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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용강초등학교에 부임하던 날
서기 2000년 8월 28일. 드디어 그토록 소망스러웠던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발령이 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지금 세계는 새로운 천년을 시작하면서 급속한 정보화, 세계화의 추세에 따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변화함과 동시에 지식기반 사회가 도래하고 있는 중차대한 시기이었다.
지식기반 사회는 사람이 중심이 되고 교육이 중심이 되며 평생학습이 보편화되어 지식과 창의력이 가치창출의 원천이 되고 국가 경쟁력의 원동력이 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나라의 기본을 바로새우고 우리사회가 하루빨리 선진사회로의 진입을 위해서는 내가 맡고 있는 초등학교 교육이 하루빨리 지식기반 사회로 진입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 할 수 있도록 올바른 리더쉽을 발휘해야 할 텐데…… 라는 무거운 책임 의식을 갖고 교장직무를 성실히 수행하리라 굳게 다짐하면서 그때를 보냈던 것으로 기억된다.
드디어 2000년 9월 1일 서울용강초등학교 교장으로써의 첫날이 밝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난 후 서울시 교육청으로 발령장을 받으러 가야했다.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 서울시교육청 10층 회의실로 들어서니 나보다 먼저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는 나와함께 교장으로 승진 발령이 난 사람들이 상당수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유인종 서울특별시 교육감님이 도착하셨고 곧이어 임명장 수여식이 시작되었다.
“교육계의 꽃이요 뭇 사람의 존경의 대상인 교장 선생님의로 승진 발령되심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여러 교장 선생님들께서는 부단한 노력과 하시려고 하는 진취적인 땀의 결실이 오늘의 교장선생님을 있게 하셨으리라 생각 할 때 선생님께서 교장선생님으로 승진 발령되심을 더없이 마음 든든하게 생각합니다.
21세기 새로운 사회는 인간을 존중하고 공동체 의식을 지닌 민주시민, 세계시민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의 학교교육은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지식위주의 주입식교육에 치중하여 올바른 가치관과 건전한 도덕성을 갖춘 인간을 육성하는 데에 실패하였다는 비판을 받아 왔습니다. 따라서 우리 교육청에서는 미래의 주인공인 우리의 학생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와 자주적이고 진취적인 민주시민의식, 세계시민의식을 함양 할 수 있도록 체험 중심의 인성교육을 충실히 교육하는 교장선생님이 되어 주실 것을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라는 내용의 축사의 말씀을 끝으로 대통령이 주신 임명장과 서울특별시 교육감이 주신 발령통지서를 수여받고 임지인 서울용강초등학교로 첫 출근을 하였다.
얼마 후 나를 태운 승용차는 마포구 아현동을 지나 공덕동 로타리를 경유하여 신촌쪽으로 방향을 바꾸더니 동도중.고등학교 앞을 지나 대흥동 로타리를 바라보고 우측 골목길로 우회전을 하였는데 곧바로 서울용강초등학교 교문을 들어서고 있음을 직감 할 수 있었다.
아! 이곳이 내가 근무 할 서울용강초등학교이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얼른 차에서 내렸다. 어쩐지 따뜻하면서도 포근한 감정을 맛보면서……
천천히 운동장을 지나 중앙현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걸어가고 있었는데 교감 선생님을 비릇하여 전 교직원이 모두 나와서 박수로서 나의 부임을 환영해 주었다.
그리고 교장실로 안내되어 부장 선생님들과의 면담을 갖고 곧이어 교무실로 가서 전 교직원들에게 부임인사를 드렸다.
「존경하는 교감 선생님! 그리고 우리 서울용강초등학교에서 교육의 꿈을 실현하고 계신 선생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우리 서울용강초등학교는 학교의 규모면에서 크지도 작지도 않는 아주 아담한 학교로서 마포 지구에서는 가장 내실 있는 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훌륭한 학교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렇게 훌륭한 전통을 만들어가고 있는 선생님들과 함께 근무하게 되었음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학교는 지식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바른 인간을 기르기 위해 인성교육에 큰 비중을 두고 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학교에서는 학과공부 이외에 바른예절, 질서있는 행동, 청결하고 정리정돈 하는 습관, 웃어른을 잘 섬기는 마음, 자기의 몫을 스스로 다 하는 자세 등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사는데 기본이 되는 행동 습관이며 태도를 기르는데 우리의 교육력을 총 결집시켜 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불교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정말 큰 인연을 맺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 속에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하루 생활의 대부분을 우리 서울용강초등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함께 보내고 있으니 얼마나 큰 인연으로 만났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똑같은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이지만 사람에게는 만남의 인연만 있는 것이 아니고 헤어짐의 인연, 별리(別離)의 인연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지나간 과거를 생각해보면 똑같이 함께 살았던 동료들 가운데도 어떤 사람은 부지런하고 진실하고 배울 점이 많은 훌륭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기억하기도 싫은, 좋지 않은 사람으로 기억되기도 하는데 그것은 그 사람 개개인이 어떤 생활 태도로 삶을 살았는가에 달려있다고 생각됩니다.
존경하는 우리 서울용강초등학교 선생님 여러분!
우리는 용강초등학교라는 하나의 울타리 안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공동 운명체입니다. 늘 활력이 넘치고 늘 보람된 일을 스스로 찾아서 행하시고, 성취감을 맛보시며 근무하는 선생님이 되시어, 먼 훗날 선생님의 이름이 좋은 추억으로 기억되는 훌륭한 인연이 되도록 노력해 주실 것을 부탁드리면서 인사말을 가름합니다. 감사합니다.」
교무실에서 교직원들을 대상으로 부임인사를 끝마치고 교감선생님과 함께 교장실로 돌아왔는데 교감선생님께서 학교운영에 대한 그동안의 경과 이야기를 말씀해 주셨다.
