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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의 사정으로 인해 몇몇 묘사 또는 행동은 예기치 못하게 누락될 수도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9. 동지, 다음 5개년 계획 때 봅시다.
1920년 4월 1일, 제9차 전연방 공산당대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이번 대회의 결정사항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건 연방의 향후 경제 및 산업정책의 향방입니다.
대표 발제자는 우선 "전 산업에 걸친 노동효율 부진"을 주된 문제점으로 지적하며, 농민의 수확물 자유판매 / 경자유전 원칙에 의거한 농민의 토지 소유권 인정 / 제한적인 소기업의 경영 / 노동조합의 자율적 공장관리안 등을 가능한 대안으로 제시했습니다.
또한, 연방 차원의 5개년 공업화 계획안을 어떤 방향으로 작성할 지에 대한 안건이 제기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중공업과 경공업에 투자할 자원의 비중이 되겠군요.
당원들은 열심히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것을 요구받았습니다.
연방의 공업화 방향에 대한 논의는 그동안의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일례로 솔제니친과 트로츠키가 집무실에서 고성을 지르며 마찰을 빚은 사건이 있었고, 당이 두쪽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섞인 예상 역시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전당대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첫 안건인 신경제정책 관련 안건에서, 발제자 "알렉세이 리코프"의 연설이 이어졌습니다. 대의원의 절반 가량은 박수를 쳤으나, 나머지 대의원들은 "사회주의를 배신하는 정책"이라면서 어깃장을 놓기 시작했습니다. 솔제니친은 사실상 찬성, 부하린은 당연히 찬성, 반면 트로츠키와 스탈린 등은 반대하고 나섰죠. 이 때, 우스트랼로프는 다음의 절충안을 내세우며 수정안을 발의했습니다.
1. 지역 소비에트의 농산물 독점수매제도.
농민의 수확물은 자유시장 거래가 아닌 지역 소비에트에서 각 지역마다 정하는 고정 가격으로 독점 수매할 수 있게 한다. 이때 가격 결정에는 반드시 농민의 의사와 한 해 작황 예측이 반영되어야 한다.
2. 농토의 세대 별 장기임대권 제도.
토지 소유권은 인정할 수 없지만, 대신 모든 토지는 국가나 지역 소비에트가 소유하게 하고 20년 단위의 토지 '사용권'을 지역 소비에트를 통해 거래할 수 있다. 아이를 낳아 성인으로 키우는 기간을 기준으로 해 20년으로 결정되었다.
3. 노동조합의 자율적 공장관리제도.
연방의 경제규모를 고려했을 때 소기업의 경영자율화는 공업 분야에서 효과를 보기 어렵기 때문에, 공장 또는 공업단지별 노동조합이 목표생산량 달성을 위한 세부조정을 담당하게끔 하는 방식으로 절충한다.
트로츠키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안건에 동의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자 일사천리로 안건 역시 통과되었죠.
이에 더해, 공업인민위원회를 경공업위원회와 중공업위원회로 분할해 5개년 계획의 실행을 담당케 하는 안건 역시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되었습니다. 문제는 둘 간의 투입량 분배를 어떻게 할 지였는데, 우스트랼로프와 부하린을 제외한 대다수 여론은 중공업에 조금 더 큰 비중을 두자는 것이었습니다. 비율로 따지면 1.5 : 1의 비율이었죠. 경공업 우선론을 제시한 부하린부터가 "신경제정책으로 생산효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면 비율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합의는 트로츠키와 솔제니친이 극적으로 동의한 1.5 : 1 안으로 통일되었습니다.
#10. Nem! Nem! Soha!
1919년 봄부터 끌어온 헝가리 소비에트공화국과 루마니아-유고슬라비아 간 무력분쟁은 소련이 독일 방면에 집중하는 동안 헝가리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으나, 최근에는 연방에서 나름대로의 물자지원을 제공하며 전선을 어떻게든 안정화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헝가리에게 있어서 큰 장애물 중 하나는 체코슬로바키아와의 남슬로바키아와 카르파티아-루테니아 영역을 둘러싼 갈등입니다. 이곳은 본래 헝가리인이 주로 거주하던 지역이었는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붕괴하며 체코슬로바키아의 영역이 된 땅입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미협조 속에서 헝가리는 전선을 유지하고는 있으나, 루마니아와 유고슬라비아가 대전쟁 때의 피로를 조금만 덜 겪었더라도 지금쯤 부다페스트가 완전히 점령되었을 겁니다. 연방은 헝가리를 어떻게든 구해내야 하겠습니다...
모스크바에 모인 위원들은 우선 체코와 헝가리 간의 갈등부터 차근차근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가장 먼저 바레츠노프는 "분쟁지역 주민들이 결정하게 하자"는 가장 원론적인 방책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체코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건이었고, 체코슬로바키아 인민전선이 실각할 수도 있는 사안이었기에 수포로 돌아갑니다.
바레츠노프는 우스트랼로프의 도움을 받아 2차 종합제안을 날렸습니다. 일단 유고슬라비아에게 바나트와 보이보디나를 약속했고, 유고는 전선에서 이탈했죠. 이러자 헝가리와 루마니아의 1:1 구도가 되었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영토를 모두 보장받는 대가로 헝가리의 전쟁수행을 원조하기로 했습니다. 헝가리는 소련이 자신을 지켜주는 조건으로 동의했죠.
