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학생 독서기행 문향영양투어 두들마을 해설
2010년11월13일
오전10시 부터 오전12시까지: 대구강동고등학교 45명
오후 1시 부터 오후 5시까지 :포항두호고등학교 46명
여행목적 : 독서기행 문향을 탐방
1.안내 및 소개한 내용은
0. 인사를 올리며...........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영양에 오심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0.영양군에 대한 소개...
꽃과 빛의 고장으로 문향임을 자랑하는
영양군 일반현황에 대하여 간략히 소개하겠습니다.
*면적은 경상북도의 4.3%이며
서울특별시보다 1.3배 크며,
*행정구역은 1읍 5면 114개리가 있으며,
*인구는 9천가구에 2만 정도가 평화롭게
살고 있습니다.
*지역특성은 충의열사와 문인이 많으며
자연경관보존이 잘 되어있어서..
자연의 맛 / 전통의 멋 / 고향의 정이
숨쉬는 곳이여서 호연지기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0.피로회복을 위한 구호를 외쳐보면서..
여행체험,탐방 공감 분위기 조성을 하다.
- 관광객과의 문답...
문: 인간세상에서 가장 밝은 빛은 무엇일까요?
답: 햇빛입니다.
예 맞습니다.
어둠을 밝혀 주는 햇빛이고 어둠속에서도
밝음을 주는 달빛입니다.
영양에는 해와 달이 함께 빛나고 있는 곳입니다.
여기에 오셨으니 해와 달의 정기와 호연지기를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구호제창...
"해와 달은 호연지기 이다" 3회 복창
~ "해와 달"은 선창 하고
"호연지기"이다는
모두가 함께 복창하도록 한다~
2.해설한 내용은
가.두들마을 해설
두들마을은 경북 영양군 석보면 원리에 위치하며
조선 인조 18년(1640년) 석계 이시명(1590~1674)
선생이 터를 잡은 마을입니다.
선생 사후에 넷째 아들 숭일이 선업을 잇고,
그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재령이씨 집성촌이 되었
습니다.
석계 이시명선생은 조선 인조,현종 연간의 학자로서
일찍이 생원에 올랐으나 입신양명에 뜻을 두지 않고
일생을 학문연구에 노력한 분입니다.
경전의 심오한 뜻을 연구하다가 1636년 병자호란
이후 대명절의를 지킨다는 뜻으로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영양군 수비면 신원리 산촌에서 20년간 은거
하였고,
인조 18년에 이곳으로 들어와 석계石溪위에 초당草堂을
짓고,스스로 호를 석계라 하였습니다.
마을이름 두들은 언덕위에 위치하고 있다하여
부쳐진 이름이며 2000년 10월 전통문화마을로지정
되었습니다.
두들마을은 일찍이 크게 문풍이 일었던 곳으로 훌륭한
학자와 독립운동가를 배출하였습니다.
그중 유명한 사람으로 조선시대에는 퇴계 이황의 학문을
계승 발전시켜 후학에게 널리 전한 갈암 이현일과 밀암
이재 등이 있고,근세에는 의병대장을 지낸 나산 이현규와
유림대표로 파리장서사건에 가담했던 독립운동가 이돈호
이명호,이상호가 있으며,1920년~1930년대에 활동했던
항일 시인 이병각,이병철과 우리시대의 소설가 이문열의
고향입니다.
두들마을에는 석계 이시명선생과 그의 아내 정부인
안동 장계향이 살았던 석계고택,선생이 유생을 가르친
석천서당을 비롯하여 정부인 장계향 유적비와
예절관 문학연구와 문학도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광산문학연구소,전통한옥채험관이 있습니다.
나.문화재 및 유적지를 관찰,탐방하면서 해설
(1)전통한옥체험관
이곳은 현존하는 최고의 한글 조리서인 '음식디미방'에
소개된 조리법을 참고로 조선시대 양반가의 반상차림을
오늘날 우리의 입맛에 맞도록 재현해 내는 곳입니다.
