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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Croatia)
시차: 한국보다 7시간 느림
수도: 자그레브
대사관: 385-1-4821-282
통화: 쿠나(kn) 1쿠나=170원, €1=7.5쿠나
무사증 체류기간: 90일 상호주의
언어: 크로아티아어
면적: 약 5만6천㎢(한반도의 0.256배)
인구: 약 416만 명(세계 129위)
▶카를로바츠(Karlovac)-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 서부, 코라나 강과 쿠파 강의 합류지점에 위치해 있다. 동방 정교회 및 로마 가톨릭교 대성당들과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오래된 공공 도서관이 있으며, 철도와 도로의 주요연계지로 목재·곡물·포도주·꿀 등의 무역이 매우 활발하다. 모직물·가죽·장화류·화학제품 등의 제조업이 이루어진다.
투르크의 진입을 막기 위해 1579년에 세워진 카를로바츠 요새는 국경수비대의 초대 사령관이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카를로스 대공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16, 17세기에 투르크는 이 요새를 함락시키기 위해 여러 차례 공격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라스토케-크로아티아
유럽의 작은 마을들은 웬만하면 동화 속 마을 같다는 표현이 어울리는데 크로아티아의 라스토케는 그 중에서도 가장 그 표현이 들어맞는 마을이다.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 물레방아가 돌며 마치 물위에 지은 집처럼 보이는 숲속의 작은 집들은 요정이 살고 있을 것만 같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의 코리나강 물줄기를 따라 이어져 있으며 '플리트비체의 작은 호수'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천사의 머릿결'이란 뜻을 지닌 라스토케는 크고 작은 폭포가 쏟아지는 아기자기한 마을 분위기 덕분에 웅장한 건축물에 압도당한 여행자들이 잠시 쉬어가며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곳으로 딱 좋다.
●플리트비체국립 호수공원(Plitvička Jezera)
가격: 1일 티켓: 1~3월,11~12월 성인 55Kn
사이트: www.np-plitvicka-jezera.hr
이용 시간: 07:00~20:00
죽기 전에 꼭 가 봐야 하는 환상적인 호수 공원으로 계단식으로 펼쳐지는 16개의 호수가 있고 그 위로 크고 작은 90여 개의 폭포가 흘러내려 아름다운 절경을 이루고 있는 플리트비체 국립 호수 공원이 처음부터 이런 풍경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하나였던 강물이 탄산칼슘과 염화마그네슘으로 분리되는 과정에서 생긴 석회 침전물이 나무와 돌에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지금처럼 아름다운 계단식 호수와 폭포로 자리 잡게 되었다. 플리트비체의 호수가 아름다운 에메랄드빛을 띠는 이유도 바로 이 석회 성분이 호수 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런 아름다운 호수 공원을 만날 수 있는 건 자연 그대로 잘 관리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곳은 보호할 가치가 높은 동식물의 서식지이기도 하여 자연의 보호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래서 공원 내의 표지판은 나무로 되어 있고, 공원 내에 있는 산책로 역시 흙으로 되어 있거나 나무로만 이루어져 있다. 덕분에 숲 속을 탐험하듯 공원을 둘러볼 수 있다. 여전히 이 호수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변화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계단과 호수, 폭포가 생길 것으로 예측해 본다.
공원은 크게 상부 호수와 하부 호수로 나눠지는데 백운암층의 상부 호수는 숲과 갈대밭, 폭포 등이 어우러져 있고, 운회암층의 하부 호수는 신비한 에메랄드빛의 환상적인 호수를 만날 수 있다. 호수 공원의 총 면적이 19.5헥타르에 이르기 때문에 호수를 제대로 둘러보려면 3일을 봐도 부족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상부 호수와 하부 호수를 함께 둘러보는 코스인 C코스나 H코스를 따라 관람한다. 이 경우 4~6시간 정도의 시간을 공원에서 보내야 하니 간단한 간식거리나 물 등의 음료를 미리 준비해서 가는 것이 좋다. 더불어 비수기 여행이라면 운영 시간이나 출입구의 오픈 여부도 미리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 좋다.