이제 가장 큰 문제는 루마니아였습니다. 티서 강 이동을 할양한다면 헝가리는 국가 존속 자체가 불투명해지는 상황이었기에, 어느 정도의 권리는 보장받아야 했습니다. 영불 협상국의 비호를 받는 루마니아를 이탈시키기 위해, GRU의 마르텔은 또 한번 혐전감정을 이용하기로 합니다. 곧 프랑스 "뤼마니테(L'Humanite)' 지를 포함한 여러 지면에 콘스탄티녜 봉쇄계획에 대한 기사와 또 한번의 대전쟁 가능성에 대한 기사가 범람하기 시작했고, 이들은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루마니아는 아연실색했고, 때마침 솔제니친이 베사라비아 국경에서 신형 차량화사단을 통한 무력시위를 시작하는 상황 속에서 "베사라비아를 영구히 보장받는 조건으로 트란실바니아를 포기"하는 협상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20년 10월 22일, 트리아농 조약이 체결되어 발칸 및 중부 유럽의 국경이 재조정되었습니다.
후일담으로, 루마니아 왕정은 결국 붕괴했습니다. 이온 안토네스쿠 대령을 비롯한 청년장교들의 쿠데타로 루마니아 공화국이 수립되어 '복수'를 외치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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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의 전쟁이 완전히 마무리되자, 연방은 '그 다음'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스트랼로프는 국가경제최고평의회 의장으로서 1차 5개년 계획을 수립했고, 솔제니친은 군 현대화 계획을 수행했습니다. 또한 마르텔의 GRU는 이후 후환이 될 수 있는 '인민의 적'들을 추적해 암살작전에 나섰죠. 사빈코프, 브랑겔, 루덴도르프, 호르티, 세묘노프는 모두 불구가 되거나 저 세상으로 사라졌습니다.
표트르는 숙원이던 독-소 철도를 계획해 모든 정부의 승인을 받았고... 바레츠노프는 아프가니스탄을 비스바덴 조약기구에 가입시켜 인도를 직접 위협할 수 있는 기반을 갖췄습니다. 그리고 카튜셰프는... 북벌의 전제조건을 완수했죠. 바야흐로 국민당의 대반격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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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1920년 말 카튜셰프의 도움으로 광동군벌 천중밍을 설득해 북벌 개시를 승인받은 국민당의 쑨원은 1921년 가을을 기일로 삼고 절치부심했습니다. 운남군벌 탕지야오(당계요), 상계군벌 자오헝티(조항척)과 탄옌카이(담연개)가 북벌에 동참하겠다는 선언을 한 상황이고, 광서에서는 리쭝런(이종인) 주도의 신 계계군벌이 루룽팅을 축출하고 뒤늦게 국민당에 합류했습니다.
다만, 국민당의 힘만으로는 북양의 3대 대군벌(직예계, 봉천계, 안휘계)을 한꺼번에 상대하기 힘들다고 보여집니다. 지난 안직전쟁에서 안휘군벌의 기세를 꺾은 봉천의 장쭤린(장작림)과 직예의 우페이푸(오패부)는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으나 조만간 중원의 패자 자리를 두고 각축을 벌일 것이 명약관화합니다.
북벌이 개시되려는 지금, 이들에게는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군요...
북벌은 시작되었으나, 북양의 3대 대군벌들에게 무작정 싸움을 걸어 이들이 임시로라도 뭉치게 만드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든 분열을 획책해야 했죠. 가장 먼저 GRU가 나섰습니다. 파괴공작과 정보공작을 곁들여 북양의 '파국'을 부추기는 작전이었습니다.
비록 파괴공작은 실패했지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장쭤린이 만주의 황제가 되려고 한다는 소문에 되려 자극받은 봉천 군벌의 휘하 지휘관들이 장쭤린을 부추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만인과 한인을 융화시켜 오족공화를 실현하실 분은 오로지 각하, 아니, '폐하' 뿐이십니다!" 장쭤린은 주변의 부추김을 인내하지 못하고 정말로 "대만주제국"을 선언하고 맙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북경을 장악하고 북양정부를 관할하는 우페이푸의 직예 군벌은 즉각 봉천군벌에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북벌의 전제조건이 완벽하게 갖추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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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벌의 시작과 동시에, 일전에 솔제니친이 보낸 경전차와 항공기 전력, 투하쳅스키 등을 필두로 한 고문단, 그리고 우스트랼로프가 제안한 조선인-부랴트인-중국인 등으로 구성된 의용군이 속속들이 마카오를 거쳐 광저우에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지원에 국민혁명군은 파죽지세로 중원을 돌파해 나갔습니다. 우스트랼로프와 솔제니친의 강력한 주장으로, 국민당 우파가 일찍이 주장했던 '내륙 우선 진격'안이 힘을 받았죠.
1922년 새해가 된 시점에서 국민혁명군은 우한을 포함한 후베이 지역을 장악하고 파촉분지를 접수, 장강을 도하해 난징을 노리는 상황이었습니다. 바레츠노프의 제안으로 산서의 옌시산 역시 국민당에 가담하게 되었죠. 한편 홍콩에서는 영국군이 홍콩 파업을 잔혹하게 진압하는 사태가 벌어져 노동운동이 크게 위축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당원들은 침울해했지만, 지체할 시간은 없었기에 대륙의 일에 집중하기로 합니다.