뿐만 아니라 맛과 향이 은은한 우리 차를 함께하며
마음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장소입니다.
(2)원리쉼터-항일시인 이병각과 이병철
* 정열의 천재 시인 이병각
몽구 이병각(1910~1941)시인은 1930년대 중반기에
우리 문단에 등장 활약한 분으로 석계 이시명 선생의
후손입니다.어릴 때 향리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다가
보통학교를 단기반으로 졸업하였고,그 후 서울로 상경
하여 중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식민지 모순을 극복하려는 학생운동에 참여하여
활동하다가 퇴학당하고, 도일한 그는 츄오대학을
중퇴하고 1935년 1월 조선중앙일보에 소설
'눈물의 열차'를 발표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단했습니다.
이후 중앙일보 기자로 근무하였으며.
'시학'동인으로 활동한 그는 시 '오직진군할따름이다'
'생쥐이야기' 비평 '농민문학의 본질과 농본주의의 폭로'
'풍자와 우화 시에 대하여' 등을 남겼고,
31세로 요절하기 까지 6년의 작품활동기간중
시 22편,소설 3편,수필 7편 평론 13편을 남겼습니다.
* 빼어난 리얼리즘 시인 이병철
이병철(1918~ ) 시인은 1940년 혜화전문에 수학,
그 후 평론가 이원조의 추천으로 1943년 조선일보
후신인 '조광'에 '고향소식'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습니다.
이원조와 이병철은 조선일보에 함께 기자생활을 한
직장 동료로 막역한 사이였으며,
또 이원조의 형인 이육사 시인과도 친형제 이상으로
절친했다고 합니다.
해방후 1945년 시 '새벽' '소'를 1946년 조선문학가
동맹에 가입하고 시 '교실에서'를 발표하고 김상훈,
유진오 등과 공동시집'전위시집'을 발간하였으며
시 '뒤골목이 트일 때 까지' '역두에서''나막신'
'묵발' '붉은 수의'가 인정받았고, 1948년경에는
이화여자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시 '홍수'
수필 '금전문제''시단월평'을 발표했습니다.
1949년 '시의 주제와 형식문제'라는 평론을
발표하기도 했던 그는 1950년 9월 전가족과 함께
월북했다고 합니다.
(3) 석계고택石溪古宅
이 건물은 조선 인조(仁祖)와 현종(顯宗) 때의 학자인
석계(石溪) 이시명(李時明, 1599~1674)이 인조 18년
(1640)에 두들마을에 들어와 석계위에 지은 초당에
살다가 17세기 중엽에 세운 고택으로 경북민속자료
제91호이다.
선생은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학통을 이은 장흥효
(張興孝)의 문인으로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으나
이곳에 은거하여 학문에 전념하였다.
선생의 부인인 정부인(貞夫人) 장씨는 부덕(婦德)과
학문을 갖춘 인물로 신사임당(申師任堂)에 비견(比肩)되는
분으로 이문열 장편소설 [선택]의 주인공이 되었고,
아들인 이조판서 갈암(葛菴) 이현일(李玄逸)은 퇴계 이황의
영남학파를 계승하였다.
이 집은‘一'자형 사랑채와 안채를 ‘二'자형으로 배치하고
토담으로 막아 허실감(虛失感)을 메운 뜰집과 같은 느낌이
들도록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4) 정부인 장계향 유적비
정부인 안동장씨의 학문과 예술,자녀교육에 대한 전범
典範을 기리기 위하여 1989년 10월 건립한 것입니다.
비문은 전 국사편찬위원장 박영석이 짓고,장상조가 썼으며
이 유적비 배면에는 부인의 대표적인 한시 '소소음'이 각인
되어 있습니다.
정부인 장계향(1598~1680)은 석계 이시명 선생의 아내이자
조선 중기의 대학자였던 경당 장흥효의 무남독녀로서
탁월한 부덕과 식견을 두루 갖추고 재령이씨 가문을 명가로
만든 인물입니다.어려서 부터 시,서,화에 능통했던 문인이자
여성군자였으나 아버지가 아끼던 제자인 석계 이시명과
결혼해서는 자신의 재주를 드러내지 않고 전 부인의 아들
까지 합해서 10명의 아들 딸을 잘 키워냈습니다.