주로 교무, 학사, 지역사회에 관한 내용들이었는데 마포지역 다른 학교에 비해서는 우리학교의 학구가 조금은 살림형편이 어려운 형편이라는 것, 그렇지만 어린이들이 순박하고 학부모님들의 교육열은 어느 학교에 못지않으며 특히 우리학교에서 근무하고 계신 선생님들은 거의 모두 훌륭한 교사의 자질을 가진 선생님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내용들을 말씀해 주셨다.
“교감선생님!”
“자세한 안내말씀에 감사드립니다. 저희 학교가 시설적인 면에서는 다소 부족한 점이 많은 것 같지만 다행스럽게 어린이들이 순박하고 지역사회 학부모님들이 학교교육에 관심이 많으시고 또한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훌륭한 선생님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니 정말 다행입니다. 앞으로 학교경영을 하는데 교감선생님과 손잡고 우리학교 모든 선생님들과 일심동체가 되어 서울용강초등학교가 모든 면에서 교육의 본(本)을 보여주도록 노력합시다.”
라고 교감선생님께 말씀드리면서 주어진 여건을 최대한 활용하고 또한 개선해 가면서 서울에서 가장 알찬학교, 오순도순 공부 열심히 하는 학교를 만드는데 심혈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면서 그 날을 보냈던 것 같다.
2000년 9월
서울용강초등학교 소정영
학교경영 어떻게 할 까?
2000년 9월 1일 그 날은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게 지나갔다. 그리고 다음날은 토요일 이었는데 학교의 이모저모를 되돌아보면서 앞으로 학교를 어떻게 경영해야 할 까? 를 점검해 보았다.
한마디로 할 일이 너무나 많은 것 같았다. 교장은 학교의 모든 면을 모두 챙기면서 어느 한곳이라도 부족함이 없도록 행.재정적으로 뒷받침을 해야 할 텐데 교학(敎學)면에서는 그런대로 차분한 학습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는 것 같았지만 시설적(施設的)인 면에서는 학교의 역사가 오래되어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그러나 너무나 낡고 오랫동안 손을 보지 못한 상태여서 무엇부터 먼저 손을 보아야 할지를 모를 정도로 할 일이 태산(泰山)같았다.
우선 학교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중앙 현관에서부터 시작하여 선생님들이 사용하는 교무실, 학교의 핵심 시설인 방송실, 도서실을 하루빨리 현대적 감각에 맞게 손을 보아야 할 것 같았고 어린이들의 학습 환경의 장(場)인 교실과 복도도 너무나 도색(塗色)년도가 오래되어 어둡고 음침해서 하루빨리 깨끗하게 도색(塗色)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시급한 과제인 것으로 판단되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행정실장에게 우리 학교의 재정형편이 어떠한지 물어보았다.
“행정실장님! 학교가 시설적인 면에서 손을 보아야 할 곳이 너무나 많은데 현재 우리 학교 재정형편은 어떻습니까?”
“2학기 동안에 학교의 공공요금을 집행 할 수 있을 정도밖에 여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좋겠습니까? 할 일은 많은데 학교의 재정 형편은 어렵고……”
이처럼 대체적인 학교의 윤곽을 파악하다 보니 어느새 토요일의 일과는 나도 모르게 끝이 나고 있었고 시계 바늘은 오후 1시를 훌쩍 넘기면서 학교 안(內)은 너무나 조용한 텅 빈 교실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2000년 9월
서울용강초등학교 소정영
운동장 가장자리에 있는
아카시아 나무들!
2000년 9월 4일, 그 날은 월요일이었다. 아침 8시경에 교문을 들어서니 운동장 좌측 스텐드 쪽에 있는 커다란 아카시아 나무 한 그루와 푸라다나스 한 그루가 토요일 저녁부터 불기 시작한 태풍을 못 이겨 운동장으로 넘어져있었는데 아카시아 나무 끝자락은 운동장 가운데에 있는 구령대 앞에까지 걸쳐져 있었다.
“어머나! 이일을 어떻게 해……”
교장실로 돌아와 먼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마음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만약 아카시아 나무가 운동장 쪽으로 넘어지지 않고 학교 담장 밖으로 넘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정말로 그렇게 되었다면 큰일이 났을 텐데 너무나 다행스런 일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그렇게 되었다면 운동장 담장밖에 있는 주택가에 넘어졌을 것이고!
생각만 해도 끔찍스러운 일이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희 서울용강초등학교가 아무런 사고없이 아동교육에 전념 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시길 두 손 모아 비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운동장 서편 스탠드 위에 있는 아카시아 나무들은 일제말기(日帝末期)에 심어진, 그러니까 나무의 연륜(年輪)이 약 60여년이나 된 나무들이라고 하는데 그 동안에 전정(剪定)을 해준 흔적이 별로 보이지를 않는 약 20m정도의 아주 큰 나무들이었다. 또한 운동장 가장자리에 있는 푸라다나스 나무들도 언제 전정(剪定)을 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나무 가지들이 학교의 담장을 넘어 주택가의 지붕 위에까지 걸쳐져 있어서 하루빨리 이것들을 전정(剪定)을 해야 될 것 같았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는 무사히 지나갔지만 언제 또 다른 위험이 찾아올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행정 실장에게 그동안의 경과 이야기를 물어 보았다.
“행정실장님, 전임 교장선생님께서는 아카시아 2그루를 자르면서 학교 예산으로 나무를 잘랐다고 하시던데 그렇다면 전정을 해야겠다는 필요성을 충분히 알고 계셨다고 생각되는데 전정 작업을 위해서 어떤 조치들을 취해 보셨습니까?”
“교육청에 전정 작업 예산 요청을 했는데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마포구청에도 알아보았습니까?”
“마포구청에도 공문을 발송했었는데 안 된다는 회신을 받았습니다.”