1922년 3월, 직예 군벌은 사실상 모든 전력을 상실했고, 우페이푸는 일본으로 망명을 택했습니다. 일본은 국민당군이 만주까지 넘어오는 것을 우려해 "산해관을 넘지 말라"는 통촉을 전달했고, 때마침 장쭤린은 황하를 경계선으로 서로의 영역을 양분하자는 제안을 날렸죠. 국민당은 그간 고통받은 민초들, 그리고 일본과의 전쟁이 지금 당장 발발했을 때의 추가피해를 고려해 받아들이려고 했으나... 카튜셰프와 표트르는 장제스와 쑨원, 그리고 국민당원들을 설득했습니다.
모종의 공작으로 베이징과 톈진에서 "일본의 꼭두각시" 봉천군벌에 반대하는 시위가 폭발하자, 우스트랼로프의 제안인 '열하 기준 분할'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카튜셰프는 중국 혁명에 공헌한 업적으로, 국민당 내에서 건드릴 수 없는 실력자가 되었습니다. 장제스 역시 그와 서먹서먹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친밀한 관계가 되었죠. 그와 별개로 왕징웨이가 국민당의 당권을 하나둘씩 잠식해 포스트 쑨원 자리를 굳혀가는 한편... 후한민 등 당내 우익이 장제스의 은근한 부추김과 왕징웨이의 동의로 축출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국민혁명의 영향을 받은 건 중원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빨갱이 쑨원의 빨갱이 국민당"과 손잡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서구권의 철저한 외면을 받기 시작해, 임시대통령 이승만이 위임통치 청원사건을 일으킨 것입니다. 이에 이승만을 탄핵한 상태에서 국민대표회의가 개최되었고... 임정을 해산하고 새 대표기관을 수립하는 안건이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되었습니다. 체코군단에게서 무기를 구매하지 못해 만주에서 잇따른 승전도 없었지만, 여러 '참변'들도 없었기에 최재형과 이동휘가 운영하는 연해주의 대한 광복군 정부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었고, 민족대표들은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에 모여 항일투쟁을 이어나가기로 결의했습니다.
한편, 유럽의 상황 역시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최대주의적 민족 생디칼리즘 투쟁을 외치며 퇴역군인과 실직 노동자들을 준군사조직화한 베니토 무솔리니가 사회당 내에서 친위쿠데타를 일으킨 끝에 그람시 등을 추방하고 그대로 사보이아 왕가를 끝장내버렸고, 터키에서는 프랑스의 괴뢰국인 터키 공화국이 해협위원회의 관할지역(마르마라 해 연안)까지 밀려나 엔베르와 이뇌뉘의 타협으로 터키 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습니다.
또한... 영국은 아일랜드에서 "연합 수호전쟁(Union Protection War)"을 펼치며 대규모 병력을 밀어넣고 있습니다. 1922년 가을 현재, 아일랜드인들은 IRA를 필두로 게릴라전을 펼치며 끈질기게 항쟁 중이라고 하는군요. 이들 역시 도움이 필요할 듯 합니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겠지만)작성시간: 1시간 9분 34초. (!)
이름: 이반 데니소비치 솔제니친
플레이어: 931117
생년월일: 1889년 11월 17일
성별: 남성
민족: 폴란드인
능력치:
- 통솔 17
- 체력 10
- 지능 13
- 지혜 13
- 매력 12
트레잇:
- 지적 유희
그는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학문을 좋아하는 딜레당트입니다. 이는 토론과 논쟁에서 도움이 됩니다.
학술적이거나 이론적인 논쟁 및 토의에서 +1의 모디파이어.
- 불도저
그는 자신이 계획한 일은 반드시 완수해야만 직성이 풀립니다. 하급자 또는 동지에 대한 압박에 +2, 상급자에 대한 설득에 -1의 모디파이어.
배경:
이반 데니소비치 솔제니친은 폴란드 남작 가문의 후계자로 태어나 매우 유복한 권력자의 삶을 누렸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사관학교에 진학했으나, 그곳에서 마르크스와 레닌의 서적을 읽고 정체성에 극심한
혼란을 겪었습니다. 대전쟁에서 겪은 참상은 그의 의문을 확실시해주는 것이었고, 급기야 1917년 2월 병사들의
항명 사태가 벌어지자 오히려 부패하고 무능한 장교들을 처단해 차르정의 붕괴에 기여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도부가 뿔뿔이 흩어진 상황에서 그는 병사들을 이끌고 겨울궁전을 습격해 사회주의 혁명의 1등공신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 공적으로 당 중앙에 진출한 이반은 그 뒤 적백내전에서의 활약으로 정치국 상임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레닌 이후 사회주의 조국의 차기 지도자 후보 중 한 사람으로 주목받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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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마르텔 파우코이
플레이어: dear0904
생년월일: 1878년 12월 16일
성별: 남성
민족: 프랑스인
능력치:
- 통솔 10
- 체력 8
- 지능 14
- 지혜 18
- 매력 11
트레잇:
- 거짓의 윤무곡
그는 거짓으로 무언가를 꾸며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짓 증거를 조작하거나, 허위 정보를 유포하는데 +2의 버프를 받습니다.