말년에는 셋째 아들 갈암 이현일이 국가적지도자에게 부여
하는 사림士林으로 불림을 받아서 이조판서를 지냈으므로
법전에 따라 정부인의 품계를 받았으며 이 때부터
'정부인 장씨'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소설가 이문열은 그의 13대 할머니기도 한 '정부인 장씨'부인
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썼으며, 문화관광부에서는 시문과
서,화에 능할 뿐만 아니라 자녀교육에 귀감을 보임으로써
후세들로부터 위대한 어머니상으로 추앙 받은 '정부인 장씨'를
1999년 11월 문화인물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5) 석천서당石川書堂
이 서당은 석계(石溪) 이시명(李時明, 1599~1674) 선생이
영해에서 석보로 이사와 세운 석계초당을 후손들과 유림이
1891년 중건하여 석천서당(石川書堂)이 되었습니다.
선생은 퇴계의 학통을 이은 장흥효(張興孝)의 문인이며,
영남학파를 이은 이조판서 갈암(葛菴) 이현일(李玄逸)의
부친입다.
이 서당은 두들산을 배산(背山)으로 하고 남서향으로 향하고
있는데 평면은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되어 있습니다.
좌측에서 첫째와 넷째칸은 통칸방으로 꾸몄고 둘째와 셋째칸은
마루를 깔았고. 정면과 좌우면에 2자의 쪽마루를 내어 평난간을
둘렀고, 마루로 향하게 한 창호는 4분합의 창을 들어 열개문으로
하여 6칸을 1칸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였습다.
경북 문화재자료 제79호입니다.
(6) 두들마을 유물전시관
0 운악雲嶽선생 관련 유물:분재기,명문 교지 3점,녹패,
사재감계회도,혼서,소지所志
0 석계선생 관련 유물:김씨부인교지,석계선생교지,석계선생호적
석계서생시험답안지,양자승낙서,석계선생제문,석계선생유필
0 정부인 장씨 관련 유물:영정,학발첩,정부인 장씨 실기,
규곤시의방,수첩,정부인 장씨 교지,정부인 장씨 유묵
0 석계선생 후손 관련 유품:어제천자문,존재 유묵,갈암 유묵
밀암 유묵,고재호적단자,고재 유묵
0 목판본 : 안릉세전,석계선생문집,정부인장씨실기,정묵재집
홍범연의 갈암집,냉천집
(7) 유우당惟于堂
이 집은 조선 순조(純祖) 33년(1833)에 이상도
(李相度, 1773~1835)가 건립한 살림집으로 건물 이름은 선생의
장자인 이기찬(李箕燦)의 호를 따서 유우당(惟于堂)이라 하였습니다.
이 집은 원래 석보면 주남리에 있던 것을 선생의 후손인
이돈호(李暾浩)가 현 위치로 옮겼으며. 이돈호는 3․1운동 때
유림(儒林)의 대표로 파리장서사건(巴里長書事件)에 가담하며
독립운동을 하였고, 그의 조카 이병각(李秉珏)은
조지훈(趙芝薰)․오일도(吳一島)․조세림(趙世林)
등과 더불어 항일(抗日) 애국시인으로 활약하였다.
(8)석간정사石澗精舍 및 정침正寢
1800년대 건립, 입구에 들어서면 전면에는 석간정사가 자리잡고
있고 정사 우측마당 뒤쪽에 ㅁ자형 정침과 서향한 -자형의 고방채
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정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기와집이다.평면은 마루방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연접시킨 후 전면에는 쪽마루를 설치하
였으며 가구는 삼량가의 홑처마집이다.
정침은 정면 4칸 측면 5칸 반 규모의 ㅁ자형 건물이다.
평면은 중문칸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온돌방 1칸을 우측에는
마구와 사랑방을 연접시켰다.
