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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만에 다시 읽는 映山 유현목의 『순교자,Martyr,1965』
장석용(인하대 강사,영화평론)
1.왜 『순교자』인가?
『순교자』는 2004년 10월 1일 예술원에서 기념상영 되었다.
초강 미국과 대적할 떠오르는 파트너 중국은 고구려사를 편입 왜곡하는 동북공정을 감행함으로써 북한을 일단 유사시에 자국에 영토에 편입시킨다는 거대한 음모를 획책하고 있다. 국력이 쇠진 해질대로 쇠진해진 조국 대한민국은 일찍이 대마도를 우리영토의 영향권에 두기를 포기함으로써 해양영토를 축소시킨바 있다.
해상왕 장보고와 일군의 영웅들이 일본 앞 바다에서 베트남에 이르는 해상영토 장악, 호태왕 광개토대왕과 같은 정복군주들이 일군 만리장성 앞까지 개척한 고토 , 드넓은 발해의 터전이 근래에 주은라이가 건드리지 말라고 타일렀던 고구려사는 중국의 후진타오의 발길에 채이고, 갈아엎어지고 있을 때 우리는 침묵밖에 할수 없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연개소문과 양만춘으로 이미지 업 되는 장수들의 지하의 울부짖음이 하늘에 가득한 이지음, 백두산이 장백산으로 빼앗기고, 우리 땅 간도는 간데없이 처단되고 유린되고 있다. 침묵은 김정일 정권을 대변한다. 바로 옆에서 입을 다문 그 비겁함이 우리를 더욱 분노케 만든다. 중국과 일본에 겁탈당한 우리영토가 갈라진 분단 조국의 남쪽에서 다시 남과 북의 대칭점 서울을 버리고 다시 움츠리자고 대전 천도를 획책하는 저급한 책략들을 내세우는 이때 우리는 자신을 희생하고 시대의 아픔을 몸소 감싸 안았던 순교자들을 떠올리게 된다.
선배들의 피로 배불린 자들이 그 피로 자양분을 받아 선조들의 무덤을 파헤치는 경우는 모국을 겁탈한 20세기 초의 왜의 만행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깊이 없이 익힌 수사학들이 우리 조국 발전과 문화 창달 학문 정진에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우리들은 다시 간신척자들과 자기이익을 위해 몸을 움추린 자들을 위해 순교를 해야 한단 말인가?
최고 성직자들의 시대착오적 반민족적 행로를 지적하는 준엄한 꾸짖음에도 딴지를 거는 무리들이 있는 한, 저급한 수준의 순교를 자청한 무리들의 준동이 있는 이 시점에 유현목의 『순교자』는 다시 읽어볼 가치가 있는 작품으로 사려된다. 휴전선 철책 절단사건, 서해대전, 어부들의 그물에 잡힌 잠수함, 우리의 어장을 쌍끌이 하는 중국어선, 엉터리 한․일 어업협정 등을 보며 목숨을 걸고 순교한 사람들이 떠오른 것이다. 정신적으로 순교한 처절한 삶을 연출한 유현목의 작가정신이 살아있는 『순교자』는 그래서 더 소중한 작품으로 부각될 수 밖에 없다.
1925년 황해도 사리원 태생의 유현목 감독은 자신의 저서 『영화인생』에서 나는 ꡐ반공영화를 네 편이나 만들었다ꡑ1)라고 언급했다. 그 네 편은 『악몽,68』,『카인의 후예,68』,『나도 인간이 되련다,69』,『불꽃,75』을 언급한 것이다.
여기에다 평론가 김종원, 변인식이 추가하는 반공영화『순교자,65』와 『장마,79』을 추가하여 필자는 유현목의 반공영화라는 범주에 넣는다.
유현목의 반공영화는 예술가로서의 생존을 위해 이데올로기의 객관성을 국책이라는 틀 속에 방치했다는 비판론과 그 같은 시대상황에서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한국적 정서를 그대로 담고 있다는 동정론이 양존하고 있다.
