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조사(正朝使): |
매년 정월 초하룻날 새해를 축하 하러 가는 사신(使臣). |
성절사(聖節使): |
중국의 황제(皇帝),황후(皇后)의 생일에축하하러가는사신. |
천추사(千秋使): |
중국의 황태자(皇太子) 탄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가는사신. |
세폐사(歲幣使): |
매년 음력 10월에 공물(貢物)을 갖고 가던 사신. |
동지사(冬至使): |
매년 동지(冬至)를 전후하여 중국에 가던 사신. |
2. 임시사(臨時使: 특별한 일이 있을 경우에만 파견되는 사신)
사은사(謝恩使): |
중국이 왕실이나 국가에 대하여 호의(好意)를 베풀었을 때 사례하기 위하여 보내던 사신. |
진하사(進賀使): |
중국 황실에 경사가 있을 때 축하하기 위하여 파견된 사신. |
주청사(奏請使): |
국사(國事: 나라의 일)에 대하여 중국 황제에게 주청(奏請: 아뢰어 청함)할 일이 있을 때 파견되는 사신. |
진주사(陳奏使): |
국사(國事)를 중국 황제에게 통고(通告)할 일이 생겼을 때 파견되는 사신. |
변무사(辨誣使): |
중국이 국사(國事)에 대하여 곡해(曲解: 잘못 해석함)하는 일이 있을 때,이를 정정(訂正) 또는 해명(解明)하기 위하여 파견 된 사신. |
진위사(鎭慰使): |
중국 황실에 국상(國喪: 나라에 초상이 남)이 생겼을 때 조문(弔問)하기 위하여 파견된 사신. |
진향사(進香使): |
중국 황실에 국상이 있을 때 향(香)과 제문(祭文)을 가지고 가던 사신. |
부고사(訃告使): |
나라에 국상(國喪)이 있을 때 이를 알리러 파견된 사신. |
원접사(遠接使): |
중국에서 사신이 오면 의주(義州)에까지 가서 사신을 마중하고 잔치를 베풀어 영전하는 사신. |
반송사(伴送使): |
중국사신을 호송(護送)하던 임시관직. |
관반사(館伴使): |
한성에 묵고 있는 외국사신을 접대하기 위하여 임시로 임명한 정3품 벼슬. |
심양사(瀋陽使): |
청나라 심양(瀋陽: 청국의 수도)에 보내는 사신. |
통신사(通信使): |
수신사(修信使)라고도 하며 일본에 보내던 외교사절. |
3. 국내사(國內使: 국내의 문제로 파견되는 사신)
감진사(監賑使): |
흉년이 든 지방에 파되어 굶주리는 백성을 구제하는 일을 감독한 관직으로 감진어사(監賑御史)라고도 한다. |
위유사(慰諭使): |
천재지변(天災地變)과 그밖의 재난(災難)이 있을 때에 지방에 파견되어 백성을 위로하고 살피는 임시관직. |
안무사(按撫使): |
지방에 변란(變亂)이나 재난(災難)이 있을 때에 파견되어 백성을 안무(按撫)하는임시관직. |
안핵사(按핵使): |
지방에 사건(事件)이 생겼을 때 그 일을 조사하기 위하여 파견되는 임시관직. |
정리사(整理使): |
임금이 거동할 때 행재소(行在所: 임금이 잠시 거처하는 곳)의 수리(修理)와, 그밖의 일을 맡은 임시직으로 호조판서가 전임(專任)한다. |
돈체사(頓遞使): |
국장(國葬: 나라에 초상이 남) 때 행렬이 지나는 길에, 주식(酒食)을 마련하고 군대와 인부(人夫)들에게 음식을 주던 임시 관직. |
지방 쓰는 법
신위는 고인의 사진으로하되 사진이 없으면 지방으로 대신한다.
지방은 깨끗한 백지에 먹으로 쓰며 길이는 22Cm 넓이
6Cm정도로 한다.
** 시중에 지방함을 판매하고 있으니 구입하여 사용하면 품위있고 편리하다.**
알아두어야 할점
지방을 쓸때에는 몸을 청결하게하고 깨끗한 백지네 먹으로 쓰며 가로
6Cm, 세로 22Cm 정도로 합니다.
남자의 지방을 쓸때는 벼슬이 없으면 學生(학생)을
쓰고 벼슬이 정일품 崇祿大夫(숭록대부)라면 그 관직을 그대로
쓰고
그 부인의 경우는 貞敬夫人(정경부인)을 孺人(유인)대신으로 씁니다.
