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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곰박골
김 동 근
동네 회관에서 반장회의를 끝내고 막 집에 돌아와 저고리를 벗는데 전화가 왔단다. 거실로 나가서 처로부터 수화기를 건네받았다.
“여보세요. 전화 바꿨습니다.”
“네- 형님 접니다. 일전에 군청에서 인사를 드린 형님의 후배인 박부장입니다. 한진축산 기획실에 근무 하는 박부장 말씀예요.”
“아- 그러세요. 웬일입니까?”
“먼저 제가 말씀을 드렸잖아요. 근간(近間)에 한 번 뵙겠다고요. 형님- 오늘 시간이 어떠신지요. 좀 모셨으면 하는데요.”
“글쎄. 바쁜 일은 없습니다만-.”
“잘 됐군요. 그럼 점심을 하지마시고, 12시 반까지 읍내 단위농협 옆에 있는 정다방으로 나오시지요. 참- 새마을 지도자라는 형님 친구 분도 같이 나오세요. 이참에 제가 인사도 드릴 겸 해서요.”
“글쎄- 그 친구가 집에 있을라나- 연락을 해 보고요. 그럼 내가 그 시간에 그리로 나가도록 하지요.”
대화를 끝내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지금 시간이 어떻게 되었는가.’벽시계를 쳐다보니 정오가 가까워 온다.
지난 가을에 동민들이 공역(公役)으로 가설을 하고 손을 보지 않은 동구의 섶다리가 많이 퇴락이 되어서 보수를 하자고 반장회의를 했는데, 반장들이 다른 일까지를 중구난방으로 떠들어 대는 바람에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다. 이장의 일이라는 게 끝이 없다. 동네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충분히 처리를 할 수가 있는 일인데도 무조건 이장을 찾아와서 해달라니 잠시도 짬이 없고, 자질구레한 일들이 끝이 없다.
달포가 되었는가. 동네의 취득세 문제로 군청 민원실에를 들렀을 때이다. 누가 찾아와서 인사를 하는데, 자세히 보니 면식이 많이 있는 사람이다.‘저는 장곡의 맞은편 동네인 향월리에서 자라났고, 이곳의 농고에 다닐 때에 한 학년이 아래입니다.’라 말하면서 명함을 건네는데, 한진축산의 박재근 기획부장이라고 쓰여 있다.‘한진축산은 경기도 안성에 소재한 규모가 큰 축사와 육가공(肉加工)공장을 겸한 중견기업체이고, 이곳의 진천지역에까지 축산물을 공급을 합니다. 이곳의 물량공급을 제가 책임을 지고 있으니 선배님들에게 잘 부탁을 드립니다.’라면서 주언 부언을 하기에 귀담아 듣지를 않았다. 그가 헤어지면서‘선배님- 불원(不遠) 한번을 모시겠습니다.’라고 말을 했는데, 지금에서 전화를 준 것이다.
학교의 선후배 사이이고, 사업을 하면서 알고 지내자는데 크게 마음을 쓸 일이 아니라 가까운 친구이면서 동네에 새마을 사업의 책임반장으로 일을 하는 정현식에게 전화를 걸어서 자초지종을 얘기를 했다. 그런데 그 친구도 쾌히 동행을 승낙을 한다.
친구인 정반장과 같이 읍내로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읍내의 길은 그리 멀지가 않아서 우리는 약속시간 안에 정다방에를 닿을 수가 있었다. 다방에는 손님이 없어서 한산한데, 데스크의 음반에서는‘산골고향’의 노래가 은은하게 울려 나온다.
우리 둘은 젊은 마담의 안내로 다방의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둘이 무료해서 음료수를 짤끔거리는데 약속시간을 조금 남기고 박부장이 다방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
“형님- 일찍 나오셨군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니, 별로- 늦지 않은 시간인데요.”
그가 나와 악수를 하고는 맞은편에 자리를 하면서 말한다. 그의 인사말에 내가 대답을 했다.
“이쪽에 형님도 저의 학교 선배라고 들었어요. 선배님- 인사를 드립니다. 한진축산에 근무를 하는 박재근부장이예요.”
“얘기는 들었습니다. 이 친구와 한동네에 살고, 새마을 일을 맡아보는 정현식입니다. 잘 부탁을 해요.”
박부장이 엉거주춤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건네며 인사를 하고, 친구인 정현식이 마주 인사를 했다.
“저- 차는 무엇으로 하실까요.”
“아- 네, 선배 형님들 차를 시키시지요.”
마담이 말을 하고, 우리 셋이서 모두가 커피로 주문을 했다.
박부장이 가져온 커피를 한 모금을 마시고 얘기를 한다.
“형님들을 뵙자고 한 것은 딴 뜻이 아니고요. 마침 저희 회사의 농 가공 제품을 우리고향인 이곳의 진천에다가 공급을 하는데 전에부터 제가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곳의 일을 보면서 고향을 지키고 고생을 하시는 선배님들을 소, 닭 보듯이 하며 지나쳐서야 인사가 아니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있는 동안에 서로가 우의(友誼)를 나눠보려고, 이렇게 뵙자고 한 겁니다.”
“알겠습니다. 우리도 딴 뜻이 아니어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박부장을 만나러 이렇게 나왔어요.”
“고향 친구가 사회에 진출을 해서 좋은 일을 하고 있군요.”
박부장이 장황히 말을 하고, 내가 대답을 했으며 옆에서 정반장이 한마디를 부연을 한다.
“얘기는 천천히 나누기로 하고, 점심이 늦겠어요. 형님들과 처음이니 좋은데, 어디 청주로 나갈까요? 아니면, 마땅한 곳이 있으면 말씀들을 하세요. 차는 밖에다가 대기를 시켜 놓았거든요.”
“청주는 무얼요. 그렇게 멀리나- 이곳이 순대가 유명하잖아요. 허름한 순대 집에 가서 막걸리나 마시면 되지-”
“형님- 무슨 말씀을 하세요. 지금이 우리가 자랄 때 혹독하게 가난하던 시절이 아니잖습니까. 제가 회사에서 활동비를 넉넉하게 받습니다. 그러시면 제가 천용호에 가끔 들르는 음식점이 있는데 그리로 모시겠습니다. 오늘은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박부장이 서둘러 찻값을 치르고, 셋이서 다방을 나왔다.
이른 봄의 날씨가 화창하다. 단위농협의 울담 안으로는 하얀 목련꽃이 흐드러지게 폈다.
우리는 박부장의 안내로 대기한 승용차의 뒷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차는 읍내 골목을 빠져나와 천용호수를 향해서 내달린다.
