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37:1~6 교회를 뜨겁게 사랑합시다 (2)
어느 날 두 목사님이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과속으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교통경찰이 경고하기 위해서 오토바이를 세웠습니다.
"아실만한 분들이 왜 이러십니까? 천천히 다니십시오. 과속하시다가 사고 나면 죽습니다." 그러자 앞에 탄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함께 타고 계십니다.”
"그럼 스티커를 끊겠습니다."
"아니, 왜요?"
목사님은 황당해 하며 경찰에게 물었습니다.
"세분이 타는 것은 위법입니다."
누가 더 믿음이 좋은가요?
시편 137편의 배경과 내용을 먼저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부지런히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죄를 회개하라고 재촉하고 요구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백성들은 그 경고를 무시하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마침내 바벨론에 침략당해 나라 잃고 포로민으로 끌려가 온갖 설움과 고통 속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보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바벨론의 여러 강변에 정착하며 전쟁 포로로 살면서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시온을 기억하며 오열했습니다. 그 아픔과 설움도 클 것인데 바벨론 사람들은 그들에게 시온에서 불렀던 찬양을 자기들 앞에서 불러 보라고 조롱했습니다. 조롱당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희들 앞에서는 죽어도, 절대 찬양하지 않겠다고 거절하며 예루살렘을 잊지 않겠노라고 다짐하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멸망시킨 바벨론과 그들이 멸망 당할 때 조롱한 에돔 사람들을 멸하여 달라고 간구하는 내용으로 구성된 시가 시편 137편입니다. 이 시 저자는 포로민으로서 현장에서 그 모든 수치와 고통의 경험한 후 예루살렘에 귀환하여 그때의 뼈저린 아픔을 회상하면서 썼습니다. 들어가 한 절 한 절 살펴보겠습니다. 1절입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시 137:1)
그들은 자신들의 신세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이런 포로 생활이 언제나 끝날까? 신세타령하면서, 힘들어서 서러워서 한탄스러워 눈물을 흘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다.’ 했습니다. 예루살렘(시온) 성소에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양하며 감사했던 행복한 순간들, 성소에서 느꼈던 하나님의 임재와 평안과 기쁨들을 기억하며 그렇게 할 수 없는 자신들의 처지를 생각하며 울었습니다. 통곡했습니다. 때늦은 통곡이었지만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하는 애통이었습니다.
2절입니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시 137:2)
수금은 성전 예배에서 사용하던 악기입니다. 그런데 버드나무에 수금을 걸었다는 것은, 악기 연주를 하지 않겠다는 표현과 의지입니다. 그럴만한 사연과 이유가 있습니다. 3, 4절입니다.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라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시 137:3~4)
정복자인 바벨론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자기들 앞에서 자기들을 위해 수금 치며 노래 한번 해 보라고 조롱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렇게는 안 한다. 우리를 사로잡고 황폐하게 한 자, 시온을 멸망시킨 바벨론 사람들 앞에서는 하나님께 부를 찬양을 절대 부르지 않겠다고 단호히 거절하고 수금을 버드나무에 걸어 놓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절 후 큰 다짐을 하였습니다. 5절입니다.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시 137:5)
첫 번째 다짐: 예루살렘(시온)을 절대 잊지 않겠다. (5)
만일 예루살렘을 잊어버리고 이방인을 위해 수금을 타려고 손가락을 움직인다면, 손이 말라버려서 불구가 되어 더는 악기를 연주할 수 없게 되어도 좋다. 괜찮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망각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망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루살렘(시온)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섬기는 교회를 잊지마시고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 다짐입니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시 137:6)
두 번째 다짐: 예루살렘을 가장 소중히 여기겠다. (6)
만일 예루살렘을 가장 소중히 여기지 않고 가장 큰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더는 어떤 노래도 부를 수 없도록 혀가 입천장에 붙어버리는 벙어리가 되어도 상관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가장 소중히 여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를 소중히 여기시고 뜨겁게 사랑하시길 축원합니다.
지난 주일에 교회를 어머니처럼 사랑하고 잘 섬기기 위해서 어떻게 하라 했습니까?
첫째, 교회의 평안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시 122:6)
둘째,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시 122:6)
교회를 어머니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면 형통의 복을 받습니다.
