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축하서한은 미국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남북전쟁을 승리로 끝내고 대통령에 재선출되었을 때,국제노동자협회 중앙평의회 이름으로 발표하고 런던 주재 미공사관에 전달한 성명서입니다. 이 서한 형식의 성명서는 미대통령께 보내는 성명서답게 양피지에 우아한 서예체로 작성되었으며, 문장 또한 매우 현란하고 격식에 어울리게 현학적입니다. 성명서는 마르크스가 초안을 작성하여 중앙평의회에서 채택되었습니다. 성명서는 비록 짧지만 매우 축약적으로 남북전쟁의 승리가 세계 노동운동에서 차지하는 의의를 정리하고 유럽의 노동운동 조직이 미국 정부, 특히 "노동의 아들"인 링컨에 거는 기대와 희망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마르크스가 미국의 링컨 대통령을 "노동의 아들"이라고 부르면서 형제애적인 유대를 표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링컨이 목수의 아들이자 링컨 자신 한때 노동자였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실제로 링컨의 아버지가 목수일을 했고 링컨도 노동일을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두 사람이 노동자 출신이라고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링컨의 아버지는 상당한 수준의 토지 소유자였고 링컨 또한 변호사 출신의 정치인이었습니다. 어찌 되었든 유럽 노동자들에게 미국이라는 신세계와 신세계를 이끌어가는 평민 출신 대통령은 선망의 대상이자 희망이었을 것입니다. 마르크스의 후예인 소비에트공화국과 링컨의 후예인 미제국주의의 반목과 피비린내나는 갈등을 알고있는 우리들에게는 좀 의아한 일이기는 합니다. 이런 의아한 일이 벌어진 까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떠도는 소문이나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당시 정치 정세를 이해해야 합니다.
링컨은 이전 대통령선거에서 노예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고 공화당 후보로 선출되어 주로 북부 공업 지역 주들의 지지를 받아 남부 노예소유자들이 분열되는 바람에 가까스로 당선되었습니다. 당선되자마자 노예제 철폐를 선언했습니다. 이에 반발한 남부주들은 북부주들을 중심으로 한 미연방을 탈퇴하여 미연맹국을 결성했습니다. 그리하여 노예소유주들과 노예제 폐지론자들과의 전쟁이 벌어집니다. 유럽의 대지주들과 부르주아들은 동병상린으로 남부주의 노예소유주들은 지원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의 노동자들은 남북전쟁에서 북부주들을 지지했던 것입니다. 적의 적은 우리 편이랄까요. 그밖에도 미국으로 이주한 유럽의 많은 노동자들이 북군에 입대하여 노예제 폐지를 위해 싸웠다는 사정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유럽의 노동자들과 북부주의 노예폐지론자들은 정서적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동질적 유대가 처음에는 짝사랑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남북전쟁 전 미국 북부주의 노동자들은 유럽의 노동운동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전쟁 과정에서 비로소 동지애를 느끼게 됩니다.
그렇지만 유럽의 대지주와 대부르주아들의 이해관계와 미국 노예소유주의 이해관계가 상통한다고 해서 유럽 노동자들의 이해관계와 미국 북부의 노예폐지론자들이 정서적 동질관계를 넘어서 둘 사이의 이해관계까지 일치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링컨이 노예폐지론자가 된 것은 개인적인 신념일 개연성이 더 큽니다. 링컨은 신앙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인간을 재산으로 취급하는 데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으며 만인은 신 앞에서 평등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으로 링컨의 대통령 선출과 노예제폐지라는 정부 정책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노예제폐지가 북부주 노동자들에게 이득을 가져다 줄까요? 물론 보편적 인류애라는 관점에서 노동자들은 노예제폐지에 찬성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링컨을 기꺼이 대통령으로 선택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마르크스 자신의 말에 따르면 정치적 선택에서 인간은 보편적 인류애가 아니라 계급적 이해관계에 따릅니다. 계급적 이해관계라는 측면에서 볼 때 당시 누가 가장 열렬히 노예제폐지를 환영했을까요? 말할 것도 없이 공업이 발달한 북부주의 대부르주아들이었습니다. 남부의 흑인노예들이 해방되어 북부의 공장으로 밀려들어온다면 임금은 터무니 없이 낮아져 큰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때문에 북부주의 대부르주아들은 처음부터 노예제폐지를 내건 링컨을 지지하여 그를 마침내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남북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값싼 흑인 노동자들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링컨 대통령은 노동자들의 처지에 깊이 공감하는 고매한 인격의 소지자였지만, 그는 결국 "노동의 아들"로서가 아니라 부르주아들의 이익을 실현하는 정치인으로서 국가의 정책을 실현할 수밖에 없었음은 자명합니다. 어쩌면 철저히 부르주아의 계급적 이익을 위해 행동했던 정치인을 마르크스는 지나치게 인간적 감정에서 접근해서 링컨을 오해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르크스가 주목해야 했던 것은 링컨이라는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마르크스는 노예해방 신념을 가지고 있던 "노동의 아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미국의 정치권력을 차지하게 되었는가에 관심을 기울였어야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미국 민주주의의 작동방식을 이해하려 했어야 했다는 말입니다. 