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회 고흥 청소년 백일장, 심사평
1.
겨울이 들어서고 곧 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이 며칠 남지 않았는데 비가 내려 남도땅 고흥의 온 산자락과 거리의 나무들이 계절의 마지막으로 치달을 때, 고흥 교육가족 한마당, 행사의 한 부분으로 청소년 백일장 대회를「고흥작가회」이름으로 2회째 치루게 되어 너무나 좋았습니다. 작년보다는 참여한 학생이 더 적었지만 많고 적음에 문제가 되겠습니까. 이제 해를 거듭할수록 이 행사의 질이나 양이 더욱 튼실하게 뿌리내려가며 풍성해질 것이라 생각하며 내심 뿌듯했습니다.
한편 이 행사를 치루며 햑생들에게 무어라 말 할 수 없는 죄책감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밖의 세상이, 시회가, 정치가, 권력이, 자본이 한 걸음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어둡고 혼돈의 구렁텅이로 몰아가는데 세상 먼저 태어난 사람들로써 이런 절박한 상황들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데 어느 것 하나 옳게 해결하고 풀어가지 못하고, 또한 시를 쓰는 사람들로써 온몸을 사루어 시에 열정을 쏟아 무언가 일깨운 시 한 편을 쓰지 못하고 참여한 여러 학생에게 쉽게 흰 원고지를 내밀어 주제를 제시하고 단시간에 시 한 편을 완성하여 내라는 이 현실이 마음 또한 편치는 않았습니다.
들과 산과 바다와 살아있는 적나라한 삶터가 아니고 이 닫힌 공간에서 말 없이 초롱한 눈망울들 굴리며 자기의 얘기, 자기만의 시를 써가는 여러분을 보면서 부끄러웠습니다.
2.
이번에는 「마을」과「어린 날」두 주제였지요.
쉬울 것 같으면서도 가장 어려운 제목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삶터가 어디엔가는 있을테고, 그 곳이 어디이든 사람의 성격이나 인품 정신이 결정되기도 할 터인데 마을의 이름을 도로 개념으로 바꿔버리듯이 세상을 점점 규격화 획일화 기계화 시켜버려 그 어디에도 산과 들과 사람이 풍성했던 공동체적인 마을이 사라져버렸는데「마을」이란 시제詩題가 그렇고 또 「어린 날」이 무엇일까 생각하면 눈물겨운 이웃과 산과 들과 친구끼리 웃고 떠들고 온갖 장난질과 눈과 햇빛과 바람과 슬픔과 죽음 등등을 보고 느끼고 몸으로 하나 하나 부데껴가며 어린 날들이 야물어져 마음눈이 트여 갔는데 지금 청소년들에게 어린 날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면 절망스럽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더불어 살았던 자연이 멀어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고흥이란 땅과 산과 들이 다른 지역보다는 덜 훼손되고 파괴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런 것을 보고 느끼며 살아가는 마지막 세대란 생각이 들어 이 두 주제를 정했습니다.
3.
올해는 총 28편이 모였습니다. 한 편의 시가 완성되려면 어떤 사람은 평생이 걸렸다하고 20년이나 10년 1년 한 달도 걸렸다는 시인들 얘기도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주제로 단시간에 한 편으로 완성해서 제출한 여러분이 다 놀랍기도 했습니다.
구체적인 자기만의 생생한 삶을 진솔하게 쓰돠 시의 틀을 갖춘 작품을 찾았습니다. 곧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서 울려나오는 시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작년처럼 쉽게 눈에 띄는 작품이 많지 않았습니다. 1년 사이인데 삶의 모습이나 생각의 틀이 이렇게 얕게 바뀌어 버렸을까란 암담한 생각까지도 했습니다, 사람들의 욕구와 편리에 맞춰 하루게 다르게 아니 순간순간이 다르게 뒤바뀌고 변화 시켜버리는 세상의 욕망에 쉽게 길들여져가나,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의 삶을 근원적으로 되돌아보고 회복 시켜나갈 수 있는 토대인 자연적 환경을 느낄 수 없는 여건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린 날을 쓴 김민서의 장원작품에서 명준영이 쓴 장려상까지 여기에 6섯편 그대로 실습니다. 여기 저기 꼼꼼히 되짚고 이러쿵저러쿵 하고 싶으나, 되짚을수록 할말이 없어질 것 같아 작품만 실습니다.
