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악산성지三岳山城址 외 1편
고 순 용
사람이 쌓아올린 성城, 세월이 허문다
석공들의 손때를 바람과 서릿발이 지우며 간다
허물어진 성곽 벽면에 기대어 서서
맥이 끊긴 맥국인의 맥박을 숨 쉰다
폐성지廢城址에 깃든 태봉국의 마지막 왕
궁예가 꿈꾸었을 부활의 나라
그 꿈을 지켜주지 못한 망국의 성곽에
푸른 이끼가 검은 눈물로 흐른다
나라의 부흥을 기원하며 세운 도량, 흥국사
흥국興國의 기원을 풀잎에 새긴 듯 돌탑은
탑신을 잃고 옥개석만 우두커니 서 있다
돌탑 주변에 흩어진 염주 알갱이들이 바람으로 운다
고구려와 신라 후예의 피눈물로 쌓아올린 성곽
성채를 뒤흔들던 목소리, 말발굽소리 간 곳 없고
가랑잎 뒹구는 소리만 발목에 감기는데
맥국과 태봉의 비원悲願이 허물어진 성터에서
망국의 넋이 하늘 끝으로 치닫는다
오늘이 부화한다
고 순 용
노신사의 외투 깃 같은 노을,
실오라기 풀린 노을이 고개 마루에 매달려 있다
고갯마루에서 오늘의 문을 잠그고 있다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난 오늘,
오늘이라는 하루의 조각들을 쓸어 안고
비바람 같은 안개 속을 걷는다
안개에 중독된 가로등이 바람에 휘청인다
밤의 갈피를 먹고 자라나는 불빛 기둥들,
몰락한 왕가의 근위병 같은 불빛 기둥들이
공동묘지 울타리처럼 줄지어 서 있다
우주공간 저 끝자락에서 한줄기 파동이 달려온다
헬리오스가 잠에서 깨어난다
흩어졌던 꿈의 조각들, 시간의 파편들이
숨을 고른다 기지개를 켠다
알을 깨고 나온 오늘이
둥그렇게 눈을 뜨고 천지를 뒤흔든다
** 고순용 :*제18회 공무원문예대전 동상. 제25회 김유정기억하기 전국문예작품공모전 대상
*2021년 제20회 공무원연금문학상 은상. 2023년 계간 『예술가』 신인상 등단.
*한림대학교 커뮤니티교육원 시창작반. 현) 시를뿌리다 시문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