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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장,
추석명절은 또 다시 동네잔치가 된다.
김승기 노인은 집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나누어 주려는 생각이라도 된 다는 듯이
무엇이든 아끼지 말고 음식을 하라고 이른다.
이제는 정말 더 바랄 것이 없는 마음인 것이다.
영미는 둘째 아들을 낳고 나서부터는 몸과 마음이 느긋해진다.
둘째 아들의 이름은 또 다시 김승기 노인의 오랜 고심 끝에 정해진다.
김명규라는 이름이다.
주성은 잠시 집에 머물다 다시 서울로 올라간다.
이제는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된 것이 실감이 나질 않는다.
그러나 아내가 산고의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고 나서 생명을 출산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것인가를 조금은 생각을 한다.
자신의 공부도 중요하지만 가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 것도 같은 마음이다.
주성은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더욱 열심히 공부를 한다.
이제 사학년에 올라가면 졸업을 하기 전에 취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더욱 좋은 학점을 얻기 위해 노력을 한다.
자신이 생각을 해도 이젠 조금은 성숙하고 어른스러워졌다는 느낌이다.
백현지의 모습이 멀리서 보이면 일부러 돌아가면서 현지를 피하고 있었다.
현지와 사랑 놀음을 할 수가 없음을 느끼는 것이다.
허나 현지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볼 때마다 심장의 박동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오곤 한다.
그저 현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울렁거리고 심하게 뛰는 것을 느끼곤 하는 것이다.
현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자신도 알 수 없다.
그러나 현지를 생각하기만 해도 가슴이 뛰는 것을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현지 또한 스스로 주성을 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단 한 번도 현지도 주성을 찾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해외연수를 다녀오고 나서 두 사람은 서로 피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사랑을 거부당했다는 오기가 현지의 마음을 닫아버리고 말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주성은 차라리 잘 된 일이라 생각을 하지만 뭔가 서운하고 허전한 마음을 버릴 수가 없었다.
김주성은 겨울 방학 내내 집에 내려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다.
이제 한 학년만 더 다니면 학교를 졸업한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을 해도 시골에 내려와 살겠다는 생각은 없다.
어떻게 하든 서울에서 취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들을 서울에서 키우면서 교육을 시키고 싶다는 생각에
자신이 서울에다 든든한 기반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김노인은 겨울이 다 가기도 전에 병석에 눕는다.
이제 모든 일들이 당신이 원하고 바라시던 대로 이루어졌다는 생각에
모든 긴장과 근심을 놓아버리고 나니 생을 마감하시려는 듯이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지셨던 것이다.
영미는 그런 할아버님을 위해 모든 지성을 다 한다.
할아버님의 따뜻한 사랑이 계셨기에 고된 시집살이 가운데서도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가 있었던 것이 생각나는 것이다.
참으로 인정이 많으시고 사랑이 깊으신 어른이시다.
영미는 아이들을 시어머니께 맡기고 할아버님의 병수발을 자처해서 맡고 나서는 것이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병수발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다.
“할부지예!
쪼매만 더 드이소!“
“아이다!
이자 그만 묵을란다.
내가 이자 눈을 감는다 해도 아무런 여한이 읍다.
니가 이 할부지의 모든 소망을 이루어 주었꾸마! 고맙데이!“
노인은 손부의 손을 잡고 손등을 어루만진다.
“할부지예!
오래오래 사셔야 합니더!
지는 할부지가 억수로 좋슴니더!“
“오야! 참말로 고맙데이!
니 고븐 맴씨를 내사 와 모르겠노?
내도 니를 억수로 좋아한데이!“
김승기 노인은 영미를 바라만 보아도 사랑스럽고 믿음직스럽다.
노인은 점점 더 병이 깊어져 간다.
이제는 일어날 기운도 없이 기저귀를 채워주면 아무런 불평도 없이
그대로 당신의 몸을 온전하게 손부에게 맡겨 놓는 것이다.
