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주사 주지, 조계종중앙종회 의원을 역임하고 다시 산으로 돌아간 지명스님이 에세이집《그것만 내려놓으라(조계종출판사)》를 출간했다.
‘내려놓으라’는 말은 선가에서 흔히 쓰는 화두인 ‘방하착(放下着)’을 의미한다.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것. 해외포교에 선봉에 섰던 숭산스님도 외국제자들에게 'Put it all down'을 강조했었다고 한다. 풀이하면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는 뜻. 그런데, 특이한 것은 지명스님은 ‘모두 내려놓으라’고 하지 않고, ‘그것만 내려놓으라’고 한다.
그것이 무엇일까? 이에 대해 지명스님은 명쾌하게 “집착”이라고 답한다. “경쟁하지 않는 삶이 불가능해도, 패배하지 않는 삶이 불가능해도, 그리고 무조건 져주고 양보하는 삶이 불가능해도 우리는 ‘집착하지 않을 수 있다.’”
스님이 집착을 내려놓을 것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삶의 본질은 경쟁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삭발하고 출가해도 그곳에는 도를 더 잘 닦고 전하기 위한 경쟁이 있고, 심지어 무소유를 실천하기 위해 가진 것을 다 버리려고 한다면 더 철저하게 벌리는 태도를 견지하기 위한 경쟁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낌없이 베푸는 나무도 땅 밑에서는 뿌리를 뻗어가며 경쟁을 하는 게 자연의 법칙이다. 그래서 스님은 경쟁을 하지 말 것을 말하지 않고, 집착하지 말 것을 말한다. 스님의 이러한 주장의 근저에는 무(無)사상이 깃들어 있다.
“무(無)자와 공(空)자 가운데 어느 하나를 써도, 쓰지 않은 다른 글자가 그 안에 내포돼 있다. 요점은 ‘없다’가 아니라, ‘격려’와 ‘경고’라는 것이다.”
이처럼 54편의 스님의 글 전반에는 현실을 현실 그 자체로 받아들이되 긍정하는 ‘긍정적 허무주의(Positive nihilism)이 있다. 그건 바로 집착하지 않는 삶이다.
스님은 2004년 요트를 타고 미국에서 한국까지 태평양을 횡단한 이로도 유명하다. 당시 스님은 망망대해에서 홀로 벌여진 자신, 즉, 절해고도의 존재를 느끼기 위해 태평양 횡단을 계획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스님의 글 속에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바다를 돛단배 타고 건너온 절대고독을 견딘 자의 도저한 숨결이 깃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