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이 시집을 낸다는 소식에 잠시 얼떨떨해 졌다. 안병호장군의 경우 장교 시절 [시문학]으로 데뷔했다는 것은알고 있었지만 '장군'과 '시집'의 연결이 감도를 갖고 쉽게 이루어지는 성질이 아니기 때문일 터이다.
거기다 저자 친히 시집의 발문(跋文)을 써 달라는 부탁을 보태는 것이 아닌가, 대답을 해 놓고 생각해 보니 '발문'은 책이 되어 나오기까지 밟아온 과정이나 내용을 적는 글인데 데뷔작('66)이후의 시작 발표의 내역이나 작품의 흐름을 접해 보지 않은 필자로서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걱정을 좀 하다가, 고교의 한 해 선배되는 안시인이 전역한 후 낙향하여 진주 고등학교 총동창회 회장에 이르는 10여년이 퇴역 장성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아온 시기가 되는데 이 시기에 안시인과 필자는 '아는 선후배'가 되었다는 것, 이점에 유의하면 '발문'인들 공략이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안시인에 대한 첫인상은 무골 쪽 보다는 좀 '당당한 문사' 같았다고나 할까. 산전수전 겪어서 세 개의 별을 따내고 수도방위사령관이 된 장수가 아니라 먹을 갈아 붓을 부비는, 부비다가 대차게 흐르는 획 두어개 쳐 놓고 다시 시상에 잠기는, 뜸 들이며 여백에 놓이다가 추상같이 사물을 직시하는 선비같은 인상이었다.
그 인상에 말을 풀어가는 솜씨를 확인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읽으면서 지장(智將)이라는 느낌이 묻어 왔다. 이야기 속에서 그는 역사의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대열을 정비한 장군은 그 굽이를 때로는 소대병력을 이끌며 훑어 내렸고 때로는 연대 병력으로 쳐 올라 갔고 또 때로는 사단 아니면 군단 병력으로 평정의 말발굽을 짚어 갔다.
역사의 옆구리를 빠져 나온 장군은역사를 읽어서 알아버린 시각으로 장탄식을 뽑아 내거나 반무용담의 패장이 되어 포연에 그을린 군모를 벗는듯이 머리 위로 손이 자주 올라갔다.
필자에게 다가온 안시인의 첫 인상은 대개 이런 것이었다.
숨었던 갯벌레
모래톱에 고개 들 때
비둘기 나래 따라
가을이 소리 없이 오고 있다.
짙푸른 녹음 추슬러
오므리고
숫기 없는 덩굴
풀섶 헤치며
누런 호박 받쳐들고
가을이 절룩거리며
힘겹게 오고 있다
-<가을> 에서
아름다운 서정이다. 시의 화자가 장군이라 보기에 힘들다. 장군의 일반적인 느낌은 강직, 통제, 호령, 깃발 등의 위엄에 관련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재래의 여성편향의 서정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된다. 종래의 시는 가을이 오는 데는 낙엽이 아름답게 물들어 있다든가 국화 향이 그윽하다든가 하는 평면적 이미지가 중심이 되는 것인데 비해 여기서는 가을이 대립각의 이미지로 드러내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가을이 "숨었던 갯벌레 / 모래톱에 고개들 때" 와 "숫기없는 덩굴 / 풀섶 헤치며"와는 대립각으로 세워져 있다. 말하자면 입체 이미지 쪽으로 시의 서정이 이동하고 있는데 이는 여성 편향에서 탈 여성 이미지 쪽으로 변화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이 된다.
① 햇살 시린 초봄
파란 민들레 꽃순 위
한 마리 들벌 보니
선문답 몇 마디로 가슴 여는
술 친구가 그립다.
② 나는 때묻은 손등으로 눈물 훔치고,
배고프면 우는 짐승같이
천진한 사람을 그리워하고
마냥 참고 푸른 산 쳐다보는
무심한 눈망울과
꼬리 흔들어 여유로운
소 같은 사람을 그리워한다.