- 암약가
인민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손을 더럽히는 이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파괴, 암살, 사보타주, 테러 등의 공격행위에 +2의 모디파이어.
배경:
마르텔 파우코이는 파리 코뮌의 봉기에 관한 역사를 읽고 벅찬 감정을 느끼던 평범한 프랑스의 진보주의자이자 사회주의자였습니다.
이제 막 한 사람의 청년으로 자라나던 무렵 레닌과의 짧은 만남과 대화는 그를 훌륭한 혁명가로 만들었죠.
마르텔의 장기는 사람들의 마음과 시류를 읽고, 그 틈바구니에서 적절한 사실과 거짓을 섞어 자신이 생각하는 대의를 위해
스스로 움직이게끔 하는 능력이었습니다. 타고난 첩보원이었던 그는 7월 혁명 과정에서 훌륭하게 여론을 이끌었고,
체카에서 다종다양한 경험을 쌓은 끝에 신생 군 정보총국(GRU)의 국장에까지 위촉되었습니다.
정보 분야의 사실상 2인자로서 마르텔은 사회주의 조국의 영광과 무산계급의 해방을 위해 투신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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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뾰뜨르 뾰뜨로비치 간니발
플레이어: 통장
생년월일: 1894년 9월 4일
성별: 남성
민족: 러시아인
능력치:
- 통솔 15
- 체력 18
- 지능 9
- 지혜 9
- 매력 12
트레잇:
- 사회주의적 인간형
그는 누구보다 남의 말을 귀담아듣고, 가장 낮은 잘에 있는 자의 입장에서 진솔한 언행을 추구하는 인물입니다.
사람들은 그에게서 무언가 알 수 없는 매력을 느낍니다. 대중에 대한 설득과 선동에 +3의 모디파이어.
배경:
뾰뜨르는 크라스노다르 시 인근 미르에 속한 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건장한 체구와 완력으로 골목대장 겸 해결사 노릇을 맡으며 자라났습니다.
그러나 머리가 굵어질 수록 그는 사회의 부조리를 온몸으로 체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한 심성 탓에 분을 홀로 삭이며 부농에게 몰매를
그대로 맞고만 있던 때, 페트로그라드에서 온 한 혁명가의 연설은 뾰뜨르의 마음에 불을 질러놓았습니다.
수도로 향한 뾰뜨르는 7월 혁명의 현장에 휘말린 끝에 감옥소에서 트로츠키를 구출해내며 그의 측근이자 전위대장이 되었습니다.
특유의 진정성 있는 연설은 거칠지만 노동자 동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죠. 이후 그는 캅카스 지역에서 많은 공로를 세우고 GRU의 지도편달을
받아 독일 혁명을 이끄는 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는 명실상부 혁명영웅 중 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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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카튜셰프
플레이어: 카라멜 마끼아또
생년월일: 1890년 10월 29일
성별: 남성
민족: 발트인(에스토니아)
능력치:
- 통솔: 12
- 체력: 9
- 지능: 14
- 지혜: 12
- 매력: 12
트레잇:
- 유능한 행정가
그는 사람들의 배경과 상황을 감안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능력을 타고났습니다. 전반적인 행정 관련 행동 일반에 +2의 모디파이어.
- 동방의 붉은 별
그는 동양 문화와 변증법적 유물론을 동시에 이해하는 몇 안 되는 사람입니다. 동양 지역의 사회주의 세력 조직에 +2의 모디파이어
배경:
알렉산드르 카튜셰프는 페트로그라드의 중산층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나 별 굴곡 없이 가업을 잇고, 역시 별일 없이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대전쟁 때도 전문직 종사자라는 이유로 징집을 피할 수 있었죠. 여러모로 평범한 삶이었지만, 살아있는 신이나 다름없는 차르가
쫓겨나고 척박한 러시아 땅에도 자신이 책에서나 보던 혁명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그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7월 혁명으로 임시정부가 축출되기 직전, 카튜셰프는 끓어오르는 의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무언가 홀린 듯 볼셰비키당에 입당했죠.
이후 그는 사상교육 담당 관료를 거쳐 교육인민위원회의 부위원장의 직책에까지 올라 연방의 인재들을 발굴하고
다듬는 일의 실무를 총괄하게 되었습니다. 묵묵히 자신의 일에 충실하는 카튜셰프는 당원들과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며 착실히 사다리를 오르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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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일리야 바실리예비치 우스트랼로프
플레이어: 렌지파일
생년월일: 1891년 5월 23일
성별: 남성
민족: 유대계 러시아인
능력치:
- 통솔: 12
- 체력: 8
- 지능: 17
- 지혜: 11
- 매력: 12
트레잇:
- 네고시에이터
그는 반대파에게도 화합과 화해의 손길을 내밀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모든 갈등에는 해결 방법이 존재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갈등의 조정 및 설득 과정에 +2의 모디파이어.
배경:
일리야 우스트랼로프는 본래 제국대학의 법학도였으나, '자본론'과 '독일 이데올로기' 등을 탐독한 끝에 결국 맑스주의자가 되었습니다.
