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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丈 夫 恨
대장부 허랑(虛浪)하여 부귀 공명을 하직하고
삼척동(三尺童) 일필려(一匹驢)로 승지강산(勝地江山) 유람할 제
진시황(1) 고국지(古國趾)와 만리장성(2) 아방궁(阿房宮)과(3)
봉황대(鳳凰臺)(4) 황금대(黃金臺)며(5)
한무제(漢武帝) 천추유적(千秋遺跡)
선인장(仙人掌) 승로반(承露盤)과(6)
오수당월노채송(吳隨唐越魯蔡宋) 도읍터를
다 본 후에
강산이 기진하되 호흥(豪興)이 상존(尙存)하여
옥란간(玉欄干)에 높이 올라 인호상이자작(引壺觴而自酌)(7) 후
한단침(邯鄲枕)(8) 돋우 베고 장주호접(莊周蝴蝶)(9) 잠깐 되니
꿈이 또한 생시같이 우수(右手)를 높이 들어
소상반죽(瀟湘斑竹) 둘러 짚고 녹수청산(綠水靑山) 들어가니
산용수세(山容水勢)도 좋거니와
초목 무성 아름답다.
층층한 절벽상에 낙화로 자리하고
고금영웅 문장 열사
은일호탕(隱逸豪蕩) 절대가인(絶代佳人)
훤화(喧화)하여 앉았는데
좌상(座上)에 계신 손님 누구누구 모였던고.
천하 장상 풍운영무(風雲英武)
사군무양(事君無讓) 고요직설(皐陶稷契)(10)
만고충신 용방(龍방)(11) 비간(比干)(12)
제일 총명(聰明) 사광(師曠)이며(13)
용병여신(用兵如神)(14) 사마양저(司馬穰저)(15)
지절(志節) 높은 백이 숙제(伯夷叔齊)(16)
효친양지(孝親養志) 증자(曾子)(17) 맹종(孟宗)(18)
검무일수(劍舞一手) 항장(項莊)이며(19)
추풍강동(秋風江東) 장한(張翰)이며(20)
오호범주(五湖泛舟)(21) 범상공(范相公)과(22)
기주(嗜酒)하던 유영(劉伶)이며(23)
애월(愛月)하던 이태백(李太白)이(24)
첩첩이구(첩첩利口)(25) 소진(蘇秦)(26) 장의(張儀)(27)
일변(一邊)에 앉았는데
영웅 호걸 모인 곳에 일등 미색 둘러 있네
매희(妹姬)(28) 달기(달己)(29) 하희(夏姬)(30) 서시(西施)(31)
포사(褒사)(32) 당명황(唐明皇)의(33) 양귀비(楊貴妃)(34)
식부인(息夫人)(35) 채문희(蔡文姬)(36)
오강낙루(烏江落淚) 우미인(虞美人)(37)
경국경성(傾國傾城) 영웅 절색(英雄絶色)이 모인 곳에
경치 무궁 기이하다.
수천장(數千丈) 걸린 폭포 의시은하낙구천(疑是銀河落九天)이요(38)
백만 길 높은 봉은 청천삭출금부용(靑天削出金芙蓉)이라(39)
백로(白鷺) 백구(白鷗) 부안(鳧雁)들은
도화유수(桃花流水)에 떠서 놀고
난봉(鸞鳳) 공작(孔雀) 청학(靑鶴) 백학(白鶴)
두견(杜鵑) 앵무(鸚鵡)는 만학천봉에 왕래한다.
춘주(春酒)나 먹으리라. 백옥반(白玉盤) 경골준(鯨骨樽)에
제일 산채(山菜) 불로초(不老草)며
일등 해물(海物) 설리어(雪鯉魚)를 가득히 담아놓고
좌상에 앉은 손께 순배(巡杯)없이 권할 적에
전계어부(前溪漁夫) 애내성(애乃聲)에(40)
남가일몽(南柯一夢)(41) 흩어지니 어화 애닯도다
대장부 평생 뜻을 꿈에도 못 이루어
긴한숨 짧은 탄식 어느 때나 그쳐 볼까나.
【解 說】
이 <장부한(丈夫恨)>이란 단가는 다른 것에 비해 조금 이채롭다.