안채는 안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안방과 건너방을 두었으며
안방의 전면으로으로는 부엌을 연접시켜 좌익사를 이루게
하였습니다.
(9) 정부인안동장씨예절관貞夫人安東張氏禮節館
정부인 장씨의 이름을 딴 예절관,2년여의 공사 끝에 완공,
2005년 10월 29일 준공,300여평방미터에 강당 및 주방,전시관,
문간채 등 3개의 건물로 구성돼 잇습니다.
2006년부터 '음식디미방'에 쓰인 조리법대로 전통음식을
오늘에 재현하는 작업이 진행중이며, 앞으로 이곳은 청소년이나
대학생,주민 등의 예절교육장으로 이용될 예정입니다
'음식디미방' '음식지미방'은 곧 '좋은 음식 맛을 내는 방문
方文'이라는 뜻을 담은 책으로 1670여년경 정부인 안동 장계향
이 자손들을 위해 쓴 요리책입니다.
책 표지에는 한자로 '규곤시의방'이라 쓰여있는데 겉 표지는
부군이나 후손들이 책의 격식을 갖추어 의미를 더하기 위해
덧붙인 것으로 보입니다.
겉 표지를 넘기면 '음식디미방'이라고 쓴 한글 제목이 나옵니다.
'음식디미방'은 현존 최고 오래된 한글 요리백과이다.
1600년대 중엽과 말엽,경상도 양반가의 음식 조리법과
저장,발효식품,식품보관법 등 146가지를 소개하고 있으며
국수,만두,떡 등의 면병류를 비롯하여 어육류,채소류,주류,
초(식초)류 등 그 메뉴가 다양합니다.
'음식디미방'은 실증적 요리서로서 최초이다.
물론 '음식디미방'이전에도 요리책은 있었지만 대개가
한문으로 쓰인 것이고 또 간단한 소개 정도로 그쳐
실용화하기가 어려웠다.하지만 이 책은 내용이 한글로
되어 있고, 각각의 음식에 대한 조리법과 조리기구 등까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어, 33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책을
따라서 요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실용적이라고 합니다.
'음식디미방'은 우리나라 전통음식 연구의 교본이다.
우리나라 식품사의 권위자이고 고조리서 연구가인
이성우교수는 이 책에 대하여 '아시아에서 여성에
의해 쓰여진 가장 오래된 조리책으로 세계 음식문화사에
특별한 의의가 있다'고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그 만큼 이 책은 옛날과 오늘의 식문화를 비교 연구하는데
소중한 자료이며 거의 사라져 버린 옛 조리법을 발굴할
수 있는 지침서로서도 가치가 대단하다고 자랑합니다.
(10) 이문열과 광산문학연구소=광산문우匡山文宇
한국 현대문학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문학도를 양성하기
위하여 2001년 5월 12일 광산문학연구소 개소식을 가졌습니다.
이 곳은 이문열의 집필실로 사용되는 한편 세미나 등 다양한
문학 관련 행사가 열리는 새로운 문학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규모는 학사 6실,강당 및 사랑채 각 1실 관리사 5실이며
현판은 광산문우匡山文宇입니다.
이문열의 저서는 그해겨울/그대는다시고향에가지못하리
금시조/황재를위하여/영웅시대/우리들의일그러진영웅
등 많은 작품 속에서 삶의 역정을 펼치는 삶의 무대로
두들마을을 그리고 있습니다.
(11) 주곡고택做谷古宅
경북민속자료 제114호로 조선시대의 가옥,조선 중기의
유학자 주곡 이도가 주남리에 지었던 것을 후손들이
순조 30년(1830년)에 이 곳으로 옮겨 지은 집입니다.
ㅁ자형 구조이며 사랑방의 편리를 위하여 다양하게
꾸민 벽장과 감실방,벽장 아래로 끌어내릴 수 있는
널로 된 제상이 돋보입니다.
또한 부엌에 물을 길러 담아 두고 쓰는 큰 독인 물두멍이
남아 있습니다.