아직 한국은 북한을 주적으로 삼고 있다. 사실 두 개의 국가로 유엔에 가입되어있는 한반도는 유엔 감시 하에서 남한만 유엔이 통치하에 두었던 유일한 합법정부이다. 그런데도 북쪽의 실체와 속내를 파악하지 않은 채 민족의 동질성이란 테제로 기민하는 집단의 허구적 맹목적 추종에 경계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반공, 허물어야할 벽이지만, 한쪽에서 굳건한 성을 쌓고 있는 한 우리의 ꡐ성벽을 뚫고ꡑ는 유효하다. 동정적 친민족주의는 우리의 삶을 포기하고 민족의 장래를 어둡게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ꡐ반공영화ꡑ라는 장르로 방법론을 찿아 가는 길은 이데올로기와 인간을 찿아 가는 길이다. 도스토옙스키『죄와 벌』은 유현목이 성경처럼 여기는 텍스트나 다름없었다.
중학 시절, 이 소설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회색 톤은 유현목을 유혹하기에 충분했고,이후 프랑스의 피에르 슈날 감독의 『죄와 벌』을 거듭 열 네 번이나 감상한다. 이 한 편의 소설, 이 한 편의 영화는 유감독의 작품, 즉 『오발탄』, 『잉여인간』, 『막차로 온 손님들』, 『사람의 아들』 등의 어두운 톤과 오버랩 된다.
유현목을 이해해 내자면 언급된 작품 속의 ꡐ인간ꡑ을 해석해내고 이론으로서 ꡐ반공영화론ꡑ의 틀을 세우고, 유현목의 반공영화 속의 ꡐ인간ꡑ의 존재인가를 부각시켜야 한다.
초기의 작품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갖춘 『순교자』,『카인의 후예』,『악몽』,『나도 인간이 되련다』,『불꽃』,『장마』다섯 편은 유현목의 반공영화를 읽게 해주는 작품이다. 여기에서 추출된 공통분모는 유현목의 반공영화는 맹목적 목적성을 띈 반공영화가 아니다라는 결론이다. 그래서 그의 첫 반공영화 『순교자』는 그의 정신세계와 시대정신을 읽어내는 텍스트, 콘텍스트가 틀림없다.
유현목의 인생관이 반영된 반공영화 속의 인간은 좌절의 역사 속에 민족과 시대의 대세, 그 도도한 물결 속에 희생된 인간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만들지 않은 이념 속에 가족과 지역이 붕괴되고 인간들이 함몰되어 나간 것이다.
유현목은 ꡐ분단이 빚어낸 전쟁의 참상과 이데올로기의 갈등ꡑ 문제를 소재로 한 영화를 1961년 발표한 『오발탄』에서부터 다루었는데, 그후『순교자』, 『카인의 후예』, 『악몽』,『나도 인간이 되련다』,『불꽃』등을 통해 이어오다가 『장마』로 근 20년에 걸친 이데올로기 영화의 한 매듭을 짓게 되었다.
그래서 유현목은 이를 우회하는 방법으로 『오발탄』에서처럼 많은 역인물과 은유법을 창조해낸 것이다. 기독교 신자이면서도 이면의 폭력과 음주를 생각해내면 반공영화속의 좌우익의 실체는 이데올로기 속의 인간의 허상은 쉽게 깨어질 수 있다.
유현목은 다양한 장르의 예술 견습과 최인규 감독의 『자유만세』,『죄없는 전선』 촬영현장 견습을 거쳐 1955년 이청기 작 『교차로』로 데뷔했다. 리얼리즘 계보에서 이범선 작 『오발탄』이 떠오르듯 나운규, 이규환, 윤봉춘, 최인규와 조우한다.
1960년대는 유현목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시기였다. 50년대에 7편, 70년대에 7편, 80년대에 2편을 만든데 비해 60년대에는 무려 26편이나 연출하였다.