그 길로 곧장 사회민주노동당에 입당한 그는 볼셰비키파에 속했음에도 각종 당내 분규에 휘말렸고, 1912년 레닌에 의해 당이
두쪽나는 과정에서 비밀경찰의 추적을 피해 스페인 망명을 떠났습니다.
1917년 8월, 일리야는 붉은 페트로그라드에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동지를 부르주아의 앞잡이로 매도하고 독선적인 모습을 보이던
이들이 사회주의 조국의 고위직을 차지한 모습을 보자 오히려 착잡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과 무산계급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고, 당내 비주류 계파들의 융화를 돕는 한편 지도부가 지시하는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다시금 그들의 신뢰를
얻는 데 성공했습니다. "인간이 없는 혁명은 혁명이 아니다"라고 믿는 그는 과연 자신의 작은 꿈을 이룰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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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알렉세이 콘스탄티노비치 바레츠노프
플레이어: 하일레 셀라시에
생년월일: 1894년 10월 1일
성별: 남성
민족: 러시아인
능력치:
- 통솔 10
- 체력 9
- 지능 11
- 지혜 15
- 매력 16
트레잇:
-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
그는 은근슬쩍 정보를 빼내는 데 탁월한 모습을 보입니다. 상대방으로부터 정보를 얻어내는 데 +3의 모디파이어.
배경:
알료샤 바레츠노프는 주 런던 러시아 제국 대사관의 1등서기관을 역임한 콘스탄틴 바레츠노프의 아들로서,
런던 빈민가의 참혹한 모습을 보고 사회주의에 매료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아버지의 주문대로 법학과 정치학을 공부한 그는
아버지의 기대를 배신하고 노동자들을 위한 무료 변론, 그리고 각종 노동조합의 서기직을 맡으며 그의 신념을 관철해 나갔습니다.
이는 오래지 않아 탄로났고, 알료샤는 집안과 의절하게 되었죠.
이후 다시 고국 러시아로 향한 그는 7월 혁명의 과정을 두 눈으로 목격, 공산당에 가입해 사회주의 조국의 외교관이 되었습니다.
탁월한 말솜씨로 상대에게서 각종 정보를 간파하는 재주를 가진 알렉세이에게 외무인민위원회의 간부직은 꽤나 나쁘지 않은 직업이었으나,
그는 자신이 조금 더 당에 기여하고 정치적 입지를 쌓을 수 있는 일을 원했습니다. 우크라이나 흑군과의 공조, 소수민족 내지 백군 출신
지휘관들과의 인맥 쌓기, 민족문제위원회 위원장 서리직 수행 등 그는 자신의 능력범위 내에서 노력했습니다.
트로츠키 동지는 그의 외교적인 공로를 적극적으로 주목하며 바레츠노프를 외무인민위원장에 임명했습니다.
왕좌의 게임: 권력 투쟁 업데이트. (1922년 가을 기준)
1. 레프 다비도비치 브론시테인, 일명 '트로츠키' (60)
2. 이반 데니소비치 솔제니친 (56)
3. 이오시프 비사리오비치 쥬가슈빌리, 일명 '스탈린' (15)
4.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부하린(28)
5. 일리야 바실리예비치 골드시테인, 일명 '우스트랼로프' (25)
*현재 당내 정치 긴장도: 4(우호적)
전 갑자기 백년전쟁에서 영국이 이긴 상황의 대체역사가 생각이...
어느 시점에서 끝난걸로 해야 하나 모르겠는...
일단 카라멜님이 무진장 좋아하실듯...ㅋㅋㅋ
전 냉전이 자유진영에 좀 더 유리하게 진행되었고 80년대는 동구권과 비슷하게 흘러간 시나리오가 생각납니다.(다만 체코가 내전난게 아니고 소련에서 내전남)
현실도 그정도면 꽤 유리한걸로 보입니다만.(아시아는 우려했던 공산 도미노가 크게 벌어지지 않았고 유럽도 공산세력의 추가침투 실패)
소련에서 내전이 나는건 좀 불안한데요.
그순간 동구권을 넘어 전세계가 개판이 될수 있습니다만(동구권 일개 국가랑 미국과 경쟁한 강대국 하나랑 규모나 스케일이 같을거라고 생각하시진 않겠지만)
현실에서도 소련이 해체되면서 핵기술이라던지 여러가지가 유출되는 바람에 북한이나 이란 핵개발에 영향을 미쳤었는데, 아예 내전이면 지들끼리 핵을 쏘든, 핵기지 점거한 군벌이 핵탄두를 팔아먹든 할듯…
아 그건 그렇고 다들 원하시는 개인 엔딩 방향이 있으신가요? 다 반영해드린다는 약속은 못 드리지만 적어도 “어 이건 내 취향이 아닌데?” 하는 상황은 피해 보려고…
저도 요즘 약간 무리수 설정을 만들고는 있습니다만 이건 언싱커블보다 더한 하드코어가 될수도 있겠네요
글쌔요...생각한게 이후 지위 상승까진 안해봤고 그냥 군 현대화와 전력 증강에 거의 평생을 헌신했다 정도만 생각했던지라.
가족은...과연 애만들 시간이 있었을까 모르겠습니다.ㅋㅋㅋ
아니면 아예 이번 연대기의 안티테제(?) 느낌으로다가 적백내전에서 백군이 승리한 세계…?
