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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1월,
논산훈련소에서 6주간의 신병훈련을 마치자 나는 곧 이어
대전의 육군통신학교에 들어가서 16주간
통신행정, 통신보안, 무선통신운용.... 그리고 2급 비밀 취급에 관한 교육을 받았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 때가 참 좋았습니다.
군대생활이 아니라 마치 대학원과정에서 공부하는 것 같았으니까요.....
그걸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라....
그 육군통신학교의 교가, 군가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백두산 정기받아 이어온 봉우리.........."
지금 생각해도 약간 웃음이 납니다.
아니, 만주의 백두산과 대전의 육군통신학교가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그래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겁도 없이 <학교장과의 대화> 시간에
"도대체 만주벌판의 백두산이 대전의 육군통신학교와 무슨 상관입니까 ?
산이라 하면 백두산을 끌어다 붙이는 것도 事大主義아닙니까 ?"했더니
우리 한광수제독님 만큼이나 점잖으신
학교장, 육군 준장께서는 그저 말없이 웃기만 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실로,
우리에게서 백두산말고 다른 산은 없는 것입니다.
백두산은 우리의 최고의 가치요 이상이었습니다.
자,
백두산 사대주의든, 백두산 콤플렉스가 되었든
백두산 예찬은 우리 민족의 오랜, 보편적인 정서입니다.
1926년 백두산을 등정하고 나서 <백두산 근참기>를 쓰신
六堂 崔南善선생은 대표적인 백두산 예찬론자입니다.
젊은 날, <기미독립선언서>를 쓴 공로(?)로 체포되어 감옥살이도 했던 六堂선생이
후에 친일로 돌아섰다는 것은 좀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가 어느 날 종로거리를 지나다가
민족대표 33인 중의 하나로서 강골로 유명한 卍海, 韓龍雲을 만났습니다.
六堂이 "안녕하세요 ? 만해선생 !"하고 인사를 하는데도
만해는 六堂을 물끄러미 쳐다볼 뿐 대답이 없습니다.
그리고는 오히려 묻습니다. "네 놈은 누구인고 ?"
"만해 선생, 왜 그러십니까 ? 저 六堂입니다."
그러자 만해는 처연하게 말합니다.
"내가 아는 六堂은 이미 오래 전에 죽었거늘, 네 놈은 웬 六堂이뇨 ?"
六堂의 배신을 책망하는 말로 이 말을 하면서 울고 있던 만해 한용운이나
그 말을 들으면서 부끄러움에 울던 六堂 모두
가슴 시리고 아픈 역사의 피해자들입니다......
이야기가 엉뚱하게 흘러갔습니다마는
六堂선생은 한 때, 만주의 건국대학에서 교편을 잡은 적이 있으니까
만주사정과 함께 백두산에 대해서도 많은 지식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제가, 지금 중국에 있는 관계로
六堂선생의 <백두산 근참기>는 구할 수가 없지만
저에게 마침, 六堂이 친히 쓰신 <朝鮮의 山水>라는 책이 있습니다.
1947년 서울 東明社에서 출판된 책으로
"조선의 名山", "조선의 江河", "조선의 三海"
그리고 부록으로 "만주의 풍경"이 있는데 116페이지의 작은 책입니다.
해방 직후, 모든 것이 열악하기만 하였던 때 나온 책이어서
종이에, 활자 모두가 당시의 궁핍한 우리 형편을 보여주는데
돋보기로 보아야 겨우 글자가 구별이 갈 정도에,
六堂선생은 당대의 석학이신지라,
한문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있는 데다가
제가 알 수도 없는 한문, 요즘에는 쓰지 않는 한자에,
어투가 요즘과는 다르고 띄어쓰기도 제대로 안 되어
마치 암호를 해독하는 것과 같습니다마는,
우리의 선진이 쓴 백두산에 관한 이야기이니까 한번 같이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원문의 맛을 살리면서 약간의 토와 설명을 달았습니다.)
.....朝鮮은 왼 땅덩어리가 한 커다란 山의 몸뚱이로 생겨서
눈을 떠서 보이는 곳과 손을 드러 가르치는 곳과 발을 내미러 거치는 곳이 죄다 산입니다.