※H코스(4~6시간 소요)
2번 입구에서 출발해서 2번으로 나오는 코스
C코스와 비슷한 코스로, C코스와 함께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선호하는 코스다. 2번 입구로 들어가 상부 호수의 가장 위까지 순환 열차로 이동한 후, 상부 호수를 관람하면서 내려와서 보트로 호수를 건너고 나서 하부 호수를 둘러본다. 그리고 순환 열차를 이용해 2번 출입구로 나간다.
▶스플리트(Split)-크로아티아
스플리트는 이탈리아와 마주 보고 있는, 아드리아 해에 접한 달마티아 주의 주도로 크로아티아 제2의 도시이다. 3세기경 로마의 황제였던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스플리트 인근에서 태어났으며, 은퇴 후 여생을 즐길 장소로 고향이었던 스플리트를 택해 이곳에 궁전을 지었다. 스플리트 항구에서 바로 보이는 종탑이 인상적인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궁전은 스플리트의 상징과도 같다. 스플리트는 수도인 자그레브보다도 긴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도시이다. 이탈리아와 발칸 반도를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담당하는 요충지이며, 유고슬라비아 왕국 시절부터 달마티아 지방의 가장 중요한 항구 도시로 개발되어 현대적인 항만 시설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는 관광 중심 도시로의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흐바르 섬이나 트로기르, 시베니크 등 주변 도시들이 인접해 있어 많은 여행자들이 이 도시를 찾고 있다.
●디오클레티아누스궁전,Palace of Diocletian
디오클레티아누스(로마 황제) 궁전은 스플리트에서 가장 중요한 유적이자 관광지이다. 로마의 황제였던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은퇴 후 자신의 고향에서 지내기 위해 295년부터 305년에 걸쳐 건축했다. 유럽 각지에서 가져온 최상급의 대리석과 석회암뿐만 아니라 이집트의 스핑크스, 기둥까지 가져와 장식하는 등 심혈을 기울여 완성하였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은 동서남북의 각 방향으로 금속의 이름을 붙인 문이 있다.
동쪽에는 은문(Silver Gate), 서쪽에는 철문(Iron Gate), 남쪽에는 동문(Bronze Gate), 북쪽에는 금문(Golden Gate)이 있으며, 총 면적은 31,000m2에 이른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원하는 대로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지 못하고 권력 투쟁에 휘말려 어지러운 말년을 보냈는데, 디오클레티아누스 이후의 황제들도 한동안 이곳을 별장으로 사용했다. 중세 시대에는 지금도 볼 수 있는 길이나 광장 등이 만들어졌으며 교회와 종탑 등이 추가로 건축되었다. 궁전의 중앙에는 열주 광장이 위치하고 있다. 광장 옆의 기둥은 이집트에서 가져온 것이며 기둥을 세운 뒤 다시 석회암으로 구조물을 만드는 방식으로 궁전을 건축했다. 광장 양쪽에 있는 계단에 앉아 있으면 잠시나마 로마 시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느끼게 될 것이다.
주피터 신전과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영묘는 황제의 거처가 있는 중정 안에 있었다. 7세기에 아바르족들이 쳐들어와 궁전을 크게 훼손했지만 639년 그들의 침략이 그치자 폐허가 된 살로나 신 주민들이 부서지지 않고 남아 있는 궁전 안에 대피소를 만들었고 옛 벽과 기둥·장식물들을 모아 그들의 방식대로 새집을 세웠다. 이 지역이 지금의 스플리트의 구시가이다. 로마의 유적이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광장은 궁전의 4개의 문을 통해 외부로 연결된다. 광장의 동쪽으로는 은문(Silver Gate)이 있으며 이곳을 지나면 전통 시장을 만날 수 있고, 서쪽으로는 철문(Iron Gate)을 지나 나로드니 광장으로 갈 수 있다. 광장의 남쪽으로는 지하로 연결된 계단이 보이는데 이곳으로 내려가면 지하 궁전으로 연결되는 통로를 볼 수 있다. 이 통로는 현재 기념품 가게 등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곳을 지나면 동문(Bronze Gate)을 통해 항구가 보이는 해변으로 나갈 수 있다. 반대 방향인 북쪽으로 올라가면 좁은 골목을 지나 금문(Golden Gate)을 통해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데, 문을 나서면 그레고리우스 닌의 거대한 동상을 볼 수 있다.