유현목은 이후 작가주의 감독의 틀을 견지하면서 60년대 한국영화의 황금기를 주도했으며, 지속적으로 화제의 작품들을 직조해 내었다. 작품만으로 그를 대하기에는 너무나 인간적 그릇이 크기 때문에 그의 이미지 창고로의 습격은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에 우리의 탐구가 표피적 현상에 머문다 해도 그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가볍게 넘길지 모른다.
유현목은 심리 묘사에서 심오함을 택했고, 그의 영화작품에 새겨있는 통찰력은 사회를 우회해서 읽게 해주는 코드와 암호 역할을 했다. 이강천 감독의 『피아골』로 데뷔한 김진규는 『오발탄』,『순교자』,『카인의 후예』,『나도 인간이 되련다』,『불꽃』등 유현목의 작품에 많이 등장 했었다. 연기 이전에 지극히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그의 얼굴이 갖는 표현성이 좋아 유현목의 영화세계에 가장 적합했던 배우였다고 유감독은 술회한다. 고로 유현목의 작품과 작품세계를 이해하기위해서는 유현목 영화의 전문배우 김진규는 반드시 분석해 내어야 한다. 방황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전쟁'의 허무함과 민족의 운명을 생각하게 된다. 대사와 부문별 디테일이 유현목 특유의 메타퍼를 감지케 한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등장한 반공 극영화 제1호는 6․25동란이 일어나기 전 해인 1949년에 개봉된 韓瀅模 감독의 『城壁을 뚫고』였다.2)분단의 비극과 이데올로기 문제를 리얼리즘 영화 또는 멜로드라마를 통해 본격적으로 제시한 영화작가도 유현목 이다.
유현목의 반공영화들은 주제면에서 ꡐ분단의 비극과 이데올로기ꡑ를 다룬다. 이에 대한 선행 연구는 평론가 변인식의 ꡐ유현목 영화에 나타난 안티 코뮤니즘ꡑ이라는 논문이 있다. 고로 필자는 이 부분을 상당 부분 원용했다.
유현목의 최초의 반공영화『순교자』를 이데올로기, 코드정치가 난무하는 가운데 다시 읽어내는 작업은 상당히 의미가 클 것으로 생각된다.
2. 『순교자』,어떤 영화인가?3)
1965년 합동영화사, 흑백, 134분짜리 유현목의 『순교자』를 ꡐ반공영화ꡑ의 범주로 묶는 것은 약간 무리가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 묘사된 분단 비극과 이념 갈등 등이 등장인물들을 통해 재현되고 있어, 반공영화에 포함시킨다.
김은국의 소설을 영화화한 『순교자』는 이진섭/김강윤 각색에, 심재홍이 촬영했다. 이 작품은 김진규, 남궁원, 장동휘가 각각 주연이다. 실존주의적 인본주의를 다루면서 신의 역할문제를 물으며 신목사가 “신은 없다”고 말하는 장면에 기독교계는 반발했다.
시간적 배경은 1950년 겨울 1․4후퇴 당시, 공간적 배경은 평양의 한 교회, 사건의 배경은 오픈 세트로 처리된다. 핵심 명제사안은 죽음 앞에 놓인 인간들의 신에 대한 태도와 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이며 그래도 인간은 희망/신념이 필요하다고 연출은 역설한다. 이데올로기적 상황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은 반공을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ꡐ유현목의 반공 영화ꡑ는 영화의 예술성과 문학성을 동시에 함유하고 있다. 조국의 이름으로 희생된 인간들, 생존과 인본주의를 바탕에 깐 진실성으로 무장한 유현목표 영화들은 붉은 이데올로기의 선봉을 포기했다.
유현목의 반공영화들은 맹목적인 북한 정규․비정규 군의 비인도적 만행에 대한 묘사를 우회한다. 『순교자』는 기독교 비방 영화가 아니다. 크리스챤 유현목은 『순교자』 제작시 기독교를 비방할 의사를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유현목이 후반부에서 보여준 신앙인의 자세와 천막교회가 이를 입증한다.