.....얼는 말하면 白頭山이라는 거룩한 山王님이
大陸東方에 고개를 우뚝 쳐 드시고
한편 팔과 한편 다리를 북으로 내미신 것은 滿洲요
다른 편의 팔과 다리를 남으로 빼 드신 것은 朝鮮半島이올시다.
백두산의 왼쪽 수족을 긔운차게 뻗쳐나온 등허리가 곳 小白山, 間白山, 冠帽峰, 白雲山으로
鐵嶺 金剛 雪嶽 五臺山으로 太白 小白 60 峙(치)로 지리산으로
하늘을 뚫고 한라산으로 바다를 눌러서 니른 바 錦繡江山三千里를 지은 것입니다.
여러 줄기가 뻐더나가 중간에 힘줄도 불끈 서고
혹도 툭 불거지고 사마귀 뽀두라치도 다닥다닥 도든 것들이
關北에서는 七寶山일세, 關西에서는 妙香山일세, 海西에서는 九月山일세,
湖西에서는 俗離山일세 嶺南에서는 伽倻山, 湖南에서는 月出山
경성 하나를 앵 둘러서는 북에 三角山, 남에서는 冠岳山이라고 하는 것가튼
비단 바닥의 여러 가지 무늬에 견줄 名山勝地입니다.
조선이란 데를 넓다 하시거나 좁다고 하시거나 제 각금 생각하실 탓이어니와
이러나 저러나 간에 즉불과 백두산의 한편이요
그 주름살 틈에 도회와 촌락이 배여잇고
人間과 衆生이 生死盛衰(생사성쇠)의 연극을 되풀이하고 잇슬 따름입니다.
비유컨대, 조선사람으로서 이 백두산 속에 잇슴을 이져버리는 것은
마치, 물 속의 고기가 물을 이져버리는 것 갓다 할까요.
백두산이 조선과 만주와의 경계점이 되야잇슴은 새삼스레 닐커할 것 업는 일이지마는
넷날 조선과 만주가 한 나라이든 시절에는
그것이 一國의 중앙에 잇서서 배꼽과 갓튼 일을 우리가 항상 생각함이 조흘 것입니다.
요사이 滿鮮一如(만선일여... 만주와 조선은 하나이니라 하는 뜻) 라는 말이
엇더한 동기에 나온 것은 별문제로 하고
영원한 약속 하에 잇다 할 조선과 만주의 일체화는
언제든지 백두산을 거멀못으로 해서 실현될 것이 무론입니다.
백두산은 이렇게 과거의 긴 역사상에서 뿐 아니라
장래 무궁한 동방의 역사에 대하야도 한결가치 중대한 임무를 짊어지고 잇습니다.
백두산의 상상봉이 표고 9050척으로서
세계에는 이보담 놉흔 산이 허다히 만흠은 사실이지마는
동 대륙의 가장 오랜 역사와 함께 세상에 이름을 나태내야서
爾來累千年(이래 누천년)간에 줄곳 세계 일방에 잇는 허다한 민족의 최고숭배를 밧고
여러 왕조와 제국을 길러내기를 백두산처럼 한 神聖한 山嶽은
아모 데서도 유례를 볼 수 없습니다.
무론 다른 데도 聖山이란 것이 만히 잇지요.
그러나 대개는 종교적 의미의 것들입니다.
혹시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는 것도 업지안치요.
그러나 어느 한나라 또 한 민족에 대한 관계에 그침이 통례입니다.
그것들에 비하야 백두산은 古今을 일관하고 彼我(피아)를 초월하야
일방 역사의 추진력과 轉換創造點(전환창조점) 노릇을 하는 점에서
독특 탁월한 가지를 지니고 잇습니다.
백두산의 놉히를 넷날에는 잇수로 표현해서 2백리라고 하얏습니다.
꼭 그럿습니다.