●그레고리우스 닌의 동상(Grgur Ninski)
열주 광장에서 북쪽으로 향하면 좁은 골목이 나오는데 이 골목을 지나면 금문(Golden Gate)을 통과할 수 있다. 문을 통과하면 거대한 동상이 눈앞에 나타나는데, 이 동상은 크로아티아 출신의 세계적인 조각가인 이반 메슈트로비치가 만든 그레고리우스 닌의 동상이다. 그레고리우스 닌은 10세기경 활동했던 크로아티아의 주교로, 당시에 라틴어로만 보던 미사를 크로아티아어로도 볼 수 있도록 바티칸에 간청했던 인물이다. 크로아티아에서는 가장 유명한 종교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이 동상은 원래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의 열주 광장 안에 있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크로아티아를 점령했던 이탈리아 군대가 궁전 밖으로 동상을 옮겼고, 이후 금문 바깥에 자리를 잡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동상의 엄지발가락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속설 때문에 관광객에게 더욱 유명하다. 스플리트를 방문하는 여행자들이 모두 한 번씩은 만진다고 할 정도로 인기가 많기 때문에 엄지발가락 부분만 반질반질하게 광택이 나 있다.
●리바거리
▶두브로브니크(Dubrovnik)-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의 최남단에 위치한 두브로브니크는 ‘아드리아 해의 진주’라 불릴 정도로 환상적인 풍경을 자랑하는 크로아티아 여행의 핵심 포인트이다. 짙푸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진 해안 마을로 빨간 지붕의 집들이 오밀조밀 정겹게 붙어 있고 동네 전체를 아주 커다란 성벽이 둘러싼 아늑한 시가지에 한쪽은 배가 드나들 수 있는 항구로 만들고 성 안에는 온갖 편의 시설이 있다. 길이 2킬로미터 높이 최고 25미터의 육중한 성곽이 두브로브니크의 옛 시가지를 완전히 둘러싸고 있다. 사람들은 이 위를 걸으며 아드리아해의 짙푸른 바다와 중세 도시를 굽어보는 환상체험을 한다. 성곽 위에서 내려다보는 마을은 박제된 유적이나 관광지가 아니라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일상의 장소다. 중세의 마을이 타임머신을 타고 그대로 옮겨진 그런 모습이다. 아일랜드 출신의 문학가 버나드 쇼는 이곳을 '지상낙원'이라고 표현했고, 유럽인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휴양지 1위로 꼽히기도 하는 곳이 바로 두브로브니크다. 너무도 완벽히 보존된 중세의 모습 덕에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중세 시대에는 아드리아 해에서 중요한 무역의 중심지가 되면서 크게 성장했고,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를 받다 1358년 라구사(Lagusa)라는 도시 국가로 탈바꿈한다. 라구사 공화국은 인근의 강대국 사이에서 해상 무역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챙기고, 적절한 균형을 지키는 외교 정책을 통해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1667년 대지진으로 경제적 기반을 상실하고 서서히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으며 1808년 나폴레옹이 이곳을 점령하면서 독립 국가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의 일부로 편입되었다가 1991년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끝난 후에는 크로아티아 영토에 속하게 되었다. 내전 당시 크로아티아를 침공한 세르비아 군대가 두브로브니크를 포위하고 포격을 가해 도시의 건물 상당수가 파괴되었는데 이 소식을 전해들은 전 세계의 학자들이 인간 방패가 되어 두브로브니크를 지켰으며 전쟁 후 유네스코 등의 지원을 통해 대부분의 유적들이 복원되었다.