“형님들이 고향을 지키면서 향토의 발전을 위해 고생을 하고 계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고향을 버리고 객지로 나가서 허송세월을 하는 저희들이 부끄럽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우리는 출세를 해서 고향을 빛내고 있는 여러 친구들을 정말로 자랑스럽게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저의 회사가 여기서 가까운 안성에 있는데, 돼지를 기르는 축사(畜舍)와 축산물을 가공을 하는 공장의 규모가 꽤 큽니다. 경기와 충북의 전역에다가 축산물을 공급 하는데요. 이곳 진천이 제 고향이어서 회장님이 저를 믿고 이곳 일을 맡기는 겁니다. 어쩝니까. 제가 일하는 동안에 형님들이 많이 돌보아 주셔야지요.”
“우리가 무슨 힘이 있습니까. 잘 되겠지요.”
운전석 옆에서 뒤를 돌아보며 박부장이 얘기를 하고, 뒷자리에서 내가 받았으며 정반장은 창밖을 내다보고는 묵묵히 듣기만을 한다.
한길의 좌우에 펼쳐진 해토된 논밭에는 농부들이 많이 나와서 마늘과 보리밭을 고르고, 거름을 져내다 논에 펴는 사람들도 있다.
차는 개울을 건너서 저수지 우측의 산길을 내달리고 있다.
“히야- 벌써 여기저기에 봄꽃들이 많이 피었네. 일에 파묻혀서 봄이 저만큼에 와 있는 것도 몰랐으니- 차암.”
“좋은 계절이지요. 지금이 농촌에서는 천렵(川獵)을 할 때랍니다. 우리 동네도 천렵의 날을 잡자고 들 하는데 아직은-”
“형님- 언제, 어디서 천렵을 합니까? 저도 좀 끼어 주세요.”
“끼어드리지요. 천렵을 하는 날은 20여일의 후쯤이 될 거고, 장소는 언제고 우리 동네 뒤의 곰박골에서 하고 있습니다.”
봄의 들판을 내다보면서 박부장이 말하고, 내가 대답을 했으며 다시 박부장이 우리 동네사람들의 천렵에 참여를 시켜 달란다.
“감사합니다. 그러고 저희 회장님의 말씀이 여럿이 모이는 자리에는 언제고 아낌없이 농장에서 사육을 하는 돼지를 헌정(獻程)을 하라 십니다. 제가 큰놈으로 한 마리를 가져가겠습니다.”
“돼지를 안 가져와도 되는데요. 곰박골의 골짜기에는 가재가 아주 지천입니다. 그 아래의 논귀들에도 붕어, 미꾸라지와 송사리와 새우들이 아주 많이 서식을 해요.”
“차암- 형님, 아 천렵에 수육고기를 곁들이면 금상첨화가 아닙니까. 막걸리도 서너 말을 겸하고요. 제가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박부장이 신이 나서 큰소리로 떠들어 댄다.
산야의 풀과 나무들이 조금씩 푸르른 빛을 띄어가고, 더러는 길가 벚나무 가지의 끝에서는 멍울들을 툭툭 터뜨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산비탈에도 이름 모를 풀꽃들이 많이 피어있다.
저수지의 갓길을 돌아 한참을 달려서 송정(松亭)이라는 옥호가 붙어있는 가든에 도착을 했다. 산등에서 호수까지 내려오는 작은 구릉을 잘라 거대규모의 주유소를 만들었고,‘하이웨이’라는 상호의 주유소에 잇대어서 아담하게 꾸며진 갈빗집이다.
얼마 전에 천용호가 유원지로 개발이 되는데, 돈이 많은 서울 사람이 이곳의 산을 모두 매입을 해서 업소들을 건축하였고, 앞으로는 더 넓은 유흥지로 확장을 한다고 했다. 나는 그곳의 개발에 대해서 얘기만을 들었으며 아름답던 산의 허리를 자르고, 깎고 파헤쳐져서 자꾸만 변해가는 시골의 정경(情景)이 매우 안타까웠다.
주차장에다 차를 세우고, 우리 셋은 업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호수 쪽의 갓방으로 안내가 되어서 윗저고리를 벗었다.
“히야- 호수의 풍경이 가히 장관이네.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정말 참 좋다. 나도 이곳이 오랜만이라고-”
호변(湖辺)으로 난 남향받이의 방벽이 모두가 투명한 유리창으로 되어있는데, 밖을 내다보니 너른 창파(滄波)에 낚싯배인가, 목선이 몇 개가 한가로이 떠있고 호면에는 청둥오리들이 먹이를 찾아서 부지런히 물살을 가르고 다닌다. 봄빛을 잔뜩 머금은 호안(湖岸)으로 관목과 교목과 바위들의 어우러짐이 하나의 화려한 풍경화를 보는 것 같다. 푸른 하늘가에로는 아기 포대기만 한 하얀 구름이 하나가 머물러 있다.
깊이를 모르고, 넓이를 모르고 바닥을 드러낼 줄을 모른다는 신비의 호수이다. 검푸른 물속에는 이무기가 살고 있어서 어두운 밤이 되면 사람들이 호숫가에로 접근을 하지를 못한다고 했다. 자랄 때에 들어오던 호수에 대한 전설이다.
내가 창 밖의 호수를 내다보면서 감탄의 말을 하고, 친구인 정반장이 대답을 했다.
“무엇으로 준비를 할까요.”
“아- 마담, 예전처럼 이 세상에서 가장 맛이 있는 쇠갈비로 가져와요. 술은 소주로 하고요. 우선 안주로 이것저것의 견과류와 어포(魚脯)도 좀 들여오고-”
“네 곧 내오겠습니다.”
칠흑의 생머리를 어깨 까지 늘어뜨린, 얼굴이 갸름하고 눈썹이 검은 미인이다. 화려한 한복차림의 서른을 조금 넘긴 듯한 마담이 박부장으로부터 음식 주문을 받고 나간다.
“형님들- 기왕에 자리를 만들었으니 오늘은 마음껏 드세요.”
“아니- 갈비의 비용이 만만찮을 텐데-”
“차암- 제가 출장비를 넉넉히 받는다고 했잖아요. 그러고 형님들도 세상을 내다보시고, 흘러가는 세월의 변화에 적합하게 사세요. 지금은 우리가 자랄 때에 혹독하게 어려웠던 시절이 아니잖아요. 월급쟁이도 또 아이들도 돈을 무섭게 쓰고 다닙니다.”
“내 분수에 맞지가 않으면 불안해서요.”
마담이 마른안주와 찬기들을 가져다 차려 놓고, 밖의 한 머리에서는 숯불을 피우고 갈비를 굽기 시작을 한다.
“저는 송이예요. 잘 부탁을 합니다.”
“송마담- 우리 선배 형님들이야. 잘 모시라고-”
마담이 인사를 하고, 박부장이 대답을 했다. 박부장과 송마담은 구면인 듯 했다.