대저 백두산이라는 산은 오른다기 보담
들어간다고 함이 올흘만치 천체가 편편민듯하게 생겨서
약간 손질할진대, 산의 上上峰까지도 자동차를 몰고 올라가기가 어렵지 안치마는
여하간 산기슭에서 배를 타고 가슴을 허위고
니마를 더듬어서 정수리까지 이르는 동안이 한 2백리 되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20년 전 조선편으로부터 내가 백두산을 오를 때에는
산중에서 사흘밤을 한둔해 자고 나흘 째 되는 아츰에 상봉으로 올라갓섯는데
올에 만주편으로부터 올라갓든 이의 말을 들으매 역시 수삼일 한둔을 햇드라 합니다.
이 모양으로 어듸로서 올라가든지 수백리 里程(이정)이 되기는 매 한가지입니다.
뚫고 나가는 동안 수백리 씩 되는 펀한 바닥이 산의 사방에 쭉 둘러잇서서
이것을 千里天坪이라고 니릅니다.
千里라 하면 퍽 먼듯하고
이러한 큰 벌이 산중에 잇다 하면 거짓말 가틀지 모르지마는
사실은 백두산의 주위가 단 천리 뿐 아니니까
天坪의 실제 리수는 천리에 그치지 아니함이 무론입니다.
이 한 점으로써 백두산 덩어리가 어떻게 嚴威(엄위)함을 짐작할 것입니다.
아실 바와 가치 백두산은 地中으로부터 불끈 소사서 생긴 화산이요
화산에는 민틋 벗버스름한 오질합이 커다랗게 형성되는 법인데
백두산에서는 이것을
天坪, 하늘이 만드러 노흐신 벌판이라고 네로부터 이름지어오는 것입니다.
山中開野라는 것이 만히 잇고
지리산가튼 데는 넷날에는 雲峰(운봉)이라는 한 고을이
그 한골자군이 속에 들어 잇슨 예도 잇지마는
백두산의 불러 맨 치마자락 속에는 커다란 나라가 몇씩 숨어 잇슴이 예사이든 것입니다.
산이라 하면 짝달라부튼 골짜구니가 격지격지 서로 막히고
위태위태한 바위들이 얼른하면 니마빡이를 마조 때리려하는 광경을 연상하기 쉽지마는
백두산의 산 됨됨이는 그런 따위의 좀상스러운 산들하고는
근본구성이 원체 딴판입니다.
고개를 놉히 들어 구름을 뒤집어 쓴 것은 영웅의 稟稟(품품)한 긔상이요
가슴을 춸짝 풀어헤쳐서 틔끌만큼 숨김이 업슴은 대장부의 당당한 태도요
누구보담 놉흐면서도
올라가는 이로 하야곰 더위잡기 어려운 생각을 가지지 안케하고
한업시 크면서도 남의 긔를 질르는 비치 조곰도 업슴은
大聖人의 하늘갓고 바다가튼 도량이라 할까요.
잔말 제치고 거룩할 사, 백두여 하는 수밧게 업는 지대한 존재입니다.
백두산은 무론 고산이니까 그 놉흔 부분은 기온이 매우 나집니다.
양력7월 보름께로부터 8월 보름께까지의 약 일개월 동안이 녀름이요
그 남아지는 일은 봄, 느진 가을이 약간이요 대부분이 겨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의 경험으로 볼 시라도 8월 초생,
下界(하계)로 말하면 중복 허리로 한 참 쇠가 녹는다는 더위의 마루턱에
백두산을 오르는데 낮에 벼치 낫을 때에는
더웁기가 별로 下界와 틀리지 안는 상 부르지마는
구름이 볏츨 가리기만 하면 벌서 서늘한 긔운이 얼골을 스쳐가고
흐린 날이면 가을 날씨와 가트며
밤에 한둔을 할 때에는 두꺼운 담뇨나 털가죽을 뒤집어쓰고 자도
밤이 드는 대로 으스스하야지다가
새벽 머리에는 "에이 치웟 !"소리가 제절로 나오며
漸洗(점세... 아마 세수한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하고
밥을 짓자면 샘물이 어름과 가타서 손을 담그기 어려울 만 합니다.
조선에 고산이 만타지마는
우리는 백두산중 이상의 더위를 완전히 이져버리게 할 곳,
아니 녀름에도 겨울 맛을 날게 할 곳은 다시 업스리라고 생각합니다.