●프란체스코 수도원
성사비오르 교회 맞은편에는 오노플리안 분수가 있고, 성사비오르 교회 오른쪽에 웅장한 프란체스코 수도원이 있다. 1317년에 지었다. 수도원 입구의 문 위쪽 외벽에 피에타 상 조각상이 있다. 청빈하고 영원 구원을 위한 수도원이다. 학교, 병원, 종교 3가지 역할을 했다. 특징은 가장 오래된 약국이 성당 안에 있다는 것이다. 일반인에게 1391년 문을 열었다. 현재도 실제로 약을 판매한다. 유럽에서 3번째로 오래된 약국이다. 세계 최초로 일반인에게 개방한 약국이라는 데에서 의미가 크다. 원래 프란체스코 수도원의 계율에는 수도원 안에 약국을 둘 것을 명시하고 있다. 약국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고, 약국 안에는 낡은 처방전, 그 당시의 조제기구, 약품 등을 그대로 남겨 한쪽 면에 전시하고 있다. 많은 고문서도 보관하고 있다. 14세기에 건설된 바로크 양식의 교회다. 17세기 크로아티아를 휩쓴 대지진으로 많은 피해를 입어, 화려한 장식은 볼 수 없다. 안으로 들어가면 아름다운 회랑이 있다. 회랑 오른쪽에는 오래된 약국이, 왼쪽은 종교 박물관이 있다. 수도원 안쪽에는 수도사들이 실제로 생활하고 있다. 두브로브니크의 플라차 거리 초입에서 만나는 건물이다.
●두브로브니크 대성당
이탈리아 건축학자 버팔리니가 설계하고 성 블라이세의 유물이 보관되어 있는 성당이다.
‘성모 승천 대성당’이라고 불리는 두브로브니크 대성당은 12세기 두브로브니크 인근 로크룸 섬에서 풍랑을 만나 배가 난파되었지만 다행히 구조된 영국의 리처드 1세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봉헌한 헌금으로 원래 있던 교회 자리에 증축해 지어졌다. 하지만 17세기 대지진으로 일부가 파괴되고 바로크 양식이 더해지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성당 안 보물실에는 성 블라이세의 유물과 두브로브니크의 금 세공사가 만든 금 세공품이 보관되어 있으며, 이탈리아 화가였던 티치아노의 ‘성모 승천’과 라파엘로의 ‘마돈나’라는 작품도 볼 수 있다.
●플라차 거리
하얀 대리석이 깔려있는 곳. 필레 문을 통과하면 종탑 앞 루자 광장까지 이어지는 300m의 큰길이 바로 ‘플라차’라고 부르는 길이다.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길’이란 뜻의 ‘플라차’는 베네치아어로 ‘길’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스트라둔’이란 이름으로도 불린다. 13세기에 만들어진 대로지만 그 전에는 바닷물이 흐르던 운하였으며, 돌을 사용해서 포장길을 만든 것은 1468년이었다. 17세기 중반 대지진 후 다시 복구하면서 지금처럼 반짝이는 대리석 바닥을 깔았다. 대로를 사이에 두고 기념품 가게, 카페, 상점들이 늘어서 있고 구시가지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
●렉터 궁전(Rector’s Palace)
단아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으로 두브로브니크의 정치의 중심지다.