교육청에서도, 마포구청에서도 운동장 가장자리에 있는 나무들의 전정 작업에 필요한 예산은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교육청에서는 어려울 것 같았고, 노승환 마포구청장을 직접 찾아가서 부탁을 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마포구청장 비서실에 전화를 걸어 구청장님 면담 요청을 했더니 며칠 뒤에 비서실에서 전화가 왔다. 구청장님 면담시간을 알려주는 전화였었고 지정된 날짜에 마포구청장님과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구청장님! 안녕하십니까? 서울용강초등학교 교장 소정영입니다."
“반갑습니다. 아동 교육에 노고가 많습니다.”(노승환 구청장)
“구청장님! 구청장님과 이렇게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하기는 오늘이 처음이지만 저는 아주 옛날부터 구청장님을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했던 사람입니다.”(교장)
“용강초등학교는 내가 국회의원 출마를 했을 때마다 정견발표를 했던 곳인데 도와드려야지요.”(노승환 구청장)
“구청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은 부탁 좀 드리려고 왔습니다.”(교장)
“우리가 도울 일이 무엇인지 말씀해보세요.” (노승환 구청장)
“우리학교 운동장 가장자리에 아카시아 나무와 푸라다나스 나무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지금까지 전정을 못해서 지난번 태풍에 나무들이 넘어 졌습니다. 다행히 운동장 쪽으로 넘어졌으니까 그때는 괜찮았지만 큰일 날 뻔했습니다.”(교장)
“학교 운동장에 있는 나무를 전정(剪定)을 해 드리면 되는거군요. 도와드려야죠” (노승환 구청장)
이렇게 해서 마포구청장님의 도움을 받아 정말 해결하기 힘들었던 운동장 가장자리에 있는 아카시아 나무와 푸라다나스 나무의 전정 작업을 끝마칠 수 있었고 앞뜰 화단에 있는 옥향 나무들도 그때 함께 전정을 하여 학교의 큰 숙원사업 중의 하나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고 했던가? 아무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고심하고 또 고심을 했었는데!
하느님!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더욱 용강의 어린이들을 위해서 저의 모든 역량(力量)을 다하겠습니다.
2000년 11월
서울용강초등학교 소정영
빗물이 새고 있어요.
2000년 9월 2일(일요일)부터 서울.경기 지방에 큰 피해를 입히고 지나갔던 태풍 ‘루사’로 인하여 아카시아 나무들이 넘어지고 교내의 이곳저곳이 풍수해를 입었는데 또 다른 곳은 괜찮은지 걱정스러워 졌다. 정신이 번쩍 들어 또 다른 사고는 없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교내를 한바퀴 돌아보았더니 후관 3층 화장실 천정에서 빗물이 새어 화장실 양쪽 3학년 4반 교실과 4학년 1반 교실 천정까지 빗물로 훔뻑 젖어있지 않는가!
옥상 스라브에서 빗물이 스며들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언제부터 이렇게 빗물이 천장에서 새고 있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3학년 4반 담임 선생님과 4학년 1반 담임 선생님을 한자리에 모시고 물어 보았다.
“선생님 교실 천장에서 빗물이 새고 있는데 언제부터 지금처럼 빗물이 새고 있었습니까?”
“상당히 오래된 것 같아요.”
“3월에 새로 3학년 4반을 맡아서 교실 천장을 보니까 빗물자국이 얼룩져 있었습니다. 그런 것으로 보아 진즉부터 비가 새고 있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상당히 오래되었다는 말이네요”
도대체 옥상 스라브가 어떻게 되었길래 이처럼 빗물이 새고 있다는 말인가?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 옥상 스라브 위로 올라가 보았지만 비가 오고 있어서 인지 어디서 어떻게 새고 있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며칠이 지난 뒤에 교감 선생님과 함께 후관 옥상 스라브 위를 다시 올라가 보았다. 도대체 빗물이 어디서 어떤 경로로 새고 있는가를 알아야 할 텐데…… 하면서 빗물이 새고 있었던 후관 화장실 위쪽 물탱크 밑 부분을 바라보았더니 빗물이 고여 있다가 증발 되여 없어진 흔적이 뚜렷하게 나타나 보이지 않는가!
“어마나! 어쩌면 이렇게! 빗물이 물탱크 쪽으로 고여 있었던 흔적이 뚜렷이 보이내요.” 라고 교감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물탱크 밑 부분이 함몰되었네요.” 라고 교감선생님께서 대답하셨다.
“옥상 스라브가 물탱크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이렇게 함몰 되었군요.”(교장)
“이대로 그냥 두면 않되겠는데요.”(교감)
“교육청 시설과에 즉시 연락해야 되겠습니다.”(교장)
교장실로 돌아온 즉시 교육청에 전화를 걸었다.
용강초등학교 후관 화장실 옥상에 있는 물탱크 밑 부분이 함몰되어 있어 굉장히 위험하다는 내용을 알리면서 빠른 시일 내에 학교를 한번 방문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렇게 해서 후관 화장실을 그대로 그냥 두면 않되겠다는 사실을 교육청에 강하게 전달 할 수 있었고 안전진단이 끝나지 않아서 후관 화장실은 도저히 새로 예산투입을 할 수 없다는 교육청의 종래의 주장을 뒤엎고 다음해 여름방학 때에 화장실공사를 새롭게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역시 무슨 일이든 할려고 노력을 하면 ‘길’이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면서 우리 어린이들이 보다 좋은 환경에서 공부 할 수 있도록 내 작은 힘이나마 더욱 열심히 진력 할 것을 다짐해 본다.
2000년 10월
서울용강초등학교 소정영
종합학예발표회 및
특별활동 공개발표회를 마치고!