이것은 명승과 고적을 두루 돌고 또 고금(古今)의 영웅·열사·은일(隱逸)·문장·장상(將相)·충신·효자(孝子)·미색(美色)들과 자리를 같이 하고 경치 또한 아름다운 곳이어서 제일 좋은 산나물과 산해진미로 한잔 먹고 즐기다가 깨어 보니
꿈이어서 장부의 한이라고 한 것이다. 대개 단가(短歌)는 같은 말이 되풀이되어 나오는데 <장부한> 역시 만리장성이며, 아방궁·백이숙제·사마양저(司馬穰저)·항장(項莊)·범상공(范相公) 등등 여러번 설명한 사람이나 사물들이 반복된다.
여기 처음으로 나오는 달기(달己)·포사(褒사) 같은 여인은 얼굴은 비록 미모였으나 마음씨가 곱지 못한 요화(妖花)들이다. 이렇게 인물들을 재치 있게 나열하여 꾸며진 노래이다.
註 (1) 秦始皇 <不須嚬> 註 (21) 참조.
(2) 萬里長城 <不須嚬> 註 (23) 참조.
(3) 阿房宮 <不須嚬> 註 (22) 참조.
(4) 鳳凰臺 중국 湖南省에 있는 名臺. 李白 詩「鳳凰臺上鳳凰遊 鳳去臺空江自流」
(5) 黃金臺 戰國時代 燕 昭王이 易水東南에 臺를 쌓아서 그 위에 千金을 두고 천하의 어진 선비들을 맞이하였으므로 이름을 黃金臺라 하였음. 後人이 또한 그곳에 築臺하여 京師八景의 하나로서 즉 金臺夕照가 되었다.
(6) 仙人掌 承露盤 漢 武帝가 仙藥을 구하여 仙人掌으로 盤을 들고 甘露를 받기 위하여 銅으로 만든 그릇. <史記> 武帝紀「作相梁 銅柱 承露 仙人掌之屬」註「仙人 以手掌 擎盤 承甘露也」張衡賦「立修莖之仙掌 承雲表之淸露」
(7) 引壺觴而自酌 술을 부어 주는 사람 없이 혼자 따라 마신다는 뜻. <陶淵明歸去來辭>「引壺觴而自酌 眄庭柯而怡顔」
(8) 邯鄲 地名. 列國 때 趙國의 首都. 現 直隸省임. 唐 開元 19년에 道士 呂翁이 邯鄲 邸舍中에서 소년 盧生을 만나니, 盧生이 자신의 곤궁함을 탄식하여서 道士가 주머니 속에서 베개를 내어 주며,「이것을 베면 榮貴를 뜻대로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때 舍主는 누런 좁쌀로 밥을 짖고 있었는데 盧生이 그 베개를 베고 꿈을 꾸니 貴家 崔氏의 딸에게 장가 들어 高位에 올라 영화롭기 비할 데 없었다. 늙어서 고향으로 가고 싶었으나 不許하여 官職에서 죽게 되는 순간, 꿈을 깨니 밥이 덜 익었고 옹이 웃으며「人生事는 이 꿈과 같은 것이라」하였다. 이 꿈을 黃梁夢이라고도 함. 蘇軾 詩「一杯歸誦之 萬事 邯鄲枕」
(9) 莊周 蝴蝶 莊周는 列國 때의 蒙古地方人. 성은 莊, 이름은 周, 字는 子休. 梁 惠王 때 漆園吏가 되었으나 벼슬하는 것이 오히려 비천하다 생각하고 벼슬을 그만두었다. 楚 威王은 百金, 齊 宣王은 千金 幣帛 등으로 그를 맞아 政丞을 삼으려 하였으나 사양하여 벼슬하지 않았다. <南華經>을 지음. 蝴蝶은 莊周가 꿈에 蝴蝶이 되었다가 꿈을 깬 뒤에는 莊周가 되었으니 莊周가 蝴蝶이 되었던가 蝴蝶이 莊周가 되었던가 깨닫지 못한다는 말. <莊子> 齊物論「昔者莊周 夢爲蝴蝶 허허然蝴蝶也 俄然覺則 거거然周也 不知 周之夢 爲蝴蝶與 蝴蝶之夢 爲周與」
(10) 皐陶稷契 堯代 네 사람의 賢臣.