박순분여인은 영미가 그 모든 것을 맡아서 해 주는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면서 노인의 일에 대해서는 일체의 관섭도 하지 않는 것이다.
당신이 해야 할 일들을 해 주는 며느리가 고맙고 기특하다.
박순분여인은 손자들을 정성껏 돌봐주면서 날을 보낸다.
작은 아이도 제법 많이 커서 스스로 일어나 앉아서 놀곤 한다.
이젠 이유식만으로도 엄마 젖을 많이 찾지 않게 된 것이다.
주성은 할아버지의 상태가 걱정스러웠지만 졸업반으로 올라간
지금 취업준비를 하느라 시간을 내어 집으로 내려갈 짬이 없다.
졸업을 하기 전에 취업을 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더욱 열심히 노력을 하고 있는 주성이다.
사업을 하기 보다는 큰 기업체에 취업을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주성은 대기업에 입사를 하는 것을 목표로 정하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정보와 지식이 필요했던 것이다.
주성은 간간히 집에 연락을 해 본다.
할아버지의 임종이 임박하다는 연락을 받고 내려간 것은 그해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였다.
김승기 노인은 아주 평온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마치 편안하게 잠이 들어 있는 듯한 평온한 모습이다.
바로 뒷산에 안장을 한다.
모든 장례가 끝나고 삼오를 지내고 나서 다시 주성은 서울로 올라온다.
그동안 여러 군데 이력서를 제출하고 공채시험을 본 것이다.
우수한 성적과 학교에서 추천을 해준 추천서 덕분으로
주성은 졸업을 하기 전에 취업이 결정이 된 것이다.
주성이 원하던 대로 대기업에 무난하게 취업이 결정이 된 것이다.
주성은 어머니인 박순분여인과 마주 앉는다.
“어머니! 서울에다 아파트를 구입해 주세요.“
“아파트는 뭐할라꼬?”
“언제까지 오피스텔에서 생활 할 수는 없지요.
이제 사회로 나가 직장생활을 하면 오피스텔 가지고는 힘들지 않겠어요?“
“느그 식구덜 모다 델꼬 갈라꼬 하나?”
“아닙니다.
집사람은 이곳에서 아이들 키우면서 부모님 모시고 조상님들 받들어야지요.
주말에만 내려올 것입니다.“
”은제꺼정 그리 식구들과 떨어져 살라카노?
공부를 끝냈시면 돌아온나!
여그서도 을마든지 살아 갈 수 있는기라!“
“아직은 이곳에 파묻혀 살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얼마간이라도 직장생화를 하면서 사회경험을 쌓고 싶습니다.“
“오야!
사나가 이 답답한 농촌보다야 도시에서 활동을 하고 싶음 맴이야 어디 가겠노?
느그 아부진 핑생을 이 농촌에 묻혀 살았다마는 니는 어디 니 하고 픈 대로 해 보그라!
대신 아이다 싶으면 바로 내려온나.“
“예! 그렇게 할게요.“
“니하고 잡은 대로 아파트를 알아보그라!”
박순분여인은 아들이 자신의 가족들을 그대로 둔다는 것이 마음에 든다.
가족들을 모두 이끌고 서울로 간다고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영미는 남편의 그런 결정이 서운했다.
아무리 어렵고 힘이 들어도 남편의 공부만 끝내고 나면 서울에 가서 살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남편은 단 한마디의 상의도 없이 결정해 버린 것이다.
“내한테는 한 마디 상의도 없이 결정을 해 버린기라요?”
“무슨 상의? 당신이 뭘 안다고?“
“무신 말을 그리 합니꺼?
내도 당신과 함께 아들을 데불고 서울서 살면 안 되는겨?“
“당신과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서울로 가 버리면 이곳은 누가 지켜?
우리 부모님은 누가 돌보고 조상님들을 누가 받들고?“
“.........................”
“잘 생각해 봐!
내가 어떻게 당신과 애들만 데리고 서울을 갈 수 있어?