나는 지금 내가 근무하고 있는 서울용강초등학교에 부임하여 근무하게 된 것을 늘 자랑스럽고 가슴 뿌듯한 즐거움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것은 우리 서울용강초등학교가 결코 다른 학교들보다 선진(先進)되어 있고 자랑할 만한 것들이 있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객관적(客觀的)으로 드러난 우리 서울용강초등학교의 교육적인 환경여건(環境與件)은 주변(周邊)에 있는 다른 학교들보다 훨씬 뒤떨어져 있는 것이 또한 사실이다.
주변에 있는 여느 학교들 보다 학교의 역사(歷史)가 오래되다보니 학교 건물은 몹시 낡아 있었고, 그동안 학교 관리(管理)가 제대로 되지 못해 부임하자마자 학교의 모든 시설물들을 대폭 바꾸거나 수선(修繕)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선생님들이 매일같이 사용하는 교무실 집기(什器)들이 너무 낡아 교사용 책.걸상과 서류상들을 새것으로 바꾸어야 했고, 방송시설은 정상적인 학교방송을 송출(送出)하기에 어려움이 컸다. 또한 어린이들의 학습 의욕을 고취(鼓吹)하는데 필수 불가결한 어린이 도서실은 말만 도서실이라고 이름 붙여져 있을 뿐 정말 너무나 형편없는 상태로 버려져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이곳에서 우리 용강의 아이들을 바른길로 인도(引導)하는 목자(牧者)의 사명을 대통령으로부터 수임(受任)받아 우리 어린이들을 훌륭한 나라의 동량(棟梁)으로 키울 것을 굳게 다짐하면서 생활하다보니 낙후(落後)된 시설(施設)과 열약(劣弱)한 환경들을 하나씩 둘씩 개선(改善)해가면서 하루하루를 보람과 기대와 소망(所望)으로 가득하게 채워 갈 수 있는 기틀을 닦아 가는 재미 또한 내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함이 되었다.
개교 제 86주년 기념 운동회 및 종합 학예 발표회를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학부모님들과 지역 주민들을 모시고 개최하기로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했을 때는 작년 12월에 마련한 2002학년도 교육과정운영계획서를 확정했을 때의 일이었다. 4월부터 학예회 및 운동회 준비를 시작하여 2002년 10월 16일에 오전에는 마당놀이 겸 운동회를 학교 운동장에서 개최하였고 저녁에는 마포문화체육회관을 임대하여 학예발표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였으니 그 동안에 우리 선생님들의 노고(勞苦)가 정말 많았음을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다.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내가 우리학교에 부임(赴任)해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아침 출근 시각이었다. 7시 50분경에 학교에 도착했는데 행정실 문 앞에 많은 학부모님들이 차례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다니!”
“특기.적성교육 신청서를 접수하려고 그렇죠”
“그렇습니까! 아침 일찍부터 정말 고생이 많습니다.”
특기.적성교육 신청서를 가지고 행정실에 수납을 하려고 대기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이라는 세월이!
어찌됐던 그와 같은 연유로 해서 우리학교는 주위의 다른 학교들 보다 방과 후 특별활동 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유인종 서울특별시교육감님의 특기.적성교육 활성화방안과 맞아 떨어져 마침내 ‘방과후특별활동선도학교'로 지정되었다.
방과후특별활동선도학교! 그 이름만으로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는데 막상 선도학교로서의 역할(役割)을 원만히 수행하기란 정말 많은 어려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우선 특기.적성 교육을 받지 않는 어린이들을 상대로 동아리 활동을 해야 했고 전교직원이 일심동체가 되어 선도학교로서의 본을 보여주어야 했었는데……
과연 기대만큼 잘 할 수 있을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시작한 우리학교 방과 후 특별활동 선도학교로서의 임무는 나의 그와 같은 기우를 한낱 기우로 돌려버릴 수 있도록 우리학교 선생님들은 정말 훌륭히 방과 후 특별활동 선도학교로서의 역할을 훌륭하게 완수하고 있음을 보면서 종합학예발표회를 성공적으로 끝마치고 선도학교 운영 공개 발표회도 훌륭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으니 우리 용강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계신 모든 선생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2002년 10월
서울용강초등학교 소정영
졸업 그리고 졸업식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 합니다……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
2003년 2월 13일!
오늘은 우리 서울용강초등학교 제 86회 졸업식이 있는 날이었다. 며칠 전부터 졸업식 준비에 여념(餘念)이 없었는데 막상 졸업식 날을 맞이해서는 오히려 차분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졸업식(卒業式)에 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졸업! 그리고 졸업식!
지금부터 50여년 전!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했던 때는 1955년 2월의 어느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당시 교장선생님께서는 우리들 졸업생들에게 노랗게 핀 개나리꽃을 한 아름 안겨 주시면서 축하해 주었던 기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아름다운 옛 추억이 되어 내 머릿속에 남아 있음을 발견하곤 한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 합니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여 우리는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 ”
라는 가사와 함께 5학년 동생들이 노랗게 핀 개나리꽃을 우리들 졸업생들에게 선사해 주었는데 우리들 졸업생들은 그때부터 엄숙한 졸업식장이 석별(惜別)의 아쉬움을 달래는 별리(別離)의 장(場)으로 바뀌면서 졸업식노래 1절부터 3절까지를 부르는 동안 졸업식장은 온통 눈물바다로 변해 버렸던 아련한 옛 추억이 지금까지도 너무나 생생하게 되살아나는데, 오늘 우리 서울용강초등학교 졸업식에선 누구 한사람도 아쉽고 서운한 기색을 찾을 수가 없었으니 정말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고나 해야 할까! 세월의 무상함을 다시 한번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성(理性)의 시대에서 감성(感性)의 시대로”
요즘의 세태(世態)를 상징(象徵)한다는 이 말이 과연 맞는 말일까? 오늘 우리학교의 졸업식을 지켜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성(理性)이라고 하면
‘정감이 덜하고 메마른’ 또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실리를 추구하는’
이라는 개념(槪念)이 떠오른다.