경상북도 북부지역의 전형적인 민가 건물로 보기 드문
옛생활문화의 흔적이라고 보고있습니다.
(12) 도사댁都事宅/만석꾼지기집
1800년대건립되었고,경북 북부지방에서 땅을 가장 많이
소유하였던 집이라고 해서 만석꾼지기집이라고 부릅니다.
전면에 세운 3칸 규모의 평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ㅁ자형의 정침이 자리잡고 있으며,정침 우측에는 4칸
반 규모의 초옥인 방앗간채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정침은 정면 9칸 측면 5칸 규모의 ㅁ자형 건물입니다.
사랑채는 중문칸의 좌측에 자리잡고 있는데 평면은 마루방을
중심으로 좌우에 1칸과 2칸씩 온돌방을 연접시켰으며
안채는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건너방과 안방을 연접
시켰으며 안방의 전면에는 부엌을 연접시켜 우익사를 이루게
하였습니다.
(13) 두들광장
자연에서 호연지기를 키우자
사람과 자연이 함께하는 행복영양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정부인장계향의 시詩를 읊어 보면서...
0 성인음聖人吟
부생성인시不生聖人時 ; 성인과 같은 때에 나지 않아서
부견성인면不見聖人面 ; 성인의 모습 뵐 수가 없지만
성인언가문聖人言可聞 ; 성인의 말씀 들을 수 있으니
성인심가견聖人心可見 ; 성인의 마음 가히 알겠도다.
0 경신음敬身吟
신시부모신身是父母身;이내 몸은 부모님이 물려주신 몸
감불경차신敢不敬此身;감히 이 몸을 공경하지 않을손가
차신여가욕此身如可辱;이내 몸을 가히 욕되게 함은
내시욕친신乃是辱親身;어버이 몸을 곧 욕되게 함이로다
0 소소음蕭蕭吟
창외우소소窓外雨蕭蕭;창밖에 소소히 비 내리는 소리
소소성자연蕭蕭聲自然;소소한 소리는 자연의소리러라
아문자연성我聞自然聲;내 지금 그 소리 듣고 있으니
아심역자연我心亦自然;내 마음 역시 자연이 되는구나
*영양사람들의 작은행복을 생각해 보면서..
0 초가삼간의 행복
우리네 꿈은 소박素朴했다.
그래서 일찍부터 이런 노래를
즐겨 부르면서 살아 왔다.
계수桂樹나무 찍어 내어
초가삼간 집을 짓고...
양친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
달나라에 있는 계수나무를
옥도끼와 금도끼로 베어 와서
애써 만드는 집이 초가삼간이 였다.
'카프카'가 인용한
동양의 옛설화에서
이런 구절이 있다.
마음이란?
두개의 침실이 있는 집이다.
한쪽 방에는 괴로움이 살며
또 한쪽 방에는 기쁨이 살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너무 큰소리로
웃어서는 안된다.
옆방의 괴로움을
잠을 깨울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다.
이러한 소박함이
근대화 산업화를 하면서
물질만능주의 풍조로
바뀌어 우려되는 현상이
일어 나고 있다.
모두가
지나친 욕심 때문이라고
보여 진다.
욕심과 현실을 비교할 때
차이가 벌어져 있을 때
불만의 덩어리가
크게 된다.
이래서
우리 조상들은
초가삼간의 미덕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최근 발표된
장수마을 조사 결과를 보면
서양과 일본 같은 해양국은
해변 사람들이 오래 살고,
우리나라와 같이
풍수가 좋은 곳은
즉 경치 좋고,
물 맑으며,
공기가 깨끗한 곳에 사는
산촌 사람들이
월등하게 장수하고
있다고 한다.
바로 '산자수명'은 '호연지기'로
장수長壽 한다고 볼 수 있다.
조금도 놀랄 일은 아니다.
자연계에는
'7인의 명의名醫가 있다'고
하기 때문이다.
자연속에는
햇빛 日光 / 물 / 공기 /
흙 / 돌 /수목 樹木 /
청정먹거리와 여유로운 마음,
알맞은 운동 환경이
바로 명의名醫이다.