나이 드신 부모님을 누가 모시냔 말야?
내가 주말이면 내려 올 것이니까 당신은 이곳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부모님 잘 모시고 조상님들 잘 받들고 있으라고.“
영미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엇이라고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시부모님만 두고 빠져나간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라몬 매주 주말이면 집으로 오능겨?”
“그렇다니까!
그때마다 내가 먹을 반찬을 당신이 준비나 해 둬!“
영미는 서운하고 허전하지만 대답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제 영미는 온 집안의 모든 것을 관리하고 있었다.
할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자 찾아오는 손님들이 조금은 줄어든 것이다.
시아버님은 사람을 별로 좋아하는 성품이 아니시기에
시아버님을 찾아서 오는 손님들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시아버님은 하루 종일 말이 없으신 분이시다.
집안의 모든 일들을 시어머님께 맡기시고 일체 관섭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할아버님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큰 사랑에 나가시어 안채에는 거의 들어오지 않으시고
큰 사랑에만 기거하시는 시아버님은 집안에 없는 사람취급을 받으시는 것이다.
영미는 그런 시아버님을 지성으로 모신다.
갈아입으실 모든 옷과 매 끼니때마다 정성을 다해 상을 차려 내가곤 한다.
박순분여인은 그런 영미의 부지런함과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씨에
당신의 남편이면서도 거의 며느리에게 떠맡기고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워낙 젊어서부터 다정다감한 부부사이는 아니었다.
그저 결혼이라는 것을 했으니 살아야 하나보다 하면서 다행히 아들을 낳았으니 아마 그것으로
당신의 하실 일은 다 하셨다는 듯이 거의 안채는 들어오지도 않고 그저 덤덤히 살아오신 분들이시다.
박순분여인의 남편에 대한 불만도 그것이었다.
자주 안채를 들어와 부부의 정을 나누었다면 적어도 아들을 하나쯤은 더 있을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과 다정한 말 한마디 나누어 본 기억이 없는 남편에 대한 서운함이 쌓여 있는 것이었다.
박순분여인은 시아버님이시 김노인이 돌아가시고 나자 집안의 모든 재산권을 당신이 모두 손에 넣는다.
이미 남편은 그 모든 것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또한 아들 주성은 아직 나이가 어리다는 핑계로 모든 재산을
당신이 거머쥐고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조차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는다.
김노인이 쥐고 있던 재산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이다.
논밭과 전답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으나 영주 시내의 건물이 남편의 명의로 되어 있어
그곳에서 나오는 임대료만 하더라도 상당한 액수가 되는 것이었고
은행에 예치되어 있는 금액만도 박순분여인으로서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금액이었다.
김노인은 매달 정기적으로 며느리에게 생활비를 주고 있었다.
그 생활비도 웬만한 집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큰 금액이었다.
그러나 워낙 드나드는 손님들이 많고 대소사의 경비가 만만치 않기에
그다지 많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박순분여인은 모든 경제권을 쥐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큰 소리를 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서울에다 아들을 위해 아파트를 구입해 주는 것은 아무런 일도 아니다.
가을이면 매년 들어오는 수익금 또한 만만치 않은 것이다.
박순분여인은 주성이의 아파트를 구입해 주기 위해 서울 나들이를 한다.
며느리에게 맡길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는 박순분여인은
자신이 아들과 둘이서 아파트를 구입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는 것이다.
다행히 새로 신축이 끝난 삼십 여 평대의 좋은 아파트를 구입한다.
아들이 혼자서 살아가기에는 조금 크다는 생각도 들지만 만약을 생각해서
손자들이 커 나가면 서울에서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때쯤이면 며느리가 고향에서 살림을 하고
당신이 올라와 아들과 손자들을 돌 볼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인 것이다.
며느리는 고향을 떠날 수가 없는 사람이라고 결정을 짓는 박순분여인이다.
영미는 그런 시어머니가 야속하다.