남자 지방의 考(고)는 父(부)와 동일한 뜻으로 생전에는 父라하고 사후에는 考라하며 妣(비)는 母(모)와 동일한 뜻으로 생전에는 母라하며 사후에는 妣(비)라고 합니다.
여자의 경우에는 유인(孺人)다음에 본관성씨를
쓰며 아내의 경우 자식이 있어도 남편이 주제가 되며 자식의 경우에는
손자가 있어 도 아버지가 주제가 됩니다.
만약 재취로 인하여 삼위지방일 경우에는 왼쪽 에 남자지방 중간에 본비의 지방 오른쪽에 재취비의 지방을 씁니다.
*부모중 어느 한분의 제사를 모시드래도 두분다 돌아가셨으면 지방은 두분 다 쓰며
제관의 좌측에 父의 지방
우측에 母의 지방을 씁니다.
그리고 달라 지는 것은 축문의 몇 구절입니다.
축문은 축문 쓰는 법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고조부모,증조부모
조부모,부모
남편,처,형, 형수
백부모,동생,자식
숙부모의경우,백부,백모를 숙부,숙모로 바꾼다.
대추,밤,감은 필수적으로 젯상에 올려야 하는 이유?
우리 조상들의 유풍을 보면 어느 것 하나 허튼 것이 없다. 오늘날 우리가 예사로 보아 넘기지만,
그 속을 잘 들여다보면 고도의 상징과 합리성, 깊은 속뜻이 담겨 있어 경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그런 조상의 슬기가 배어있는 예를 하나만 이야기 해 볼까 한다. 바로 제수에 관한 것이다.
제사를 모실 때 보면 가가례라는 말이 있듯이 제수를 진설하는 방식은 지역마다, 집집마다 조금씩 다르다.
그리고 제수 역시 고인의 생전의 기호나 형편에 따라서 늘거나 줄기도 하고 독특한 것이 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과채탕적을 마련하고, 과일도 조율시이, 즉 대추, 밤, 감,배.이런 순서로 놓아 가는 것에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과일로는 오색 또는 삼색을 쓰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요하게 치는 덕목 중의하나는 아무리 간소한 제사라 할지라도 삼색 과일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라도 대추와 밤과 감―감이 없는 계절에는 곶감, 이렇게 세 가지는 반드시 쓰게 되어 있다.
만약 이것없이 제사를 지냈다면 그 제사는무효라며 다시 지내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할 만큼
이 세 가지는 절대 빼놓지 않는다.
그런데 이것이 왜 그런가 하는이유를 아는 사람이 지금은 그리많지 않은 것 같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그것은 어느 집안에서나 어른들의 입을 통해 대대로 전승되던 고래의 상식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통문화와의 단절 속에서 그 전승도 끝이 소실되어 마치 아득한 먼 나라의 일인 양 여기게 된 것이다.
다행히 어른들께 몇 마디 들은 바 있어 그 의미를 적어 본다.
첫째로, 대추를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빛깔이 좋아서도 아니요 맛이 좋아서도 아니다.
거기에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대추의 특징이라면 한 나무에 열매가 헤아릴 수 없이 닥지닥지 많이도 열린다는 것이 되겠지만,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것의 묘한 생리다.
그것은 꽃 하나가 피면 반드시 열매 하나를 맺고서야 떨어진다는 것이다.
아무리 비바람이 치고 폭풍이 불어도 그냥 꽃으로 피었다가 꽃으로만 지는 법은 없다.
그래서 만약 어느 해에 대추가 흉년이 들거나 풍년이 들었다면,
그만큼 꽃이 적게 피었거나 많이핀 해라고 보아서 틀림이 없다는것이다.
꽃 하나가 반드시 열매 하나를맺고서야 떨어진다. 이것을 사람에게로 옮겨 놓으면 어떤 의미가 되겠는가?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반드시 자식을 낳고서 가야한다―그것도 많이 낳고서 가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 제상에 대추가 첫 번째 자리에 놓이는 것은 자손의 번창을 상징하고 기원하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한 집안에 후손이 끊어지면 그 집안이 망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국가나 민족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극도로 산아제한을 해서 하나도 많다느니 하는 말들을 하지만, 생각해보면 걱정스러운 세태가 아닐 수 없다.
막 혼례를 올린 신부가 신부가시부모에게 폐백을 드릴 때,
시부모된 사람들이 대추를 한 웅큼새며느리의 치마폭에 던져 주는 것도 같은 상직적 의미가 있다.
