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네이버 블로그 구름의 남쪽>
전에 상명에 있는 어느 가공장에 갔다가 찍은 사진입니다.
가공하고 건조까지 마친 차들이 줄줄이 포장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나무 죽순 껍질 포장은 이렇게 하는데요,
이것도 아무나 쉽게 그 자리서 할 수 있는 기술은 아닌가 봅니다.
전에, 어느 마을에 가서 차를 마시고 조금 사겠다고 했더니,
저 포장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오토바이를 타고 몇십분 나가서 기술자를
데려오겠다고 하더군요..... 많은 양을 사는 것도 아니고 해서 그냥 산차로 조금 사고
말았습니다만, 그때 저 포장도 기술이 필요하다고 알았습니다.
운남 곳곳에 대나무가 흐드러져 있고, 굵은 죽순도 많지만 아무 죽순 껍질이라도 가져다
보이차 포장에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길 가다 엄청 큰 대나무에 죽순 껍질이
더덕더덕 붙어 있길래 이걸로 포장하는 것이냐고 물으니 그 종류는 쓰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제 눈에는 완전히 똑같은 죽순으로 보였는데 말입니다.
(황죽이라는 대나무의 죽순을 사용합니다.)
죽순껍질만 모아다 팔러 다니는 사람도 있었는데요,
보이차라는 하나의 산업으로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사는구나 했지요....
죽순껍질은 사용하기 전에 저렇게 잘 닦아 줍니다.
사진 속의 저 할머니는 올해 돌아가셨습니다.
지금은 안 계신 분 사진을 보니 기분이 좀 묘하네요...
이렇게 일곱 개를 한 세트로 해서 죽순 껍질로 묶어 줍니다.
앞에서 죽순 껍질 포장도 기술이 필요한 것이라고 햇는데, 이 사진 보면
정말로 그 말을 실감하게 됩니다.
이것은 경매지역에서 난 차의 포장인데요,
제가 싸도 저보다는 더 잘 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아무렇게나 포장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저런 식으로 막 포장하면 일이년 지나면 헐렁해져서 벗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이무 같은 데는 포장을 아주 야무지게 잘 하지요.
몇년이 지나도 단단하게 잘 보관됩니다.
그런데,,,,
왜 보이차는 꼭 저렇게 7편을 한 세트로 포장할까요?
칠자병다(七子餠茶)에서 칠자(七子)를 일곱 명의 아들로 해석하고,
칠자병다는 아들을 많이 낳으라는 축복의 의미이다...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이것은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칠자병다가 만들어진 것은 1735년부터입니다.
이해에 옹정황제는 <운남차법(雲南茶法)>이라는 것을 제정하고
차를 동그란 모양으로 만들 것, 한 편의 무게는 7량으로 할 것, 7편을 한 세트로 할 것 등
세세한 항목을 모두 법으로 규정했습니다.
왜 그랬는고 하니, 이유는 간단합니다.
세금을 효율적으로 거두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차 1백근 당 은전 3전 2푼의 세금을 부과했는데,
각 차장에서 제각각인 모양으로 차를 만들면 세금 부과하기 위해 일일히 무게를 재야 하는
번거로운 일이 생기니까, 저렇게 통일을 시켜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좋은 점이 무엇이냐면,
한 통의 무게가 정확히 7량*7편=49량이 나옵니다.
32통이면 1백근이 나오고요. 그래서 세금을 부과하는 사람들이 일일히 하나씩 무게를 재는
대신에 통 수만 세어 보고 몇근인지, 얼마의 세금을 부과해야 하는지 아주 빠르고 효과적으로
알 수 있었답니다.
당시는 구매 허가서를 갖고 있어야 차를 살 수 있었는데,
구매 허가서 한 장에 1백근까지 살 수 있는 한계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방이 차를 싣고 길을 가다가도 검사원이 나와서 구매 허가서를 갖고 있는지 확인하고,
또 그 구매 허가서에 지정된 차의 수량과 실제로 싣고 가는 차의 수량이 맞는지도 살폈습니다.
둘 사이의 수치가 어긋나면 어김없이 큰 벌을 받았지요.
그런데 저런 식으로 모양과 무게를 통일시켜 놓지 않으면 마방은 검사원을 만날 때마다
차를 말 등에서 내려서 일일히 무게를 재고 구매 허가서의 내용과 대조하고
또 말 등에 실어야 하는 번거로운 일이 발생했겠지요....
어떻게든 세금을 잘 거두려고 생각해낸 방법이겠지만, 참 영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까지는 <보이차의 원산지 서쌍판납>이라는 책에서 공부한 내용이었습니다.
첨영패라는 여기자가 쓴 책인데, 보이차 10걸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10걸 후보에
올랐었던 사람이네요. 보이차 팔아서 돈 많이 번 사람들이 주로 10걸이던데, 이렇게
발로 뛰고 공부하는 사람은,, 그래도 후보까지는 올라갔었다니 다행입니다 그려...
그리고 당시 보이차 1편을 7량으로 만들라 했는데,
당시의 7량은 오늘날의 357그람이다... 라고 되어 있는데,,,,,??
오늘 한 이웃분께서 이야기해 주기를 당시의 1량은 37.5그람 정도였다고요...
저도 다시 찾아보니, 당시 1량은 37.301그람, 36.3375그람, 37.40그람 등등에서 왔다갔다 했네요...
여기서 약간 헷갈리네요....
이 부분은 다시 찾아보고 보충해야겠습니다....
<출처 - 네이버 블로그 구름의 남쪽>
첫댓글 세금과 10 걸~~^^
보이차의 357g은 세금과 그렇게 관련이 있었군요!
새롭게 읽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