<장원>
어린 날
김민서 (도덕중 3학년)
어릴 적 새겨두었던 별들이 떠오르고
지쳐있던 발걸음이 가벼워질 때
다시 그곳을 걷고 있었다. 푸른빛의 파도 속에
모든 것이 어렸고 때 묻지 않던 웃음
어린 날 마을을 돌아다니며 놀 때나
찾아볼 수 있었던 그 웃음이 다시 돌아왔다
힘이 들고 지친 발걸음이 생길 때마다
새겨두었던 흔적들이 마음을 부여잡고
푸른 기억을 되새길 때의 다짐을 떠올렸다
푸른 잎의 싱그러움이 묻어나올 때 다시 돌아오리라
새들의 지저귐 소리에 피어오른 노란 물결이 흐를 때
다시 돌아오리라
그런 마음을 새기고 떠난 길속은
막연한 두려움의 연속일 뿐
한 줄기 빛조차 허락되지 못하였다
어른이 되면 좋을 줄 알았던 동심의 조각이
달빛에 비쳐질 때
붉은 열꽃과 푸른 강물이 눈가에 흐르고
나는 그곳으로 걸어나갔다
어린 날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작은 추억들의 편지를 찾으러
<차상>
어린 날
김민영 (고흥고 3학년)
푸른 잎이 낭낭하던 봄은 갔고
새싹 같다 이야기 하던
그때도 없다
여리고 푸른 잎은 나무가 되었다
따스한 햇볕의 다독임을 뒤로 삼고
장대비의 속삭임을 귀에 담아
어린잎의 어린 생각은 붉은 단풍이 들어
여리고 푸른 잎은 나무가 되었다
곧게 뻗은 나무의 어린 날은
그저 푸르고 작은 떡잎이었다는 것을
혹여나 어린잎이 상할까
안절부절못하던 흙과 바람 덕에
뿌리 깊은 나무가 되었다는 것을
마냥 어리던 푸른 잎은 이제
지저귀는 작은 새의 둥지가 되어주고
아파하는 잔가지들을 보듬어 줄 수 있는
크고 든든한 나무가 되었다
<차하>
마을
곽은지 (포두중 2학년)
언젠간 없어지겠지
한 분 한 분 돌아가시고
남는 건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빈집이겠지
할머니들의 화투 치는 소리도
할아버지들의 윷 놓는 소리도 들리지 않겠지
여름이면 매미가 울고
봄이면 꽃이 활짝
가을이면 벼를 베는 농기계 소리가 들리던
우리 마을은
누구 한 명 오지도
눈길조차 주지도 않을 마을이 되겠지
그래 난 다짐하지
내가 태어나고 자랄 때까지
남아준 내 마을 신흥동
잊지 않고 고마워 할 거라고......
<장려상>
어린 날
김보경 (대서중 2학년)
내가 어렸을 땐
모든 게 꽉 차 있었다
돼지바의 빨간 잼도
수박바의 초록 부분도
가득했다
꽃게탕의 꽃게도 가득했고
포카칩의 감자튀김도 가득했다
내가 커버렸을 땐
모든 게 작아져버렸다
<장려상>
마을
장유진 (봉래중 3학년)
조금 더 어릴 때는
밉기만 했던 작은 마을
촌놈이라는 작은 꼬리표 싫어
밉기만 했던 우리 마을
하늘 위 둥둥 떠다니는 뭉게구름
저걸 타고 도망갈까
구름아 나도 데려가
떠나고 싶던 우리 마을
16년 엄마 뱃속부터 오늘까지
나와 함께 지낸 우리 마을
어느새 나도 모르게
정들어버린 우리 마을
밉기만 했던 우리 마을
미움을 준 나에게 선물을 준 우리 마을
구름과 함께 떠나면 꼭 챙기라고
추억 한 보따리 가득 담아준
고마운 우리 마을
먼 훗날 네가 준 선물 바리바리 싸들고
구름 손 잡고 놀러올게
<장려상>
어린 날
명준영 녹동고 1학년
11월 12일 전남대학교에 가서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하고 싶은 공부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 갔습니다.
