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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7 23:19
http://blog.naver.com/mtomorrow/120186345614
경기 양평 양서고등학교 권진수 교장
"교장실에 붙여 놓은 전교생 사진요?
늘 우리 애들 생각하고 싶어 붙였죠”
금요일 저녁이면 MT 가는 대학생들로 붐비는 청량리역. 여기서 용문행 전철에 몸을 싣고 서울시민들의 쉼터인
한강공원과 젖줄인 팔당호를 지나 40여 분을 달리다 보면 양수역에 도착한다. 남한강과 북한강, 두 물줄기가
만나는 곳이란 뜻으로 양수兩水라고 이름 붙은 이곳은 다산 정약용의 유적지로 더욱 유명한 곳이다.
양수리는 최근 새롭게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양서고 때문이다. 한때 정원미달을 걱정하던 이 학교는
2012학년도 수능에서 1~2등급 이상 학생비율 전국 4위를 차지하는 등 신흥명문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특유의 겸손하고 따스한 리더십으로 학교를 이끌고 있는 권진수 교장이 있다.
투머로우 = 취재 | 김성훈 기자 사진 | 배효지 기자 디자인 | 이가희 기자
권진수 교장
1952년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났다.
1975년 경인교대를 졸업하고 5년간 교사로 근무했다.
26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국무총리실 교육정책관, 대한민국학술원
사무국장 등을 역임했다. 제주도 부교육감을 거쳐 인천 부교육감이던
2009~2010년에는 교육감 권한대행으로 인천 교육을 이끌었다.
현재 양서고 교장으로 ‘슬기롭고 따뜻한 글로벌 인재’를 기르는 교육철학을 실천 중.
그가 온 후 양서고는 세 가지가 달라졌다!
한국교육개발원의 통계에 의하면 2012년 현재 우리나라 고등학교 수는 2,303개다. 이들 2,303개 학교가 추구하는 인재상이나 교육철학, 환경은 제각기 천차만별일 테지만, 그 중에서도 유난히 우리의 시선을 잡아끄는 학교가 있다. 바로 경기도 양평군에 위치한 양서고등학교다. 2년 전 권진수 교장이 취임한 뒤, 양서고에는 다른 학교에서는 결코 볼수 없는 독특한 풍경이 세 가지나 생겼다.
첫 번째는 바로 교장실 한쪽 벽면 전체를 빼곡히 덮은 전교생 814명의 증명사진이다. 대다수 학교의 교장실 벽면에 전교생 현황, 학력고사 성적분포도 같은 수치자료나 ‘학력향상 및 수업내실화’ 등 막연하고 상투적인 구호가 붙은 것과는 확연히 대조적이다. 권 교장에게 전교생 사진을 교장실에 붙여 둔 이유를 물으니 ‘그저 늘 우리 애들을 생각하고, 이름 하나라도 더 빨리 외우고 싶어서 그랬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자신의 결재를 받으려고 책상 위에 올라온 공문에 행여 학생 이름이 있으면 반드시 사진을 보며 ‘3학년 2반 김OO이 누구지?’ 하고 그 학생의 얼굴을 확인한다고 한다.
양서고에서만 볼 수 있는 두 번째 풍경은 바로 권 교장이 절대 학생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점. 대신 ‘밥 많이 먹어라’, ‘약속 지켜라’, ‘재밌게 생활해라’, ‘몸 건강해라’를 입에 달고 다닌다. 그가 부임 이후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은 학력이 아닌, 바로 인성교육이었다. ‘전 교사의 윤리교사화’를 기치로 삼은 그는 교사들에게 학기에 최소 1시간은 진도를 나가지 않고 인성교육을 실시하게 했단다.
“제가 말하는 인성이란 사람의 됨됨이와 마음가짐을 가리킵니다. 올바른 마음을 가지면 생활에 규모가 잡히면서, 절로 체계적인 사고와 정리된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럼 공부든 뭘 하든 절로 생산성과 속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지요. 인성에는 건강과 체력도 포함됩니다.
대개 교육 하면 지덕체 교육을 이야기하지만, 저는 오히려 체덕지 순으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봐요. 현재 대한민국 교육은 지식이 너무 우선시되고 있어요.”