이러한 자연의 명의가
많은 곳이 바닷가 마을
또는 산촌마을이기
때문이다.
'괴태'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메피스토펠레스'도
누구나 자연에
돌아가서
알맞은 운동을 하면
오래 살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대도시 사람들이
장수하지 못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닌성 싶다.
도시생활의 스트레스
맑지 못한 공기
균형 잃은 영양營養
운동량 부족이
사람의 수명을
단축 시키는 것이
틀림 없기 때문이다.
장수 하려면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 속에서 살아야 한다.
우리 조상들이
강조해 온
자연과 인간은 하나라는
자연합일 사상,신선사상.
풍수오행사상 ..
유학에서 지향하는
추로지향으로
초간삼간에서
행복을 찾고 있었다.
end
"청정자연은 호연지기이다."
"해와 달은 호연지기이다."
"고추는 영양이다." "건강도 영양이다."
*浩然之氣
독음 : 호연지기
단어 :
浩 넓을 호, 술 그를 고
然 그럴 연/불탈 연
之 갈 지
氣 기운 기, 보낼 희
풀이 :
①도의에 근거(根據)를 두고
굽히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바르고 큰 마음
②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넓고 큰 정기(精氣)
③공명(公明) 정대(正大)하여
조금도 부끄럼 없는 용기(勇氣)
④잡다(雜多)한 일에서 벗어난
자유(自由)로운 마음
end
-시인 '조지훈'이 분류한 주도酒徒 18 단계 -
(1)불주不酒 : 될수 있으면 안 마시는 사람
(2)외주畏酒 : 술을 겁 내는 사람
(3)민주憫酒 : 취하는 것을 민망하게 생각하는 사람
(4)은주隱酒 : 돈이 아쉬워 혼자 숨어서 마시는 사람
(5)상주商酒 : 잇속이 있을 때만 술을 마시는 사람
(6)색주色酒 : 성생활을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
(7)수주睡酒 : 잠을 자기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
(8)반주飯酒 : 밥맛을 돋우기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
(9)학주學酒 : 술의 진경을 배우는 사람.주졸酒卒의 단계
(10)애주愛酒 : 취미로 술을 맛보는 맛보는 사람.주도酒徒 1단
(11)기주嗜酒 : 술의 진미에 반한 사람.주객酒客 2단
(12)탐주眈酒 : 술의 진경을 채득한 사람.주호酒豪 3단
(13)폭주暴酒 : 주도를 수련하는 사람.주광酒狂 4단
(14)장주長酒 : 주도 삼매에 든 사람.주선酒仙 5단
(15)석주惜酒 : 술을 아끼고 인정을 아끼는 사람.주현酒賢 6단
(16)낙주樂酒 :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사람.주성酒聖 7단
(17)관주觀酒 : 술을 보고 즐거워하되 이미 술을 마실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사람.주종酒宗 8단
(18)폐주廢酒 : 일명 열반주.술로 인해 다른 세상으로 떠난 사람. 9단
end
-해와 달 전설 -
*오누이가 있었는데 ..
어머니가 떡장사를 하고 돌아 오는길에
호랑이에게 잡아 먹히고 ,
호랑이가 오누이까지 잡아 먹으러
집으로 찾아 갔는데..
오누이가 동아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래서 각각 해와 달이 되었다.
*연오랑과 세오녀이야기가 있었다.
연오랑이라는 신라사람의 어부가
살고 있었는데
그의 아내인 세오녀가 미역을 먹고
싶다는 소리를 듣고
그것을 따러 갔다가
그만 바위에 실려 일본까지
건너가 왕이 되고
세오녀 역시 일본에 가서 왕비가
되었다.
하지만 신라에는
그 이후 해가 뜨지 않아 어둠이 계속되고
결국 세오녀가 정기를 모아 짠 비단을
보내주어 제사를 지내자 해가 뜬다는
내용이다.
end
3. 영양 재 방문 유도하는 인사..