“알아서 모시겠습니다. 자- 우선 한 잔씩들 하시지요.”
돌아가면서 마담이 술을 따른다.
안주가 들어오고, 우리는 술을 마시기 시작을 했다.
그렇게 해서 술자리가 시작이 되었는데 계속해 쇠갈비와 술이 들어오고, 서로 권하고 마시면서 한참 후에 우리들은 꽤 많은 술을 한 것 같다. 술들이 취하고, 우리는 주로 학창시절의 추억담과 고향의 민생(民生)이 돌아가는 얘기 그리고 박부장의 회사생활과 우리 동네에 살아가는 대화들을 주고받았다. 박부장의 말이‘한진축산이 내실이 있는 회사이고, 계속해서 번창을 해가고 있다. 회장이 모 재벌과 근친(近親) 사이고, 재산가로서 회수(稀壽)를 막 넘긴 노인이다. 그가 노년(老年)이라 조용한 시골에서 안주(安住)를 할 자리를 찾는 중인데, 아름다운 이곳 진천지방에 퍽 호감을 가지고 있으나 장소는 아직 미정이다.’라는 요지의 얘기를 주언 부언 지껄여 댔다.
어지간히 술과 안주가 들어오고, 우리 셋은 술에 많이 취했다. 중간에 송마담과 용모가 거의 비슷한 윤씨 성을 가진 여인이 한명이 더 들어와서 합석을 했다. 박부장이 마담들에게 화대(花代)로 지폐를 몇 장씩을 찔러주었고, 한참을 더 어울려 노래를 부르면서 희희낙락을 하다가 우리는 해가 설핏해서야 술자리를 끝냈다.
‘양주집으로 가서 한차례를 더 하자.’는 박부장의 제의를 술에 취한 우리가 거절을 했다. 박부장이 승용차 편으로 우리를 집에까지 데려다 주었는데, 정반장과 나에게 포장된 물품을 하나씩을 건네주었다. 우리가 극구 사양을 하는데‘돈을 주고 산 게 아니고 축산물 가공공장에서 고기를 조금 가져왔노라.’말 하면서 억지로 떠맡기고 가는 게 아닌가. 풀어보니 각기 5킬로그램은 더 되게 쇠갈비가 들어있었다.
이튿날에는 늦잠에서 깨었다. 쇠갈비를 얻어먹은 게 속이 쓰리고, 영 마음도 편치가 않다. 순대국이 명물인 이곳의 진천지방인데, 아무데나의 음식점에를 찾아가서 국밥에다가 막걸리나 두어 됫박을 걸치면 되리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마담 더불어 다섯이 한자리에서 백미 두 가마 값을 넘게 날려버렸으니 나의 주머니에서 지출한 것은 아니지만 속이 몹시 개운치가 않다.
내가 일찍이 이곳의 농업고등학교를 졸업을 하고, 장래의 진로에 대해서 많이 갈등을 하였다. 빈농(貧農)의 형편이어서‘대학에를 가겠습니다.’라는 말이 부모님의 앞에서 선뜻 나오지가 않았다.‘젊고 건강한 몸이니 도회에 나가 손수 학비를 벌어서 대학을 다니고 취직을 할까. 아니면 일찍 노점(露店)이라도 시작을 해서 돈이나 벌어볼까.’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어둔 밤의 언덕에서 고뇌에 고뇌를 거듭했던 것이다.
재학 중 어느 서지(書誌)에서
거친 밥을 먹고, 물마시고 팔베개로 누워보니
그 안에 즐거움이 있는 것이어서
바르지 않은 부귀가 나에게는 뜬구름이어라.
라는 공자의 가르침을 접하고서 뒷동산너머의 곰박골이 머리에 들어왔다. 관목이 우거지고 산딸기넝쿨이 엉클어진 가재울 옆의 낮은 언덕에 초막집이- 가재가 지천인 돌너덜 골짜기에 사철 맑게 흐르는 계류가- 창밖의 멀끔한 하늘가에 새털구름이 하나가- 싸리삽짝 옆의 섶 울타리에 널어놓은 하얀 빨래와 삶은 고사리나물이 머리에 선명하게 그려지는 것이었다.‘장사를 해서 돈을 긁어모으려면 남을 속여야하고, 권좌(權座)에 높이 오르기 위해서는 노심초사 하면서 다른 사람을 눌러야 하는데, 구름 같은 부귀를 탐해서 마음과 몸이 평안하지를 않을 바에야 차라리 부모님 모시고 선산을 돌보면서 고향에 살리라.’결심을 하고나서 어연 간에 30여 년이 흘렀다. 살아오는 동안에 바람 같이 허망한 호의호식을 피하고, 들판을 즐기고 흙을 사랑 하였다.‘먹는 것과 입는 것이 조금은 부족하게 살아가라.’고 이르시며 백포를 널어놓은 양 사철 들판에서 하얗게 엎드려 사시던 선부(先父)의 말씀대로 성실하게 살다보니 건강과 더불어 재물과도 가까이 하게 되었다. 부족한 생활은 근면과 정직을 동반하고 욕심에 의한 안락은 모르는 새에 지나가 버리고 만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터득을 한 것인데, 다른 건 고사하고라도 언제고 마음이 평안하였다. 물려받은 유산에다가 땅뙈기도 얼마를 보태게 되고, 동네사람들에 인정을 받아서 이장이 되어 성실하게 동네일을 보고 있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하늘같은 부모님도 호상(好喪)으로 가시고, 처자식을 거느리고 곡굉(曲肱)의 유유자적 속에 살아오면서 이제까지 마음에 걸리는 행실은 피해왔는데 어제 먹은 그놈의 쇠갈비가 영 마음이 개운치가 않다.
이부자리를 걷어치우고, 거실에로 나와 보니 해가 많이 올라왔다.
“갈빗살을 골라서 국을 끓여 놨는데, 아침 자셔유.”
“웬 놈의 고깃국이여- 예미, 술 먹은 거 알았으면 명태 펑펑 두드려서 얼큰하게 해장국이나 끓여 놓을 것이지-”
“아니- 고깃국이 어때서 그런 대유. 차암, 난 생각을 해서 끓여놨구먼시리-”
부엌에서 나오는 처에다 대고 퉁명을 떨었는데, 처가 앵돌아지면서 한마디를 하고는 부엌으로 다시 들어간다. 이래저래 마음이 좋지가 않다. 그놈의 쇠갈비구이 때문에 동티가 나려는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개울건너의 한길에서 승용차가 햇빛에 번쩍이더니, 바깥마당으로 들어온 차에서 박부장이 내린다.
“형님- 그동안에 안녕 하셨어요.”