인물 행보대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갑자기 정치판에 끼겠다고 선언하거나 하지만 않으면 괜찮을거 같네요.
전 최후의 생존자요. 이후에도 하던 일 계속하며 승진하고, 저우팡이랑 꽁냥꽁냥하며 별 탈 없이 살아가다 솔제니친, 간니발, 우스트랼로프, 바레츠노프, 마르텔, 부하린, 트로츠키 등은 전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혼자 장수해 한 8~90년대나 2000년대에 인터뷰를 하거나 방송에 나와서 동지들과 함께 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그런 엔딩이요.
소련의 J. 에드거 후버가 된 마르텔… ㅋㅋㅋㅋ
오 이거 특이하네요. “내가 더 오래 살거야!” 하는 분 없으면 이대로… ㅋㅋㅋ
+ 중국 이름이 천린 이었나요? 천 까지는 기억나는데 이름이..?
그럴 경우 다른 지역에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있을까요?
제가 만든 20년대하고의 차이라면 러시아 영토가 어느정도냐 그리고 체제가 어떻냐 정도겠네요
ㅋㅋㅋ 저는 나이상 무리니 빠지고 (유일한 40대!) 드문 경우가 있다면, 표트르정도? 가 가능하겠네요. 다른 인물의 경우 격무가 있으니...
진란이요.
사망하는 날은 2020년 정도?
전 그래도 7~80년대까진 노려보겠습니다.ㅋㅋㅋㅋ
혹시 한자도 있으신가요? ㅋㅋ
+ 와 그럼 130세까지… ㄷㄷ
"靳燃"
이렇게 됩니다.
2차 산업혁명 시기에 태어나 4차 산업혁명의 태동기에 죽는 엔딩을 생각중입니다.
비록 부인과 태어난 날짜는 다르지만 한날한시에 같이 죽는 엔딩도...
애기는 남자셋 여자셋 부탁드립니다(..)
원래 제가 바랐던 엔딩은 트로츠키파의 행동대장이자 세계혁명의 선봉장으로 대숙청때 숙청당하는 엔딩(..)이었지만 그건 이번 세계에선 안된거 같고, 지금까지의 제 행적에 따라 gm님께서 알아서 적어주셨으면 합니다 ㅋㅋ
일단 직위는 외무인민위원장으로써 평생 wto의 가맹국 확대와 결집성 강화에 힘쓰다가 60살에 내려오고 wto 총회 의장을 18년간 역임하다가 은퇴.
30대에는 러시아 무너졌을 때 영국에 망명을 간 아버지를 다시 만나서 '가문의 명예'에 목숨거는 아버지와 이념차이로 싸우다가 아버지가 죽기직전에(바레츠노프는 40세) 화해하고 가문의 이름을 널리 펼치겠다고 맹세함.이후 공산주의에 찬동하는 가문 방계들을 찾아서 각국 대사로 임명하고는 외교인민위원장을 대대로 배출하는 명문가를 이룬 다음에 외무위원장을 넘어서는 어떤 직위도 가지지 말고 외교관의 가문으로 남아있으라는 유언을 현직 wto 의원인 손자와 현직 외무인민위원장인 아들에게 남기고 사망.
이후에도 바레츠노프 가문과 혈연으로 이어진 이들이 공산주의 계열의 외교가를 꽉 잡고 있었다고...(능력 있는 엘리트들은 가문의 딸과 결혼시킴) 가문채로 몇번의 숙청시도가 있었지만 숙청했다가는 당장 외무부 임원의 절반이상이 날아가기 때문에 포기했다고 함.
후대의 사가가 평가하기를 '외교를 하기 위해 태어났던 사람.'
사실 트로츠키가 숙청당할 경우 생각해둔 표트르 엔딩은 “멕시코에서 소련이 보낸 암살자를 7번이나 그대로 역관광 태우고 트로츠키를 그가 죽을 때까지 보좌하며 노년에는 체 게바라 등과 함께 남미 혁명에 기여한(?) 혁명역군”….
2차대전(년도가 같다면) 이후 말렌코프/흐루쇼프 대신에 최고 지도자 위치에 올랐다고 해도 가능할까요? 1940년대 말~1950년대면 60대일 테니깐..
전시 비상체제가 들어서 있던 소련에 마침내 민주주의(물론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독일식 평의회(소비에트) 민주주의요)와 노동계급 정당의 다원화(사회혁명당 좌파, 멘셰비키의 별도 재창당이라던지...)를 도입했다고 해보고 싶습니다.
다만 사회주의 경제는 철저히 옹호한 진성 좌파로써요. 평의회 민주주의를 도입한다고 자본주의자들을 인정할 이유는 없으니, 레닌주의를 배신한 고르바쵸프는 아닌걸로(...)
여튼 이 연대기 버전의 TNO 발레리 사블린이 되어 사회주의 체제 하의 정치적 다원주의와 소비에트 민주주의를 수호했고, 수명은 이 캐릭터가 어쩌다 보니(...) 술잔치에 잘 안 꼈는데, 그걸 핑계로 1989년까지 살았다고 해 보고 싶습니다. 물론 옆에 130살 산 사람이 있지만요 ㄷㄷ
ㅋㅋㅋㅋㅋㅋㅋ 왠지 어울리네요. 충분히 가능했을법한 시나리오 ㄷㄷ
작게 끄적여보자면...