(11) 龍방 夏 桀의 臣下. 姓은 關. 걸에게 直諫하다가 被殺됨. <韓詩外傳>「夏之賢臣 夏桀無道 爲酒池糟丘 龍방極諫 桀囚而殺之」
(12) 比干 殷 紂의 諸父. 紂의 暴虐함을 諫하니 紂가 比干을 미워하여 聖人의 마음에는 七竅 가 있다는데 과연 있나 보자며 比干의 心臟을 꺼내어 죽였음.
(13) 師曠 春秋 때 晋國의 樂師. 耳聽이 뛰어난 자이며, 남의 소리를 들음으로써 능히 吉凶을 점쳤다고 함. <左傳>「晋人聞有楚師 師曠曰 不害 吾驟歌北風 又歌南風 南風不競 多死聲 楚必無功」<孟子>「師曠之聰」
(14) 用兵如神 軍兵을 통솔함에 규율이 엄숙하고 작전에 임하여 神計妙策으로 百戰百勝을 말함.
(15) 司馬穰저 <不須嚬> 註 (8) 참조.
(16) 伯夷 叔齊 <不須嚬> 註 (15) 참조.
(17) 曾子 <不須嚬> 註 (5) 참조.
(18) 孟宗 三國時代 吳의 江夏人. 性이 至孝하였음. 겨울에 老母가 竹筍을 원하여서 孟宗이 竹林에 들어가 슬피 우니 땅 속에서 죽순이 솟아나서 이 죽순을 老母에게 드렸음. <三國誌>「左臺御史孟宗有孝 母性嗜筍 及母亡 冬節 宗 入林哀泣 而筍生 得以供祭祀」
(19) 項莊 <鴻門宴歌> 註 (34) 참조.
(20) 張翰 張使君이라고도 함. 이름은 翰, 字는 季鷹. 吳人. 晋 惠帝 때 사람. 齊王 경(경)이 淸才가 있음을 알고 大司馬 東曹椽을 삼았다. 翰은 秋風이 불어올 때 江東의 菰菜 蓴羹 노魚膾를 뜻깊이 생각하고 탄식하여 말하기를「人生이란 자기 마음에 맞는 생활을 하고 싶지. 뜻아닌 榮名에 구구히 얽매일 필요가 없다」하니 或人이「公은 어찌 一時의 기분만 차리고 身後의 이름은 생각지 않느냐」고 물었다. 翰은「身後의 名譽는 즉시 一杯酒만 못하다」고 대답하고 벼슬을 버리고 江東으로 떠나 갔다 함. 唐詩「張翰江東去 正値秋風時」
(21) 五湖 격·조·射·貴·大湖 등 다섯 湖水를 말함. 또한 太湖의 別名이기도 함.
(22) 范相公 이름은 려, 字는 少伯. 楚 宛三戶人. 越王 句踐을 도와 吳를 멸하였음. 그 뒤 大名之下에는 오래 살기 어렵다 하며 세상을 피하여 배에 西施를 태워 西湖로 떠나가서 스스로 치夷子라 일컫고 父子가 致財하였다가 그 財物을 散盡하고 또 陶에 가서 號를 陶朱公이라 일컫고, 다시 巨萬金을 致財하여 大富豪가 되었다. 王이 工人에게 명하여 金으로 그 像을 새기게 하여 朝禮하였다고 함. <吳越春秋>「苧蘿山若耶溪傍 有東施家 西施家 西施色美 范려獻 之吳王 其後吳滅 려復取西施乘扁舟 遊西湖而不返」
(23) 劉伶 字는 伯倫. 晋 沛國人. 벼슬은 建威將軍. 竹林七賢 중의 한 사람. 늘 술을 사랑하여 酒德頌을 짖고 언제나 下人에게 삽을 메고 따라 다니게 하고「언제 어느 곳에서 죽을는지 모르니 죽은 곳에 묻히기 위함이라」하였다. (荷삽隨之)
(24) 李太白 <不須嚬> 註 (38) 참조.
(25) 첩첩利口 나불나불 지껄이는 입.
(26) 蘇秦 <不須嚬> 註 (16) 참조.
(27) 張儀 <不須嚬> 註 (17) 참조.
(28) 妹姬 桀의 妃. 一名 末喜. 有施氏의 딸로 아름다웠으나 本性이 간사하였으며, 桀이 총애하여 그의 奸言을 좇으니 결국 나라는 망하고 桀과 같이 南巢에서 죽었음.