“아- 예, 박부장은 별일이 없었소.”
서로 인사를 나누고, 박부장을 거실로 안내했다.
“정반장 형님도 집에 계실라나요.”
박부장의 말에 내가 곧바로 정현식 반장을 전화로 불러서 같이 자리를 했다. 아내가 차반에다가 커피를 내왔다.
“박부장- 커피를 드셔요. 정반장도-”
“형님- 제가 우리 회사의 이종원회장님께 형님들 얘기와 이곳 장곡리와 곰박골 풍광(風光)의 자랑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이회장님이 이것저것을 물어보면서 관심을 갖는 거예요. 형님- 이 기회에 우리 회장님을 장곡리로 끌어 들입시다. 그분이 이 동네에서 살게만 되면 동네에다가 돈을 좀 풀어 놓을 거요. 어때요. 형님-”
“회장님을 어떻게 이동네로 끌어 들인단 말이요?”
“이곳이 풍광이 좋으니 그분이 집을 짓고 살도록 해주면 돼요.”
내가 물었고, 박부장이 대답을 했다.
“아, 제가 말씀을 자세히 드렸다니까요. 그런데 동네의 실정과 진입로랑 동네회관까지도 자세히 묻더라고요. 이곳에 더불어 살게 되면 이회장이 동네 진입로의 포장과 회관의 신축비용을 자기의 사재(私財)로 하실 겁니다. 제가 장담을 하지요.”
“그러게 많은 돈을 그분이 쓰실까?”
“돈이 수월찮이 들 텐데-”
“그분은 돈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곰박골의 지형을 자세히 설명을 했더니 그곳에다가 집을 하나 짓도록 힘을 써달라는 거예요. 노후에 편안히 살겠다고요. 동민들의 협조만 있으면 그렇게 하겠다면서 저를 보고 추진하라는 겁니다.”
나와 정반장이 한마디씩 하고, 박부장이 말을 끝내고는 가방에서 백지를 꺼내어 내민다. 내가 얼른 훔쳐보니 동의서라는 제목인데, 곰박골에다가 건조물을 축조를 하는데 동의를 한다는 내용이다.
“형님- 여기에다 서명날인을 해주시면 제가 이미 말씀을 드린 대로 장곡리 진입도로의 포장과 회관의 신축을 해준다는 확인서까지를 저의 이름으로 써드릴 수가 있습니다.
“히야- 그거 입맛이 당기는 말씀이네.”
“정말로 동네 발전의 좋은 기회일수가 있겠군.”
박부장의 말에 정반장과 내가 호감의 대답을 했다.
“우리 회장님은 제 말을 철석같이 믿으니 그렇게 합시다. 형님들의 동네 발전을 위해서 그 이상도 투자를 하도록 제가 힘을 쓰겠습니다. 회관의 안에다가 찜질방 시설을 한다든지 그리고 각종 편의용품과 노래방기기들을 들여 놓는다던가요. 동의서에 두 분이 먼저 서명날인을 하시고, 동네 몇 분의 동의를 더 받아주시면 되겠습니다. 위에 말씀을 드린 것은 당장에 회장님을 찾아가서 그분의 도장이라도 받아다 드릴 수가 있어요.”
“글쎄- 동네 발전을 위해서는 참 좋은 기회인데-”
박부장이 동의하도록 권하는데, 내가 선뜻 날인을 할 수가 없다.
“형님- 그러고 이회장님과 가까이 하시면 여러모로 호사(好事)가 따라옵니다. 축사에 있는 수 많은 돼지 중에서 매일 병든 놈이 생기고, 싸우다 다리가 부러진 놈이 많이 나오거든요. 병든 놈은 즉시 그곳에다가 소독을 해서 매몰을 해 버립니다만 다리가 부러진 돼지들은 식용으로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밖으로 반출을 하지 못하도록 돼있긴 하지만 얼마든지 가져다 해 먹을 수가 있습니다. 동네에 돼지고기를 싫도록 얼마든지 가져올 수가 있다는 거지요. 기회를 잡으세요. 서명날인을 하셔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이후에 다른 일이 생기면 취소를 해도 됩니다.”
“그건 그렇고, 이렇게 하지. 이 일은 나 혼자서 성급하게 결정할 문제 아니고, 내가 얼른 날인을 해 줄 수가 없네요. 박부장- 내가 근간(近間)에 부락민회의를 열어서 좋은 취지를 자세히 말씀을 드리고, 부락민들의 도장을 받아 주는 게 어떻겠소. 그게 순서이고, 아마 동네가 발전이 되는 일이니 동민들도 모두가 좋아 할 거요.”
박부장이 재촉을 하고, 내가 다시 제안을 했다.
“차암 형님- 날인을 해도 될 텐데요. 형님의 의사가 정 그러시다면 기다리겠습니다. 이곳에 연명으로 날인을 받으시면 됩니다.”
박부장이 아쉬운 듯이 입맛을 한번 다시고 나서 동의서용지 서너 장을 꺼내어 밀어놓고는 일어선다.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동네에서 천렵을 하는 날이 잡히면 저에게 곧바로 연락을 주십시오. 제가 꼭 오겠습니다.”
박부장이 차에 오르면서 한마디를 더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아니- 곰박골에다가 왜 집을 짓겠다는 거냐?”
“내야 알 수가 있나. 이회장이 별장을 짓자는 게 아닐까.”
우리 집 거실로 돌아와서 정반장이 말을 하고, 내가 대답을 했다.
“회장이 우리 동네의 발전에 그렇게 큰돈을 쓰고, 그가 곰박골에다가 별장을 짓는다면 우리가 손해 될 건 없잖은가. 거기에다 동네사람들이 모두가 돼지고기를 실컷 먹을 수가 있을 거고, 하하-”
“글쎄 곰곰이 생각을 해 봐야할 문제라고. 그곳이 워낙에 풍광이 좋은 산곡이 아닌가. 산짐승도 많고, 가을에는 머루와 다래와 산과(山果)들이 지천이고 말이야. 우리 동네사람이 모두가 그곳에 매달려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잖아. 이회장이 곰박골에 와 보고서 욕심을 내는 게 아닐까?”
“여하튼 쉽게 결정을 해서는 안 되네. 우리가 잘 연구를 해 보세.”
둘이서 몇 마디를 더하고는 정반장이 돌아갔다.