미국 민주주의의 작동방식은 유럽에서는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당시 미국의 민주주의는 유럽에서 일반적으로 알고있는 민주주의와는 다른 민주주의였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민주주의는 희랍어 "demokratia"를 번역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좀 재미있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합니다. "demokratia"는 "demos"와 "kratia"의 합성어인데, "kratia"는 "다스리다", "지배하다"는 뜻이고 "demos"는 "백성", "다수" 등 지배 당하는 다수 대중을 말합니다. 그래서 원래 "demokratia"는 "지배 당하는 다수 대중이 다스리는 정치 체제"를 의미했습니다. 말하자면 피지배계층이 정치권력을 장악한 정치체제라는 말이 됩니다. 여기서 하나의 역설이 발생합니다. 민주적 정치체제에서는 피지배계층이 지배 집단이 되지만, 이번에는 자리만 바꿔서 여전히 지배 집단과 피지배계층이라는 계급지배는 계속될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계급지배가 계속되는 한 개개인들이 모두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을 이상적인 사회라고 간주하는 마르크스가 민주제를 바람직한 정치체제로 보았을 리 만무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demos"를 계급적 의미를 지닌 집단이 아니라 한 국가의 구성원 다수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어떨까요? 미국은 봉건적 지배체제가 붕괴되고 성립한 나라가 아닙니다.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다가 주 대표들이 모여 독립을 선언하고 독립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건국되었습니다. 그리고 주 대표(선거인단)를 그 주의 투표권을 갖는 주민들이 직접 선출하고 대표의 숫자로 대통령을 결정하는 독특한 선거제도를 발전시켰습니다. 물론 당시 투표권은 모든 국민에게 주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성은 선거권이 없었습니다. 성인 남성 중에서도 흑인은 투표권이 없었습니다. 노예제폐지를 주장하던 공화당조차 흑인에게 참정권을 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당시 미국의 민주주의는 한계가 분명했습니다. 그럼에도 미국 민주정치의 중요한 특징이 있었는데, 적어도 백인 성인 남성이면 출신 신분에 상관 없이, 재산 소유 여부에 상관 없이, 직업에 상관 없이 누구나 똑 같이 한 표의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국가의 구성원이면 누구나 (여성과 흑인은 나중에야 포함되었지만) 투표를 통해 국가의 정책 결정에 참여하고, 특히 세금 액수를 결정하는 데 관여할 수 있었습니다. 링컨이 이러한 미국식 민주주의의 작동 방식을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이라고 정의한 것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영어 단어 "people"은 희랍어 "demos"를 번역한 말입니다. 그러나 링컨의 언명 맥락에서 단어의 의미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사용했던 단어의 어원적 의미와는 좀 다릅니다. 언급했듯이 demos는 폴리스 내에서 권력을 갖지 못한 다수의 민중, 즉 피지배 계층을 의미했습니다. 그에 비해 링컨이 말하는 people은 어떤 정치공동체의 구성원 하나하나를 모두 지칭합니다. 그렇다면 링컨의 언명 맥락에서 중요한 것은 정치공동체의 지배자인 구성원 개개인이 자신들의 지배권을 어떻게 수렴하여 어떤 개인에게 위임하고 그 권한을 제어할 것인가 하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어원상 "demokratia"는 누가 지배하느냐 하는 민주주의의 실질 내용을 가리키는 단어인데 비해 미국에서 실현 중인 민주주의는 개인의 권리를 수렴하여 위임하는 방법과 절차가 더 중요한 형식의 문제가 될 것입니다. 물론 이를 통해 실질적 민주주의가 실현될 것인가는 다른 문제입니다. 더욱이 부르주아 세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프룰레타리아의 집권을 저지할 것이기 때문에 절차적 민주주의가 실질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기란 어려운 과제가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차적 형식적 민주주의가 중요한 까닭이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앞에서도 언급한 실질적 민주주의의 자기모순 때문입니다. 억압당하는 인민이 군력을 잡는 순간 이번에는 그들이 지배자가 되고 만다는 역설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악순환에 빠지고 맙니다. 이는 역사적으로 증명됩니다. 그에 비해 절차적 민주주의는 지금 당장 민주주의의 이념을 실현하지는 못하지만 언제나 실현 가능성을 열어 두고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형식적으로만 보자면 정치 공동체 내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등이 정권을 장악할 가능성은 남아있게 됩니다.
마르크스 후예들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해 또다른 계급지배에 골몰하다가 결국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을 차단했음을 고려하면, 마르크스가 절차적 민주주의의 열린 가능성을 고려하지 못한 역사적 사실이 너무 아쉽습니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세대에 바로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려 하지 않았을까 짐작됩니다. 좀 인내심이 부족했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