"레닌 사망 이후에도 별 탈 없이 살아가다 27년 교육장관으로 승진, 그리고 28년 중화민국이 WTO에 가입하며 국민당 정치고문에서 해임되었으나 중국에서 행정원장 직을 제안해 행정원장으로 취임. 그 후로도 계속해서 소중 양국간 우호의 마스코트로 활동하고 교육부문과 행정부문에 지대한 족적을 남기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다 1980년 모든 직책에서 내려오고 은퇴.
그리고는 자서전 등 저술 활동과 교육부 고문으로 활동하다 2020년 자택에서 숨을 거둠.
가족은 33살이 되던 해 남녀 쌍둥이를 얻었고 자식들도 아빠를 따라서 교육자와 행정관으로서 살아감. 부인 저우팡(소피아 알렉산드로브나 카튜셰프)은 대학교를 졸업한 뒤 경제 부문에서 활동하였으며 부부가 증손자까지 보았음.
그 후 아들은 소련에 남고 딸은 중국으로 가서 활동하였으며 소련 카튜셰프 가문은 교육 부문, 중국 카튜셰프 가문은 행정 부문의 명문가가 됨.
부인은 2020년 4월 1일 남편과 함께 상트페테르부르크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다.
몇 년생이길래 2020년에 죽음을?
1890년이요.
130살 ㄷㄷ
(아래 내용은 2017년 카튜셰프의 인터뷰 중 일부)
사회자:
올해는 7월 혁명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특별한 분을 게스트로 모셨는데요. 바로 그 시대의 증인인 알렉산드르 카튜셰프 전 교육장관을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카튜셰프:
예 안녕하십니까.
올해는 7월 혁명 100주년이 되는 해인데요. 장관님께선 그 시대를 살아오신 분으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장관은 무슨... 그냥 동지라고 부르시지요. 그 시대가 어땠냐면...
(후략)
바레츠노프 가에서부터 나온 두 개의 여담이 어느 날 공산주의 세력에서 각 국 외무위원장 모임이 있었는데 모임이 끝나고 나온 사람들의 절반이 그 길로 같은 비행기타고 바레츠노프 종친회 파티를 갔다고...(물론 과장)
'외무위원장이 되고 싶거든 바레츠노프의 아들로 태어나든지 바레츠노프의 딸과 결혼해라'라는 말이 나돌았다고 하더라..
(2019년 모스크바 크렘린 벽 묘지)
카튜셰프:
잘 지냈소 동지들? 오래만에 보는 것 같습니다. 거기서는 잘들 살고 계시는지요?
동지들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저만은 혼자 살아남았습니다. 그동안 시대가 참 많이 바뀌었지요. 사람이 달에 가고 전화기를 손에 들고 다닐 수 있게 되었으며 파리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단 20일이면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까지 7일이 걸렸는데 이젠 파리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20일이면 갈 수 있다는게 놀랍습니다.
(중략)
(콜록콜록) 이제 저도 슬슬 동지들 곁으로 가게 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언젠가 다시 오겠습니다. 다들 안녕히 계십시오.
두분 쓰신거 보니 쓰고 싶어져서...
"레닌 사후, 신뢰받는 인물로 유언장 집행, 지도부 선출에 큰 목소리를 내며 국가정보위원회 의장직에 선임 되었고, 제르진스키를 넘어 결국 정보국의 1인자가 되었다. 이후, 국가 내부의 반동분자, 외부의 적들을 열성적으로 소탕하면서, 혁명의 수호자라는 이미지를 얻는다.
그는 본인의 긍정적, 부정적 이미지를 최대한 이용하여, 48년, 즉 "소조국 전쟁"이 끝날때까지 직위를 유지했고, 70살이 되는 그 해에, 후계자를 지명하며 자리에서 물러나고자 했으나 부하린의 만류로, 소조국 전쟁의 수습이 끝나고 완전한 안정을 찾게 되는 해인 53년, 75세에 정년 퇴직을 하고, 모스크바 외곽 안전 가옥에 머무르며, 자서전 집필과 함께, 가끔 요원들의 자문을 하며 여생을 보냈고, 62년 10월 28일. 84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 아마, 소조국 전쟁이 안 터지면 10년씩 당기지 않을까... 하네요. 이건 쓰고 싶어서 쓴거니 반영 안하고 새로 쓰시는것도 마음에 들듯 합니다.
럭키 베리야 엔딩이네요
저도 기본틀 정도는 제공하는게 임의 작성이어도 도움이 될듯 하니까...
"레닌 사후에도 솔제니친은 붉은군대를 위시로한 공산군의 현대화와 전력 증강에 몰두했다.
이후 그의 지위는(이 뒷부분은 슈나이더님께)
이후 그는 시간이 지나 공직에서 은퇴해 자식들과(2남 3녀 정도?) 여생을 보냈다.
그는 죽을때까지 군 개선에 영향을 끼쳤고 사후 공산진영 최고의 영웅중 하나로 추앙받는다"
+ "여담으로.그의 집안에서 나온 자손들은 남녀에 상관없이 거의다 군인이 됐다고 한다" 추가
+ 이걸 임의로 손보셔서 작성하셔도 됩니다
그렇게도 보이네요. 에드거 후버 참고 했지만, 베리야도 비슷...