곰박골은 마을 뒷산의 낮은 등고개를 너머서 반 마장 가량이 떨어진 작은 분지이다. 사철 맑은 물이 마르지를 않는 가재울 골짜기의 돌너덜에는 가재가 지금에도 숱하게 많이 있다. 아득한 옛날에 가재 때문에 곰이 많이 살았다고 해서 곰박골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산과도 많고 더덕과 버섯과 산나물이 지천인 산속에는 봄이 되면 진달래가 산비탈에 불이 붙고, 가을에는 오색의 단풍이 매우 찬란하다. 참나무와 낙엽송의 교목들이 빽빽하게 들어차있고 특히 희귀목인 금강송(金剛松)의 군락이 그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 아래 시궁이 많은 논귀웅덩이에는 미꾸라지와 참붕어와 송사리와 새우들이 아주 많이 서식을 한다. 그래서 동네사람들이 사철 그곳을 누비면서 고기를 잡고, 산과를 거두고, 나물을 뜯고 그리고 땔감인 시목(柴木)을 잘라 오기도 하는데 특히 꽃피는 봄이 오면 무리무리 그곳으로 몰려가 천렵들을 하면서 즐기는 것이다.
열흘이나 붉은 꽃이 없다더니, 산야에 붉게 타면서 엉클어져 피던 봄꽃들이 뚝뚝 떨어진다.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르던 산 복사꽃이 송화(松花) 더불어 바람에 어지러이 흩날리고 있다. 떨어지는 놈이든 흩날리는 놈들이 모두가 살아있는 것의 몸부림인데, 저 흔들림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를 우리는 모르고 산다. 꽃이 지고 잎이 피면서 저렇게 푸른 빛깔로 덧칠이 되어가는 산야의 흔들림을 우리는 알 수가 없어서 고뇌에 고뇌를 거듭하는 것이 아닌가. 알고 나면 속이 상할 테니 봄바람과 가을비가 이 세상 사물의 이치라고 그냥 덮어두는 게 가장 속이 편할 것 같다.
아침부터 봄비가 부슬부슬 흩뿌리고 있다. 감우(甘雨)이다. 여자들이 우장(雨裝)을 뒤집어쓰고는 무리지어 밭으로 나가서 봄 씨앗을 놓고 있다.
오후에 동네회관에서 반장회의를 열었다. 동네의 모모한 어르신들까지 나오시라고 했더니 모두 30여 명이 족히 참석을 했다.
먼저 이장인 내가 읍사무소에서 전달이 되어온 파종 비료의 배분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공식적인 회의를 간단히 끝냈다. 그리고 다시 내가 일어서서 한진축산과 그 회사에서 진천에다 돈육을 공급을 한다는 얘기 그리고 향월리 출신의 박부장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을 했다. 또 그 회사에 재력이 있는 이회장이 장곡리의 발전을 위해서 동네 진입로의 포장과 회관을 신축을 해준다는 얘기까지를 꺼냈다.
“에- 그 회사의 이종원 회장이라는 분이 우리 동네에다 투자를 하는 대가로 곰박골에 별장을 지을 수가 있도록 동네 어른들이 동의를 해 주십사하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그에 대해서 여러분들의 의견을 말씀해 주십시오.”
내가 말을 끝내고, 동민들의 의견을 물었다.
“그려? 응, 그런데 길 내고 집을 짓는데 돈이 수월찮게 들 텐데-”
“거 아주 동네가 횡재를 할 일이 생겼구먼.”
“정말 그 회장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 돈을 쓸까?”
“좋은 안건인데, 그게 사실이라면 결정을 하는 게 좋겠어-”
몇 분들이 중구난방으로 동의를 하면서 좋아들 했다. 분위기는 동의를 해주는 쪽으로 모아질 때 이다.
“잘 생각을 해 봐야 되어. 그 사람이 돈을 들인대서 무조건 그러자고 할 게 아니라구- 좋은 일에는 언제고 마가 끼는 벱여- 이회장이라는 사람은 계산을 잘 따지는 장사꾼이라는 걸 알아야 혀-”
회중(會衆)이 침묵을 하는데 잠시의 뒤, 윗마을에 사는 나이가 든 김생원이 조건을 걸고 나온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요. 김생원- 아 우리 동네에 발전을 위해서는 무조건 그렇게 해야지요.”
“저런, 참- 할 때는 하더라도 우리가 얼른 결정을 할 일이 아니라니까. 사람은 언제나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야 하는 벱여. 잠깐 방심을 하다보면 속는다는 걸 알아야 혀 이 사람아. 일이 틀어지구 나서는 아무리 후회를 해두 소용이 웂다구.”
“차암- 김생원은 뭔 일이던지 껀껀이 그렇게 까탈스럽게 군다고- 원, 언제고 그냥 넘어가는 일이 웂단 말이여.”
3반장을 보는 한서방이 김생원의 말끝을 붙잡고 늘어진다.
“자네 뭐라구 혔어. 내가 뭘 까탈을 부린다는 게여 이사람아-”
“아- 먼저 번에 회관에서 술, 밥을 해먹도록 하자는 것도 그렇게 훼살을 놓더니 아- 그게 뭔 행오요, 행오가-”
“저런 저- 젊은 것이 말하는 거 봐라. 아- 그럼 바쁘게 농사를 짓는 농군덜이 회관에서 노다지 밥이나 해먹고, 술을 퍼먹고 화투나 치구 그려도 되는 것인감. 피농(廢農)이나 허라구, 이 사람아-”
“아- 회관에서 동네 사람들끼리 오순도순 밥을 끓여 먹구, 국수도 삶어 먹는다구 무슨 안 될 일이라두 있수-”
“저 봐라, 저봐- 그러잖아두 가뜩이나 일덜은 안 하고 놀구 먹는데만 정신이 팔리는 요즘에 젊은 사람덜인데, 아 옛날에 사철 일하구 가난할 때를 생각혀봐, 그래두 가난하던 그때는 재밋구 인정들이 있어서 살기가 좋았는디, 지금에 젊은이들은 왜 그렇게 예의가 없구 삭막해 지능겨- 차암.”
김생원과 한서방이 서로 언성을 높인다.
“아이- 그만들 두슈. 좋게들 넘어가지 그러슈-”
“회의 하는데 무슨 꼴들이랴. 그만들 둬유. 아- 이 자리에 당신들 둘만이 있는 자리가 아니잖유- 사람들이 무슨 생각이 웂어-”
한서방과 김생원이 서로 말끝을 잡고 티적거리자 여기저기에서 한마디씩을 하며 싸움을 말린다.
일전에 나이든 어른들이 모여서‘출향(出鄕)인사들이 고향에 다녀갈 때에 출연(出捐)을 해 준 돈이 많이 밀렸으니 회관에다가 취사(炊事)시설을 만들어서 밥이나 국수를 해 먹고, 술도 들여놓아 언제고 먹을 수가 있도록 하자.’라는 제의가 있었다. 그런데 김생원이 극구 반대를 했다.‘회관에서 밥을 해먹고 술도 마시도록 허락을 한다면 농사 시간을 빼앗는 것이 아니냐? 농삿일은 미루어둔 채 회관에 나와서 밥과 술을 해먹게 되고, 술에 취하면 화투놀이까지 하게 될 테니 퇴폐(頹廢)의 행위에 빠지게 됨으로 절대 안 된다.’고 극구 반대를 해서 그 제안은 없었던 것으로 했던 것이다.