사람과 자연이 함께한 영양에 또 오십시오.
*홈피 소개
*전화나누기/이메일 나누기 등
*영양홍보구호 제창
"고추는 영양이다" "건강도 영양이다"
* 여담餘談 -健康十則건강10칙-
小食多咀소식다저
小鹽多酢소염다초
小肉多菜소육다채
小糖多果소당다과
小言多行소언다행
小怒多笑소노다소
小煩多眠소번다면
小衣多浴소의다욕
小乘多步소승다보
小慾多施소욕다시
* 일월산가 (日月山歌)
어화우리 벗님네야 일월산에 구경가세
이래가지 아니하면 우리평생 갈수없네
전날부터 수군수군 우리딸네 언약하니
집집마다 할머니들 궁금해서 야단이나
점심고리 보에싸서 옆에끼고 나아가니
이른아침 안개속에 나물꾼의 행진이라
솔순같이 자란우리 치렁치렁 땋은머리
남아볼가 두려워서 앞에넘겨 수건쓰고
힐끗힐끗 눈치보며 나물꾼에 섞여서니
얼시구나 절시구나 오늘우리 소풍이라
옛날에는 가마타고 출가할때 나아갈길
우리발로 몰래가니 으레꾸중 각오하며
우리조씨 자작일촌 주실동리 벗어날새
일보일보 들어갈새 첩첩산중 찰당골은
팔밭쪼아 먹고사는 평화촌이 여기런가
봄날에는 나물뜯어 일년먹을 준비하고
여름에는 길쌈해서 입고남아 판단하니
남녀같이 꾸려사는 자족자급 촌이로다
난리나면 피난드는 찰당골을 바라보며
심삼유곡 폭포소리 찾아보니 벽계수라
옥수같이 맑은물을 훌쩍훌쩍 뛰어가네
우리들은 일자봉을 쳐다보면 올라갈새
고불꼬불 십리길에 나물꾼이 줄을지어
허덕허덕 숨가쁘게 기어올라 돌아보니
나무하나 없는고개 산채만이 우거졌네
알숭달숭 금죽만은 이산에만 나는산채
옛날에는 나라님께 진상하던 이나물이
일월산에 매년돋아 옛이야기 하는듯다
푸른잎에 붉은띠는 마디마디 둘러있고
향기로운 그냄새에 아름다운 금북이라
질러가면 오백리요 돌아가면 천리길에
대궐안에 들어가면 삶아우려 다진나물
계란씨워 끄린국을 수라상에 올림이라
상감께서 잡숴보고 무릎치며 하신말씀
어허좋다 선미로다 속이편해 좋은지고
이말슴에 황송하야 궁녀환광 조아리며
삼신산이 불로초와 못지않은 산채라고
아조옛날 진시황은 장생불사 하고지고
동남동녀 오백인을 수륙만리 태워보내
삼신산의 불로초를 캐오라고 시킨지라
영남출신 역대왕비 이산채를 모르시랴
청송심씨 왕비마마 나신소을 인접이요
두고두고 사랑받던 진상나물 금죽이요
우리나라 역대임금 불로장생 하시라고
가초가초 심은듯이 당귀금죽 무성한듯
망월같이 둥근밥취 동글동글 예쁠시고
미미나리 높은향기 그냥꺾어 먹고지고
나물취는 어찌하야 백립같이 흰빛인고
우리나라 국상잦아 네가항상 복을입나
우리이조 오백년에 이실팔왕 사십왕비
국상마다 우리백성 백립쓰고 애통한중
금죽나물 많이잡숴 제일많이 사셨다네
우리조상 지평공이 금죽밥취 진상하면
옥천공은 상감님께 불로선약 산채라고
군신간에 의사소통 친밀하게 지냈으나
간신참소 의간통에 사도세자 참변당코
세자비도 폐비하란 영조대왕 호령당시
옥천공이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림이라
영조대왕 대로하사 듣기싫다 하실적에
천리귀양 가난가마 옥천앞에 놓였다네
왕명이라 할수없이 옥천승지 귀양가며
쉴때마다 상소문을 쓰시다가 객사했네