1272년 처음 건축되었지만 1435년 화재로 인해 르네상스 양식으로 다시 재건되었다. 1667년에는 대지진으로 파괴되면서 또 한 번의 재건을 통해 지금의 바로크 양식이 추가되었다. 다양한 건축 양식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크네베브 궁전(Knežev dvor)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렉터 궁전(Rector’s Palace)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렉터’는 ‘최고 통치자’라는 뜻으로, 궁전은 두브로브니크 시의 행정을 맡았던 최고 지도자의 집무실이었고, 두브로브니크 정치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궁전 정면에는 화려한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는 6개의 기둥이 있고, 기둥 안뜰에는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있던 선장이자 자선 사업가로 알려진 ‘미호 프라차트’의 청동 흉상이 세워져 있다. 그는 가지고 있던 엄청난 재산을 국가에 기증했는데 사후에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638년에 동상을 세웠다. 안뜰에서는 여름 축제 때 클래식 공연이 열린다.
●스폰자 궁(Palača Sponza)
고문서를 보관하고 있는 국립 기록 보관소다. 16세기 초반에 지어진 르네상스 양식과 후기 고딕 양식이 합해진 건물로 17세기 중반 대지진에도 피해 없이 살아남은 몇 개 되지 않은 곳 중 한 곳이다. 경제 중심지였던 곳인 만큼 건축했을 당시에는 물건을 거래하던 장소로 사용되었고, 그 후 조폐국, 은행, 세관 등으로 운영되었으며, 현재는 10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고문서와 역사를 기록한 문서들을 전시하고 있는 국립 기록 보관소로 운영되고 있다. 크로아티아 내전 당시의 참상을 보여 주는 영사실과 내전 당시 희생된 희생자들을 기리는 전시실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시계탑
▶자다르(Zadar)
크로아티아 달마티아 지역의 주도인 자다르는 아드리아 해 북부에 위치한 항구 도시다. 특히 교통의 요충지이기 때문에 크로아티아 주요 도시뿐 아니라 유럽 다른 나라에서도 쉽게 갈 수 있다. 성벽에 둘러싸인 요새 도시로 고대 로마 시대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로마인들은 이곳을 지배하는 동안 전형적인 고대 로마 도시를 건설했다. 중세 시대 때는 로마 교황청에서 직접 이곳을 관리하기도 했고 14세기 말엔 크로아티아 최초로 대학이 세워졌다. 자다르 근교에는 14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코르나티 군도가 있는데, 이곳이 바로 셰익스피어의 희곡 〈12야〉의 배경이 된 곳이다. 고대 도시가 가져다주는 매력 그리고 석양이 특히 더 아름다운 아드리아 해안과 근처 섬들의 신비로움까지 더해진 자다르는 크로아티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 도시로 손색이 없다.
●바다 오르간
자다르는 작은 해안 도시로 비교적 치안이 안전한 편이며 호텔에서 택시를 부르면 만원 이내의 요금으로 바다 오르간이 있는 해변에 도착할 수 있다. 바다오르간과 화려한 네온사인처럼 다양한 색상으로 변신하고 있는 태양의 인사(Greeting to the sun) 주변에 많은 여행자들이 찾는 곳이다.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도 이곳 자다르 석양을 극찬하며 무척 사랑했다고 하는데 계단에 앉아 바다오르간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아드리아 해의 석양을 감상하는 여유는 여행의 피로를 풀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 될 것이다.
●태양의 인사
태양의 인사는 낮에 종일 태양전지판으로 충전을 하여 밤에 빛을 내는 시스템으로 바다 오르간과 함께 자다르 여행의 볼거리다.
●다섯 개의 우물
16세기 베네치아인들은 오스만투르크족의 공격에 대비하여 비상 식수원을 확보하기 위한 저수지를 만들고 정수 시설까지 갖춘 후 그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5개의 우물을 팠다. 지금까지도 잘 보존돼 있어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곳이다. 우물의 아름다운 장식은 당시 우물이 기능적인 면 이외에 건축물의 하나로 자리하고 있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당시 물을 끌어올리던 도르래까지 남아 있어 더욱 흥미롭다.