“인간을 사랑하시오. 그들을 도와주시오. 절망과 싸우고 언젠가는 죽기 마련인 인간을 불쌍하게 여길 용기와 함께 십자가를 간직하시오”라고 하는 신목사의 설교에 합일되는 비크리스챤 민소령은 휴머니즘의 상징으로 묘사된다. 영화의 결론을 유현목은 영화의 도입부 자막에 둔다. 즉 연역적 방법으로 단정을 먼저하고 입증에 필요한 씬/근거들을 제시한다. 인간들의 내면을 ‘응시’한 유현목이지만 당시 평단은 극적 구조의 산만함과 단순함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국군 정보부장 장 대령(장동휘)은 북한정보국에 의해 체포된 14명의 목사 중 12명이 총살되고 두 명의 생존자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다.
영화는 군군이 동굴 속에 매몰되어 있는 십여 구의 시신을 발굴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공산당의 종교박해 진상파악을 이 대위(남궁원)에게 지시한다. 이 대위는 생존자 신 목사(김진규)와 한 목사(김선영)을 만난다. 신 목사가 진상을 은폐하고 있으며, 한 목사는 정신 이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대위는 추궁에도 불구하고, 신목사가 함구하자 신도들은 한 목사를 규탄한다. 진상은 인민군 정 소좌가 체포됨으로써 밝혀진다. 한 목사는 정신이상이라 살려주었고, 신 목사는 유일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반항했기 때문에 살려주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정 소좌의 폭로대로라면 총살당한 열두 목사들은 목숨을 구걸한 사람이었고, 그 중에는 존경받던 박 목사(전창근)까지도 ꡐ신은 없다ꡑ면서 죽었고 이 광경에 한 목사는 미쳐버렸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ꡐ신은 없다ꡑ고 부르짖으면서도 신앙으로 인간의 절망을 구제해야 한다는 신 목사의 신념은 난동화한 교인들까지 설복시킨다. 배신자로 몰리던 신 목자는 충일한 신앙심으로 ꡐ스스로 십자가를 져야 할 뿐ꡑ이라며 중공군의 남하에도 불구하고 적도 평양에 남아 교인들을 돌본다.
한 때 대학의 인류문화사 강사였던 박 대위는 신앙문제로 아버지인 박 목사와 의절한 사람이다. 선친의 하직에 대해 오히려 안심하고 감사하는 처지이다. 열두 순교자 추도예배를 주선한 장 대령은 대외 선전용으로 성대한 추도식을 거행했다. 이 자리에서 박 대위도 참석하여 ꡐ돌아온 탕아ꡑ로 비유된 신앙간증을 했다.
신 목사는 자학적인 입장에서 솔직하게 참회하는 설교를 했다. 이를 지켜본 이 대위는 격분하여 신 목사에게 다가가, ꡒ당신의 신이 정말 저들의 고난을 알고 있습니까?ꡓ라는 질문을 던졌고, 신 목사는 괴로운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 뒤 이 대위가 재차 신 목사를 찾아가 똑같은 질문을 하자 마침내 신 목사는 무겁게 입을 떼었다.
신 목사가 이 대위에게 털어놓은 속마음(신 목사식 신앙관)은 ꡒ일평생을 깊은 신앙 속에서 살아온 열두 목사가 죽을 때 부정했듯이 신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이 있다고, 영생이 있다고, 사후 심판이 있다고 믿는 어린 양(신도)들에게 목자인 목사가 신이 없다는 걸 말해주면 어떡하겠느냐. 그들에게는 정말 신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끝가지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해주기 위해서는 ꡐ열두 목사들은 모두 신을 굳게 믿고 기쁜 얼굴로 천국에 입성했으며 모든 성도들을 신이 보살펴 주시니 영생의 준비를 하다가 기쁘게 천국에 입국하자ꡑ라고 대중(신도)들에게는 설교해야 된다.ꡓ는 것이다.