반면 감성(感性)은
‘현실적인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따스함을 택하는, 혹은
‘남과 단절되지 않고 쉽게 공감하는’
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따라서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게는
‘감성시대에서 이성의 시대로’
라고 해야 맞을 것 같은데 왜 모두들 거꾸로 말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오늘의 졸업식장에서 나는 가슴 뭉클한 감성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대부분 30대 후반인 어머니들의 차림새에선 ‘미스’들을 능가하는 현대감각이 물씬 풍겨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이런 멋진 엄마들은 자기 아이들에게 어떤 감성을 대물림 해 줄 것인가?”
졸업식이야말로 아이들에게 감성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좋은 기회라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더 잘살지는 못했다하더라도, 경제적으론 비록 가난하고 어려웠다하더라도 그 시절의 졸업식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추운 날씨에 언 발을 두 손으로 문지르며 우리들은 강당에 모였었다. 후배들과 부모님들이 강당을 빼곡히 채우면 교무주임 선생님이 마이크를 잡고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손수건을 가슴에다 단 코 흘리게 들이 이렇게 커서 이제 교문을 나서려 합니다. 지난 6년간 함께한 시간들을 우리 선생님들은 잊지 못할 거예요.”
졸업식장은 점점 더 숙연(肅然)해 지면서 졸업식 가(歌)를 부를 때부터 울음바다로 변한 졸업식장의 절정(絶頂)은 역시 졸업생들의 답사(答辭)에서 연출(演出)되었다. 졸업생대표가 나와서 글을 낭독하지만 졸업생 한 명, 또 한 명의 감정이 그대로 배어나는 것이었다. 이때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주르륵 눈물이 흐르고 모두 진한 감성에 젖어들었다. 은사님에 대한 고마움, 후배들은 평생 내가 돌보아야 할 동생이라는 사실, 나를 키워준 부모님의 노고를 떠올리며 그러한 감정들이 그대로 내 가슴에 새겨지는 순간들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그 졸업식장에서 내 마음속에 들어온 감성들이 이제껏 나를 따뜻한 인간으로 지켜주는데 큰 밑거름이 되어준 것이 틀림없다.
스승의 날이 돌아오면
“졸업식 날을 그토록 감회에 젖게 만들어 주신 고마우신 선생님들이신데……”
하는 생각이 들게 했고, 초등학교 후배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반가운 마음이 앞서는 뜨거운 감성을 싹트게 해준 그때의 그 졸업식이 너무나 아쉽고 그리워진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치른 졸업식은 송사와 답사 등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진행되었는데 어디에서도 가슴 뭉클한 장면을 찾아볼 수가 없었으며 떠들썩하게 가족사진을 찍은 것으로 모두 끝나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서둘러 학교를 떠나 외식(外食)하러 가는 발걸음으로 교문을 채웠고 어디에서도 선후배, 스승과 제자가 손에 손을 맞잡고 이별(離別)을 아쉬워하는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옛날의 그 졸업식이 더더욱 아쉽고 그리워진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면
우리나라 짊어지고 나갈 우리들
냇물이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
우리들도 이다음에 다시 만나세
2003년 2월
서울용강초등학교 소정영
우리학교의 특기.적성교육
우리학교는 서울특별시교육청 지정 특별활동 선도학교로 지정되어 작년부터 선도학교로서의 소임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고 금년으로 2년째 특기.적성 선도학교로서의 소임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옛 사고방식은, 우리의 과거의 생활습성은, 특기(特技)나 적성(適性) 같은 낱말은 한낱 여유 있는 상류계층의 전유물(專有物)처럼 생각되었거나 우리와 같은 보통사람들에게는 먼 거리에 있는 사치(奢侈)스런 말처럼 느껴지곤 했던 것이 또한 사실이다.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적성이 밥 먹여 주나?”는 말이 스스럼없이 통용되는 시대에 살아왔다. 우리시대에 살았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난에 한이 맺혔기에 직업선택의 기준은 항상 취업(就業)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시되었고 밥그릇이 얼마나 크며 얼마나 오래 갈지를 따져 보기에 바빠 적성 따위는 미쳐 생각해 보지도 못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적성과는 상관이 없는, 심지어 적성에 배치(排置)되는 직업을 갖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서 살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적성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직업을 갖고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선 당사자만 괴로운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사는 많은 다른 사람들까지 괴로움을 겪는다.
실제로 정치인 적성이 아닌데 순전히 이권(利權)이나 명예만을 쫒아 정치인이 되었을 경우 정치인이 된 그 사람도 정치인으로서 크게 성공하지 못할뿐더러 그 정치인을 뽑아준 지역구 주민들에게 그 피해는 돌아가며, 교사가 적성이 아닌데 오로지 안정성(安定性)만을 쫒아 교사가 되었다면 그 또한 교사로서의 긍지(矜持)와 자긍심(自矜心)을 갖고 근무하지 못하는 열등(劣等)한 교사밖에 될 수 없을 것이고, 또한 그가 가르치는 수많은 학생들이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이처럼 자기가 하고 싶고 자기의 소질과 적성에 맞는 직업을 가졌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삶의 질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적성에 맞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본인도 행복하겠지만 주위사람 모두를 행복하게 만든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환해지면서 그토록 암울하게만 보였던 세상이 한순간 살 만한 곳으로 바뀌기도 하는데 우리학교에서 근무하시다가 명예퇴임을 하셨던 김영희 선생님과 내가 은평초등학교에서 근무했을 때 함께 근무했던 유만기 선생님, 함덕련 선생님의 경우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김영희 선생님은 1997학년도부터 1998학년도까지 2년간 우리학교에 재직하시다가 명예퇴임을 하신 여자선생님이시다. 선생님께서는 한국무용에 남다른 재능과 열의를 갖고 계셨으며 선생님이 지도하신 우리학교 한국무용은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 주관하는 동아리발표대회에서 늘 최우수 학교로 선정되도록 지도하신 훌륭한 선생님이셨다.