(29) 달己 殷나라 마지막 임금인 紂의 寵姬. 간사하여 酷刑을 가하여 賢臣을 학살케하고 酒池肉林을 만들게 하고 極度의 豪奢를 일삼다가 周 武王에게 討伐되었으며, 스스로 불에 타 죽었다.
(30) 夏姬 春秋 때 鄭國의 美女. 夏徵舒의 母.
(31) 西施 <不須嚬> 註 (40) 참조.
(32) 褒사 周 幽王의 寵姬. 평소에 잘 웃지 않아서 王은 웃기려고 갖은 애를 썼다.褒사가 비단 찢는 소리를 좋아해서 깁비단을 수없이 찢게 해 그 뜻을 맞추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戰亂이 없는데도 공연히 烽火를 들어 諸侯가 놀라 모여들게 하였을 때 비로소 크게웃었다 한다. 그 뒤 犬戎의 侵犯 때 烽火를 올려도 諸侯가 모이지 않아 王과 褒사는 마침내 잡혀 죽었다. [史記]「周幽王之寵姬 不好笑 王悅之萬方 故不笑 乃擧烽燧 以徵諸侯 諸侯至而 無寇 褒사乃大笑後 申侯 與犬戎 攻周幽王 擧烽燧而諸侯不至遂被殺」
(33) 唐明皇 唐 玄宗을 말함. 唐나라 제6대 황제. 초기에는 賢臣을 써서 開元의 治라고 컬어지는 당나라의 隆盛時代를 이루었으나, 晩年에는 奸臣에게 정치를 맡기고 楊貴妃에 빠져 정치를 어지럽혔음. 安祿山의 亂이 일어나자 蜀나라로 피하고, 아들 肅宗에게 자리를 물렸음. [685-762, 在位 712-756].
(34) 楊貴妃 성은 楊, 이름은 太眞. 唐 玄宗의 貴妃. 楊國忠의 從妹. 安祿山의 亂이 일어나 玄宗과 같이 달아나다가 馬嵬驛에서 죽었음.
(35) 息夫人 春秋時代 息侯의 夫人. 姓은 규. 楚가 息國을 멸하고 息규를 楚王의 妾으로 삼으니 息규가 두 아들을 낳고서도 말을 하지 않으므로 楚王이 그 이유를 물은즉「一夫人이 二夫를 섬기니 비록 죽지는 못할망정 어찌 말을 하오리까」라고 대답하였다고 함. 唐詩「看花滿眼淚 不共楚王言」
(36) 蔡文姬 이름은 琰, 字는 文姬. 漢 蔡邕의 딸. 經史에 능통하고, 또 音律을 잘하였다. 일찌기 衛道介의 妻였는데, 北胡에 잡혀 갔다가 在胡 20년에 두 아이를 낳고 胡가 十八拍을 지었다. 그 胡가 소리가 中原에 들려오니 曹操가 듣고 불쌍히 여겨 千金으로 맞바꾸어 歸漢시켜서 董紀와 함께 藍田에 살게 하였음.
(37) 虞美人 <不須嚬> 註 (30) 참조.
(38) 疑是銀河落九天 瀑布의 장려함이 銀河水가 九萬里長天에서 쏟아지는 듯하다는 비유. 李白<廬山瀑布詩>「日照香려生紫煙 遙看瀑布掛長川 飛流直下三千尺 疑是銀河落九天」
(39) 靑天削出金芙蓉 <鎭國名山> 註 (2) 참조.
(40) 애乃聲 船人이 배를 저을 때「어기여차」하고 부르는 노래 소리. 唐詩「漁翁夜傍西岩宿 曉汲淸湘燃楚竹 烟消日出不見人 애乃一聲山水綠」
(41) 南柯一夢 南柯는 郡名인데 渟于분의 故事에서 나온 것이며, 한때의 헛된 富貴를 이르는 말. <異聞集>「淳于분家居廣陵 宅南有古槐樹 醉臥其下 夢 二使者曰 槐安國王 奉邀 분 隨使入穴中 見榜曰大槐安國 其王曰 吾 南柯郡政事不理 屈卿爲守理之 분至郡 凡二十載 使분歸 遂覺因尋古槐下穴 洞然明朗 可容一榻 有一大蟻 乃王也 又尋一穴 直上南柯卽분所守之郡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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