여기에 또 한 사람 과거의 일로 고민하는 기독교인인 고 군목이 있다. 그는 신 목사와는 한 고향에 살았던 목사였는데,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한해 전 장 대령이 평양에 침투시킨 특수 부대원들과 정보 연락을 하다가 그들과 함께 남하했는데, 고향 주민들로부터는 교회를 버리고 달아난 배신자이며 더구나 고 군목이 남하할 즈음 그와 행동을 같이 했던 네 명의 젊은 신도가 고 군목의 밀고로 내무서원들에게 잡혀가 모두 총살을 당했다고 믿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진상은 이와 달라서 지금껏 고 군목에게 혐의를 씌었던 강 장로의 아들이 그의 아버지가 믿는 영웅이 아니라 도리어 내무서에 밀고한 배신자였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도 신 목사의 입장은 진실을 은폐하는 것이 은혜롭다는 투로 고 군목에게 충고하여 자신의 괴로움도 털어놓는다. 결국 이 두 사람의 성직자는 평양에 주둔했던 국군과 유엔군이 남쪽으로 후퇴함에 따라 또다시 ꡐ남는 자ꡑ로 선택을 달리하여 갈림길에 선다. 물론 신 목사는 평양의 신도와 민중을 저버릴 수 없어 그곳에 남게 되고, 고 군목은 남하하여 남해의 어느 포구에서 천막교회를 짓고 목회생활을 하게 된다.
평양에서 끝까지 환자들을 돌보던 민 소령(장훈)도 고 목사와 함께 장 대령이 숨겨주었다가 함께 남쪽으로 데리고 나왔다. 그러나 장 대령은 남만주의 해변에 있는 어떤 지점을 공격하다가 전사했다. 장 대령은 그의 신념인 ꡐ우리는 조국을 위해 임무를 다하면 그만이야ꡑ를 실천하며 산화한다.
진상이 밝혀질 때 까지 이 영화는 미스테리 추리극 형식을 취한다. 유현목의 인간과 사회에 성찰은 어둠을 서술하지만 ꡐ죽으면 살리라ꡑ라는 희망을 보여준다. 깊은 주제의식만이 그의 영화 환경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유현목의 작품전개 방식과 독특한 미쟝센은 등장인물들의 내면심리를 탁월하게 부각시킨다
『순교자』는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인 신앙, 수난, 신성, 전쟁, 삶, 체험 등을 정면으로 파헤친 작품이다. 당시 베스트셀러인 소설은 1964년 4원 초판을 찍고 같은 해 11월 중판을 찍으면서 장안의 화제작이 되었다. 장왕록 교수의 번역으로 출관된 『순교자』는 기독교 보수 교단의 심한 반발로 나타났으며 냉철한 이론적 반발보다는 감정적 측면이 많았다.
특히 김은국의 소설은 실존주의 입각해 쓴 소설일 뿐, 종교소설이 아니라는 논지로 그를 옹호하는 글을 쓴 기독교계의 K목사는 반대의 입장에 있는 목사들의 글을 통해서 ꡐ20세기의 가롯 유다ꡑ로 규탄 당했다. 당시 일부 기독교계에서는 『순교자』의 내용이 무신론을 전개시켰고, 친공적(親共的)인 감정을 촉발시킬 위험 요소까지 있다며 공격했다.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확산될 조짐이 보일 무렵, 유현목은 이 소설을 영화화 했다.