김생원은 자랄 때에 한학(漢學)을 한 이로서 평소에 서지와 잡서를 두루 섭렵을 했다. 유생(儒生)을 자처를 하는 생원은 이웃들에게 방문(榜文)을 써주고, 무슨 일이 있을 때에는 육합이나 길일을 짚어 주고 토정비결을 보아주기도 하는데 그가 관청에 입사(入仕)를 한 일은 없지만 남들이 생원으로 불러주고 그도 동네사람들이 그렇게 불러주는 것을 매우 좋아 하는 것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내 생각을 한마디 하겄으니 좀 들어보시유-”
화가 나는가, 김생원이 벌떡 일어나서 기침을 한번을 하고는 일장의 연설을 하기 시작을 한다.
“에- 이장님의 제안은 얼른 생각을 하면 나쁘다고는 할 수는 없것이유. 그러나 우리 동네로 들어오는 진입로의 포장과 회관의 신축이 그렇게 급한 게 아닙니다. 꼭 필요한 것두 아니구, 지금도 차와 사람이 다니는 데는 조금도 지장이 없어요. 또 회관도 이만하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곰박골에다가 별장을 짓고 사람이 산다는 것은 깊이 생각을 해야 합니다. 곰박골에 사람이 집을 짓고 살면 온갖 잡쓰레기를 다 버리게 되고 또 그 회사의 직원들이 수시로 드나들면서 천렵을 하고, 짐승도 잡아먹게 되고 산나물도 마구 뜯어 갈 거구요. 나무나 돌멩이까지 하나도 남아나는 게 웂을 겁니다. 우리가 아무렇게나 도장을 찍어주면 절대로 안 됩니다. 돈이 있어서 번지르르하게 회관을 짓고, 도로포장을 한다고 살기가 좋아지는 게 아닙니다. 돈은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지 돈이 없는 우리네야 욕심 없이 그냥 이렇게 만족을 하고 살아가면 되는 겁니다. 쇠고기를 먹는 사람을 부러워할게 없어요. 농사꾼은 풍장을 치며 두렛일로 몰려다니면서 논김, 밭김을 모다 매고 보리밥에 된장국에 열무김치를 배부르게 먹으면서 오순도순 살아가면 그게 사는 재미가 아닙니까. 대대로 물려받은 곰박골의 그 좋은 경치를 잃는다면 우리 동네는 아무런 가치가 없어요. 지금 보시우. 산 깎아내고 개울 메우는 그놈의 개발인가 뭔가 하는 것 때문에 시골도 아니구 도시도 아닌, 아주 나라꼴이 말이 아닙니다. 이장- 이 일은 잘 생각해서 결정을 합시다.”
“글쎄- 생원님에 말도 일리가 있네-”
“그려- 그렇게 생각하니까 얼른 결정을 할 일도 아니요.”
“맞아- 생각을 하면 곰박골이 경치가 너무 좋긴 한데- 곰박골을 내주면 우리가 안방을 내주구 행랑으루 쫓겨나는 꼴이 아닝가.”
김생원이 일장의 연설을 끝내고 자리에 앉자, 여기저기에서 다시 그 방안으로 쏠리는 한마디씩을 보탠다.
생원이 앉은 채로 한마디를 더 한다.
“그리고 말이여. 요새 신문을 보니께 유교를 맨든 공자님을 욕하는 작자들이 있어요. 아 시골사람들이 조상님에 삼년상 지내구 시묘(侍墓)살이 허구 제사를 지내는 게 허례(虛禮)구 낭비라나 차암- 세상에 정성을 들여서 조상님을 숭모하는 걸 욕을 하는 작자들이 있으니- 그런 무식한 사람들- 아- 진심으로 부모님 상사(喪事)를 치르구 하늘같은 은덕에 예를 드리는 게 을매나 보기가 좋은감. 배워먹지 못한 즈덜마냥 제수(祭需)를 돈 주고 맞추구, 사람 사서 제사 지내구, 명절에 유람가서 호텔에다 제수를 차려놓구 절을 한다던데, 그게 무슨 제사라는 거여. 불효무식한 작자들이 돈을 많이 벌었다구 부모님의 제사는 엉망으루 치르구 즈덜은 양주 마시구 쇠갈비를 뜯는 게 잘하는 건감, 아 유교가 나라를 망해라고 했는감. 우라질- 우리마냥 웂어두 욕심 없이 살아가면서 진정으루, 기쁜 마음으루 조상님을 모시면서 해야 할일은 빠짐없이 하는 게 뭐가 나쁘다는 게여. 그렇게 살아가는 게 행복이지-”
“허긴 가난한 우리네가 가끔 괴기를 먹어야 맛이 있는 거지, 돈 있는 것덜이 맨날 좋은 음식을 먹어 봐야 살이나 찌지 무슨 맛을 아는감. 김생원 어른이 하시는 말씀도 일리가 있어요.”
“그러네- 그것들은 괴기를 너무 많이 먹구서 너무 많이 찐 살을 빼느라구 진 욕을 본다던데. 세상이 어띠키 되어 가는가, 차암-.”
“맞네. 빚은 많다는 나라에서 멀쩡한 건물도 뜯구, 헐구 다시 짓구 말여- 멀쩡한 길두 넓히구 좁히구 세멘트를 처바르구 다시 맨들구, 이거 나라가 어지러워서 차암-.”
다시 한마디씩을 한다.
“생원님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그럼 곰박골건은 여러분의 말씀대로 제가 다시 살펴보고, 숙고를 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생원과 여러분들이 한참을 중구난방으로 말을 하고, 나의 인사로 반장회의는 끝을 냈다.
‘당치 않는 재물은 탐을 하지를 말자. 살아내려 오던 대로 전통과 가난을 즐기고 사랑을 하자. 허례허식도 정성이고 사랑을 하면 아름다운 것.’이라는 게 김생원이 주장을 하는 요지이다.
중의(衆意)가 최선이다. 우리의 살아가는 모양들과 규칙이나 상규(常規)가 모두 여럿이 모인자리에서 나온 중의에서 최선의 안으로 선택이 되어 진 게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개인의 독단이 아니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종합을 해서 그 중에 가장 좋은 안을 선택을 하는 것이다. 곰박골 문제도 동네 사람들의 의견을 하나하나 존중을 해서 결정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내가 다시 이리저리 궁리를 한 끝에 군청의 민원실에서 호적을 담당하는 친구를 만나 한진축산의 박재근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했다. 민원실에서 호적을 담당하는 김종기 주사가 나와 고등학교에서 친하게 사귀던 동창인 것이다.