+ 차이가 있다면, 베리야가 했던 미친짓을 저지르진 않을거라는거?
사실 마르텔같은 인물이 있으면 소련 입장에선 베리야보단 훨씬 나은게, 야고다-예조프-베리야의 3인 학살자 트로이카(...)를 대체할 인물이 있고, 제르진스키(26년 병사) 멘진스키(34년 병사)라는 대참사가 있으니..
무엇보다 베리아 이후로도 정보기관의 왕을 해먹었던 사람이 둘이나 있는데 한명은 GRU와 KGB 총수를 둘 다 해본 이반 세로프가 있고, 다른 한명은 15년 동안이나 KGB 의장을 하다 이후엔 골골대는 브레즈네프 대신에 소련을 통치한 유리 안드로포프(...)입니다.
... 대체 첩보국은... 근데 이해는 가네요. 그런곳에 있는데 완전 멀쩡히 제정신이기는 조금 어렵긴 했을건데, 어째 저 둘은 다 병사를...
+ 아니, 베리야 참사를 아는데도 정보기관을 그렇게 강하게 둔게 솔직히 의문이긴 합니다. 공산 국가긴 한데...
베리야 참사 후엔 일단 철저하게 통제 하에 들어가긴 합니다 (그런데 베리야도 '최고지도자의 의중에 따라' 패악질을 한거니 엄밀하게 말해서 통제가 안되었다곤 할 수 없죠. 후버는....뭐......)... 안드로포프같은 양반이 생길 줄은 몰랐겠죠.
엄밀하게 말하면 소련 말기에 개혁파(미코얀, 수슬로프, 그로미코+자유주의자 고르바쵸프)와 보수파( 안드로포프)도 아닌 브레즈네프 같은 관료들이 정권을 잡아버린게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체제가 완전히 경직되어 버리니, 다들 자기 자리에서 이권은 챙기면서 권력투쟁을 열심히 벌인거죠.. 그러다
비서였던 예카테리나와 결혼해서 이후로도 쭉 함께 활동했는데 공석에서는 아내가 남편을 신 모시듯 대했으나 사석에서는 아내를 '여왕님'이라 부르며 공처가로 살았기때문에 '바레츠'라는 말이 러시아 은어로 '낮져밤이'를 뜻하게 되었다고 한다.
날때 어머니를 여읜 것 때문에 모정에 대한 그리움이 많아서 첫째를 낳고 2년후 둘째 아이를 낳자 아내에게 은퇴하고 아이들의 양육에 전념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아... 후버는... 사실 원래 그 버전으로 쓸라다가 만. 아니 저정도로 정보를 수집해서 압박을...
+ 경직은 진짜 답이 없죠. 발전을 못하니 뭐... 근데 하필 관료가... 경직 속에서도 더 경직 될 수밖에 없죠 뭐.
여담:
카튜셰프 가문의 구성원들은 조상인 알렉산드르와 저우팡이 미인이었던지라 미남 미녀가 많기로 유명하다.
그럼 제쪽 집안은 남녀 불문 죄다 군인 출신이라고 해야 할까요?ㅋㅋㅋㅋ
이제보니 마끼아또 님도 저처럼 가문키우기 하셨네요 엔딩 보고 크킹 처럼 가문점수 매기기 해도 재밌겠는..ㅋㅋㅋㅋㅋ
군인 집안의 후손은 군인이 되는게 순리 아니겠습니까?
충무공 이순신 집안도 후손들이 죄다 무과 응시했다는 말이 생각나서요
러시아 공산주의식 융커라... 재밌겠네요
안그렇게 되기엔 제가 세운 공훈이...
작중 시점만 포함해도 7월 혁명의 주역,적백내전에서 엄청난 대전과를 기록,이후 현대화를 성공적으로 진행하며 폴란드와의 전쟁에서도 압승을 기록.이후 현대화 장비가 중국,프랑스에 적용되며 성능을 입증.건함 정책으로 프랑스를 뒤흔듬(물론 가장 큰 원인은 공작이지만)등등등...(간접적으로는 터키 방면도?)
이런데 집안에서 뭐라 안해도 주변에서 군인 안하냐는 말이 나올수밖에...
후아.... 가장 오래 걸렸네요... 2시간 27분만에 작성 완료..!
어쩌다 보니 후일담이 대폭 생략됐는데 나중에라도 외전 형식으로 이 이후의 일들을 소설로 다뤄볼까 합니다. ㅋㅋ
만약 20년대가 되면 설정 따로 다뤄봐? 하는 저랑 똑같네요.시점의 차이일뿐ㅋㅋㅋ
한쪽은 세계혁명, 한쪽은 아예 공산주의가 망한 세계관..? ㅋㅋㅋㅋ
뭐 러시아 혁명이 실패했어도 다른 곳에서 혁명이 터졌을 지도 모르긴 하지만요.
아 제가 말한건 다들 갱생한 20년대.
국가고 인물이고 뒤집힌게 한두개가 아니라서리.
백군 승리는 설정 논의가 좀 필요해서...이기는건 상관 없는데 파급 효과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