평론가 故 최일수는ꡒ이 영화의 감독을 맡은 유현목은 그 자신 신앙심 두터운 기독교인인데, 이 영화의 주인공인 목사가 신의 존재에 회의를 품으면서도 민중의 신앙적인 요구에 따르고자 순교한다는 회의론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무척 고민을 했다고 한다. 그 무렵 (1965)만 해도 실존주의가 세계 사상계의 흐름을 대표하고 있어서 키에르 케고르의 ꡐ신과 인간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ꡑ는 말과 싸르트르의 ꡐ존재하는 것은 모든 선이라고 보는 그리스도의 존재론은 진리가 아니다ꡑ라는 말 등으로 지식인들은 물론 일부 성직자까지도 신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회의를 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유현목 감독은 이러한 회의를 순교를 빌어서 풀어주는 것을 영화의 가장 큰 구심점으로 감아 더불어 그 스스로의 고민도 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처음부터 곧이곧대로 신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만 내세우는 쪽과, 그런가 하면 사리와 분별을 거쳐 스스로의 마음 한 구석에 품고 있는 회의마저도 더없는 깨달음으로 정화시켜 보다 큰 믿음을 얻을 수 있다고 보는 쪽이 있는데, 유 감독은 후자를 따르고 있다ꡓ4)고 함으로써 유현목을 비호했다.
로베르 브레송과 잉마르 베르히만을 정신적으로 사사했던 유현목은 베르히만의 <제7의봉인>에서 표출한 ꡐ죽음의 잿빛 같은 암울한 감각이 빚어낸 배경ꡑ을 높게 평가했다. 백야와도 같은 ꡐ잿빛배경ꡑ에서 베르히만은 신과 인간의 언로를 보여주었다. 생․ 사, 선․ 악, 애․증의 그림자로서 또는 상징적으로 보다 강조되었다.
유현목이 <제7의 봉인>에서 얻어낸 문제는 ꡐ신앙에의 회의와 인간 탐구ꡑ였고, 베르히만의 연출에서 보인 ꡐ생과 사의 심연을 응시ꡑ하는 자세였다. 베르히만이 신과 악마, 현세와 내세의 영혼들 속에서 방황하며 사색하는 캐릭터를 신(사신)과 인간(기사)의 대화와 장기놀이는 유현목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제7의 봉인』이 『순교자』일맥 신통하고 있는 부분은 ꡐ기사는 신에게 고백하고 애원하지만 대답이 없다ꡑ라는 부분이다. 소설 『순교자』는 ꡐ인구 많은 섬 중에서 사람들이 신음하며 상한 자가 부르짖으나 하나님이 그 불의를 보지 아니 하시느니라ꡑ5)라는 성경인용한다. 영화 『순교자』의 테마도 신과 인간의 언로단절을 다루고 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고 목가사가 바위를 망치로 두들기면서 천막교회를 수리하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장면 속에서 알베르 까뮈의 『반항적 인간』에 있는 횔더린의 시 ꡐ엠페도클레스의 죽음ꡑ의 한 구절6)을 암송하는 것으로 끝난다.
영화 『순교자』는 원작에 충실한 영화, 서울에서 5만 정도의 관객을 동원하고, 해방 후 가장 육중한 주제를 다룬 작품이라는 평을 들은 작품이다. 이 영화는 종교영화와는 거리가 먼 작품이다. 원작처럼 영화 『순교자』도 한국의 순교자상을 왜곡 표현하였다고 일부 기독교계의 거친 반발을 산 작품이다. 『순교자』에서 서술된 목사들과 하나님과의 관계 등은 ꡐ영적교섭ꡑ의 ꡐ이어짐ꡑ이나 ꡐ끊어짐ꡑ에 관한 문제 제시였다.
『순교자』의 도입부에는 언덕위에 서 있는 파괴된 교회가 나오고 뼈대만 남은 종탑꼭대기에서 반짝이는 십자가가 하나의 영상으로 보여진다. 물론 교회의 맨 꼭대기를 장식하는 십가자는 ꡐ심볼ꡑ이고, 예배시간 등을 알리는 종탑의 종은 ꡐ시그널ꡑ이다. 동서양의 비쥬얼의 혼재와 통합 테크닉은 감독이 한때 화가 지망생이었던 까닭에 연유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이 종탑이 공습으로 파괴되어 ꡐ인위적 사인ꡑ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 메인 타이틀의 배경으로 설정된 이 종은 부정기적으로 울리기 때문에 이미 ꡐ시그널ꡑ의 역할을 포기했고 오히려 폐허 속에서 피어나는 소망과 믿음을 구해보려는 ꡐ심볼ꡑ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신목사와의 언로를 트기위해 위해 이 대위는 ꡒ당신의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의 고통을 알고 계십니까?ꡓ라고 신목사에게 반복적 질문을 한다.