①은 <추억> 1련이고 ②는 <시골에 살면서> 후반부 한 련이다. ①의 경우 '들벌','선문답','술친구'를 연결하면 남성적 이미지로 드러나고 ②의 경우 '짐승','천진','여유','소'를 연결하면 역시 남성적 이미지로 드러난다. 이렇게 안시인의 시는 아름답고 섬세한 서정시일 경우 장군이 갖는 액면 그대로의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재래의 여성적 이미지나 마스크를 그대로 쓰고 있지도 않다. 탈여성의 말채를 잡고 안장 위에 앉아 있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안시인 시의 본령은 서정쪽보다는 관념 지향에 있어 보인다. <생명의 끈> 연작, <바위>, <손금대로>,<8월의 진주는>,<기도>,<한반도의 등불>,<아, 대한민국>,<장군님 나라에 우째 이런 기도가!> 등에서 전개되고 있는 '관념의 흐름'이 시인 특유의 의식과 기법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바위는
돌멩이의 물리적 집합이 아니다.
바위도 삶이 있다
거기엔 역사도 있고
고고학도 있다.
시도, 종교 도있어 왔다
산에 있는 바위는
부처님이고
아예
부처가 된 바위도 있다.
모세는
이따금
바위산에 올라 야훼와 만나 왔고
예수는
심판의 돌,
모퉁이 돌,
반석 위의 집을 설파하고
바위 위에서 승천하셨다.
-<바위> 앞 부분
이 시는 '바위'에 관한 관념을 추구하고 있다. 바위가 자연의 대유가 되겠지만 이 정도면 시인이 '바위 사상'을 세우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관념이 무시 무종으로 흐르는데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고 있다. 시는 거대한 관념의 사슬을 이루면서 관념의 질주를 드러내 보인다.
시인들은의식의 답답함을 풀기 위해 수면하로 내려 가기도 했지만 안시인은 수면 상에서 정면돌진을 하고 있다. 의미나 관념의 채를 잡고 그냥 지평을 달리는 어떤 선구자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김수영의 '맴도는 말'의 측면과도 잇닿아 있는 듯하지만 안시인의 경우 정지의 개념이 아니고 진출의 개념이다. 사람의 속을 풀어주는 방법은 이 정도면 하나의 틀이 될 만하다. 이름 붙여 '관념의 흐름' 수법.
안시인 시의 세계는 생명의 합창, 새롭게 남, 중심 잡기 등이 될 듯하다. 물론 이러한 덕목들은 안시인 특유의 국가주의와 무관하지 않다. 그의 국가주의는 만물의 생명에도 있고, 잡다한 사상 등에도 편재해 있고, 진달래 꽃순이나 진주의 장대동 장대비에도 스며 있다. 그러므로 안 시인의 시를 읽으면 국토가 일어나서 거수경례를 붙이는 듯한 일체감, 우주의 원리가 하나의 하늘을 얼굴로 하여 내려다 보고 있는 듯한 조망감 같은 것들이 얽히어 든다.
이쯤에서 필자는 육사나 청마에게서 받았던 인상보다도 더 넓은 시야, 더 빠른 질주, 더 큰 스케일 같은 메일 콤프렉스를 보면서 유약한 시의 마당에 대해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일테면 유약하고 고만 고만한 것만이 미학이라는 통념은 통념일 뿐이라는...
이제 한없이 갈 수 있는 이야기를 이 정도에서 멈추고 앞으로 돌아가 보자. '장군'과 '시집'의 연결이 감도를 갖고 쉽게 이루어지는 성질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연결 감도가 약한 것만큼 연결이 되었을 때는 기의(記意)의 미끄러짐이 충격적이라는 점을 예고해 준 말이었다.
충격인가? 안장군, 아니 안시인은 전혀 충격으로 쓴 시가 아닐 것이다. 장군은 그냥 가고 있는데 풀섶에 이는 먼지만 잡고 풀풀 날린다느니 풀잎에 얹혔다느니 하고 말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