며칠 후에 친구인 동네의 정반장과 민원실의 김주사와 셋이서‘진천순대집’을 찾았고, 우리가 뒷방으로 안내가 되어서 자리를 했을 때는 어두워지는 초저녁의 시간이었다.
내가 순대국밥 세 그릇과 안주를 하나, 그리고 막걸리도 주문했다.
“요즘은 어때? 봄의 파종기라 바쁘겠다.”
“응, 조금 바쁘다. 너는 어떠냐. 민원실의 근무는 할 만하냐?”
“야- 말마라. 이제는 공무원도 못 해 먹어요. 우라질- 위에 것들 비위를 맞추려면 아침부터 엎드려서 기어야 하고, 민원을 하나 처리를 하려해도 계속해서 새소리를 들어야 하고 말이야. 야- 나도 오늘, 내일이야. 그만두고 너희처럼 마음 편하게 농사나 지을 생각이다.”
“무슨 소리를 하냐. 그래도 월급쟁이가 제일이야. 농사를 지어봐라. 돈을 아껴야지, 폭양의 들판에서 일하느라 사람 꼴이 안 된다고.”
김주사와 내가 말하고, 정반장이 한마디를 거들었다.
주문한 국밥과 막걸리가 들어오고, 우리 셋이서 숟가락을 들었다.
“어휴 웬 순대국이 이렇게 푸짐하냐. 배가 고픈 판에 잘 되었다. 우리 먼저 막걸리를 한잔씩들 하자고-”
나의 제의에 셋이서 술잔을 들었다.
“야- 김주사야- 너에게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
“뭐야. 호적에 관한 거냐?”
“아냐. 저기- 향월리에 살았던 진농고에 우리의 1년 후배 있지. 한진축산에 근무를 한다는 박재근 부장이라는 그 작자 말이야.”
내가 친구인 김주사에게 박부장에 대해서 물었다.
“그래- 내가 잘 알고 있지. 박재근 계획부장 말이야- 요새는 우리 사무실에다가 아주 처소(處所)를 정하셨다.”
“아니 그 아이가 왜 군청의 민원실에 뻔질나게 드나드는 거냐? 그 작자가 민원실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고?”
“야- 박재근이가 왜 구청의 민원실에 찾아오겠어. 선배님인 나에게 쇠갈비를 사주려고 드나드는 거지, 안 그래? 하하-”
“쇠갈비라, 하- 어디서 많이 들어보던 말이다.”
“야- 우리 술이나 한잔씩을 더 들고 얘기를 하자.”
나와 김주사가 대화를 하는데, 정반장이 다시 술잔을 채우고는 술 한 잔씩을 더 마시자고 한다.
“야- 우리도 그 녀석한테 갈비를 얻어먹었다고- 저기 천용저수지에 있는 송정가든에서 말이야.”
“그랬어? 야- 잘했다. 있는 놈들한테 얻어먹는 거야 무슨 상관이 있냐. 녀석보고 자꾸만 사달라고 해라.”
“저기- 녀석이 사주는 그 쇠갈비가 왜 그렇게 속이 찜찜하냐. 어휴- 더럽게 질기고 맛대가리가 하나도 없더라고.”
술잔을 비우고는 김주사와 내가 한마디씩 했다.
“야- 친구야, 녀석이 우리한테는 곰박골에다가 저희 회사 회장의 별장을 지을 수 있도록 동네사람들에 동의서를 받아달라고 갈비를 사주지만 호적주임한테는 왜 로비를 하느냐 이거야. 녀석을 호적에라도 올려 달라는 건가?”
“그랬어? 내가 대강은 알아채겠다. 감이 잡힌다고.”
나와 김주사가 말을 주고받고, 정반장이 다시 술을 들자고 제의를 해서 셋이 다시 막걸리를 마셨다. 우리는 몇 잔씩을 마신 술로 조금씩 취해 오기 시작을 했다.
“히야- 이곳의 막걸리 맛 하나는 끝내준단 말이야. 야아 나나 너희나 하로 종일을 위에 것들의 눈치를 봐가며 펜대를 굴리고, 또 뜨거운 폭양의 들판에 엎드려서 진 욕을 보아봤자 아무 소용이 없는 거야. 내 얘기를 들어보라고-”
내가 친구인 김주사에게 얘기를 재촉하고, 김주사가 한진축산에 대해 개략해서 얘기를 한다.
- 모 재벌과 인척지간이고, 재력이 막강한 이종원 회장은 수년 전 안성지방에다 한진축산이라는 사호(社號)의 규모가 큰 양돈장과 돈육가공공장을 설립해서 운영을 하고 있다. 이회장이 애초에 그곳에 5만여 평이나 되는 국가소유의 산지(山地)를 불하를 받아서 공장을 축조하고 운영을 하는 중에 중앙정부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과 가난한 지방민의 고용창출 그리고 도시와 지방민간에 소득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 농어촌소득원개발촉진법과 산업입지의 개발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서 농공단지를 조성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안성의 당국에서는 공단의 입지(立地)를 한진축산이 있는 자리에로 정하게 되었다. -
“농공단지가 그 회사의 자리로 정해지자 이회장은 자신 소유의 대지를 공단에 팔아넘기고 이곳 진천지방에로 업체의 이주방향을 결정을 한 거지. 그래서 이곳 출신의 박재근 부장이 진천의 지형을 정찰하는 척후병이 되어서 공장의 부지를 물색을 하고, 그에 따른 지목(地目)과 허가와 주위의 환경문제 등등을 사전에 조사하고 있는 중이야. 알아듣겠어? 이친구야-”
“그러면 그네들이 우리 동네사람들의 마음의 고향인 곰박골에다가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는 거란 말이지?”
친구인 김주사의 말끝에 내가 물었다.
“눈독이 아니고, 이 사람아- 지금은 그네들이 세운 사업계획이 거의가 마무리 단계라고. 그 친구의 말이 그곳을 개발 하면 진천지방이 얼마나 많은 발전을 가져오느냐고 떠벌리더라니까. 지방민의 일자리가 많이 늘어나고, 축산물이 풍요해 지고, 돈이 많이 돌고 그리고 도시화가 빨라진다면서 큰소리를 친단 말이야.”
친구인 김주사의 말을 듣고는 내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냥 아무렇게나 들어 넘길 얘기가 아니다.
“하아- 야 정반장아, 세상에 공것이 어디 있냐. 웬일인지 박재근이가 금(金)서방을 앞세우고 우리에게 접근을 하더라니- 쇠갈비와 금서방에 빠졌더라면 곰박골이 박살이 날 뻔했네. 안 그래?”