/ꡒ그렇소. 이 대위! 난 일생 동안 하나님을 찾았소. 허지만 내가 발견한 것은 고통과 죽음, 가차없는 죽음만이 있는 인간뿐이었소.ꡓ
ꡒ그럼 죽은 뒤에는 뭐가 있습니까?ꡓ
ꡒ아무것도 없소ꡓ/는 ꡐ신 목사식 기독교ꡑ 즉 자신의 기독교관을 실토하는 대목이다.
신 목사는 이어, ꡒ고난이 그들의 희망과 신앙을 움켜잡아 절망이라는 깊은 바다 속에 처넣고 있소. 우리는 그들에게 빛을 주고 찬연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말해주고 영원한 하나님의 천국에서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믿음을 주어야 하오ꡓ라고 말한다.
‘정적(靜的)인 장면’들은 오히려 서구의 시각적 전통에 더 잘 부합된다. 유현목영화의 특징중의 하나는 오즈 야스지로가 카메라 앵글이 보여주는 한 인물의 시선이 미치는 범위 내에 있다고 여겨지는 사물들을 다양한 크기의 화면과 앵글로서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무신론자 대 무신론자의 만남과 대화가 되어버린 이대위와 신목사, 인간관계의 언로를 트면서 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 영화의 결말은 신앙의 길이 얼마나 어렵도 고통스러운 과정인가를 형상화시킴으로써 신앙의 영원성에다 초점을 맞춘다. 그것은 월남한 고 군목이 해변가에 천막교회를 지으며 새로 세운 십자가에서 말없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ꡐ나는 영상으로 생각한다ꡑ는 말답게 유감독은 화면구성과 조명 감각은 서구적 이미지와 인상주의 화가들의 고정된 실내의 빛, 야외 촬영의 빛의 변화를 표현해 낸다. 과다노출로 인한 심리적 상실감 표현들로 자신과 비정한 사회와 황폐함 등을 이미지화 시켜내는 탁월한 능력도 발견된다.
인간이란 비극의 한복판에 놓여져 고뇌하는 신 목사, 그 곁에서 미쳐버린 한 목사, 이들 목사들이 추구하는 이상보다는 현실을 선택한 고 군목, 그리고 공산당에게 처형된 12명의 목사들이고, 이 모든 인간들이 선사 기독교에서 말하는 순교자상에서 벗어나 있다 치더라도 그들은 결국 한시대의 비극을 몸 전체로 느끼며 영혼을 저당잡혔던 피해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신 목사가 한 말 ꡐ인간을 사랑하시오. 그들을 도와주시오. 절망과 싸우고 언젠가는 죽기 마련인 인간을 불쌍하게 여길 용기와 함께 십자가를 간직하시오ꡑ에 부응할 만큼 각자 자기의 십자가를 졌다.
3. 클로징
스타일리스트 유현목 감독의 『순교자』를 텍스트로 하여 배우와 감독의 관계, 내면적 양식, 인간적 배경, 종교적 배경들을 우리는 살펴낼 수 있다.
유현목 감독 영화의 핵심은 인간과 인본주의이다. 인간들 사이에 존재하는 대결의 본질은 이념이 아니다. 다른 편에 섰을 뿐 적(敵)이 아니다. 그들에겐 증오의 기억과 기억하고 싶지 않은 두려움이 있었을 뿐이다.
김진규가 맡은 신목사역은 유현목 자신의 환경과 입장을 투사하고 있는지는 모르고 선친을 재현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외부의 소식이 거의 차단된 사회에서 유현목은 전쟁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미장센으로 전쟁영화를 곁에 둘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 절망감, 방향상실, 목적상실이 팽배한 전후, 유현목은 영화로ꡐ세상에 대한 외침ꡑ을 계속했다. 그 계몽적 외침은 한국영화의 질적 향상에 기여했다.
