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 후 세계 경제는 대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재고는 쌓이고 더 이상 판로는 없었다. 자본주의 특성으로 인해 수요보다 공급이 많다는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노출되었다. 해결 방법은 시장을 개척하거나 가격을 낮추는 것인데 그러나 새로운 시장개척은 불가능하다. 새로운 식민지는 이 지구상에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격경쟁과 새로운 제품을 만들었지만 다른 경쟁없체 역시 같은 방법으로 판로를 개척했지만 한계에 부디친다. 최종적으로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을 해고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산업과 모든 국가에서 공급과잉으로 재고가 쌓이면서 가격인하 경쟁과, 노동자의 대량 해고 사태가 일어나고 있었다.
문제는 노동자는 생산을 담당하는 노동자인 동시에 소비자라는 것이다. 해고 노동자는 소비능력를 상실한 소비자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사회 전체적으로 실업자가 늘어나면서 소비도 줄어들 수 밖에 없게 된다. 소비가 감소한다는 것은 공급과잉이 되는 것이고 공급량을 줄이기 위해 모든 산업에서 가격 인하 경쟁이 일어나며, 가격을 인하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를 해고해야만 하고, 해고된 노동자는 다시 소비 능력을 상실한 소비자가 되어 수요를 창출하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경기침체라고 한다.
마침내 사회와 전세계는 경기침체의 늪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일자리를 찾아 헤메는 실업자가 늘어났고, 문을 닫는 공장과 기업이 속출하며, 시장에 내 놓은 물건들은 팔리지 않고 재고만 쌓이게 되는 암울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이 문제가 압축적되어 폭발한 사건이 바로 미국 뉴욕 증시가 대폭락하면서 세계 경제 전체를 무너뜨린 1929년의 세계 경제대공황이다.
대공황에서 탈피하기 위해서 미국은 대규모 도로, 항만, 댐 건설 등의 공공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위기를 극복했다. 이것을 루즈벨트가 시행한 뉴딜정책이라 한다. 자본주의 내적 문제, 공급과잉을 해소하기 위해 국가가 인위적으로 개입해서 조절하려는 정책이며, 이러한 해결 방식을 수정 혹은 후기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대규모 공공사업은 노동자를 필요로 하고, 월급을 받으면 생필품을 사게 되고, 수요가 생기면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멈췄던 공장이 다시 가동하게 된다. 공장을 가동할려면 노동자 필요하고, 고용이 창출되어 노동자가 소득이 있으면, 소비로 이어져 사회 전체가 공황 이전 상태로 회복된다는 것이다. 미국은 대공황을 이런식으로 해결해 나아갔다.
한편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베르사유 조약에 의한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물고 있는 중에, 대공황까지 겹치자 국가파산 상태에 직면했다. 물가는 치솟고 화폐는 휴지 조각이 되었으며, 국민의 고통과 불만은 최고조에 달했다. 이 때 모든 독일인을 구원해 줄 영웅이 나타났는데 그가 바로 히틀러다.
히틀러는 독일이 경제적으로 어려움 격는 것은 전쟁배상금 때문이고, 베르사유 조약을 파기하고 배상금을 물지 않게하겠다고 선동하고, 위대한 독일인이 이렇게 초라해진 것이 독일 민족이 살고 있는 땅이 너무 좁기도하며, 이 보다 더 큰 문제는 독일의 영토와 민족 영혼이 오염되었다고 주장했다. 그 오염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한 것이 바로 유대인이었다. 독일 민족의 위대한 부활을 위해, 영토와 영혼을 순결하게 청소할 필요가 있었다. 이것이 유대인 600만 대학살인 홀로코스트가 시작이었다. 히틀러 유창한 연설과 선동에 민중들은 크게 호응했고 선거에 연달아 승리하며 나치당(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은 집권당이되고 그는 독일 총통이 되었다.
히틀러는 독일인의 고통은 전쟁배상금 때문이고, 베르사유 조약을 파기하고 배상금을 물지 않게하겠다고 선동했지만 막상 집권하고 보니 전쟁배상금을 파기할 명분이 없었다. 그렇다고 다시 전승국들과 협상하자고 할 수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히틀러는 다시 전쟁을 해서 이기면 전쟁배상금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전쟁을 하기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그 전쟁 비용 마련의 방법을 유대인을 지목했다. 부유한 유대인에게 뺏기 위해 독일인의 순결한 민족성과 오염된 민족 영혼을 들먹이며 선동하고 독일 민중은 열광하며 호응했다.
미국은 자본주의 특성인 공급과잉을 해소하기 위해 대규모 공공사업으로 수요을 창출하면서 대공황을 극복해 나갔지만, 독일은 전쟁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배상금을 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가 간 무역에서도 독점적 위치를 점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사 전쟁에서 패배하더라도 전쟁은 막대한 수요를 창출하고, 이를 통해 자본주의의 공급과잉 문제를 일시적으로나마 해소 할 수 있기 때문에 독일은 전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일이 먼저 폴란드를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 3국과 영국, 프랑스, 미국, 중국, 소련 등이 연합국을 형성하여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전쟁과 인명 피해를 내고 1945년 5월에 독일이 항복하고, 그 해 8월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미국의 핵폭탄이 투하되면서 일본은 무조건 항복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근본적 원인은 히틀러도 아니고 미국도 아닌 바로 자본주의의 공급과잉 문제였다. 수요를 창출한 새로운 시장과 식민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일본이 그 먼 나라 독일과 손잡고 전쟁을 한 이유는 세계 대공황과 경제침체가 이어지자 그 해결책으로 더 큰 시장인 중국과 러시아 대륙으로 진출을 꾀했기 때문이다. 즉 독일과 일본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같았기 때문에 동맹 관계를 형성하여 전쟁을 통해 자본주의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것이 전쟁의 본질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고 바야흐로 세계는 근대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었고 역사는 현대로 나아 갔다. 그리고 세계는 재편되었다. 그 동안 세계 역사의 중심이었던 영국과 프랑스로 대표되는 유럽 사회는 전쟁으로 황폐해 졌고, 대신 승전국인 미국과 소련이 세계의 중심국으로 떠 올랐다. 한마디로 세계는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으로 양분되었다.
첫댓글 공부잘했습니다. 학창시절 잠깐 배웠는데 새롭게 느껴집니다. 진짜 역사를 아는 공부를 했습니다. 좋은 지식 포스팅 감사합니다.
읽어 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어렵풋이 알고 있는 지식을 이렇게 포스팅하니 저도 공부도 되고
회원님들께서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저로서는
기분 좋은 일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