▶자그레브(Zagreb)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는 크로아티아의 수도로 크로아티아 여행을 시작하는 출발점이거나 혹은 크로아티아 여행을 마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위한 마지막 거점 도시가 되는 곳이다. 주변 다른 유럽 국가와 기차, 버스로 쉽게 연결되고 특히 서유럽과 동유럽을 통과하는 철로 중심에 있어 교통의 요지로 크로아티아 여행의 중심이 된다. 물론 교통뿐 아니라 도시 자체의 매력도 있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특히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부터의 독립 전쟁을 혹독하게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구시가지를 보존하고 있어 더욱 특별하다. 자그레브에선 특히 그다데츠와 캅톨 언덕에 걸쳐 형성된 구시가지가 관광객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유럽 대부분의 도시들에서 그렇듯 자그레브 역시 유럽 중세 도시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자그레브 대성당 및 성모 마리아상
자그레브 대성당은 1093년 처음 건설되기 시작했는데, 1242년 타타르족의 침입 때 방화로 인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후 재건축되었지만 1880년 지진으로 인해 성당은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1889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된 것이다. 현재도 성당 외부 일부가 공사 중이다. 성당은 전반적으로 바로크 양식으로 건축되었으며 높이 솟아 있는 108m의 쌍둥이 첨탑은 후반 네오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 처음엔 똑같이 만들어졌던 것이 손상되면서 그 높이가 달라졌다고 한다. 내부는 5000명이 동시에 예배를 드릴 수 있을 정도로 큰 규모인데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제단들이 있고 보물급 유물들도 10개 이상이 이곳에 있다. 또한 13세기에 그려진 프레스코화와 벽에 새겨진 상형 문자도 눈여겨봐야 한다. 성당 앞 광장에는 성모마리아상과 수호성인의 화려한 조각상이 있다.
●성 마르코 성당
그라데츠 지역의 중심에 있는 성 마르코 성당은 자그레브를 대표하는 건물 중 하나다. 성당은 크로아티아를 상징하는 타일 모자이크 지붕으로 유명한데 갈색과 청색 그리고 흰색의 타일로 이루어져 있다. 지붕 오른쪽에는 자그레브의 문장이, 왼쪽에는 크로아티아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건물은 14~15세기에 걸쳐 건축이 되었는데 전반적으로 고딕 양식이지만 창문만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져 독특하다. 성당 내부에는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유명한 이반 에스트로비치의 조각 작품들도 만날 수 있고, 아름다운 프레스코화도 볼 수 있다. 성당 바로 근처에 있는 로트르슈차크 탑에서 바라보는 시내의 모습이 아름답다. 성당을 둘러본 후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함께 둘러보면 좋다.
●반 옐라치치 광장
이 광장은 자그레브 여행의 시작이자 끝인 장소로 시내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다. 광장 주변은 현대적이고 고풍적인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는데, 트램을 제외하고는 차가 다닐 수 없는 보행자 전용 광장이다. 이 광장은 17세기 오스트로-헝가리 스타일로 건설되었으며, 중앙에는 184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침입을 물리친 전쟁 영웅 반옐라치치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광장은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공산주의에 의해 반옐라치치 동상이 제거되고 이 광장의 이름도 ‘공화국의 광장’으로 바뀌었다가 1991년 유고슬로비아로부터 독립한 후 다시 예전의 이름을 되찾고 동상도 제자리에 돌아왔다. 만두세바크(Manduševac) 분수대가 동상 근처에 있다.
●자그레브 돌라츠시장(노천시장)
돌라츠시장은 자그레브를 대표하는 재래시장으로 관광객에게 인기 있는 명소다. 평소에는 평범한 광장인 이곳은 아침 일찍부터 오후 3~4시 정도까지 노천 시장으로 활기를 띤다. 주로 크로아티아의 신선한 과일과 야채, 치즈 등의 유제품을 팔고 있으며 아기자기한 기념품도 이곳에서 구입할 수 있다.