고맙게도 그 날 만난 네 분 모두가 반겨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같이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 나이에 하고 싶은 걸 일찍 찾았구나, 너 참 멋있다”
학교에서 3학년 진로‧진학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하시기에 갔습니다.
고맙게도 우리 미래에 도움 될 만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너희 나이 대에 최대한 일찍 진로를 찾아야 한다.”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꿈을 찾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멋있다, 얼른 준비해서 꿈을 이루렴.”
우리나이 17살, 20년도 채 살지 못한 어린 날에 어른들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빨리 꿈을 찾아라.”
학교 끝나면 10시, 집에 가면 11시 청춘을 즐길
시간도 없는 우리에게 어른들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청춘을 즐겨라”
지나간 어린 날에, 나는 꿈을 묻는 어른들께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여태껏 뭐했어?”
지나간 어린 날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고
지나간 어린 날, 나는 무얼 했을까요?
꿈을 찾은 나는 저 편에서 친구들을 바라봅니다.
아직 꿈을 찾지 못한 내 친구들을요
어른들은 말합니다. 20년도 다 못 산 우리에게 평생 이룰 꿈을 찾으라고
어른들은 말합니다. 12시간이 넘게 학교에 있는 우리에게 청춘을 즐기라고
그런데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는 당신들은 자신을 위한 꿈이 있냐고
평생을 이룰 꿈이 있냐고.
하지만 나는 입을 다뭅니다. 나는 겁쟁이니까요
그런데 내가 만약 그들에게 묻는다면
어른들도 대답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지나간 어린 날을 부끄러워 할 테지요. (수상작품 끝)
4.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는, 그래서 뭔가 어른들을 일깨워 다시 서게 하고 살게 하는 순수한 무한의 세계를 꿈꿔봅니다. 이런 토대의 세계가 점점 사라져가지만, 사라져갈수록 여기 고흥에서 나고 자란 여러 청소년들이 보이는 밖의 세계를 말하고 또한 자기만의 열정적인 내면의 소리로 한 펀의 글, 오롯한 감동의 시편들이 쏟아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마음껏 표현하고 실천해가며 내면의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표현도구(글쓰기 등) 하나씩은 꼭 가지고 살아가길 간절히 바랍니다. 자기 삶을, 우리네 삶을 근원적으로 되돌아보게 하고 더 나은 삶으로 후끈 들어올리게 할 수 있는 것 말입니다, 그것을 통하여 자신의 진정한 삶을 찾아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겟습니다.
그래서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잘 살아 가야 됨으로
사는 것처럼 살아가야 됨으로
그래 지금부터다.
시작이다, 그대들이여.
2015년 11월 14일 제 2회 청소년 백일장 심사위원 / 고흥작가회
남선현 박부민 김명숙 송만철 박호민 시인
(대표집필 송만철)
(추신) 작품 심사는 고흥 작가회 다섯 회원이 하여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여기 글은 합의한 세세한 기록보다 저 나름의 글이 되어버렸으니 참고하시길....
첫댓글 보성 농민 동지 한 분(잘 알고 지내던 분)이 서울대회 시위도중 근거리에서 쏘아대는 물대포에 맞고 그대로 뒤로 넘어져 뇌진탕으로 쓰러져 수술은 했으나 위독한 상태라 합니다. 마음이 바득거리네요 .글을 차분하게 꼼꼼히 쓰지 못하고 부족함이 많습니다. 그래도 약속한 것이라 서둘러 올립니다. 오늘 또 무슨 일이 있을지.....
만철시인 애쓰셧습니다. 최루탄과 물대포가 사라진 10여년이 있었습니다. 이후 되실아난 것은 정부가 민중을 국민이 아닌 경쟁의 대상이나 적으로 인식하는 것이지요. 주적의 색깔을 입히기 바쁘고, 和는 버리고 同만 강조하는 국정화,자본에 철저하게 머리 숙여버린 ......물대포는 살의를 품은 발사가 아니었나 의심이 듭니다.
수고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