그리고 유만기 선생님과 함덕련 선생님께서도 1998학년도에 은평초등학교에서 명예퇴임을 하셨던 선생님들이신데 선생님들께서는 아침부터 시작하여 아동들을 하교시킬 때까지 언제나 사제동행(師弟同行)하시면서 오순도순 학급을 운영하곤 하였는데 이를 지켜보았던 동료교사는 물론이고 그분들이 담임을 맡았던 학생들과 학부모님들께서도 모두들 존경과 흠모의 념(念)을 갖도록 하셨던 훌륭한 선생님들 이셨다. 이처럼 우리 곁에 오래오래 더 계셔야 할 선생님들께서는 1998학년도에 전 교육계에 불어 닥친 명예퇴직 태풍(颱風)을 이겨내지 못하시고 학교를 떠나시게 되었다. 너무나 아깝고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되도록 많은 어린이들이 선생님과 같은 훌륭하신 스승의 품에 오래 안길 수 있도록 했어야 좋았을 텐데!… "
라고 생각하면서 그 후 가끔씩 시간강사나 기간제 교사 자리가 있을 때는 어김없이 그분 선생님들께 연락하여 모셔오곤 하였는데 그 선생님들이 들어가는 학년이나 학급의 교실 분위기는 몰라보게 공부하는 학습 분위기로 조성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주시곤 하였다. 선생님들이야말로 아동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길이 소질과 적성에 맞는 천직(天職)이였으리라고 감히 말 할 수 있으리라!
선생님들 정말 훌륭하십니다!
선생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학교는 2002학년도에 특기.적성교육 선도학교로 서울특별시교육청의 지정을 받아 시범학교로써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데 우리 서울용강초등학교가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 방과 후 특별활동 선도학교로 지정 받게 된 까닭은 다른 학교에 비하여 월등히 많은 어린이들이 방과 후 특기.적성 교육에 수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교생의 70%이상이 37개 반에서 자기가 희망하는 과목을 찾아가서 공부하고 있으니 특기.적성 교육이 이처럼 잘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정말 매우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우리 학교가 이처럼 방과 후 특별활동이 활성화되기까지는 우리학교에서 근무하고 계시는 많은 선생님들과 학부모님들, 그리고 방과 후 특별활동을 성심껏 지도하고 계시는 강사 선생님들의 열성을 다한 노고의 힘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처음에 시작했을 때는 컴퓨터반, 영어반, 미술반등 몇 개의 반에서만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특별활동 선도학교로 지정되는 과정에서 특기신장 교육에 대하여 학교에서도 많은 관심과 장려를 한 결과 현재는 이렇게 많은 어린이들이 자기의 수업이 끝나는 방과 후 시간을 이용하여 자기가 공부하고 싶은 반을 찾아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모습에 그저 고맙고 믿음직한 마음으로 이들 어린이들이 더 열심히 공부하도록 돕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오늘과 같은 수요일 오후 시간에는 대부분의 다른 학교 어린이들은 무심코 운동장에서 놀고 있거나 학원으로 몰려가서 자기의 특기나 적성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교과과목을 공부하는데 시간을 보내고 있거나 하고 있는데, 우리 용강의 어린이들은 미술반에서 열심히 스케치활동을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리기 공부를 하고 있는 미술반 어린이들도 있고, 올해부터 새로 시작된 중국어 반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중국어반 어린이들도 있으며, 영어회화반 컴퓨터반 하모니카반 종이접기반 등 각기 자기가 하고 싶은 특기.적성 반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모습에 우리 어린이들의 밝은 장래가 엿보이는 것 같아 정말 마음 든든함을 느낀다.
그리고 우리학교 어린이들 모두가 자기의 취미와 적성을 개발해서 미래의 보람 있는 삶이 가능해지도록 하는데 꼭 필요한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2003년 4월
서울용강초등학교 소정영
기본생활이 바로 된
용강 어린이!
‘세살 버릇 여든 간다’
라는 우리의 옛 속담처럼 어릴 때의 생활습관은 한 사람의 일생을 두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으로 자리 매김 할까? 를 결정하는 일생을 통해서 가장 중요한 교육적 시기이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근무하고 있는 부서인 초등학교 교원은 바로 우리들 일생을 통해서 가장 중요한 ‘세살버릇’ 에 해당되는, 그러니까 교육적인 용어를 빌리자면 ‘가소성(可塑性)’이 가장 높은 시기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는 긍지와 아울러, 또한 무거운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송구스런 마음으로 우리 어린이들과 생활하고 있다.