장할시고 우리조상 지평옥천 형제분이
백절불굴 바른정신 의를위해 순직한후
이산깊이 숨어돋는 불러선약 이나물이
아는이도 별로없이 우거지고 마는것가
꾸벅꾸벅 귑지않아 처음막죽 오늘이라
한잎두잎 모았다가 보에싼것 이고서서
두루두루 돌아보니 첩첩산이 둘러쌓네
태산태산 그사이에 파도같은 청산이라
만경창파 바다위에 바를타고 섰는듯다
멀리뵈는 삼각산은 한양성을 가리키며
적이오면 알리란듯 바라보고 서있건만
한일합병 되고비니 왜놈들의 세상이요
일자봉에 타던봉화 꺼진지도 오랜지라
오늘에는 나물꾼이 장사꾼이 모였으나
옛날에는 이산고개 봉화올려 유명한곳
일월산악 일자봉이 동해안에 제일높네
동해바다 바라볼제 수평선을 넘는배는
무얼싣고 달아나며 뉘를태워 가는밴고
우리나라 망할적에 왜구오던 저바다야
조국흥망 네알꺼라 우라나라 어이될꼬
중얼중얼 탄식하니 어떤부녀 일어서서
왜놈들아 물러가나 악을쓰며 발구를제
이산저산 이말받아 왜놈들아 물러가라
산올림도 비장하게 같이울어 주는이날
눈물닦고 한숨쉬며 일자봉을 비켜서니
울울창창 밀림속에 물소리가 은은해라
출렁출렁 넘는물은 부인당펀 지의약물
옛날부터 백일기도 여기와서 드림이라
눈을감고 앉은사람 방속에서 안나오네
부녀자가 모인곳에 부정탈까 안보는듯
가는사람 오는사람 이샘앞에 합장하고
물한모금 마신후에 소원성취 바라면서
점심밥을 먹으려고 나물꾼이 모여앉아
산신령과 용왕님을 두려하여 조심이라
밥을먹고 일어서니 물도같이 흘러가네
슬금슬금 기는듯이 산비탈을 내려가니
천리장정 낙동강은 예서부터 흐름이요
고금주야 쉬지않고 초지일관 유수로다
이인생도 먹은마을 변치말자 도사릴제
난데없이 겁을내어 다름박질 치며보니
절터같이 넓은땅에 잡곡심어 싹이나고
푹신푹신 검은흙은 나뭇잎이 썩고썩어
아무씨나 뿌려두면 절로자랄 땅같은데
소나무는 혹간있고 아람드리 꿀밤나무
사이사이 싸리밭은 삼서듯이 무성하며
다래덤불 칡덤불은 머리뜯어 못가겠네
호랑이가 옆에서도 전혀모를 산이로다
가랑비를 피하기엔 아조좋은 산이로다
다시해가 웃고불러 만리장고 바라보니
강남갔던 제비들은 떼를지어 북상이라
산넘어서 또산이요 또산넘어 또산인데
쉬어쉬어 가는것가 지지배배 지지골골
임자없는 옛대궐에 집지으러 가는것가
슬프도다 일월산아 봉화꺼진 일자봉아
주실동리 집집마다 너를보고 살았는데
국경없는 동해안에 무상출입 왜병이요
그중에도 수비대는 동리마다 지킴이라
오늘나도 저왜병의 말굽소리 듣기싫어
잠시라도 피해보고 서울산천 보고지고
일월산봉 봉화터에 올라갔다 내려오니
나물보에 쌓인설울 나라없는 한탄이라
목이메어 말없으니 산곡간이 고요한데
물소리만 구슬프게 이내심금 울리누나
- 을축년 봄날에 나물뜯어 이고와서
조국이 그립기에 이글을 엮어둔다-
감사합니다.
2010년 11월 13일.
<보완이 필요한 부분을 알려 주시면 합니다.>
문화관광해설사 박원양 올림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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