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과 제자의 성립과 성격에 관하여

이는 나의 경우만은 아니겠지만, 한국의 경우 문학에 뜻을 늦게 두어
등단을 아주 늦게 하는 이들이 많아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많이 듣게 되고
또, 한국에서는 최고의 전통을 가진 현대시창작 전문강좌
대구시인학교를 20년 가까이 해 오며 수백명의 사람들이 스쳐갔고
등단도 수십 명이 해 지금 한국시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걸로 아는데
그래서 내가 선생님으로 많이 불리어지고 언급 되고 있으며
그게 혈육같이 끈끈한 인맥으로 자리하면 스승으로 자리매김 되는 것으로 안다.
중국 조선족의 경우도 나를 선생님으로 부르는가 하면
스승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아주 고마운 일이다.
나도 중국 만주를 가면 내 윗사람을 선생님으로 부르는데
그건 일반적인 예에 속할 것이다.
내가 여기서 해 두는 말은 그냥 일반적인 호칭으로서의 선생님이 아니라
내게 직접 시를 지도 받거나 스승으로 생각하겠다고 하면
이는 보통인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분명하게 사제지간이라는게 성립된다는 말이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런 말을 꺼내는가 하면 한국의 경우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어느 학교를 선택해서 다녀야 그 학교 학생이 되며 그 학교 출신이 된다.
문학하는 사람끼리도 자신이 어느 학교 또는 어느 시인을 선생으로 또는 스승으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갈 길과 운명이 절대적으로 달라지듯 직접적인 선생님이 생기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냥 먼저 시인으로 등단하고 윗사람이라 같은 시인들이라도 선생님이라 부르는데
그것도 정상적인 호칭이라 보는데 그러나 진정한 사제지간의 선생님이 성립 되려면
선생이 인연의 고리를 만드는게 아니라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인연의 고리를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으로 안다.
즉, 직접 배우지는 않고 도움을 청하거나 자신의 문학적 발전을 위해
교유를 원하는 경우도 있지만 혈육같은 튼튼한 인지상정의 관계가 되려면
문하에 들어와서 똑바로 선생님을 따르면 더 인맥적으로 봐서도 좋은 것이다.
다 그럴 필요는 없겠으나 직접 문하에 들어와 함께 해 나가지 않으면서
편리 위주로 여러 가지 주문도 하고 상의도 하고 여기저기 정담도 가지는데
그것도 인간사에서 나쁜 건 아니나 돌아서면 그냥 그저그렇게 남남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제 집이 있는 사람하고 없는 사람, 부모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형제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친척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동창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선배 후배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있겠지만
위에 나열한 것에서 없는 것 보다 있는게 낫다면 스스로 집을 짓고
스스로 선택해 인연의 고리를 끊어지지 않게 튼튼히 해 놓으면
평생을 두고 인생을 살거나 특히 문학하는데 아주 좋을 거리는 견해다.
부모가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에 비해 용돈이 떨어지면 달라고 할 수 있으니 좋고
문학을 해 나가는데 모자라는게 있고 활로를 위해서도 선생한테 말하면 선생이
쉽게 힘써 줄 수도 있고, 자신의 작품검토도 편하게 받을 수 있고
시인으로 나아가는 길에 선생의 역량을 입어 덜 힘겹게 펼쳐갈 수도 있는데,
너무 많은 선생을 두거나 이 사람 저 사람 모두 선생인 것처럼 생각하면
이 사람 저 사람 다 선생 아닌 거 다름없는 경우가 되니 해 두는 말이다.
인생도 그러하지만 특히 문학을 해 나가는 경우, 모든 면에 있어서
자신이 잘 선택해서 자신의 집짓기를 자신이 솔선수범해 나가야 된다는 것이다.
누가 부모처럼 자신을 평생을 두고 헌신해 주겠는가 말이다.
스스로 열정을 가지고 올바른 가치관과 판단으로 임해야 된다는 말이다.
문학은 대인관계의 만남으로 비롯되기 때문에 소속이 안 되어 있으면
소속감도 없을 뿐만 아니라 늘 혼자가 되어 외롭게 된다.
그래서 계모임을 하고 동기회 동창회 동인 등 모임이 형성되는 걸 보면 알 일이다.
또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진정으로 어려움에 부닥혔을 때 자신에게 힘이 되고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의지가 되는 스승이 있는가 깊이 생각해 보면 알 것이다.
또 문학은, 등단 해서 시인이 됐다고 해서 소원 이뤄졌고 끝난게 아니라
그게 시작이고 출발이기에 그 다음부터 문학해 나가는데
이만저만 힘든게 아니며 혼자 헤쳐나가기란 무한히 어려운 것으로 안다.
어머니 뱃속에서 응에~ 하고 울음 터뜨리며 세상으로 나왔을 때 그 순간이
바로 시인으로 등단하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그러니까,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그게 시인으로의 등단이라면
누가 젖 먹여주고 기저귀 갈아주고 기고 걷고해 주고 나중 가서
유치원 다니면 데려주고 데려오고 초등학교를 비롯해 고등학교까지라도
누가 차비 주고 학비 주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등단하고 나면 갓난 아기가 성장하듯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집이 있어야 하고 부모가 있어야 하고 혈육이 존재해야 나은 것이다.
그렇지 않고 직접 입문은 하지 않고서 주위에서 배배 도는 이들이 많으니
그런 사람은 올바른 집도 없고 올바른 선생 하나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판단을 가지라고 해두는 말이다. 내 20년 가까이 장구한 세월 시를 가르쳐 온 경험에서 해 두는 말이다.
한국 대구시인학교에서는 강의 장소를 옮기게 되어 현대시 창작강좌 주간반을
그간 쉬고 있었는데 (야간반만 운영해 왔는데) 대망의 2009년 1월 첫째주 목요일부터
다시 문을 열고자 한다.
시간은 매주 목요일 오후 2시에 수업을 시작해서 4시 30분까지 강의하며
4시 30분 이후는 자유시간으로 선생과 함께 교유할 분은 하고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
참고하시기 바란다.
서지월시인의 집필실인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대일리 시산방 남서재 강의실이다.
대구시내에서 대일리까지 7대의 시내버스가 오는데 스파벨리 지나 냉천 대림생수
바로 위 가창초등학교 맞은편 버스종점에서 내리면 되고
그 맞은 편 대일마을회관 세명식당에 문의하면 된다. (수성못 5거리에서 10분 거리)
**스스로 찾아와야지 저희 동네 가까이 와 가르쳐 줄 수 없느냐는
얌뚱머리 까진 소리 하면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음을 명심하시기 바란다.
신도가 찾아 와야지 절간을 옮길 수 없느냐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것이다.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선생님모시고 시를 배우는거 하고 안배우는거 차이가 날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떤 선생님을 모시는가하는데에 따라서도 나름대로 시적풍격이 달라지리라 생각도 합니다. 이 좋은 글 시를 배우려는 사람에게 보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