어떻게 했으면 우리 용강의 어린이들을 지덕체기(智德體技)를 겸비한 어린이로 기를 수 있을까?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쉬운 것도 아니고 또한 교장인 나 한사람만의 힘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 서울용강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모든 선생님들과 함께 일심동체(一心同體)가 되어야 그 가능성이 엿보이는 어렵고도 또 어려운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허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 서울용강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계신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교장인 나보다도 오히려 더 열심히 교장의 심중(心中)을 이해하고 함께 노력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소중한 자산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내가 용강에 부임(赴任)함과 동시에 우리 서울용강초등학교의 교육목표인
‘21세기를 이끌어 갈 지덕체기(智德體技)를 겸비한 민주시민을 기른다’
에서 ‘덕(德)과 기(技)’에 중점을 둔 기본생활이 바로 된 용강의 어린이가 되도록
“서울 어린이 이것만은 꼭 지킵시다(․실내에서 조용히 하기 ․줄서서 차례 지키기 ․공손히 인사하기)” 를 강력히 실천하고 있지만 우리 어린이들의 자율적인 생활로 정착되기까지는 아직도 멀고도 먼 길이라 여겨지고 있으니 이일을 어이할꼬……
1960년대 우리나라가 베트남전쟁에 참전하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나는 그때 베트남에 파병되어 맹호부대 용사로서 맹호사단 제1연대 재구대대(강재구 소령의 이름을 부대명칭으로 사용했음)의 위생병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때 그곳 베트남에서 우리 한국군과 함께 베트남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수많은 미군(美軍)들과 자연스럽게 접할 기회가 많았었다. 나는 그때 그 미군(美軍)들을 보고 그들이 왜 세계를 주름잡는 강대국이 되었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의 국기사랑 정신과 개개 병사들의 책임의식은 정말 위대하고 또 위대했다. 내가 근무했던 곳은 ‘푸캇’이라는 중부 월남의 성도(城都)인 퀴논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베트남을 남북으로 잇는 1번 국도가 지나는 국도(國道)변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멀리 미군부대(美軍部隊)에서 국기 하강식을 알리는 미국국가(美國國歌)가 들려오고 있을 때였었다. 그때 마침 1번국도(國道)를 달리고 있던 수많은 미군자동차(美軍自動車)들이 모두 달리던 자동차를 멈추고 국가(애국가)가 들려오는 쪽을 향하여 경례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어느 날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전선(戰線)에는 어두움이 짙어지고 있을 무렵 미군 승용차 1대가 우리 부대를 찾아와 숙박을 하고 간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승용차에 타고 있던 미군병사는 2명이었다. 한사람은 ‘다나카’라는 일본계 미군장교였었고 또 한사람은 운전병인 백인병사였었는데 그 백인병사는 우리부대 중대장님과 함께 자고 있는 ‘다나카’라고 하는 일본계 미군장교를 밤을 새워 보초를 서고 있음을 발견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이라는 나라, 과연 세계를 호령하는 강대국이 될 수밖에 없겠구나! 라는 마음이 그때 그 모습을 목격했던 맹호부대 용사들은 모두 동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고도 멀다.
나는 매일 아침 홍제역에서 3호선 전철을 타고 가다가 불광역에서 6호선으로 환승하여 출퇴근을 하고 있는데 출퇴근을 하면서 늘 보여지는 장면들은 문화시민, 문화국민으로써 차마 보기 민망한 장면들을 자주 목격하곤 한다. 내릴 사람이 미쳐 내리기도 전에 탑승하는 승객, 전철역 에스컬레이터에 남녀가 손잡고 양쪽 계단을 막고 서있는 젊은이, 혼잡한 전철역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들, 복잡한 보행로에서 담배연기를 뿜어대는 사람, 깨끗한 거리를 걸어가면서 아무 곳에나 침을 뱉고 있는 상식이 모자란 사람, 길가의 화분에 담뱃불을 끄는 사람, 좁은 도로 한 가운데에 모여 웃어대는 젊은이, 복잡한 계단에서 긴 머리카락을 연신 손질하는 여인, 구두를 질질 끌며 걸어가는 학생, 좁은 도로에서 3~4명씩 떼지어 걷는 젊은이…… 이런 무질서한 모습들을 보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짜증이 난다.
또한 그것들만이 아니다. 깨끗하게 청소된 운동장 이였는데! 얼마 있지 않아서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있는 쓰레기들……
서울의 횡단보도에는 도로바닥에 화살표표시로 가는 길, 오는 길이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그 표시를 따라 걷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가는 길로 오는 사람, 오는 길에 가는 사람이 뒤섞여 걷다보니 걸음이 느려지고 바뀌는 신호등에 통행인은 헐레벌떡 달리면서 길을 건너기 일쑤다. 지하철 계단을 오르고 내릴 때도 좌측통행을 서로가 지키면 통행이 순조로울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와 같은 기본적인 생활습관은 어릴 때부터 습관화 되어야 하는데 우리의 현실은 너무나 멀고도 먼 것 같아 정말 아쉽고 또 아쉽기만 하다.
88올림픽, 2002 월드컵 등 국제행사 때는 범국민적인 교육과 활발한 시민운동 덕분에 거리질서가 비교적 잘 지켜져 외국인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행사가 끝나고 시간이 지나면 예전상태로 되돌아가는 모습이 늘 반복되고 있으니 정말 이 일을 어이 할꼬……
내가 우리 서울용강초등학교에 부임(赴任)한지도 벌써 3년이 가까워지고 있다. 부임했던 바로 그 날부터 늘 실천하지 못하고 아쉽게 생각하고 있었던 아침 등교시 국기에 대한 경례하기 지도를 늦었지만 2003년 4월부터 시작하여 전교생이 모두 열심히 아침시각 학교에 등교하면서 국기에 대한 경례하기를 실천하고 있다.
이렇게 아침 등교시 전교생 모두가 국기에 대한 경례를 앞 다투어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우리도 내가 젊은 시절 베트남에서 보았던 그 미군(美軍)들만이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나라사랑의 첫 번째 표상이라고 할 수 있는 국기에 대한 경례를 실천할 수 있도록 아동지도에 앞장서 주신 우리 선생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우리는 현재 우리 용강의 어린이들이 실천하고 있는 국기에 대한 경례지도를 통해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우리 선생님들이 마음먹고 실천만 해 주신다면 못 이룰 것이 없음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가 아닌가 하고 감히 말씀드린다.
우리가 실천하고 있는 작은 메아리가 이웃으로 또 이웃으로 번지고 메아리 져서 내가 먼저 실천하고, 우리 동네가 앞장서서 우리들이 아직도 습관화되지 못하고 있는 기본생활이 바로 된 용강의 어린이가 하루빨리 정착되고 기본생활이 바로 된 대한민국이 하루빨리 이루어 져서,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이 우리를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볼 수 있는 선진 대한민국이 이루어 졌으면 하고 고대해 본다.