셋째, 교회를 위해 복을 구하고 받아야 합니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 (시 122:9)
교회를 위해 복을 구하시고 교회를 위해 복을 꼭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찬송가 208장
과거의 잘못으로 인해 나라 잃고 포로가 되어 바벨론 여러 강변에 앉아 예배하는 신세이지만, 정복자 바벨론 사람들에게 자기들을 위해 노래하라는 조롱과 경망 된 요청을 받고 있지만, 그들을 통해서도 배워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죄에 대한 애통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지난날의 예배 생활, 성전 중심의 신앙생활, 기도와 감사 생활 그때는 그렇게 귀하고 소중한 것인지 몰랐는데 포로가 되어 강변에 앉아 예배드리다 보니 지난날의 죄악과 허물이 생각이 나서 눈물로 회개하는 애통이 있었습니다. 죄에 대한 애통이, 회개가 중요합니다. 니느웨 성읍 백성들은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진다는 요나 선지자의 메시지를 듣고 왕부터 시작해서 모든 사람, 모든 짐승까지 금식하며 회개했습니다. 그 회개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용서하시고 심판을 거두셨습니다. 그 결과 150년을 연장할 수 있었습니다. 죄가 생각나시면 늘 회개하시기를 바랍니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잠 28:13)
둘째, 결연한 다짐입니다.
회개하고 다짐까지 하였습니다. 시온을 잊지 않고 예루살렘을 가장 소중히 여기겠다는 다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섬기는 교회, 모여 드리는 예배, 찬송, 기도와 감사, 직분, 봉사 등 영원한 것들을 소중히 여기겠다는 다짐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교회 사랑과 관련된 시 한 편을 더 보겠습니다. 시편 84편입니다.
1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시 84:1)
주님의 전이 너무 사랑스럽다고 고백합니다. 주님의 장막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계신 집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집중하고 주님만 생각하고 주님을 예배할 수 있는 귀한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얼마만큼 사모했을까요?
2절 말씀입니다.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시 84:2)
여호와의 궁전을 너무 사모하여 몸이 쇠약할 정도까지 사모했습니다. '사모하여'의 문자적 의미는 '창백해지고'입니다. '쇠약하다'라는 뜻은 '끝나다.’입니다. 주님의 성전에 가고 싶어 얼굴이 창백해지고 죽을 것 같다는 고백입니다. 교회를 이렇게 사모했습니다.
3절입니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시 84:3)
주의 성전에 둥지를 틀고 성전을 가까이하며 주의 전에서 안식을 누리는 참새와 제비 모습을 상상하며 참새와 제비를 부러워했습니다. 그가 정말로 부러워하는 것이 무었일까요? 4절입니다.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셀라) (시 84:4)
하나님의 집에서 사는 자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하며 봉사하는 제사장들, 제사장을 도와 성전 일하는 레위인들입니다. 더 넓히면,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을 경배하는 특권을 지닌 모든 성도입니다. 그들을 진짜 부러워했습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항상 주를 찬송하고 예배하기 때문입니다.
해외나 국내에 출타 중인 성도들, 군에 입대 중인 청년들, 병원에 장기간 입원 중인 성도들이 제일 안타까워하며 부러워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자신이 은혜받고 자신이 섬기고 자신이 눈물과 땀과 물질과 기도를 바쳤던 교회입니다. 섬기는 교회에서 예배한다는 것, 직분 받고 주님의 일을 한다는 것, 언제나 와서 기도하고 찬송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며 복된 일인지 여러분 아셔야 합니다. 감사와 기쁨으로 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시편 84편 기자는 성전에 가서 예배하는 것, 찬송하고 기도하는 것, 성전을 가까이하는 것, 하나님을 자주 뵙는 것, 주님의 일을 하는 것 등을 부러워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부러움과 사모함이 있어야 합니다. 몸이 쇠약할 정도까지 아니어도 예배드리고 싶은 사모함, 기도하고 싶은 사모함, 한 명이라도 더 살리고 싶은 간절함, 교회 부흥을 뜨겁게 사모하여 기도하고 전도하는 수고와 사모함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시편 84편 기자는 10절에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주의 궁전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서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시 84:10)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한 날이 그게 성전 문지기라 할지라도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낫고, 악인의 장막에서 잘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훨씬 더 가치 있고 좋고 행복한 일이라는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가 이처럼 가치를 지니는 것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여 계시는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는 통로이고 영혼을 살려내는 방주이고 하나님의 사랑과 양육과 보호가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백성이 교회에서 예수님 만나 믿어 구원받고 성장하고 교회에서 은복 받고, 응답받고, 인정받아 직분 받았으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가 되어서라도 보답하고자 하는 ‘문지기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 보답하는 삶을 위해 성전 문지기 정신으로 교회 잘 섬기시고 뜨겁게 사랑하시길 축원합니다.
교회 설립 34주년을 맞이했습니다. 큰 다짐으로 교회를 위해 헌신하다가 교회와 함께 가정도 사업도, 직장도, 신앙도 모두 성장하고 형통해지는 은복을 받으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주의 장막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