백두산 올라가는 중턱이 채 되지 못하는 곳에 三池라고 하야
커다란 늡히 셋이 느런히 노히고
멀리는 高峰峻嶺이 긔세잇게 둘리고 갓가히는 喬木密林이 안옥하게 휩싸고
늡 가에는 백사장이 지고
늡 속에는 기암괴석이 자미잇게 벌려 잇서서
웅대한 중에 溫藉(온자)를 겸하고 闊遠(활원)한 속에 雅談(아담)을 담은
一大勝景(일대승경)이 솜씨 잇는 큰 화폭처럼 펼쳐 잇습니다.
이 시원씩씩한 풍경이 산 속에 전개하얏기 때문에 더욱 신기합니다.
또 녀름이 겨울가튼 백두산이어늘 三池의 물은 결코 자지 아니하야서
아츰에 일어나서 보면 김이 무럭무럭 올라오고
벍어벗고 드러가서 목욕을 하면 차도 덥도 안흔 것이 가장 기분을 상쾌하게 합니다.
이것은 대개 부근에 온천이 소사서 이리로 흘러 드러와서 석기는 까닭이겟지마는
백두산 풍경의 또 한 가지 신기한 조건입니다.
여하간, 이 온천줄기를 차져서 따로 욕탕의 설비를 하고
靈山(영산)에 相應(상응)한 경건한 산장가튼 것을 지어 놀 것 가트면
안흐로 국민심신의 단련도장으로 쓰기에나
밧게 대하야 瑞西(서서..... 스위스를 한문으로는 瑞西라고 합니다.)
이외의 일대 관광지로 세계 사람을 끌어오기에나 다 적합할 요소가 구비하야 잇습니다.
나는 이것을 20년 전부터 말하고 잇거니와
조만간 반드시 그 실현을 볼 줄 확신하는 바입니다.
백두산 꼭닥이에 天池라는 큰 늡히 잇서
넷말에는 그 주위가 2백이라 하기도 하고
근래 속간에는 80리라는 말을 만히 밋지마는
실측한 결과로 약 30리內外 됨을 알앗습니다.
넷날 백두산이 화산이요
화산에는 火口湖란 것이 따라 다니는 것을 분명히 할지 못할 때에는
이 놉흔 山上에 大潭(대담...., 큰 연못이란 뜻)이 어떠케 신비적으로 생각되얏든지
진실로 상상이상이얏습니다.
그러나 내가 장군봉 머리에 서서
독특한 파란 빗츨 띄운 휘우둥한 천비 물을 굽어 볼 때에는
일즉이 대지의 억누를 수 업는 노염이 싯벍언 불결이 되야
북바쳐나오든 입이 다시 오는 뒷날까지의 침묵을 식히노라
짐짓 재갈을 물고 잇거니 하는 늣김을 금치 못하얏습니다.
이 생각을 할 때에 몸서리와 함께 염통과 쓸개까지가 써늘해짐을 알앗습니다.
그리고 어느 해의 삼복염천에라도 그 때를 돌이켜 생각하면
아모러한 더위라도 그만 살아지는 경력을 하고 잇습니다.
백두산의 天池가 東으로 또쳐 豆滿江이고
西으로 흘러서 鴨綠江이 된다고 하지마는
이것은 사실이 아니며
다만 북으로 넘어가서 松花江(송화강)이 되는 것만이 사실인데
이 넘어가는 목시 750척 긴 폭포가 되야서 서늘한 맛이
大地(대지)를 덥흘만 하다 하겟지마는 이것은 만주 짝의 일이매
여긔서는 모르는 체 알 밧게요.........
첫댓글 목사님의 해박한 지식과 정연한 논리에 입이 벌어져...쭈아악...닫히지 못합니다. 탄복 또 탄복. 공부 많이합니다.
조 중 동아 일보 한켠에 양목사님 코너를 하나 만들자고 건의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박식한 지식을 우리들만 읽기가 아깝군요.
왜 이러세요, 두분.... 김점식 선생님은 비향기 태울 생각 마시고 글이나 올려 줘요... 한광수제독님, 가명으로 들어온 바이러스같은 사람들 모두 사살시켜벼렸습니다.
'충청문화'에 양목사의 칼럼난을 설정해서 계속 중국의 소식을 전국민에게 알리고 싶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