‘인성을 중시하면 학력도 신장된다’는 자신의 지론을, 그는 성적으로 입증해 보였다. 부임 이듬해인 2012학년도 대입에서 양서고는 전년에 비해 몰라보게 향상된 성적을 거둬 교육계에 ‘양서고 돌풍’을 일으켰다. 서울대, 고대, 연대 등 소위 ‘스카이’대 합격자가 52명(전년도 37명)이나 되었고, 경희대, 성균관대, 중앙대, 이화여대, 한양대 등 주요대학 합격자 수도 전년에 비해 28명이 늘어난 80명이나 되었다. 이를 100% 인성교육에 힘입은 결과라고 보긴 어렵지만 적어도 학력향상에 바람직한 영향을 준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마지막은 애국가다. 여느 학교에서는 전교생 조회 등 학교행사 때 애국가를 1절만 부르고 끝내지만, 양서고 학생이라면 4절까지 불러야 한다. 권 교장은 이것이 절제와 금욕을 길러주는 인성교육의 일환이라고 말한다.
“학생들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는 것이 교육은 아니라고 봅니다.
아무리 하고 싶어도 못 하도록 억제시켜야 할 것이 있는 반면, 하기 싫지만 억지로라도 하게끔 마음을 다스려줘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재밌게도 공공의 이익에 도움이 되고 유익한 것일수록 하기 싫은 것들이 많아요. 납세나 국방의 의무 등이 좋은 예죠. 이런 건 싫어도 꼭 지켜야 해요. 반대로 음란물이나 게임 같은 것들은 당장 재미는 있지만 결국에는 유해한 것들이죠. 이런 건 절제하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교육인 것입니다.”
행시 동기들과 함께. 윗줄 왼쪽 첫번째가 추경호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세 번째가 김대희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이다. 아랫줄 왼쪽에서 두번째는
김동연 기획재정부 2차관, 네번째는 서울대 행정대학원 최종원 교수다.
교육부 시절 호주 퀸즈랜드대학교를 방문했을 당시(맨 오른쪽이 권 교장)
늘 체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권 교장. 교육부 때는 교육부 축구단의
총무, 부회장, 회장, 고문을 역임하며 20년 간을 부지런히 뛰었다.
포지션은 레프트윙. 최근에는 양서고 학생들과도 어울려 공을 찬다고.
제주 부교육감 시절 도미니카 정부의 초청을 받아
도미니카 교육부와 학교를 방문, 교육정보화컨설팅을 실시했다.
어제보다 1분만 더!
권 교장은 원래 초등학교 교원 출신이다. 1975년 경인교대를 졸업하고 교사생활을 하다 5년 만에 사직서를 내고 행정고등고시를 준비했다.
1982년 26회 행정고시에 합격하면서 교육공무원이 된 그는 국무총리실 교육정책관, 교육부 교육정보화지원과장, 서울대 시설관리국장 등 요직을 거쳤다. 얼핏 이력만 보면 순탄한 길을 달려온 것 같지만, 지금의 자신이 있기까지 말 못 할 고생을 감내해야 했다고 털어놓는다.
“양평 촌구석에서 10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어요.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이었지만 공부를 잘해 아버지의 기대가 컸었죠. 양평중학교에 수석 입학해 졸업 때까지 3년 내내 한 번도 1등을 놓치지 않았어요.
그도 그럴 것이, 1등을 해야지만 수업료를 면제받을 수 있었거든요.” 가난한 형편에 학업을 계속할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었다. 경기고, 서울고, 경복고 등 서울의 명문 고등학교에 합격한 뒤 부잣집에 입주가정교사로 들어가 아이들을 가르치며 숙식과 학비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큰 꿈을 품고 명문 고교에 지원했지만, 시골 학교에서의 전교 1등은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일 뿐이었다.
시험에 떨어진 열일곱 살 소년은 이제 혼자서 살 길을 찾아야 했다. 낮에는 친척이 운영하는 한약방 일을 거들며 생계비를 버는 한편, 밤이면 고졸 검정고시 준비에 매달리며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한번은 새벽에 일어나 잠자리를 정돈하고 일을 나가려는데 입에서 뭔가 단내가 느껴졌다. 힘든 일이 몸에 부쳐 코피라도 터진 걸까. 입 안에 든 덩어리를 손바닥 위에 뱉어보니, 달착지근하고 구수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밥이었다. 전날 일을 마치고 저녁밥을 먹던 중 피로에 지친 나머지 그대로 잠이 들었던 것. 그 정도로 공을 기울이길 3년, 마침내 그는 검정고시를 통과할 수 있었고 다시 2년을 더 공부한 끝에 인천교대(현 경인교대)에 합격하여 교사가 되는 발판을 마련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교육공무원이 되겠다는 새로운 꿈을 품고 행정고시를 준비하면서 다시 고생길이 시작됐다. ‘더 이상의 퇴로는 없다’는 각오로 다니던 학교에 사직서를 내고 고시에 뛰어들었다. 달력을 하나 준비해 순수하게 공부만 한 시간을 그때그때 분단위로 기록해 하루 단위로 합산했다. ‘오늘은 어제보다 1분이라도 더 공부한다!’ 그가 3년간 고시를 준비하며 세운 원칙이었다. 지키지 못할 때도 많았지만, 하루 1,440분 중 먹고 자고 씻고 쉬는 시간을 빼면 평균 1,000분 이상을 공부에 몰두해 합격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물론 2주에 하루 정도는 온전히 휴식에 할애해 체력을 유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고.