아들 딸 구별 말고’대추 열듯이 많이 낳아, 자손이 번창케 하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밤을 꼭 쓰는데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밤이라는 식물도 생리가 묘하기는 마찬가지다.
한 알의 밤이 땅속에 들어가면 뿌리를 내리고 싹이 나서 줄기와 가지와 잎이 되어 성숙한나무를 이룬다.
여기까지는 여느 식물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여느 식물의 경우 나무를 길러낸 최초의 씨앗은 사라져 버리지만,
밤만은 땅속에 들어갔던최초의 씨밤이 그 위의 나무가 아름드리가 되어도 절대로 썩지 않고 남아 있다.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렀건 간에 애초의 씨밤은 그 나무 밑에 생밤인 채로 오래오래 그냥 달려 있다는 것이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그런 믿기어려운 이야기를 어른들로부터 수없이 들었는데,
정말 그런가 하고 궁금해 하기만 했지 정작 확인해 볼 기회는 없었다.
그런데 철 든 후 아버지의 산소를 모시고 그 경계를 꾸미려고 할 때에 어릴 적부터 누누이 들어온 그 이야기 생각이 났다.
대개 산소 주변에는 과일나무를 심는 법이다. 이것 역시 우리 조상의 슬기를 보여주는 한 예라고 할 것이다. 거기에는 ‘예출어정, ’‘정출어근’, 곧 예는 정에서 나오고 정은 가까운 데서 나온다는 생각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혈족이라 할지라도 가까이 지내지 못하면 정이 생기지 않고,
정이 생기지 않으면 예(공경하는마음)도 생기지 않는 법이다.
가령 상가에 문상을 가도 문상객 중에 어히곡을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의 구별이 생기는데,
이때 기준이 되는 것도 고인과 얼굴을 아느냐 모르느냐이다.
가까이 해야 정이 생기고, 정이 있어야 슬픔이 있고 곡도 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니까 조상님 산소라고 해도 그것이 먼 조상의 것이면 자연히 돌보기가 힘들어지고 소홀해지게 마련이다.
할아버지까지는 얼굴을 안다지만, 증조, 고조그 윗 대로 올라가면 얼굴 한 번 뵌 적 없는데
그 손자 녀석이 알뜰히 돌볼 까닭이 있겠는가? 그
래서 산소 근처에 유실수를 심어놓는다.
그 열매를 따먹으러나 오라는 것이다.
그래서 왔더라도 설마 거기 있는 조상의 산소 한 번 돌아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가까이 하게 해서 정을 쌓고, 정이 쌓이다 보면 예도 나올 것임을 믿었던 것이다.
나는 조상의 그런 슬기로운 유풍을 좇아,
아버지 산소 주변에 유실수를 심기로 하고 어느 농가에 가서 5년 생 밤나무 스무 그루를 샀다.
그것을 옮기기 위해 막 차에 실으려 하는데 예의 그 궁금증이 발동했다.
말로만 들었던 밤의 생리가 정말 그러한가확인을 해 보고 싶어진 것이다.
아름드리가 될 때까지도 씨밤이 생으로 남아 있다니까 5년생에도당연히 남아 있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일부러 묘목의 뿌리 부분을 감싼 새끼를 풀고, 그 흙을 살금살금 파 보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농장 관리인이 펄쩍 뚜이었다.
“아니,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대로 가지고 가지 않으면 나무가 죽습니다!”
“예, 예.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 밤나무가 죽고 못 살아도 좋으니까 뭘 좀 꼭 볼 게 있어 그럽니다.”
나는 그런 말로 농장 관리인의만류를 뿌리치고 흙을 조심조심 다 털어냈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씨밤이 정말로 생밤 상태 그대로 달려 있었다. 내 눈으로 그것을 직접 확인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 산소가에 그 밤나무들을 심은 지가 이제 20년 가까이 되었지만,
그 아래 흙 속에는 여전히 생밤을 달고 있으리라는 것을 나는 의심치 않는다.
밤의 생리는 이렇게도 묘하다.그래서 밤은 나와 조상의 영원한연결을 상징한다.
자손이 몇 십, 몇 백 대를 헤아리며 내려가더라도 조상은 언제나 나와 영적으로 연결된 채로 함께 있는 것이다.
지금도 조상을 모시는 위패, 신주는 반드시 밤나무로 깎는다.
