으로 가능하게 된 것인 만큼 세상의 삶의 원리를 따라가지 않고 성경의 말씀을 따라 살 수 있도록 해 주시옵소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