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학생들에게 오늘(11월 15일 토요일) 저녁 여섯시에 모여서 영화를 보자고 말했었습니다.
실은, 지난 주 목요일에 영화를 보기로 되어 있었지만, 학교 사정으로 인해 부득불 연기를 했습니다.
지난 주 목요일, 미리 학생들에게 영화상영은 다음 주로 미뤄졌다고 통보를 하긴 했지만,
그 날 여섯시 반이 되었을 때, 어느 학생한테서 '시간이 되었는데 선생님, 왜 안 오세요?'하고
전화가 왔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약속을 못 지킨게 되었고,
그에 대해, 다음 날 A반, B만 학생들 모두에게 고개숙여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오늘은 동시상영이었습니다.
본 영화는 11월 둘째주 맞이 특선 총천연색 칼라 필름 대작 [Write me upon your arrival in China](2005 감독 박성배)가 그 첫번째였고,
두 번째 작은 이준익 감독의 2007년 작 [즐거운 인생]이었습니다.
첫번째 영화는 반응이 신통치 않았고,
첫번째 영화에 질려버린 학생들은 두번째 영화는 기대도 하지 않고 대다수 기숙사로 돌아가버렸습니다.
하지만, 몇몇 학생들이 남아서 끝까지 [즐거운 인생]을 봤습니다.
그 중에 만트흐가 있었습니다.
만트흐는 요며칠 수업도 계속 나오고 있고,
수업에 나와서는 공부하는 시늉이라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특히나 기특하게도, 프로젝터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제 어깨를 몽골리안 맛사지로 풀어줬습니다.
덕분에 어깨, 목이 전부 아주 부드러우졌습니다.
만트흐는 맛사지하는 데에 아주 용한 재주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프게 느껴지는 선을 아슬아슬하게 안 넘기면서 제 어깨를 주물러
시원한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이 음...... 이건 보통 손재주가 아니다 싶었습니다.
만트흐는 오늘 상영레파토리 중 첫번째 영화 때는 안 왔었는데,
두 번째 영화를 끝까지 다 본 다음에는, [Write me upon....] 디비디를 보고 싶다고 빌려갔습니다.
두번째 특선 대작 [즐거운 인생]은, 관객은 많지 않았다고 하지만,
대단히 좋은 영화였고, 관객들의 반응도 좋았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1984년도에 대학생이었던 주인공 세 명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죽어버린 친구의 장례식에서 만나게 되는데,
그 죽은 친구는 1984년도에 록보컬그룹 '활화산'의 보컬을 맡았던 친구입니다.
네 명의 멤버들 중 남은 세 명들 모두가 2000년을 넘어선 한국의 서울에서
다들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고달픈 삶을 살고 있다가 그 죽어버린 친구의 기타를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록보컬그럽 '활화산'을 결성하게 됩니다.
하지만, 세상은 냉정하고 자신들의 삶의 짐 또한 버거운 이들이
스무살의 젊었던 시절로 돌아가 다시 한 번 음악에 인생을 불태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가족들의 몰이해와 힘겨운 삶의 환경은 그들을 그저 음악에 매달릴수록 내버려두지는 않는 겁니다.
하지만, 셋은 죽어버린 친구의 아들과 함께 계속해서 노래하고 연주하면서 자신들의 즐거운 인생을 찾아갑니다.
영화 내용을 말해버여서 스포일러가 되는 게 아니냐고 누군가 항의할 수도 있겠지만,
직접 보신다면 이 영화에 대해서 제게 무슨 말을 했건간에 별 영향이 없었다는 걸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음악이 가장 큰 주인공인 [즐거운 인생]은 정말 누구에게라도 추천하고 싶네요.
이준익 감독은 아마도 서울 출신인 것 같은데,
다들 전형적인 서울말씨를 쓰는 서울 토박이 배우들만을 찾아내고
서울의 홍대 골목길을 자연스럽게 그려내기도 하면서
서울로 해서 비로소 자아낼 수 있는 분위기를 [즐거운 인생]에 연출해 내고 있는 느낌입니다.
386세대를 주인공으로 하면서도, 정치적인 색채를 전혀 내비치지 않고
그들이 살았던 젊은 시절을 근거없이 아름다웠다는 말로 노스탤지어에 호소하는 일도 없습니다.
그저 익숙한 그 시절 노래를 들려 주고, 40대 중반이 되어 있는 주인공들이
과거에 연연하는 일 없이, 미래를 무조건적으로 낙관하는 일도 없이
어찌 보면 불행할 수도 있는 오늘 하루하루를 자신들의 즐거운 인생의 하루하루로 만들려 애쓰는 양을 그립니다.
사람들의 가장 큰 안식처인 가정을 여러 모양새로 그려낸 점도 [즐거운 인생]이
좋은 영화일 수 있는 근거가 될 것 같습니다.
특히, 캐나다에서 조기유학을 하고 있는 자식들과 함게 아내를 보내고
자신은 기러기 아빠가 되어 있는 남자가 등장하는데,
결국 이 남자는 여자에게서 버려지지만, 그저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인생을 떳떳하게 선택하고 자신의 아들에게도 자랑스럽게 그 선택에 대해서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찾아드는 아픔들
이제까지의 영화들과, 가족과 삶에 대한 선입관들이 그러한 사람을 불행한 이로만 그려 왔다면
[즐거운 인생] 속에 등장하는 이들은, 삶에 대한 편견들에 아랑곳없이
스스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자신의 인생에서 승리해 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물론, 영화는 영화입니다.
실제 인간들의 사회가 [즐거운 인생] 속에 나오는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해 줄까하는 의문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즐거운 인생] 속의 인물들이 그렇듯이
인생을 즐겁게 만드는 건 스스로의 밥그릇이겠죠.
[즐거운 인생]을 학생들과 함께 보면서
영화속에 빠져드는 학생들을 보면서, 또한 저 스스로도 영화와 음악에 취해가면서
아주 오래전 시골 시장에 가서 천막치고 보던 영화 생각이 났더랬습니다.
애들한테 200원 300원씩 돈을 받아가면서 보여주던 그 비상설 영화관 말입니다.
16밀리 영사기와 필름을 들고 시장을 다니면서, 시골 동네를 다니면서 영화를 보여주던 옛날 영사기사들처럼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씩 저도 학생들한테 천막치고 영화 보여주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디비디에 영화관에 이미 익숙해져 있는 학생들이라서,
저 혼자서만 그런 옛날 영사기사 기분을 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학생들은 쉽게 디비디 플레이의 멈춤버튼을 누르듯이 보다 말고 나가버리지만
그래도, 가끔 좋은 영화를 보게 되면, 다시금 옛날 시골아이들처럼
다들 가슴 조이면서 아득한 스크린을 내다보며 넋을 잃고야 맙니다.
기억에 남을 영화체험을 또한 번, 꽤 오랜만에 오늘 밤 할 수 있었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