밤나무가 특별히 결이 좋은 것도 아니요 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반드시 그렇게 하는이유는
바로 밤나무의 그 상징성때문이다.
다음은 감이다. 감나무는 서울 이북, 그러니까 한강 이북에서는 서식하지 못한다.
지금은 기후가 따뜻해져서 서울에서도 감이 된다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서울에서 감나무를 구경도 할수 없었다.
그런데도 한국사람이라면 가령 함경도에 살건, 평안도에 살건 어디서나 제사 때는감을 올린다.
물론 곶감으로밖에 놓을 수 없지만, 어쨌든 꼭 쓰는 것이다. 감 없이 제사를 지낸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면 왜 감을 꼭 쓰는가? 다른 것이 아니다. 역시 감이 지는 묘한 생리 때문이다.
속담에 이르기를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고 한다.
하지만 감 심은 데서는 절대로 감이 나지 않는다.
아무리 탐스런 감에서 나온 감씨를 심어도 거기서 나오는 것은 감나무가 아니라 고욤나무다.
감씨를 그냥 심기만 해서는 그 나무에 고욤이열리지 감이 열리지는 않는 것이다.
고욤은 생김새는 감을 닮았지만 크기는 도토리만 하고 떫어서 다람쥐 같은 들짐승들이나 먹지 사람은 먹지 못한다.
감나무를 만드는 방법은 이렇다. 감씨를 심으면 고욤나무가 된다. 그래서 3~5년쯤이 되었을때 그 줄기를 대각선으로 짼다. 그리고 기존의 감나무 가지를 거기에 접을 붙이는 것이다. 이것이 완전히 접합이 되면 그 다음부터 감이 열리기 시작한다. 만약 장난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줄기가 아니라 가지에 접을 붙이면, 한 나무인데도 이 쪽 가지에선 감이 열리고,
저쪽 가지에서는 고욤이 열리는 기묘한 일도 벌어진다. 감은 이렇게 묘한 과일이다.
이 감나무가 상징하는 바는 이렇다.
즉,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다 사람이 아니라 가르침을 받고배워야 비로소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율곡 선생인 쓰신 <<격몽요결>>의 첫 장 첫 줄도 “인생사세에 비학문이면 무이위인 이니라.
”하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
가르침을 받고 배우는 데에는 생재기를 째서 접붙일 때처럼 아픔이 따른다.
그 아픔을 겪으며 선인의 예지를 이어받을 때 비로소 진정한 하나의 인격체로 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이 대추와 밤과 감을 제상에 올리는 의미이다.
이렇듯 우리 조상들은 제물 하나를 차리는 데에도 자손에 대한 가르침을 염두에 두었다.
그런데 우리가 그가르침을 망각한 채로 제상에 이들을 올린다면 마치 돌을 올리는것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100년 전도 아니고, 200년 전도 아니고,
당장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이어져 내려오던 그 가르침들이 6.25 전란의 와중에서 망각에파묻히고 말았다.
이러한 조상의 슬기마저 낡은 것이라고 외면해 버린다면,
그것은 마치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수택 어린귀중한 골등품을 플라스틱 제품과 바꿔 쓰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근친간칭호법(近親間稱呼法) |
구분→ |
내가 부를때 |
내가 말할때 |
내가 남에게 말할때 |
남이 나에게 말할때 |
남에게 자신을 말할때 |
祖父 |
할아버지 |
소손(小孫) |
조부(祖父) |
조부장(祖父丈) |
조부(祖父) |
祖母 |
할머니(祖) |
上同 |
조모 (祖母) |
왕대부인 |
조모(祖母) |