이론과 실무에 두루 달인이 돼라
권진수 교장처럼 교사로 일하다가 고시 합격으로 교육행정가가 된 것은 교육부 내에서도 굉장히 드문 경우다. 검정고시 합격 후 인천교대에 가기까지 또래보다 2년 정도를 더 공부해야 했고, 5년간 하던 교사생활을 그만두고 다시 3년을 공부해 행시에 합격했으니 동기들보다 몇 살이나 나이 많은 늦깎이였다. 하지만 그가 교직에 있으면서 보낸 시간은 결코 허송세월이 아니었다. 교육정책을 기획하고 시행하는 데 더없이 든든한 자산이 되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99년, 그가 교육부 교육통계과장으로 있을 때 일이다. 당시 전국 학생들의 사교육비 규모를 파악하기로 한 교육부는 그 프로젝트를 권진수 과장에게 맡겼다. 샘플링sampling, 즉 전국의 학생과 학부모 4만여 명을 표본집단으로 선정해 설문조사를 한뒤 이를 바탕으로 전국 학생들의 사교육비를 추산하기로 방침이 정해졌다. 한 학급을 40명으로 잡고 1,000개 학급을 조사하되, 40명이 넘는 학급에서는 40명에게만 설문지를 돌리고, 40명이 못되는 학급은 그만큼 옆반에서 학생들을 데려와 조사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권진수 과장만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식으로 설문조사를 해서는 안 됩니다. 다소 번거롭더라도 학생 수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반 전체에게 설문지를 돌려야 합니다.”
교육통계과 직원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과장님?”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학생 수가 45명인 반이 있는데 그 중 40명에게만 설문지를 준다면, 못 받은 5명의 기분은 어떻겠습니까? 소외감을 느끼지 않겠습니까? 반대로 학생 수가 35명인 반이 있어 옆반에서 학생 5명이 와서 설문지를 가져간다면 어떨까요? 그 5명은 ‘나만 뽑혔다’는 근거없는 우월의식을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조사를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편리하고 합리적이라고 선택한 방식이 자칫 학교 현장의 아이들에게는 상처를 주거나 잘못된 마음을 심어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제야 직원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결국 프로젝트는 권 과장의 제안대로 진행되었다. 사실 우리나라 정부부처들 가운데 가장 열심히 일하는 곳 중 하나가 바로 교육부일 것이다. 교육부가 위치한 서울의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16~18층은 밤늦게까지 불이켜져 있기 일쑤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국민들로부터 가장 많은 질타를 받는 곳 역시 교육부일 것이다. 이유가 뭘까?
“행정이란 인사, 재정, 기획, 법률, 통계 등 무수한 분야를 포괄하는 종합예술과도 같습니다. 어느 분야,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정책을 기획하는 중앙부처와 그 정책을 시행하는 현장 간에 간극이 있어요. 교육부는 열심히 일한다고 하지만, 현장의 분위기와 목소리를 모르기 때문에 늘 국민들이 요구하는 기대치를 따라잡지 못합니다. 교육부에서도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일선학교교사를 공무원으로 임용하는 교육전문직 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렇게 교육공무원이 된 분들은 법률이나 예산 등 행정에 어두운 경우가 많아 안타까운 실정이죠.”
현장에서는 ‘중앙 사람들은 실무를 모른다’고 하고, 중앙에서는 ‘현장 사람들은 이론에 어둡다’고 하며 조직이나 기업에 갈등이 벌어지는 모습은 흔한 광경이다. 이를 중재하고 원활하게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이론과 실무를 겸비해야 한다는 점은 내일의 리더를 꿈꾸는 <투머로우> 독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범한 교육관을 지닌 교장선생님을 둔 덕에 다른 학교는 1절만 부르는
애국가도 양서고 학생들이라면 4절까지 불러야 한다는 사실!
