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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군 금천면 임당리 마을 입구 우측에 옛 고가의 건물을 볼 수 있는데 임란 때의 무관(武官)으로 선조(宣祖) 임금을 호종(扈從)한 박경신(朴慶新)과 역시 임란에 의병(義兵)을 일으켜 청도 지역에서 활약하였던 그의 쌍둥이 아들 지남(智男), 철남(哲男)을 배향하고자 그 후손들이 지은 임호서원(林湖書院)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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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경신은 밀성박씨로 1539년 9월 9일(조선중종34년)출생하여 자는 중선(中宣)이며 호는 삼우정(三友亭)이다. 31세 때 무과 초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복시에 급제를 하였다. 그 후 삼우정은 35세 때 장원급제를 하여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선조를 호위하여 피란길에 올랐고, 그의 쌍둥이 아들 지남, 철남과 함께 청도에서 의병을 일으켜 청도를 지켰으며 1594년 6월 5일 56세로 순직을 하였다. 임란 후 선무원종공신1등, 호성원정공신2등에 올랐다.
2) 장남인 지남은 1565년 출생하여 자를 인경(仁卿) 호는 계애(溪崖)라 하였는데, 부친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청도 등 인근의 전투에 참여하였으며 선무원종공신2등에 올랐는데 후손들이 그 충절을 기리어 본래 임호서원 뒤 경의사(景義祠)에 배향하였고, 그의 동생인 철남은 지남의 쌍둥이 동생으로 아버지 박경신, 형 지남과 함께 의병에 참여를 하였으므로 또한 형과 함께 선무원종공신2등에 올라 삼부자가 함께 경의사에 모서졌는데 나중에 후손들이 임호서원을 지어 삼부자를 함께 배향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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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 초입에는 최근 또 삼우정 삼부자를 기리는 비석과 함께 나라에서 내린 각종 공신녹권(功臣錄券) 등 보물(寶物, 제1237호)로 지정된 포상문서 ‘밀성박씨삼우정파 종중소장문적(密城朴氏三友亭派宗中所藏文籍)’을 보관하기 위한 건물로 경의관(景義館)을 지었는데, 그 고문서의 내용은 선무원종공신록권을 위한 인증서격의 절지수((節紙受) 13매와 삼우정 박경신에게 내려진 선무원종공신록권 1책과 순조 년간 박경신 부부에게 내려진 교지 2매와 그의 모친 장씨가 장원급제를 축하하는 별급문기 1매 등이다.
밀성박씨 삼우정파 종중소장문적(密城朴氏三友亭派宗中所藏文籍.보물 제1237호.경북 청도군 금천면 명포길 294-5 임호서원 )
이 유물들은 밀성박씨문중의 삼우정 박경신(三友亭 朴慶新)과 그의 두 아들인 지남(智男)·철남(哲男)에게 내린 포상 문서인 선무원종공신록훈인증서(宣武原從功臣錄勳認證書)13매와 박경신에게 내사된 선무원종공신록권1책, 순조년간 박경신부부에게 증직(贈職)된 교지(敎旨)2매, 조선 선조12년(1579년 萬曆7) 박경신의 무과전시장원(武科殿試壯元)을 축하하기 위해 모친 장씨(張氏)가 급여(給與)한 별급문기(別給文記)1매 등이다. 박경신은 조선 중종 34년(1539년) 9월 9일 태어났으며, 자는 중선(仲宣), 호는 삼우정(三友亭)이고 본관은 밀성(密城)이다. 고려조 태사공(太師公)이었던 박언부(朴彦孚)의 후손으로 우당 박융(憂堂 朴融)의 6대손 이다. 31세 때 선조 2년(1569) 무과초시(武科初試)에 합격하고 이듬해 복시(覆試)에 급제했으며 3년후인 35세 때(선조6년 1573년) 전시(殿試)에서 1등으로 장원급제하였다. 이후 여절교위훈련원판관(勵節校尉訓鍊院判官). 선천병마첨절제사(宣川兵馬僉節制使) 정략장군훈련원첨정(定略將軍訓鍊院僉正). 양근병마동첨절제사(楊根兵馬同僉節制使) 등에 제수(除受)되었으며, 임란 때 선조를 호위하여 피난하고, 청도에서 두 아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왜병을 물리치고 청도를 수비하였다. 임란 후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1등, 호성원종공신(扈聖原從功臣)2등에 책훈(策勳)되었고 임호서원에 배향(配享)되었다. 장남 지남(智男1565∼1626)은 자를 인경(仁卿), 호를 계애(溪崖)라하고 부친의 의병창의에 가담하여 청도·밀양·영천·경주 등지의 전투에 참전했다. 무과에 급제하였고 임란 후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2등에 책훈(策勳) 되었으며, 임호서원 경의사(景義祠)에 배향(配享)되고 있다. 철남(哲男1565∼1611)은 지남(智男)의 쌍둥이 동생으로 부친과 함께 청도·밀양 등지에서 3부자가 함께 의병에 참여하여 많은 전공을 세웠으며 사복사 사복(司僕寺 司僕)·금위영 천총(禁衛營 千摠)을 역임하였다. 부친·형과 함께 임란 후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2등에 책훈(策勳)되었으며 임호서원에 배향(配享)되고있다. 절지수(節紙受)는 13매 43× 55㎝로 저지(楮紙) 필사본(筆寫本) 낱장이며 발급년대는 만력20년(선조25년1592) 11월 17일∼만력21년(1593년) 3월 12일이다. 이 문서들은 박경신 등 3부자의 전공에 대한 포상(褒賞)으로 박경신의 것이 8매, 아들 지남은 2매, 철남은 3매등 총 13매가 전한다. 문서마다 "형조지인(刑曹之印)"이란 도장이 3곳에 날인되어 있다. 이들 13매의 절지수는 겸순찰사(兼巡察使)의 수결(手決)이 문서마다 동일한 것으로 보아 같은 순찰사에 의해 발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선무원종공신록권(宣武原從功臣錄券)은 1책(34.3×22cm) 저지(楮紙)로 조선 선조38년(1605)강행된 것으로 총104장(30×18.8cm), 11행 21자, 공신도감(功臣都鑑)에서 편찬되었고 시명지보(施命之寶)가 찍혀있다. 이 녹권(錄券)은 선무원종공신1등인 행부사(行府使) 박경신에게 내린 내사본(內賜本)이다. 교지(敎旨)는 2매(①73×90 ② 64 ×90)로 저지, 필사본, 낱장이다. 이문서는 박경신과 부인예씨(芮氏)에게 내린 증직교지(贈職敎旨)로 순조16년(1816) 8월 발급된 것으로 조선왕조실록 순조16년 7월조에 "故府使朴慶新 故縣監慶傳 故僉正慶胤 等 贈之從之以一門三人 討倭著功也"(고부사박경신 고현감경전 고첨정경윤 등 증지종지이일문삼인 토왜저공야)라 하여 임진왜란 때 공훈이 있어 증직(贈職)하는 기사가 실려있다. 별급기(別級記)는 1매(95 ×55)로 저지, 필사본, 낱장이며 만력7년(선조12:1579) 7月11日에 발급된 문서로 기묘년(선조12년:1579) 7월 11일 모친 장씨(張氏)가 차자(次子)인 박경신(朴慶新)에게 무과에 연거푸 급제한 것을 축하하며 포상하는 별급 문서이다.(청도군청 자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