父 |
아버지 |
소자(小子) |
가친(家親) |
춘부장(春府丈) |
부(父) |
母 |
어머니 |
上同 |
자친(慈親) |
자당(慈堂) |
모(母) |
父母同時 |
부모님 |
고애자(孤哀子) |
부모(父母) |
양당(兩堂) 양위(兩位) |
양인(兩人) |
男便 |
당신 |
처(妻) |
남편주인바깥양반 |
현군(賢君) |
부(夫) |
아 내 |
당신여보 |
졸부 (拙夫) |
안사람 |
부인(夫人) |
처(妻) |
子 |
애큰애 |
애비에미 |
자식 |
자제 |
저나 |
구분→ |
내가 부를때 |
나를 말할때 |
내가 남에게 말할때 |
남이 나에게 말할때 |
남에게 자신을 말할때 |
女 |
애 |
애비에미 |
딸 |
따님 |
저나 |
孫子 |
이름 |
나 |
손아(孫兒) |
영포(令抱) |
불효손(不孝孫) |
兄 |
형님 |
저 |
가형(家兄) |
백씨(伯氏) |
나형 |
兄嫂 |
아주머니 |
저 |
형수씨(兄嫂氏) |
영형수씨 |
나저 |
弟 |
동생 |
나 |
아우동생 |
제씨(弟氏) |
저나 |
弟嫂 |
제수씨 |
나 |
제수(弟嫂) |
영제수씨 |
저 |
누나 |
누나 |
저 |
자씨(姉氏) |
영매씨(令姉氏) |
나 |
妹 |
동생 |
나오빠 |
내 누이 |
영매씨(令妹氏) |
저나 |
伯叔父 |
큰아버지큰아버님 |
저나 |
사백부(舍伯父) |
백완장(伯?丈) |
나 |
伯叔母 |
큰어머니 |
上同 |
사백모 (舍伯母) |
백모부인 증모부인 |
나 |
叔父 |
작은아버지 |
사질(舍姪) |
사숙(舍叔) |
숙부장(叔父丈) |
작은애비 |
叔母 |
작은어머니 |
上 |
사숙모(舍叔母) |
존숙모(尊叔母) |
작은에미 |
從兄 |
형님 |
아우 |
비종형(鄙從兄) |
영종 형씨 |
종형 (從兄) |
從弟 |
아우 |
형 |
사촌아우 |
영종씨(令從氏) |
아우 |
姑母 |
아주머니 |
저 |
비고모(鄙姑母) |
존고모부인 |
나 |
姑母夫 |
아저씨 |
저 |
비고숙(鄙姑叔) |
존고숙장 (尊姑叔丈) |
나 |
堂叔 |
종숙(從叔) |
종질(從姪) |
비종숙(鄙從叔) |
종숙장(從叔丈) |
종숙(從叔) |
從祖父 |
할아버님 |
종손(從孫) |
종조부(從祖父) |
귀종조부님 |
할에비 |
從祖母 |
할머니 |
上同 |
종조모(從祖母) |
귀종조모님 |
할미 |
再從兄 |
형님 |
아우 |
비재종형 (鄙再從兄) |
영재종씨 |
형 |
再從弟 |
아우 |
형 |
비재종제 (鄙再從弟) |
영재종제씨 |
아우 |
外祖父 |
외할아버지 |
저 |
외왕부(外王父) |
외왕존장 (外王尊丈) |
나 |
外祖母 |
외할머니 |
上 |
외조모 (外祖母) |
외왕대부인 |
나 |
外叔 |
외숙님, 외삼촌 |
저 |
비외숙(鄙外叔) |
귀외숙(貴外叔) |
나 |
外叔母 |
외숙모님 |
上同 |
비외숙모 (鄙外叔母) |
귀외숙모 (貴外叔母) |
나 |
姨叔 |
이모부 (姨母夫) |
이질(姨姪) |
비이숙(鄙姨叔) |
귀이숙장(貴姨叔丈) | |
姨母 |
이모 (姨母)님 |
上 |
비이모(鄙姨母) |
귀이모(貴姨母) | |
內從兄 |
내형주 (內兄主) |
외종제(外從齊) |
비내종형(鄙內從兄) |
귀내종형(貴內從兄) | |
內從弟 |
내제 (內弟) |
외종형(外從兄) |
비내종제(鄙內從弟) |
귀내종제(貴內從弟) | |
外從兄 |
표종형주(表從兄主) |
비종제(鄙從弟) |
비외종형(鄙外從兄) |
귀외종형(貴外從兄) | |
外從弟 |
표종제(表從弟) |
내종형(內從兄) |
비외종제(鄙外從弟) |
귀외종제(貴外從弟) | |
族祖 |
족대부(族大夫) |
족손(族孫) |
비족대부(鄙族大父) |
귀족대부(貴族大父) | |
族叔 |
족숙주(族叔主) |
족질(族姪) |
비족숙(鄙族叔) |
귀족숙부(貴族叔父) | |
族兄 |
족형주(族兄主) |
족제(族弟) |
비족형(鄙族兄) |
귀족형주(貴族兄主) | |
丈人 |
장인어른 |
저 |
비빙장(鄙聘丈) |
귀악장(貴岳丈) |
나 |
丈母 |
장모님 |
上 |
비빙모 |
존빙모부인 |
나 |
사위 |
사위 |
나 |
사위 |
서랑(郞) |
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