“맞아- 야- 한진축산의 이회장이 안성에다가 5만평을 개발해서 팔아 넘겼다면 얼마나 많은 이익금이 남았을까?”
“내가 알 일이 아니어서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런 건 돈이 많은 투기꾼들의 얘기이지 우리 서민들이 안다고 무얼 하겠어. 우리 서민은 그네들의 공장에 고용이 되어 생활을 하면서 댓진만큼 주는 보수를 받고 조반석죽을 끓여먹으며 연명을 하면 되는 거지. 그리고 우리 서민들은 버리기가 아까운 지금의 절대가난을 버리지 말고 대대손손에게 물려주면 되는 거 아니야? 하하-”
내가 놀라서 말을 하고, 정반장의 물음에 김주사가 농담을 섞어서 대답을 한다.
“그게 아니야. 자- 우리 가난한 자들은 자꾸 술만 마셔대면 되는 거야. 마시는 게 내 것이야. 마시고 얘기를 하자. 자-”
우리 셋은 술을 한잔씩 더 마셨다.
“야- 가진 자들이 축산사업을 하는데 축협(畜協)이나 해당관청의 축산을 담당하는 부서에서는 저리(低利)로 융자를 해주고, 무슨 친환경 품질 고급화 장려금이니 입지 보조금이라는 이러저런 명목을 붙여서 도와주고 있다고- 입지를 선정하는데도 또 생산물의 유통도 팍팍 도와주고 말이야. 그런 건 우리나라의 법률에 명시가 된 기회균등의 법정신에 배치가 되는 게 아니냐.”
“그런 걸 법을 따져서 무얼 하겠어. 영세 농업인들은 당연히 정부에서 좀 밀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도 내에서- ”
“그야 그렇지만 옥석을 가려야 해. 영세자들은 밀어 주더래도 공장을 빙자하고 또 건설과 사업을 빌미로 투기를 하는 자들, 정책을 이용해서 한몫을 잡는 자들과 성과금이니 복지금의 명목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낸 세금을 마음대로 나눠 쓰는 자들 그리고 고액 연봉을 받는 사람들과 해외에 나가서 흥청망청하는 작자들을 가려서 양극화를 조정해야 하는데, 위정자들이 그런 걸 안하고 있단 말이야.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고 있어요. 막대한 공적자금이라는 것도 어느 병소(病巢)를 찾아서 정확하게 처방을 하지를 못하고 엉뚱한데다가 쳐 바른다 이거지, 안 그래?”
김주사가 한마디를 하고, 다시 정반장의 말에 김주사가 술에 취해서 장황하게 말을 더듬는다.
“야- 그러나저러나 불쌍한 우리 동네의 곰박골을 무자비한 자본의 독재자들로부터 사수를 해야 할게 아니냐. 우리 모두가 좋은 방안을 찾아보자고. 예미- ”
“아암- 정반장하고 이장아- 잘 들어 봐라. 우리 위에 어른이 주민들의 진정서에는 매우 허약해요. 왜냐고? 지금이 그런 세상이 아니냐. 그러니 너의 동네사람들과 곰박골 너머에 있는 후곡리 사람들이 똘똘 뭉쳐서 진정서를 넣으란 말이야. 그러고 악을 쓰고 사수를 하라고. 그렇게 한다면 악당들로부터 곰박골을 지켜낼 수가 있을 거야. 다음에는 녀석들이 금갈비를 앞세우고 덤빌 거라고. 금갈비는 단호하게 사절을 하고 말이야. 하하-”
곰박골을 내가 걱정을 했고, 김주사가 진정서를 제시하면서 도움의 얘기를 해준다.‘고향을 사랑하고 즐기면서 곰박골을 지키자고 내가 고향에 주저앉은 게 아니냐. 곰박골을 지키는 것은 나의 책무이다.’
우리는 몇 잔씩의 술을 더하고, 몇 마디 얘기를 나눈 뒤에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국밥집을 나왔다. 그리고 국밥집의 앞에서 친구인 김주사와도 헤어지고, 정반장과 나는 곧바로 시내버스에 올랐다.
해가 떨어지면 어둠은 오지 말래도 저렇게 오는 것이다. 어둠이 내린 거리에는 가진 게 있고, 없음이 분별이 안 되는 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아쉬운 표정으로 둥지를 찾아서 분주히 발걸음을 재촉 하고 있다. 세상에서의 희로애락이 모두가 뜬 구름이라던데, 사람들은 왜 그렇게 많이 가지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일까. 사람들이 저렇게 창문마다에 어둠이 안타까워서 불을 밝히고 도란도란 거리고는 있지만 밤이 깊어지면 모두가 어두운 잠 속으로 깊이 빠져 들어야 하는 것이다. 한번 잠에 빠져버리면 세상을 모르는데 너나없이 사람들은 왜 그렇게 야단야단들일까? 사람이 살아가면서 먹고, 자고 산위에 올라가서 소리를 지르는 제반의 행위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몸뚱이를 후대들에게 사속(嗣續)을 해주려는 하나의 수단으로 귀결이 되는 게 아닐까. 내가 이렇게 친구를 만나고, 고향동네 곰박골의 얘기를 나누면서 술을 마시는 행위도 오로지 존재를 하기위한 하나의 몸부림에 다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야- 술이 취한다. 술이 취하니까 기분은 좋다. 그지?”
“그래- 나도 취한다. 누가 뭐래도 전번에 송정에서 갈비를 얻어먹을 때보다 지금 먹은 순대국이 얼마나 속이 편하냐. 좋다-”
“맞아- 술도 이렇게 내 돈으로 사먹는 게 얼마나 개운하냐. 과분하게 얻어먹는 술은 하나같이 마음에 부담이 된다고-?”
정반장과 내가 한마디씩을 주고받았다.
‘선대(先代)들로부터 물려받은 아름다운 곰박골을 우리가 훼쇄(毁碎)를 해서야 도리가 아니지. 김주사의 말대로 후곡 사람들과 똘똘 뭉쳐서 우리 동네의 곰박골을 개발을 하지 못하도록 군청에다가 진정서를 넣고, 다음엔 또 어떠한 수단으로 그곳을 사수를 한다? 잘 생각을 해보면 무슨 좋은 수가 있겠지-’
이 생각 저 생각에 잠기는 중에, 버스는 어두운 한길의 가운데를 뚫고 부지런히 달려가고 있다.
김 동 근
충북 진천 출생
공무원 25년 근무
시와 소설 수필 등단
한국문인협회 펜문학 농민문학 등 문단체 소설분과 회원
농민문학 작가상 생활문학 작품상이 있음
시집 1, 소설집 2권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