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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에 숙종릉과 왼쪽 매표소사이에 생긴 길은 군부대로 가는 도로임
서오능은 51만평으로 숙종의 인경, 인현 인원 그리고 희빈 장씨까지 4명의 부인과
인수대비 예종의 릉이 있다.
예종(1450 - 1469)과 (1498년 12월 23일에 승하한 안순왕후)릉
휘(諱) 광(晄). 자 명조(明照: 初字 平南). 시호 양도(襄悼). 세조의 제2왕자. 어머니는 파평부원군 윤번의 딸 정희왕후(貞熹王后)이다.
비(妃)는 영의정 한명회(韓明澮)의 딸 장순왕후(章順王后)가 산후풍으로 일찍 죽고 ,
계비는 우의정 한백륜(韓伯倫)의 딸 안순왕후(安順王后)이다
세조는 정희왕후와의 사이에 2남을 두었다. 세조가 즉위하자 18세의 의경 세자가
세자로 책봉되어 왕위를 계승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2년뒤에 아무런 이유없이 죽고 말았다.
차남이 조선 8대 임금 예종이다.
나이어린 예종이 왕위에 오르자 원상과 함께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으로 나랏일을 돌보았다.
정희왕후는 남자처럼 성격이 대담하고 결단력이 있어, 부드러운 예종의 성격과 조화를 이루어
나랏일을 무리없이 해나갈수 있었다. 1469년 삼포에서 왜와의 개별 무역을 금지시켰으며,
세조때 시작한 경국대전을 완성하였다.
안순왕후 릉
남이는 의산군 휘의 아들로, 태종의 외손이다. 어려서부터 활을 잘쏘고 힘이 장사 였다.
남이는 17세에 무과에 장원급제하였다. 그후 세조의 세력을 등에 업고
이시애의 난을 잠재웠으며 압록강 상류까지 원정을 가기도 하였다.
남이의 아래에 유자광이라는 갑사가 있었는데 유자광이었다. 남이가 벼슬을 얻어 승승장구
하는데 비교되는 것이었다. 유자광은 계략을 세워 남이를 제거하기로 하고 계획을 세웠으며
남이가 임금에 오르려 한다는 역모로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으며 죽었다.
예종은 1년 2개월 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왕위에 올라 있었으나 원상제도와 수렴청정으로
제대로 권력을 행사하지도 못하고 1469년 죽음을 맞이했다.
안순왕후능에서 바라본 예종릉
능에서 바라본 정자각 아직 녹지않는 눈이 있어 운치가 있어 보인다.
창릉에 문, 무인석은 3배이상 축소 된점이 아버지의 유언인지....
능을지키는 수호신 호랑이의 덧니가 웃음을 머금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