자신에게는 단 한 마디의 상의도 없이 모자간에 모든 것을 결정짓고
실행을 하는 것이 너무나 야속하지만 그저 벙어리 냉가슴이다.
남편의 서울생활이 영미의 꿈이고 희망이었지만 이젠 모두 사라져버린 허망한 꿈이었다.
영미는 모든 시름과 근심을 잊기 위해 부지런히 일에 매달린다.
온 집안은 시어머니가 살림을 할 때보다도 더 윤이 나고 반들거린다.
모든 사람들이 혀를 내 두를 정도로 영미의 살림솜씨는 시어머니를 능가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 헤프게 퍼 돌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색하게 구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을 적당히 쓸데는 쓰고 아낄 곳은 철저하게 아끼며 사는 영미의 살림솜씨에 정이네도 혀를 내 두른다.
별 말이 없지만 인정이 깊고 생각이 깊은 영미를
그 누구도 무시하지 못하고 영미의 말 한마디라도 정성을 다하는 사람들이다.
영미는 이제 남편의 일을 잊고자 노력을 한다.
어차피 자신이 뜻대로 되지 않는 이상 차라리 포기하고 희망을 거두고 자식을 키우면서
어른들을 공경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도리라고 마음을 다잡는 것이다.
부지런히 일을 하다보며 허전하고 쓸쓸하다는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고
생각을 하면서 잠시도 일손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해야 할 일들은 산더미였다. 이제 봄이 되면 농사철이다.
농사철이 돌아오기 전에 모든 농기구들을 손보기 위해서 또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드나든다.
그 많은 사람들의 식사준비를 해 내는 것만 하더라도 하루 종일의 일이다.
부엌어멈인 정이네와 둘이서 쉬지 않고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루 세끼와 새참을 합하면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아직 농사철이 되지 않아 부엌일을 하는 사람을 부르지 않고 일을 하고 있는 영미의 모습은
마치 일손을 도우러 온 사람처럼 허름하고 간편한 차림을 하고 몸을 잽싸게 놀리며 일을 하는 것이다.
아들 둘을 한창 손이 가야만 하는 시기였지만 영미는 아이들을 멋대로 놀도록 내 버려둔다.
너무 끌어안고 키우다 보면 자립심이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박순분여인은 두 손자들을 애지중지 오냐오냐 떠받든다.
“어무이! 아들은 걍 놀도록 해 주이소!“
“야야! 무신 그런 말을 하고 있노?
야들이 으떤 아들인지 니 알고나 있노?“
박순분여인은 영미의 말에 펄쩍 뛴다.
“어무이! 귀하고 소중한 아들일수록 막 키운다 안캅니꺼?
너무 귀애하믄 버릇도 없어지고 자립심도 없어진다 캅니더!“
“쓰잘데기 읍는 말을 하덜 말그라!
누가 뭐라캐도 우리집안을 이어나갈 귀한 아들이니라!“
박순분여인은 며느리가 그럴수록 더욱 아이들에게 집착을 한다.
잠시도 아이들끼리 놔두지 않고 하루 종일 당신의 품안에 끼고 도신다.
바라보기만 해도 든든하고 사랑스러운 손자들이다.
그러나 아무리 손자들이 사랑스럽고 귀엽다 해도 아들 주성이에 비할 바가 아니다.
박순분여인은 주성이의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모두 들어준다.
서울에 아파트를 구입을 하고 나서 살림을 채우느라
분주하게 서울을 오가는 박순분여인이다.
어느 것 단 한 가지도 며느리에게 맡기지 않고
당신 손으로 직접 모든 것들을 채워주고 마련을 해 주신다.
주성이는 그것이 당연하고 마땅하다는 듯이 아내인 영미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무엇이든 어머니와 의논을 하는 것이다.
주성이의 머리에 아내란 존재는 집안을 위해 대를 잇고
집안의 모든 살림을 맡아서 말없이 해 나가는 존재인 것이다.
집안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말없이 있어주는 사람이
바로 아내라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주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