편한 길 대신 바른 길을 갔던 공직시절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신임대통령실과 각부 장관 등의 인선이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능력과 스펙을 갖추었음에도 지난날의 잘못된 행적이 논란이 되어 인선에서 탈락하거나 자진사퇴로까지 이어지는 것을 보노라면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렇다면 평소 정직과 노력을 좌우명으로 삼고 이를 자녀들에게도 입버릇처럼 강조한다는 권진수 교장의 공무원 시절은 어떠했을까?
1995년 권 교장은 호주 그리피스대학교와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대학교에 객원연구원으로 파견되었다. 당시 우리 교육부는 해외 교육부와 연계하여 교육공무원 상호교환 프로그램을 실시 중이었는데, 1기로 그가 뽑힌 것이었다. 선발자들 대부분이 미국이나 영국 파견을 희망했지만, 그는 뜻밖에 호주행을 결심했다.
“원래 남미나 아시아 등 비영어권 국가로 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마흔이 훨씬 넘은 나이에 스페인어 등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 하는 건아무래도 부담스런 일이죠. ‘다들 미국이나 영국으로 가고 싶어하는 마당에 파견국가라도 바꿔보자’ 싶어 호주를 택했죠.”
호주에 가서도 그는 따로 수업과정coursework을 밟지 않았다. ‘국민들이 낸 귀중한 세금으로 지내는 만큼 어떻게 하면 호주의 선진 교육과정과 제도를 벤치마킹해 우리 교육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현지 학교를 뛰어다니며 교사들과 대화를 나눴다. 특히 산업 중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호주의 기술전문대학TEFA 제도는 그의 주된 연구대상이었다. 한국과는 자동차가 다니는 방향과 계절이 정반대인 호주에서 지내면서 터득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사고는 그 과정에서 얻은 덤이었다.
1997년, 귀국을 앞두고 자녀들의 거취를 결정해야 했다. 중학교 1학년 아들과 초등학교 5학년 딸은 현지 학교생활과 영어에 완벽하게 적응을 마치고 한창 열심히 공부할 시기였다. 아이들을 계속 호주에서 공부시키면 영어도 배우고 교육환경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그가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귀국을 선택했다.
“공부란 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제 철학이었지요. 공무원이 아니었다면 아이들을 호주에 남게 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교육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으로 내 자식에게만 외국에서 공부하는 특혜를 주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죠.”
공부란 결국 학습자 스스로가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는 그의 교육철학과, 편한 길에 앞서 바른 길을 가야한다는 공직철학이 엿보이는대목이다. 현재 아들과 딸은 권 교장의 기대대로 성장해 각각 대기업직원과 고교 영어교사로 사회를 위해 제몫을 다하고 있다.
교장선생님은 <개콘> 보는 법도 남다르다
지난 해 환갑을 맞이한 권진수 교장, 학생들과 나이 차가 무려 마흔이 넘는다. 우스갯소리로 ‘두 살만 차이가 나도 세대차 때문에 말이안 통한다’고 하는 요즘, 그가 택한 대중과의 소통방식은 페이스북과 트위터다. 온라인상에서 그를 알아본 학생들이 심심찮게 친구 신청을 해 오는가하면, 트위터는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팔로워가 4500명 가까이 된다. 학생들을 이해하려는 그만의 시도가 또 하나 있다.
이른바 ‘개콘’으로 통하는 <개그콘서트>시청이다.
“왜 <개그콘서트>의 ‘멘붕스쿨’을 보면 나영이란 캐릭터가 나와요. 나이가 7살이지만, 어른들도 모르는 전문용어와 수치를 줄줄 꿰는 등 얼마나 아는 게 많아요?
하지만 그건 모래알처럼 반짝이지만 뭉쳐지지 않는 죽은 지식, 무의미하게 나열된 지식에 지나지 않죠. 지금 우리 교육이 그래요. 얼마 전 국제교육성취도평가협회IEA에서 발표한 수학·과학 학업성취도 TIMMS에서 우리나라는 실력에서는 최상위권이었지만, 흥미도는 바닥권이었어요.”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이를 재료로 깊이 사고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 그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한 조언이었다.
기자가 권진수 교장을 만난 것은 무려 네 차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한 시간만 7시간이 넘는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기자의 귀에 못이 박혀버린 단어 하나가 있다. '인성교육’이 그것이다. 교육자이자 공직자로 살아온 그를 논하라면 ‘정’ 한 글자로 충분할 성 싶다. 인성중심의 따뜻한 교육을 앞세우는 정情, 편한 길과 타협 않고 바른 길을 추구해온 정正, 그리고 작은 일에도 세심함을 잃지 않는 정精이 그것이다. [월간투머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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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축하합니다....역시 훌륭한 교직관 아래서 학교가 발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