암갈색 톤으로 허무주의를 깊게 깔았던 전후(戰後)의 지식인 유현목은 이제 현실 속에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 혼란에 빠진다.
유현목은 구도와 조명으로 인물의 내면 그 아픔을 외부로 끄집어낸다. 실향의 아픔과 사라진 가족, 이루지 못한 꿈들을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요즈음 라이프 사이클은 그의 삶을 ꡐ오발탄ꡑ으로 만들어 버린 지도 모를 일이다.
소설과 영화 장르의 실험을 경험케 하고, 종교와 예술표현이 정면충돌한 『순교자』는 국립극장에서 김기팔 각색, 허규 연출로 무대화 되기도 하였고, 영화권을 얻은 ꡐ어느 한국여성ꡑ은 강유정(신협배우) 씨였다.
‘사탄의 작품’ ‘용공적인 작품’이라고 지탄을 받은 『순교자』는 이 작품이 1. 신의 존재를 부정했고 2. 북한군 장교의 증언을 하나의 사실처럼 다뤘고 3. 대한민국 정보장교는 수단과 목적을 가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영허가를 중지신청까지 받았다.
순교와 배교, 이단은 정통은 백지 한 장의 차이이다. 『순교자』에서 살해된 열두 명의 목사는 신도들에게는 순교자로 받아들여졌지만 마지막까지 목숨을 구걸한 사람들이었다.
신목사의 회상형식으로 간접 증언된 진상은 죽음 앞에 의연했던 신목사가 영웅으로 부각된다. 그런 행동은 신의 존재를 부정했기에 가능했다. 신 목사는 신의 침묵이 결국 신의 부재에 기인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 목사는 순교만이 신도들을 구원해줄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구원에 대한 믿음이 확실한 만큼 신 목사는 결국 순교자의 길을 걸어간다. 결국 신 목사는 앎의 대상으로서의 신은 포기했지만 믿음의 대상으로서의 신의 여지 남겨둔다.
『순교자』에서 내면 심리는 불빛의 변화로 나타낸다. 다양한 화각으로 화면의 긴장감을 고양된다. 예를 들면 이 대위와 한목사가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극단적인 부감의 화각으로 한목사와 이대위의 대비되는 입장과 긴장을 표현하고 있다. 즉 부서진 사다리 위에선 한목사의 불안정하고 광기어린 등 뒤 위에서 상대적으로 아래편에 위치한 이 대위를 작게, 안정되게 보여줌으로써 그 둘의 내면적인 상관관계/무지한 인간과 신을 배반한 사도/를 축약 표현하는 등의 시도이다.
유현목 감독은 이 대위가 교회주변을 지나면서 보게 되는 장면을 아주 사실적이면서도 개관적인 형태로 나열하고 있다. 주관적 사운드와 객관적 쇼트들은 다큐멘터리처럼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처리되고 있다. 부서진 종탑에서 울려나오는 종소리, 강렬하면서도 장중한 음악이 흐른다. 감독은 역사를 보는 눈을 관객의 몫으로 돌린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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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인생』, 혜화당,P154
2) 『映像時代의 寓話』,제3기획,김종원,p 48
3) 『영화평론』 제3호,변인식,ꡐ유현목 영화에 나타난 안티 코뮤니즘ꡑ
4)『한국영화 70년 대표작 200선』, 1989년 영화진흥공사
5)욥기 24장 12절
6) 그리고 암담한 고난의 땅을 향해 나는 맹세하였다./그 희생의 거룩한 밤에/나는 비록 불운의 무거운 짐을 진 나라일지라도/
두려움 없이 죽을 때까지/진정으로 사랑하겠노라고 다짐하였다./불가사의한 점이 적지 않는 나라일지라도/
결코 탓하지 않기로 맹세하였다./이리하여 나는/ 숙명적인 끈에 의해 나의 조국과 얽매어졌다.
<공연과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