2003. 4. 30
서울용강초등학교 소정영
우리학교의 인성교육
인성교육(人性敎育)!
한마디로 우리나라 교육이 추구(追求)해야 할 목표(目標)이자 이정표(里程標)인 것이 분명한데, 그러나 학교의 교육현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제로는 바른 인성을 갖도록 지도하는 것 보다 우선 남보다 앞서기를 바라는 개인적인 욕망의 충족을 더 중요시하는 우리 학부모들의 정서(情緖)가 내재(內在)되어 있어 정의적이고 바른 습관형성의 기본교육이 소홀하게 취급되면서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정규 교과과정보다 학원교육을 오히려 더 중요시하는 잘못된 교육풍토가 만연되어 있는 것이 오늘의 우리나라 교육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학교에서는 마땅히 전인교육(全人敎育)을 통한 바람직한 생활습관이 몸에 베이도록 지식위주의 교육보다 올바른 생활습관을 습득할 수 있도록 학교생활 전반을 통해서 우리 교사들이 어린이들에게 동일시(同一視)의 대상이 되도록 모범을 보이면서 항상 교사가 앞장서서 시범(示範)을 보이는 교사상(敎師像)을 실천해 주었으면 하고 늘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고는 있지만 실제로 우리 서울용강초등학교의 교육이 교장이 설정한 목표대로 순행(順行)하고 있다고는 단언하기 어려울 것 같아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시책들을 제시하여 꼭 실천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첫째 교사가 먼저 출근하여 어린이 맞이하기 이고, 둘째 모든 활동은 사제동행(師弟同行)으로 실행한다." 이다. 그리고 우리학교의 어린이들 등교시각은 8시 30분부터 8시 40분까지로 약 10분 정도의 시간 내에 등교하도록 지도하고 있다. 그러니까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우리 선생님들의 등교시각은 늦어도 8시 30분까지는 학교에 출근하여 자기 반 교실에서 어린이들을 맞이하도록 한다는 것이 우리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들의 불문율(不文律)이라고나 할까! 그런데도 모든 사람은 사람마다의 개성과 인품이 다르듯이 우리학교의 교사들도 몇 분의 교사들은 동일시(同一視)의 대상으로서의 교사상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면서 이럴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일까를 고심(苦心)하기도 한다.
“정말 이럴 때는 어떻게 해!”……
‘인성(人性)’이라는 말은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나,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인성’은 ‘성격’ 혹은 ‘인격’을 뜻하는 것으로 ‘인성교육’은 올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성격과 종합적인 인격을 길러주기 위한 심성교육(心性敎育)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인성교육은 도덕성 교육, 정의적 교육, 인간교육, 공동체 의식교육, 시민교육까지 포함된 통합적인 교육이라고 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인간성과 태도, 흥미, 가치관을 중시하고 사람다운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서울용강초등학교의 인성교육은 과연 어떻게, 어느 정도 실천되고 있으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는가를 학교경영의 책임을 맡고 있는 학교장으로써 늘 반성해보고 좀더 분발하여 우리 교사들이 어린이들로 하여금 동일시(同一視)의 대상이 되도록 앞장서서 본(本)을 보이면서 가르치는 참다운 선생님이 되어주실 것을 기회 있을 때마다 진심으로 호소하고 있다.
얼마 전 미국 카네기재단의 발표에 의하면 사람이 사회생활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갖추고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에 대한 연구 결과 놀랍게도 75~80%가 인간성이 좋아야 한다는 것이었고 나머지 20~25% 정도가 학식이나 재능이 뛰어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려서부터 바른 인성교육을 통한 올바른 가치관을 확고하게 심어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21세기를 맞이한 학교현장은 지식 정보화 교육의 강조와 입시위주의 학력관등으로 인해 함께 병행되어야 할 인성교육이 뒷전으로 밀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옛 전통이 빛이 바래져 가고 있는 것이 또한 오늘의 현실이다.
인성교육이 성공적으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첫째 제도적 측면에서 전체 교육과정이 인성교육의 목표구현을 위해 통합적으로 조직 운영되어야 하며, 둘째 수련활동이나 봉사활동 등 실천적 학습경험을 통하여 공동체 의식 함양과 협동적 문제 해결력을 높이도록 하고, 셋째 가정과 사회와 학교가 서로 연계하여 복합적이고 체계적인 인성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되고 실천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너무나 멀고 먼 길이 아닐 수 없다.
학생들의 감정이나 의견에 대한 권리가 인정되고 교사의 권위가 존중되는 교실, 사회적 분위기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올바른 인성교육의 실천이 가능하다고 본다.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간의 인간적인 유대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학생들의 인성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달시키고자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먼저 초등교육을 맡고 있는 우리 교사들이 아동들에게 교사로서의 품위(品位)와 모범(模範)을 보이면서 개별아동들의 장점을 발견하고 칭찬해주는 학교분위기를 만들어 내가 맡고 있는 우리 반 어린이들이 선생님을 진정으로 좋아하는 교실분위기를 만들어 학급운영을 하는 학교가 될 때에 비로소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처벌이나 명령, 지시와 강요 등 결과 처리를 위주로 하는 것보다는 대화와 상담, 스스로 참여하는 자원봉사, 다양한 체험활동과 수련활동 등의 기회를 제공해 주고 칭찬과 격려를 아낌없이 해줄 때 어린이들은 건강하고 도덕적인 인격체로 성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우리학교의 전체적인 학교분위기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라고 반문해 본다.
예나 지금이나 초등학교에서의 선생님의 역할은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넓은 무한의 책임을 갖고 있는데도……
그런데도 현실은 너무나 교육의 본질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것 같아 심히 걱정스럽기만 하다.
2003년 8월
서울용강초등학교 소정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